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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보고|어느 남자기자의 육아일기

아기키우기는 ‘잠과의 전쟁’이었다

  • 권복기 한겨레신문 교육공동체부 기자

아기키우기는 ‘잠과의 전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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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찰출입기자 시절 아기에게 젖을 먹이다 잠이 들어 아기를 질식사시킨 주부를 봤다. 그러나 아이를 직접 키워 보면서 아이 키우기는 잠과 벌이는 힘든 싸움이라는 것을 체감했다.》
“한참 일할 나이에 애를 키우기 위해 휴직을 한다는 게 말이 안 되제∼.”처음 육아휴직 얘기를 꺼냈을 때 장인어른의 반응이었다. 장인은 남자가 직장을 쉰다는 게, 그것도 애를 키우기 위해 휴직을 한다는 게 당치않은 얘기라고 생각하신 것이다. 남보다 열심히 노력해도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세상에 남자가 아이 때문에 직장을 쉬어서는 안 된다고 걱정을 많이 하셨다.

육아휴직을 하겠다고 떠들고 다닐 때 직장 동료나 친구들은 대부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자 선배들조차 정색을 하고 얘기를 해야만 “정말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구나”라고 말할 정도였다.

“푸하하하. 니 진짜로 휴직했구나. 그래 아는(애는) 잘 크나?.”

보수적인 고장 대구에서 함께 자란 친구는 낮에 내가 집에서 전화를 받자 웃음부터 터뜨렸다.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가 휴직 얘기를 듣고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집으로 연락한 친구와 안면 있는 취재원들도 수십명이었다.

“니 보이(보니) 한심하다.”

건강이 좋지 않아 대구에 계시는 어머니는 긴 한숨을 내쉬고 전화를 끊어버리셨다.

“정말로 형이 자랑스러워요.”

대학 동아리 여자 후배처럼 나를 진정으로 격려해주는 목소리는 많지 않았다. 소수의 지지자들은 대부분 여성이었다.

동네사람들의 눈에는 내가 영락없이 실업자로 보였던 모양이다.

“오늘 쉬시는 날인가 봐요.”

휴직 첫날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큰 아이를 태운 어린이집 버스를 맞으러 나온 나를 보고 아파트 경비원은 이렇게 말을 건넸다. 그러나 ‘쉬는 날’이 여러날 계속되자 보기가 민망했던지 마주쳐 인사를 하면 “아, 예”하며 웃기만 했다.

“아주머니가 안 계신가 봐요.”

이웃집 아주머니는 처음에 이렇게 말했다.

출근하지 않고 낮에 집에 있는 이유를 굳이 캐묻는 사람에게는 그냥 ‘휴가중’이라고 둘러댔다. 설명이 길어질 것 같아서다. 어쨌든 이웃들은 아침저녁으로 딸아이 어린이집 버스를 기다리고, 또 둘째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아파트단지 안을 돌아다니는 젊은 남자를 보면서 ‘이상한 이웃’의 등장을 신기해했다.

아이를 데리고 벤치에 앉아 있을라치면 손주를 데리고 나온 할머니나 젊은 엄마들이 주로 던지는 말은 경비아저씨와 마찬가지로 “오늘 쉬시나 봐요.”였다. 한번은 좀 젊어 보이는 할머니에게 육아휴직 얘기를 했다가 설명하는데 한참이 걸렸다. 그 뒤부터 누가 물으면 휴가중이라고 대답하게 됐다. 볕 좋은 날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단지 안을 슬슬 돌아다니면 곳곳에 나처럼 아이를 데리고 나온 젊은 주부나 할머니들이 그늘진 벤치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그들 틈에 선뜻 끼어들지 못한 것은 ‘아이 키우는 남자=실업자’라는 편견이 담긴 눈길이 부담스러워서다.

우리 가정문제에 가장 관심을 많이 보인 곳은 언론이었다. ‘미디어오늘’과 ‘기자협회보’에 나의 휴직 얘기가 실린 뒤 방송사와 잡지사에서 많은 전화가 왔다. 내 이야기가 육아문제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하고 평등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작은 도움이라도 된다면 사생활을 공개할 용의도 조금은 있었다.

처음 방송사의 취재요청을 망설임 끝에 수락해 간단한 인터뷰를 하기도 했으나 한달짜리 육아휴직이 대단한 일인 양 떠벌리는 게 스스로 낯간지럽게 여겨져 결국 방송사에 양해를 구하고 도중에 그만뒀다. 또 언론에 보도된 우리 이야기를 듣고 볼 주위 사람들의 뒷말이 걱정스럽기도 했다.

우리 집안은 안동 권가에다, 경북 지역이 본거지다. 보수적인 가풍에 아직까지 남녀차별, 남아선호사상도 무척 강하다. 둘째가 아들이었으면 당연히 득남을 축하했을 어른들이 건강하고 예쁜 딸아이를 무사히 얻었는데도 한두 분을 빼곤 전화도 거의 없었다. 축하하는 마음이 없었던 게 아니라 둘째도 딸이어서 우리 식구들의 기분이 언짢으리라 지레짐작하고 일부러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이런 집안 분위기에서 아이를 키우기 위해 남자가 회사를 쉰다는 사실이 텔레비전을 비롯해 여러 매체를 통해 알려질 경우 십중팔구 아내에 대한 뒷말이 나올 것이 뻔했다. ‘여자가 얼마나 별나기에 남편을 휴직까지 시켰을까’ 하는 얘기가 충분히 나올 수 있다. 아마 고풍창연하신 어머니 눈에는 우리 부부가 한심한 아들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별난 며느리로밖에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놓인 현실이다.

내가 육아휴직을 고민하게 된 것은 실제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다른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큰딸 서래는 어머니께서 키워주셨기 때문에 이런 고민이 없었다. 젊어서부터 오래 관절염으로 고생하신 어머니는 집 밖으로 출입할 수도, 아기를 안아주기도 힘들었기 때문에 당연히 매일의 기저귀와 옷 빨래며 아기 목욕, 밤에 데리고 자기, 가끔 있는 병원 출입과 필요한 물건 구입 등은 우리 부부 몫이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특별히 힘들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내는 그렇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랬다.

그러나 내가 집에서 아이를 키워보니 노인에게는 참으로 벅찬 일이 아이 키우는 거였다. 어머니 건강이 계속 좋지 않아 둘째까지 맡기는 게 힘들어졌고 장모님도 아이를 봐주시지 못하는 게 우리가 처한 상황이었다. 막막했다.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결과 해결방법은 세 가지 정도로 정리됐다. 첫째, 한 명이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를 키운다. 둘째, 믿을 만한 사람을 구해 집에 들인다. 셋째, 육아휴직을 낸다.

회사를 그만두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당장 경제적으로도 문제가 될 뿐 아니라 직업을 버리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대안은 아기가 너무 어린 데다 큰아이까지 있어 사람을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됐다. 특히 아내가 남의 손에 아기 맡기기를 원치 않아 적극적으로 검토하지 않았다.

육아휴직에는 ‘휴직’이 없다

결국 우리는 임의조항이긴 하지만 법적으로 보장된 육아휴직을 ‘쟁취’하기로 했다. 출산을 포함해 1년까지 육아를 위한 무급휴직을 줄 수도 있다는 게 법에도 또 단체협약에도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모라고 낳기만 해놓고 생계 또는 자아실현을 한답시고 무조건 아기를 남의 손에 내맡기기보다는 힘들고 기간이 얼마 되지 않더라도 우리 손으로 직접 키워보는 편이 떳떳할 것이란 판단도 작용했다. 하지만 형편은 여의치 않았다.

회사에서도 5월부터 시행된 안식월제로 편집국 인력이 줄어든 상황에서 난데없이 남성의 육아휴직 요청까지 받고 보니 이를 허락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인사위원회까지 열어 신청한 6개월 휴직중 1개월만 승인키로 결정됐지만 나로서는 실망이 컸다.

이렇게 시작하면서도 나는 애초에는 남편들이 주말에 아이 돌보듯 대충 우유 먹이고 기저귀 갈아주는 것 정도의 일과를 생각했다. 그러나 몸으로 부딪친 육아휴직은 그렇게 녹록한 ‘휴직(休職)’이 아니었다. 온전한 주부의 역할, 즉 살림살이를 대부분 감당해야 했다. 밤새 아기 돌보고 아침에 일어나 밥짓고, 큰딸 깨워 밥 먹이고 옷 입혀 어린이집 보내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등등. 물론 이 가운데 적지 않은 부분은 아내가 도와줬다. 예를 들어 나는 요리를 거의 못하기 때문에 내가 아침에 일어나 하는 것은 그야말로 밥이지 아침 식사 준비는 아니었다.

그래도 쉽지 않았다. 아내 역시 퇴근 뒤 여느 남성 가장들처럼 편히 발뻗고 쉴 틈이 없었다. 내가 한다고 하지만 살림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찾아내기가 힘들었다. 아내 왈, 퇴근 뒤 집 안을 둘러보면 널려 있는 게 일, 눈길 간 곳이 바로 일거리라나.

제일 힘든 것 가운데 하나는 잠 부족이었다. 95년쯤이었을 거다. 경찰출입기자였을 때 어머니 젖을 먹던 아기가 젖에 눌려 질식사한 사건이 있었다. 그때 나는 참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누워서 떡 먹다가 목이 막혀 죽은 사람은 봤어도 애 젖먹이다 잠이 들어 아이를 질식사시켰다는 건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두 아이를 키우면서, 특히 육아휴직기간에 둘째를 주로 내가 데리고 자면서 아이 키우기는 잠과 벌이는 싸움이라는 것을 체감했다.

아이를 키워보거나 살림을 해본 경험이 없는 남자들은 낮에 집에서 놀면서 잠도 안 자고 뭐하냐고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내 경험으로는 낮에 1시간이라도 푹 잘 수 있는 짬이 나지 않는다. 반풍수 주부인 내가 이렇다면 살림을 반들반들 야무지게 하는 주부는 아마 눈코뜰새 없이 바쁠 거다. 게다가 깔끔한 남편이나 시어머니까지 있다면 그 주부는 거의 매일 파김치로 살게 된다. 나도 파김치까지는 아니더라도 금요일쯤 되면 숨죽은 배추 정도는 되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둘째 딸 지해는 내가 데리고 자면 하룻밤에 2∼3번, 아내가 데리고 자면 3∼5번 깬다. 아이가 나랑 자는 게 편한 거라고 우기지만 실은 그게 아니다. 내가 잠귀가 어두워서 지해가 깨서 칭얼거리다 혼자 잠드는 경우가 2번쯤 되는 것이다. 갓난아이는 오줌을 조절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30∼40분 간격으로 오줌을 조금씩 흘려 내보낸다고 한다. 아무리 흡수력이 좋은 기저귀라도 두세 시간이 지나면 축축해져서 아이가 칭얼거리게 된다. 또 두세 시간 간격으로 우유를 찾는다. 한 번 우유를 먹으면 20분 이상 빨기 때문에 밤에 아이 보는 일은 한두 시간 간격으로 깨는 일의 연속이다.

백일이 다가오면서 지해는 한 번 잠들면 3시간 정도 자게 됐지만 그 전까지는 아이와 함께 깨다 자다 하다 보면 정신이 멍한 상태에서 창밖이 밝아온다. 다른 주부들처럼 낮에 제대로 살림을 한다면 나도 아이를 안고 우유를 먹이다 아이 위에 엎어지지 말란 법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휴일이면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자고 일을 많이 하기 때문에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다. 하룻밤에도 몇번씩 잠을 깨며 아기 보는 일이 군대에서 불침번 서는 일 못지않음을 이제는 안다. 아이를 키워낸 체력과 정신력, 끈기와 인내심이라면 무슨 일을 해도 군대 갔다온 남자들 못지않으리란 생각도 든다.

육아휴직중 나를 힘들게 한 또 다른 요인은 자신을 돌볼 틈이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하루에 양치질을 세 번 해본 기억이 없다. 자기 전에 한 번 하는 게 고작이고 그나마도 못하고 잘 때도 있다. 양치질하는 데 3분이면 되지만 그런 여유가 없다. 손에 물마를 시간이 없지만 정작 자기 몸가축은 제대로 못하는 게 주부인 모양이다.

‘주부’로 일하며 생긴 멀티태스킹 능력

집에서 점심을 내 손으로 차려 먹어도 정작 좋아하는 김치찌개 한번 해먹어보지 못했다. 큰아이가 먹다 남긴 밥이나 솥바닥에 눌은 밥, 아침에 먹다 남은 찌개와 나물 등 먹어치워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다. 식탁에 편안하게 앉아 느긋하게 식사를 즐길 시간도 없으니 이것저것 남은 반찬을 그릇에 때려넣고 밥 넣고 참기름 끼얹어 비벼 먹을 때가 많다.

된장찌개에서 건져올린 시래기에 김치 숭숭 썰어넣고 고추장 얹은 시골비빔밥을 좋아하는 나지만 남은 반찬을 없애고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만들어 먹는 잡탕비빔밥은 그리 맛있지 않았다. 군대에서 흔히들 짬밥 많이 먹으면 살찐다고 하는데 꼭 그 꼴이다. 한때 70kg까지 나갔던 몸무게를 온갖 노력 끝에 65kg까지 줄여놓았더니 ‘주부 생활’ 한달 만에 2kg이나 늘었다.

대신 ‘주부’로 일하며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이른바 멀티태스킹 능력이 생겼다. 발로는 흔들침대를 흔들고 손으로는 기저귀를 개면서 불 위에 얹어놓은 국이 끓는 것도 신경을 써야 한다. 이보다 더 복잡하고 마음 가는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아이가 자는 틈을 타서 세탁기를 돌리고 밥을 가스불에 얹어놓았는데, 아이는 깨서 죽는다고 울지, 압력밥솥은 칙칙거리지, 세탁기에는 섬유유연제를 넣을 때가 됐지…. 이쯤 되면 이마와 등에 식은땀이 다 난다. 지금 나는 발로 정확한 리듬에 맞춰 흔들침대를 흔들어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대견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남자들은 주부의 일을 하찮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집에서 놀면서 애도 제대로 못 키우고 뭐하는 거야?”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면 퇴근해 돌아온 남편이 넥타이를 풀면서 아내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주부의 일에 대해 이처럼 무지한 게 우리 사회 보통 남성들이다. 한달 동안 주부(主夫)로 일하면서 주부(主婦)가 하는 일은 남자들이 직장에서 하는 일 못지않게 힘든 것임을 알게 됐다. 아이를 낳고 키우고 밥짓고 빨래하고, 즉 일상생활의 3요소인 의식주에 필요한 노동을 거의 전부 주부가 하는 것이다. 몇년 전 재정경제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여성의 가사노동가치가 국내총생산의 25%나 된다고 한다.

미국의 한 금융회사에서는 주부의 가사노동을 연봉으로 환산하면 50만달러에 달한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주부가 하는 일의 종류가 1만가지가 넘는다고 분석한 자료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집에서 한번 해보라. 웬만한 대기업 부장 이상의 연봉은 충분히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노동강도가 세고 또 기술이 필요한 일들이다.

갓난쟁이를 기르며 걱정하던 일이 있는데 태변을 본 뒤 며칠이 지나도 똥을 제대로 누지 않았을 때다. 녀석이 어디가 아픈지 말을 할 리도 없고 하루에도 몇 번씩 하얀 얼굴을 잔뜩 붉히며 두 발을 하늘로 쳐들고 아랫배에 힘을 주는 시늉만 했다. 그때 아내와 나는 “지해 똥 눴어?”라는 말이 아침인사였다.

장운동을 활발하게 해준다는 가루약을 우유에 타서 먹인 덕분인지 며칠 뒤 지해는 용을 쓰며 똥을 조금 쏟아냈다. 그날 밤 당번이었던 아내는 기쁜 나머지 건넌방에서 큰아이를 데리고 자고 있는 나를 깨우러 방문 앞까지 달려왔다가 생각을 돌이켜 그냥 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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