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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목적기 라팔, 그 현란한 기술의 세계

프랑스 힘의 원천 첨단 방위산업 현장을 가다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oon@donga.com

다목적기 라팔, 그 현란한 기술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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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대지 공대공 능력을 겸한 RBE-2 레이더, 600㎞ 바깥에 있는 목표물을 정확히 파괴할 수 있는 스칼프 크루즈 미사일, 자기 몸무게의 1.5배를 진 라팔을 이륙시키는 M88 엔진 등을 개발함으로써, 프랑스는 해군기와 공군기, 제공기와 전폭기로 모두 쓰일 수 있는 다목적기 라팔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첨단 기술력 덕분에 프랑스는 그들의 자주성을 고집할 수 있는 것이다.
  • 통일 개척 시대를 앞둔 한국은 이러한 프랑스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지난 9월 19일 오후 1시 30분쯤 김포공항을 이륙한 대한항공기는 같은 날 오후 5시 30분쯤 프랑스 파리 근교의 샤를 드골 공항에 착륙했다. 11시간이나 걸린 긴 여행이었지만 해를 따라 서쪽으로 비행한 관계로, 시간상으로는 불과 4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샤를 드골 공항에는 을씨년스러운 가을비가 뿌리고 있었다. 그 동안 다녀본 외국 취재 여행 경험을 고려하면 크게 주목할 바 없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이 평범함을 벗겨내고 ‘프랑스의 힘’을 직시해야 한다.

프랑스의 힘

프랑스는 NATO 회원국이지만 전적으로 미국에 협조하지 않는다. 소련 붕괴로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의 세계 지배)’가 더욱 공고해진 지금도, 미국의 결정이 국익에 어긋난다고 판단되면 언제든 다른 목소리를 낸다. 프랑스가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 힘은 입생로랑이나 샤넬 등의 고가 브랜드나, 루브르나 베르사유 같은 유적, 코냑과 와인 같은 문화 상품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진정한 힘은 첨단 과학기술, 그중에서도 방위산업에서 나온다. 그 방위산업을 만져보기 위해 기자는 파리에 들어간 것이다.

프랑스 항공우주협회가 보여주기로 한 분야는 라팔(Rafale: 불어로 ‘돌풍’이라는 뜻) 전투기를 중심으로 한 방위산업이었다. 전투기 생산은 첨단기술이 집합된 최고의 방위산업 분야다. 한국은 전투기는 독자적으로 생산하지 못하고, 가장 초보적인 프로펠러 훈련기인 KT-1만을 독자 생산하고 있다. 한국에서 조립되는 전투기 KF-16은 미국에서 개발한 부품을 가져다 조립하는 것이어서 독자 생산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프로펠러 훈련기에 이어 제트 훈련기를 개발한 다음에야 비로소 초보적인 전투기를 독자 개발할 수 있는데, 일본이 현재 이 단계에 들어서 있다.

라팔은 한국 공군이 추진하는 40억 달러 규모의 차기 전투기 도입(FX) 사업에 도전장을 내민 4대 기종 중 하나다. 라팔을 비롯한 4대 기종은 현존 전투기 중 가장 최신형으로, 이른바 ‘제4세대 전투기’다. 5세대 전투기는 미국의 F-22뿐인데, F-22는 아직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한국은 제1세대 전투기도 생산하지 못하고 있는데 프랑스는 4세대 전투기를 생산하는 것이다.

4세대 전투기 중에 가장 먼저 세상에 나온 것이 72년에 생산된 미국의 F-15이고, 두 번째가 러시아의 수호이 35(86년 생산 시작), 세 번째가 98년경에 나온 프랑스의 라팔과 영국·독일·이탈리아·스페인 4개국이 공동개발한 유러파이터 타이푼이다. 4세대 전투기의 생산 순위는 각 나라의 국가 서열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기자가 세계 1위가 아니라 3위인 프랑스를 취재한 데는 이유가 있는데, 이는 뒤에 설명하기로 한다.

프랑스 항공우주협회측은 라팔만을 홍보하기 위해 기자를 초청하려고 했다. 이에 대해 기자는 “이미 라팔은 충분히 알고 있다. 기자가 알고 싶은 것은 라팔이 아니라 라팔을 제작하는 프랑스의 과학기술력이다. 라팔을 제작하는 다쏘항공뿐만 아니라 라팔에 탑재되는 주요 장비와 무기를 제작하는 회사와 공장까지 함께 방문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프랑스 항공우주협회는 이 요구를 받아들이는 대신, “한국에서도 방산업체를 방문하면 기무사에 신원조회를 하지 않느냐”며, 기자에 대한 신원조회를 하자고 요구했다. 그들이 말하는 신원조회란 ‘기자가 미국이나 기타 주요 국가의 방위산업 스파이가 아닌가’에 대한 조사였다.

첨단 방산 분야는 총성 없는 전쟁터다. 91년 실제로 프랑스의 미사일 제작사인 마트라는 미국 스파이로 활동한 직원을 찾아내 추방한 적이 있었다. 프랑스 항공우주협회가 신원조회를 해야겠다고 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신원조회 때문에 닷새 정도 출발이 늦어졌다.

유럽의 중심국가가 된 프랑스

파리 도착 다음날 다쏘항공의 로빈 부사장을 만나 점심을 같이 했다. 로빈 부사장과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는 “남북 화해시대를 개척하는 지금 왜 한국은 제4세대 전투기를 도입하려고 하는가”라고 물었다. 기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많은 사람들은 한반도가 재통일되면 정세가 안정돼 국방비가 크게 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한국 식자층의 생각은 정반대다. 전쟁을 비롯한 위기는 언제나 평화의 빛이 비쳐오는 여명기에 일어났다. 한반도가 재통일되는 시기는 평화가 안착되는 시기가 아니라 오히려 평화가 위협받는 시기가 될 수 있다. 더구나 한반도는 미·일·중·러 등 4대 강국에 둘러싸여 있다. 이러한 구도 속에서 자주적으로 통일을 이룩하려면 한반도 내부는 물론이고 외부에서 재통일에 반대하는 세력을 제압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한국이 어려운 경제환경 속에서도 FX 사업을 펼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내친 김에 기자는 프랑스의 첨단 방산 업체를 취재하게 된 동기까지 밝혔다.

“한국이 6·25전쟁으로 폐허가 됐다면, 프랑스는 1·2차 세계 대전의 전쟁터였다. 한국이 섬나라 일본과 아웅다웅하듯, 프랑스와 영국은 오랜 숙적이다. 한국이 4강에 둘러싸여 있다면, 프랑스는 동쪽과 남쪽으로는 2차 대전 때 프랑스를 공격해 점령한 독일·이탈리아, 서쪽으로는 영원한 라이벌 영국, 서남쪽으로는 무시 못할 스페인과 접해 있다. 그 바깥으로는 다시 미국과 구소련에 둘러싸여 있다. 이렇게 방어선이 많은 나라인데도 프랑스는 유럽의 중심국가(hub country)로 발전하는 데 성공했다. 프랑스가 중심국가가 된 비결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왔다.”

프랑스에는 두 개의 고정익 항공기 제작사가 있다. 다쏘항공은 주로 군용기를 제작하고, 다른 하나인 ‘아에로스파시알’은 에어버스를 비롯한 민항기를 주로 제작한다. 프랑스에도 우리처럼 가계를 중심으로 경영권을 세습하는 재벌기업이 있다. 라팔을 제작하는 다쏘항공이 이러한 재벌 중 하나다. 그러나 프랑스 재벌은 여러 업종으로 문어발을 뻗지 않고, 한 분야만 파고드는 특성이 있다.

다쏘항공의 레지스탕스 정신

다쏘항공이 포함된 다쏘그룹의 창업자는 ‘마르셀 블로크(Marcel Bloch)’인데 그는 1차 대전 때부터 항공기 제작사를 운영했다. 1939년 2차 대전이 일어나자 그의 형 폴 블로크는 레지스탕스 지도자로 활동했는데, 이때 형이 쓴 가명이 ‘다쏘(Dassault)’였다. 이러한 형의 영향을 받아 마르셀 블로크도 레지스탕스 운동에 협조했다. 1940년 어느날 산책을 하던 마르셀 블로크는 네잎 클로버를 발견해 수첩에 꽂아두었다. 그 후 그는 독일군에게 붙잡혀 이 수첩을 압수당했는데, 1945년 전쟁이 끝나자 이 수첩이 신기하게도 되돌아왔다.

드골 장군이 ‘위대한 프랑스’를 외치며 국가 재건에 나서자, 마르셀 블로크도 회사를 재건했다. 이때 마르셀 블로크는 형의 영웅적인 행동을 기려, 자신의 성과 회사 이름을 ‘다쏘’로 바꾸고, 레지스탕스 정신과 행운을 가져다준 네잎 클로버를 회사 로고로 결정했다. 1995년 이러한 마르셀 다쏘가 죽자 그의 아들 세르주 다쏘가 뒤를 이었다. 세습에 의해 경영권이 이양됐다지만, 다쏘그룹에는 레지스탕스의 정신이 깔려 있는 것이다. 항일 정신이 깔려 있는 우리 재벌 그룹은 몇이나 될까. 똑같이 자주성을 추구한다고 해도, 프랑스와 한국 기업은 창업 정신에서부터 이렇게 차이가 있다.

다음날 라팔을 조립·제작하는 다쏘항공의 공장을 방문해 약 1시간 30분에 걸쳐 브리핑을 받았다. 브리핑 내용을 요약하면 ‘다쏘항공은 부품을 제작하고 최종 조립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부품을 제작하는 공작기계와 이 부품을 조립하는 로봇까지 생산한다’였다. 이는 매우 중요한 언급인데 이를 한국에 비교해 설명하면 이렇다.

“한국은 자동차와 반도체를 생산해 수출한다. 그러나 부품을 생산하는 공작기계와 이를 조립하는 로봇은 아직까지 만들지 못한다. 때문에 자동차와 반도체의 생산량을 늘리려면 먼저 공작기계와 로봇부터 수입해와야 한다. 한국이 수입하는 것은 원자재만이 아닌 것이다. 이처럼 산업구조가 최종품 생산 위주로 돼 있다 보니, 한국은 최종품을 알리기 위한 광고비 지출이 많다. 광고가 많으니 수출이 많은 나라로 인식돼, 관련국들로부터 수입 규제도 받게 된다. 때문에 생산과 판매량을 늘리면 늘릴수록, 한국은 원자재와 공작기계 수입을 늘려야 하고, 덩달아 수입규제까지 더 받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한국 경제가 외부 변화에 취약한 ‘빛 좋은 개살구’가 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반면 프랑스는 외부 변화에 크게 휩쓸리지 않는다.”

다쏘항공은 기술적인 면에서는 미국의 F-15보다는 영국 등 4개국이 개발한 유러파이터 타이푼(이하 타이푼)을 더 라이벌로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라팔과 타이푼(typhoon: 태풍)은 같은 뿌리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미국이 4세대 전투기인 F-15의 대량 생산에 들어간 1970년대 말, 미국의 독주에 불안을 느낀 프랑스와 영국·서독(독일)·이탈리아·스페인은 유럽형 4세대 전투기(당시 이름은 유러 파이터)를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각국이 생각하는 전투기의 스타일이 달랐다. 영국은 순수 제공기를 생산하자고 주장했고, 프랑스는 다목적기를 고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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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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