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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중 전과기처 장관 특별기고

과학기술 없이 21세기 없다

  • 김시중 고려대 명예교수

과학기술 없이 21세기 없다

  • 《최근 우리의 국가경쟁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과학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고, 과학자를 제대로 대우하지 않으며 과학교육이 창조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다. 21세기 변화의 중심은 과학기술이다. 과연 지금 우리는 어떻게 21세기를 헤쳐 나가려고 하는가. 》
최근 우리 주변에서는 새 천년을 맞아 가지각색의 전망들이 속출하고 있다. 과학자의 눈으로 본 21세기는 어떤 시대가 될 것인가. 우선 세계적 석학들이 갈파한 21세기를 살펴보자.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21세기를 ‘정보화 시대’로 규정하고 지식이 중요한 생산요소로 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니엘 벨은 21세기가 ‘과학혁명, 기술혁명, 기업혁신, 소비혁신이 일어나는 시대’로 예견했고, 피터 드러커는 ‘기술혁신이 사회를 지배하는 시대’로 전망했다. 이들의 견해를 종합하면 결국 21세기의 중심에는 과학기술이 놓여 있다.

잠시 눈을 뒤로 돌려 우리가 IMF체제에 들어간 이유를 생각해보자. 관점에 따라 외환 및 금융관리 운영의 부실, 문어발식 기업경영, 분수도 모르는 과소비 행태 등 여러 가지가 지적될 것이다. 그러나 과학자의 생각은 좀 다르다. 개방화 시대가 가진 참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경제성장을 오로지 상품의 양적 수출 신장에만 의존했으며, 질적으로 부가가치가 큰 창조적 신기술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는 무한 경쟁시대를 뚫고 나갈, 자신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경제체제를 구성하지 못했다.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은 92년 대선 당시 과학기술에 대한 어떤 비전도 없다고 비판받았다. 그러나 95년 클린턴은 ‘국가 안보 과학기술 전략’이란 보고서를 내면서 과학기술정책을 국가발전정책의 핵심으로 부각하는 한편, 종래의 산업수단으로 수립된 과학기술정책을 경제 및 산업정책보다 우위에 놓았다. 이어 97년 5월에는 한 대학강연에서 “정보화 사회는 과학기술의 틀 위에서 형성되며, 미국 경제의 60% 이상이 과학기술에 힘입고 있다”고 과학기술발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중국의 등소평은 “과학기술이 제1 생산력”이며 “과학기술은 경제발전에 기여하고 경제발전은 과학기술에 의존한다”라고 선언했다. 중국은 ‘과기흥국(科技興國), 경제발전’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96년부터 ‘과교흥국(科敎興國)’의 목표에 따라 과학기술을 육성하고 있다.

일본은 ‘창조과학’ 발전으로 과학기술분야뿐만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한 경제발전에서도 세계의 견인차가 되겠다며 ‘과학기술 기본법’을 마련해 획기적인 재정투자를 시행하고 있다. 또 유럽은 미·일에 대응하기 위해 연구자원을 집결시키는 ‘제5차 EU 연구개발 기본계획’을 수립·추진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과학기술의 현실은 어떠한가? 1998년 OECD 주요 통계지표를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의 총연구개발 투자는 세계 6위, GDP대비 연구개발투자는 세계 2위, 연구개발인력의 연구원 수는 약 10만명으로 세계 6위, 특허출원등록 건수는 96년을 기준으로 일본, 미국, 독일에 이어 세계 4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1999년 IMD 국가경쟁력을 보면 (표 1)과 같이 99년 연구개발비 세계 9위, 연구개발에 대한 개인 관심도 36위, 기술관리력 46위, 과학환경 26위, 지적재산 24위로 평균 28위를 점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수준을 선진국과 비교하면 (표 2)와 같다.

이것을 살펴보면 오늘 우리 과학기술의 현실을 알 수 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지금까지 정부와 기업체는 연구비투자를 선진국 수준에 이르게 하기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 결과로 오늘날 그나마의 경제성장을 해 온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 제품의 국제경쟁력이 선진국에 뒤진다고 하는가? 그 이유를 살펴보면 (표 2)와 같이 5~7년이나 벌어진 선진국과의 과학기술 격차를 줄이는 것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무에서 출발해서 기술격차를 줄일 때는 빠른 속도로 가능하지만, 60% 이상의 기술수준까지 올리려면 종전의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앞으로 선진기술은 돈으로도 살 수 없다. 선진기술은 대등한 입장에서 기술교환이나 기술합작 형식으로 터득하는 도리밖에 없다. 더구나 우리 과학기술이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지금까지의 여건과 환경,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3가지 걸림돌이 있다.

첫째는 우리의 과학기술에 대한 시각문제다. 특히 정부는 과학기술 최우선주의를 체감할 수 있는 시책을 펴고, 국민은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을 높여야 한다. 개인의 명예욕을 위한 일관성 없는 정책, 경제 지표상 숫자에 의거한 과학기술인에 대한 명예 실추, 총론만 있고 각론이 없는 정책,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단절적 정책, 학연·지연·정치적 고려 등으로 좌지우지되는 평가는 사라져야 한다.

둘째는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이다. 누구나 과학기술이 발전해야 나라가 부흥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기 자녀가 우수하면 법학이나 의학을 공부시켜 입신양명하게 하고 싶어하며, 공학이나 이학 공부로는 가문을 자랑할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지난 99년 대학 특차지원 상황을 보면 어느 대학에서나 법학, 의학계의 경쟁률은 아주 높은 데 비해, 공학·이학계는 정원의 절반 정도만이 지원했다. 공과대학을 졸업한 우수한 과학기술인력이 졸업식을 마치자마자 책보따리 싸서 고시 준비하러 산으로 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사태가 이렇게 된 데는 아직도 우리의 사고 속에 사농공상의 봉건주의 사상이 온존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지식사회에서 이런 편협한 가치관은 개인은 물론, 나라 발전에 기여할 수 없다. 당장의 명예나 부가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으며, 인간의 가치는 자기 일생을 미래지향적으로 소신있고 떳떳하게, 인류의 평화와 행복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살아갈 때 그 진가가 발휘된다.

과학기술인의 자존심을 살리는 문제도 중요하다. 특히 이 부분은 과학기술인 개인보다는 정부나 기업에게 많은 책임이 있다. 과학기술 창달에 노력하는 사람은 외롭고 힘들지만, 연구결과를 얻었을 때의 희열과 국가발전에 기여했다는 자부심에 만족한다.

창조성을 자극하는 과학교육

연구를 제대로 하려면 연구환경이 자유롭고 어떤 간섭도 없어야 하며, 훌륭한 연구결과에 대해 존경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 최근 IMF 사태 이후 자의든 타의든, 근 1만명의 연구자가 일자리를 떠났다. 이유야 어찌됐건 최근 연구자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또한 정부 부처의 고위직일수록 과학기술 전문인들이 드물고, 심지어 이 분야와 관련된 자리에조차 인문·사회계 고시 출신 인사들이 넓게 포진하고 있다. 과학기술 전문인이 고시출신만큼 행정처리능력이 없고 국가 봉사라는 사명감이 부족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과학기술인들은 정부의 각종 직급 인사가 있을 때마다 허탈감을 갖게 된다고 한다. 최근 몇몇 기업체에서 과학기술자가 중요 직책을 담당하는 사례가 늘고 있으나 아직도 아쉬운 점이 많다.

셋째는 학교의 과학기술교육이다.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의 가장 훌륭한 인물 아인슈타인은 과학을 “법칙이나 사실을 단순히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창조적 사고와 개념활동을 도구로 하는 인간의 정신활동”이라고 정의했다. 과연 우리의 과학교육은 얼마나 창조적으로 구성돼 있는가?

초·중등학교의 과학교육은 흥미를 유발하고 희열을 느낄 수 있게끔, 그리고 대학의 과학기술교육 방법이나 교육과정은 미래지향적이며 현 시대에 맞게 끊임없이 개혁해 나가야 한다.

우리 과학기술의 비약을 위해 종전의 투자·연구정책만으로는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 우리가 과학기술 진흥으로 경제발전을 이루어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려면, 우선 과학기술발전 곡선의 어느 점에 머물러 있는지부터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 과학기술발전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데 국가의 총체적인 노력이 요구됨을 강조하면서 이를 잘 표현한 프랑스 사상가 콩도르세의 말을 소개한다.

“오늘날 과학기술 발전은 국가의 안녕과 국민의 건강, 더 많은 일자리, 더 높은 생활수준, 그리고 우리 문화의 발전을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핵심사항이며, 기술은 미래의 자산이자 국가발전의 원동력이다. 또한 국가의 생존능력을 대변할 뿐만 아니라 국가간 경쟁과 교류의 절대적인 담보물이다.”

신동아 2000년 2월 호

김시중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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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없이 21세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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