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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우의 세상읽기

박근혜는 더 말해야 한다

박근혜는 더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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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스스로 빛을 내는 존재는 아니었다. 부모의 후광(後光)이 그녀를 비추었을 뿐이다. 아버지 박정희는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인물이다. 산업화와 근대화의 기틀을 마련한 ‘위대한 대통령’이자 비(非)민주 반(反)인권의 ‘개발 독재자’였다. 한편에서는 그를 찬양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를 비난한다. 우리사회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 간 갈등의 저변에는 여전히 ‘박정희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쟁점이 자리하고 있다. 박근혜로서는 운신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역사적 조건이다. 그러나 그녀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았을 강인함과 신중함으로 자신을 얽어맬 수 있는 조건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대중의 감성은 ‘박정희의 딸’에 대한 연민으로 치환되었고, 그녀는 어머니 육영수의 이미지로 대중에게 화답했다. 미소와 짧은 말이 빚어내는 ‘공주의 아우라(aura·특수하고 미묘한 분위기)’는 그녀에게 일정한 신비감을 안겨주었고, 어느새 그녀는 ‘박정희의 딸’에서 국민으로부터 가장 높은 지지를 받는 ‘정치인 박근혜’로 자립했다.

당대표로서 만신창이가 된 ‘차떼기 당’을 살려냈던 박근혜 의원은 ‘보통 의원’이 아니다. 그녀는 현재 거의 유일하게 청와대를 긴장시킬 수 있는 여당의원이다. 친박계의 수장이자 가장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인 그녀의 동의를 구하지 못하면 대통령도 자신의 소신을 접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6월, 이명박 대통령이 정운찬 총리를 앞세워 드라이브했던 세종시 수정안은 국회에서 부결됐다. 친박계의 수장인 그녀의 반대가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그녀는 말했다. “국민에게 약속한 것은 지켜야 한다.”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정치는 바로 설 수 없다는 ‘공자 말씀’이었다. 기존의 행정중심복합도시가 옳은 것인지, 수정안의 교육과학중심도시가 옳은 것인지를 떠나 그녀는 ‘신뢰의 정치’라는 무형의 가치를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신뢰할 수 있는 정치인의 이미지에 충청권의 지지를 예약했다. 도랑 치고 가재 잡은 격이다.

언제부터인가 여당은 물론 야당에서도 박근혜 의원의 입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언론 역시 늘 그녀의 말에 주목했다. 그녀의 발언은 대체로 짧았으나 무게는 내용에 비해 무거웠다. 이런 현상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그녀는 혹시 스스로 차별화된 존재감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녀의 집권의지가 분명하다면 이제 국민은 그녀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아우라의 베일을 벗겨내야 한다.

동남권 신공항 논란에서 박 의원은 예의 국민과의 약속이란 화두를 꺼냈다. “정부나 정치권이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지 않아야 예측가능한 나라가 되지 않겠느냐”는 명징한 논리다. 그러면서 동남권 신공항 건설은 계속 추진되어야 할 사업이라고 했다. 현재의 예상대로 그녀가 한나라당의 차기 대선후보가 된다고 가정한다면 첫 공약을 내놓은 셈이다.

이 대통령은 동남권 신공항 건설계획을 백지화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나라 살림을 책임진 대통령으로서 경제적 타당성이 결여된 경우 국가와 지역의 부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통령 한 사람 편하자고 국민에게 불편과 부담을 주고 다음 세대까지 부담을 주는 이런 사업을 책임 있는 대통령으로서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동남권 신공항을 경남 밀양에 건설하든, 부산 가덕도에 세우든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결론은 이미 2009년 9월에 내려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발표를 그해 연말로 미루더니 다시 6개월을 연장했다. 왜 그랬을까? 2010년 6월 지방선거를 고려한 정치적 계산이 작용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고도 다시 9개월이 더 지났다. 이렇게 시간을 끄는 사이에 밀양과 부산 간 갈등이 증폭되고, 지역구 표에 목을 걸 수밖에 없는 국회의원과 지자체장들이 앞장서 이전투구를 벌이게 됐다.

애당초 지키지도 못할 공약(公約)을 왜 했느냐는 소리는 하나마나다. 나중에는 어떻게 되든 당장 표 되는 일이라면 죽은 사람 살려내겠다는 말 빼놓고는 다 할 수 있는 것이 선거판 아니던가. 또 후보 공약 따져보고 투표한 유권자가 도대체 몇이나 되겠는가. 다들 빤히 아는 얘기들을 놓고 여야가 정색을 하고 삿대질을 하는 것은 우스운 짓이다. 오히려 다음 선거에서부터라도 표 모으기 가짜 공약은 하지 않겠다는 성찰의 계기가 될 수 있으면 다행이다.

어쨌든 “선거 때 무슨 말을 못하겠느냐”는 공약(空約)이었으면 빨리 정리해야 했다. 그러지 못한 데서 이 사단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경제성이 없는 사업이라면 늦게라도 접어야 한다. 그 점에서 대통령의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결정은 옳다. “대통령 한 사람 편하자고 다음 세대에 부담을 줘서 되겠느냐”는 말도 오랜만에 들어보는 대통령의 바른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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