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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연구|의사와 환자의 효과적인 의사소통법

말 잘하는 환자가 병도 빨리 낫는다

  • 이두원

말 잘하는 환자가 병도 빨리 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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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이 배가 아파서 병원을 찾았다고 치자. 의사와 마주 앉아서 증상을 설명하려는 데 갑자기 당혹감이 몰려든다. 배가 콕콕 쑤시듯 아픈지, 묵지근하게 아픈지, 더부룩하게 불편한지, 도대체 어떻게 말하는 게 좋을까…. 어렵사리 증상을 설명한 뒤에도 당혹감은 여전하다. “별이상은 없는 듯하지만 혹시 모르니 CT촬영 한번 해보자”는 의사의 설명이 영 마땅치 않다. 괜찮다는 건지, 심각하지만 안심시키려는 건지 도무지 오리무중. 당신에겐 이런 경험이 없는가. 이 글은 ‘휴먼 커뮤니케이션(human communication)’의 시각에서 의사-환자간 의사소통 과정에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점을 살펴보고 해결방안을 모색해보고자 시도된 연구의 요약이다. 필자는 다수의 의사와 환자들을 직접 면담해서 의사가 환자에게, 환자가 의사에게 느끼는 의사소통상의 문제점을 치밀하게 분석했다. <편집자>
‘의사-환자‘간 의사소통은 특수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인간 커뮤니케이션(human communication) 현상이다. 환자는 자신의 증상을 표현해야 하는 ‘부담’을 갖고 있고, 의사의 의료행위에 의존하려고 한다. 반면에 의사의 역할은 환자에 대한 개인적 감정을 가급적 지양하고 냉철하게 의학적 지식을 실천하는 ‘성직(聖職)의 수행’이다.

의사-환자간 의사소통은 환자의 증상 설명과 의사의 진단행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환자는 자신의 상태를 ‘말’로 설명하고, 의사는 이를 바탕으로 환자의 병을 ‘추론’하게 된다. 따라서 의사는 진단에 필요한 자세한 증상 정보를 얻기 위해서, 자신의 상태를 가장 잘 아는 환자의 설명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환자들 대부분은 자신이 느끼는 신체적 상태를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데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증상에 대한 자세한 설명보다는 무작정 고통을 호소하거나 의사의 질문에 답변하는 식으로 일관하게 된다. 특히 우리 사회에 잠재하는 의사(전문직)에 대한 경외감이나 두려움은 ‘의사-환자’간의 효율적인 의견 교환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1999년 미국 의대협회(AAMC)가 실시한 전국조사에 따르면 환자 중 27%만이 의사를 선택하는 데에 출신대학을 감안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85%는 의사의 ‘의사소통 능력’과 환자를 다루는 ‘태도’를 고려하고, 77%는 복잡한 의료절차를 ‘설명해주는 능력’을 보고 의사를 선택한다고 답했다.

커뮤니케이션 이론의 시각에서 보면, 환자-의사의 접촉 형식은 ‘따뜻한 가슴’(warm heart, emotion)과 ‘차가운 이성’(cool head, logic)의 만남이다. 따라서 이런 서로 다른 역할과 기능으로 인해 의사-환자간 의사소통은 ‘숙명적으로’ 어려운 관계에서 출발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의사-환자간 의사소통은 상호행위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철저한 신뢰와 정확성이 요구되는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상황이다. 의사-환자간 의사소통 문제 때문에 발생하는 모호함이나 오해는 곧 오진(誤診)과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말이 잘 통해야 진료효과도 높다

미국에서는 1998년부터 절반이 넘는 병원들이 외국어 통역 무료 서비스를 실시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즉 영어를 못 해도 미국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한국어를 포함해서 세계 140개 언어를 영어로 옮겨주는 통역전화 덕분에 외국인 환자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의사나 간호사들도 환자와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져 치료 효과가 높아졌다고 말한다. 하버드 의대의 로버트 에버트 학장은 “의사와 환자간의 대화는 곧바로 생명과 직결되므로 이런 서비스는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학계에서는 그 동안 의사-환자간 의사소통이 매우 소홀하게 다뤄져왔다. 실제로 국내 사회과학 분야의 학술논문집 인덱스를 탐색해보면 이 주제와 관련된 논문은 극소수에 불과하며, 국내 의학저널이 다루는 주제도 임상적 진단과 치료법에 관한 연구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1951년에 이미 사회과학자 파슨스(Talcott Parsons)가 의사-환자간 커뮤니케이션 연구를 시작해 의사-환자의 관계를 역할 중심의 사회 기능주의적 관점에서 이론화한 논문을 썼다. 그는 환자의 병을 사회적 역할에서 제외되는 ‘이상(deviance)’ 상태로 규정하고 사회의 정상적 역할로 다시 복귀하는 전환과정을 ‘환자의 역할’로, 이런 전환과정을 통제하고 유도하는 것을 ‘의사의 역할’로 규정했다. 파슨스는 이러한 ‘의사 역할’에 대해 사회적으로 허락받은 것이 ‘사회적 성직(聖職)’으로서 의사직의 자율(autonomy)과 권위(authority)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파슨스의 기능주의적 관점에서 시작돼, 지난 20여 년간 미국에서 진행된 의사-환자간 의사소통 연구는 대개 두 갈래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째, 의사와 의학교육자들이 주체가 되어 자신의 의사소통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운동이다. 이들은 환자로 하여금 ‘병력’이나 ‘걱정’을 말하도록 유도하는 기술, 환자의 상태나 치료의 필요성을 알리는 기술이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에 순응하게 하는 데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따라서 마이맨(Maiman)과 베커(Becker)를 비롯한 수많은 학자들이 의사의 의사소통 기술 및 상담능력을 증진시키는 방법을 연구해왔다.

특히 콜맨(Coleman)은 전문적인 의학지식을 갖고 있는 의사와 환자간의 관계를 ‘권력(power)’이라는 변인이 작용하는 사회적 상호작용으로 보고, 의사-환자간 일어나는 의사소통의 많은 문제가 권력에 기인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의사들은 의학지식을 갖고 있는 집단일 뿐 꼭 의사소통 능력을 갖춘 집단은 아니라는 사실을 환자들이 상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하버드 의대에서는 1학년 학생에게 중병 환자들을 맡겨서 여러 차례 방문하도록 하여 환자 및 가족과 유대를 강화하는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담당 학생들은 환자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가족과 슬픔을 함께 나누도록 권장받는다. “함께 슬퍼할 줄 아는 것은 의사의 한 덕목”이라고 이 대학의 정신과 부교수인 수전 블록 박사는 말했다. 예일대학에서는 의대 신입생들에게 일명 ‘연민의 망토’를 입힌 다음, 의식을 치르면서 ‘인간관계 행동강령’을 암송케 한다. 뉴멕시코 대학에서는 소아과 수업을 받는 2년차 학생들에게 ‘나쁜 소식’을 전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사우스 캐롤라이나 의대에서는 학생들을 토론회에 참석시켜 진실·사려·용서·죄·수치심·기도·비극을 알게 하고, 진료인의 능력의 한계 등에 대해 토론하게 한다. 캔자스대학에서는 의대생들에게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게 한다. 그 밖의 대학에서도 의대생들은 병실 방문이나, 자기 안경에 바셀린을 발라 백내장의 느낌을 경험해보는 등 환자 체험을 시킨다.

이런 모든 활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의사-환자 관계의 핵심인 의사소통, 즉 이심전심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환자의 관심은 담당 의사가 어느 대학을 나오고, 얼마 동안 의료행위를 했느냐보다는 자기들의 고통에 얼마나 귀기울여주느냐에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의료 소비주의’의 등장으로 의사-환자 관계를 ‘서비스 제공자-서비스 사용자’, 즉 계약적·대립적 관계로 접근하는 경향이다. 스미스(Smith)와 호프(Hoppe)에 따르면, 이런 경향은 고등교육 인구의 증가가 의학적 권위에 대한 도전을 촉진시켰으며, 의사에 대한 경외감과 존경심에서 나오는 ‘신성한 믿음’을 허물고 ‘서비스 제공자’로 대우하려는 환경을 만들었다.

특히, 의료 소비주의 시각의 연구들은 미국 환자들이 인식하고 있는 의사들의 냉담성·권위·경제적 욕망 등을 지적하고 있다. 몇몇 연구자들은 미국사회에서 의사의 이미지는 ‘희생적 의료행위의 영웅상’이라 분석하고, 의학교육 및 전문의 과정이 오히려 의사들을 ‘인본주의적 환자 돌보기’에 역행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그레이(Gray)는 자신의 연구에서 약 25%의 의사가 환자의 증상에 대해서 질문조차 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 가정의 의사들은 진찰시간으로 불과 50초 정도를 사용한다고 보고했다.

1995년 플랫(Platt)은 그의 저서인 ‘대화치료: 의사-환자간 커뮤니케이션 사례연구’에서, 수많은 의사-환자간 의사소통 사례분석 결과 의사소통 형태에 따라 치료 결과도 다르게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그는 의료행위에 대한 환자의 만족도가 높을수록, 정신신체적(psychosomatic) 증상들이 완화되고, 치료행위에 대한 순응도가 높아져 결과적으로 더 효과적인 치료결과를 얻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환자의 만족도’를 구성하는 주요 요인으로 의사-환자간 의사소통을 강조하고 있으며, 특히 의사-환자간 대화에서 환자의 만족도가 높을수록 의사에 대한 환자의 신뢰가 높게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의료문화가 다른 한국사회에서 이런 외국의 연구결과를 그대로 벤치마킹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한계를 갖고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가 의사-환자간 의사소통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문제에서 예외일 수도 없다. 이 글에 소개한 다양한 의사-환자간 의사소통 문제와 해결방안은 바로 한국적 의료문화 속에서 연구된 결과이며, 의사와 환자 집단 모두에게 의사소통의 지침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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