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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연재 ③|난치질환에 도전한다 ·탈모증

모발심기·식이요법·기공반지요법

  • 안영배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ojong@donga.com

모발심기·식이요법·기공반지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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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발심기·식이요법·기공반지요법
“저는 전형적으로 탈모가 엠(M)자 모양으로 진행되는 사람인데요. 성 관계와 탈모는 어느 정도 상관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20살 이후부터 성욕이 너무 솟구쳐서 거의 하루에 한 번은 성 관계를 하는 편인데, 섹스 횟수와 탈모는 어떤 관계에 있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인터넷 대머리 동호회’ 게시판에 ‘대머리맨’이라는 ID로 올린 어느 탈모 환자의 절실한 궁금증이다. 이 질문에 대한 조회 횟수가 다른 질문 항목보다 두드러지게 많은 것으로 보아 대머리 동호회원들도 섹스와 탈모의 관계에 대해 은근히 신경을 쓰는 듯한 눈치다.

이런 현상은 ‘대머리는 정력이 세다’는 속설과도 연관된다. 이를 거꾸로 생각해보면 힘이 넘쳐 남성의 정액을 자꾸 방출하다보면 대머리가 빨리 진행될 것이라는 연상 작용을 불러 일으키기가 쉽기 때문. 실제로 기원전 4세기경 그리스의 대머리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대머리가 지나친 색욕(色慾)의 대가라고 여기기도 했다.

문제는 24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생각하는 대머리들이 꽤 있다는 점. 정수리에 탈모가 진행 중인 한 탈모환자(남·35)는 부부생활을 피하는 바람에 아내로부터 엉뚱한 의심을 받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성생활을 과도하게 하면 남성호르몬의 분비를 자극하여 탈모를 촉진한다는 얘기를 들은 후부터 밤이 무서워졌다. 원래 탈모증 남자들은 머리가 덜 빠진다고 하면 죽는 것 빼고는 뭐든지 해보려는 사람들 아닌가. 그래서 아내와의 잠자리를 자꾸 피했는데, 아내는 남의 속도 모르고 나를 이상하게 보고 있다.”

대머리와 섹스, 그리고 유전자

과연 현대 의학자들은 탈모와 섹스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와 관련, 전남대병원 비뇨기과 오병렬교수가 국제학술지에 발표한 ‘전립선 비대증과 남성형 탈모증과의 관계’라는 임상 논문이 흥미를 끈다.

오교수는 두 증상 모두 강력한 남성호르몬인 다이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DHT) 때문에 발생하며, 임상 실험에서도 전립선 비대증 환자들이 대조군에 비해 탈모증상이 뚜렷이 나타나고, 그 역으로 탈모증이 심한 사람들이 전립선 비대증 환자들에게 많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러나 오교수는 이 논문 때문에 대머리와 정력이 함수관계가 있는 것처럼 잘못 알려졌다고 말한다.

“남성호르몬이 전립선 비대증과 탈모증에 같이 작용하는 것을 보고 이것이 마치 섹스(정력)와 탈모가 상관 있는 것처럼 여기지만 사실은 아무 관련이 없다. 나를 찾아오는 환자들 중에는 가끔 정액과 남성호르몬을 동일시해 섹스를 많이 하면 정액이 방출되고 그만큼 남성 호르몬이 많이 분비돼 대머리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스레 물어보는 경우도 있다. 정액과 남성호르몬 역시 상관이 없는데도 말이다.”

말하자면 아무리 섹스를 해도 탈모 증상과는 상관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머리환자들한테 왜 이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걸까.

정답은 남성호르몬이 섹스와 대머리에 관여하는 것은 사실이나, 그 작용 기전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섹스에 관여하는 남성호르몬은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이라는 호르몬이며, 대머리에 작용하는 물질은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Dihydorotestos- terone)이라는 ‘배 다른’ 호르몬. 즉, 이 두 물질은 같은 남성호르몬이면서도 성질이 서로 다른 것이다.

원래 핏속을 흘러다니는 남성호르몬(테스토스테론)은 대머리나 정상인이나 수치상 별 차이가 없다. 그러니 대머리라고 해서 특별히 정력이 셀 거라거나 섹스를 많이 하면 탈모가 빨리 진행될 것이라는 얘기는 유전정보 지식에서는 근거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호르몬이 모근(毛根)세포 내에 존재하는 특정 효소(5알파-환원효소) 작용에 의해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이란 호르몬으로 바뀔 경우 탈모가 진행된다. 그리고 이 효소는 유전적 요인이 크므로 흔히 대머리를 유전질환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렇게 대머리가 유전적 요인과 남성호르몬의 작용에 의한 것임은 정설로 굳어져 있다. 국내에서 독보적으로 분자생물학 차원에서 모발(毛髮) 유전자 연구를 하고 있는 경북대병원 김정철교수(면역학교실)는 이렇게 설명한다.

“대머리는 100% 유전(전문용어로는 상염색체 우성 유전)이다. 현재 대머리에 관여하는 유전자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여러 개의 유전자가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대머리 유전자가 있다고 해서 100% 대머리가 되는 것은 아니라, 남성호르몬이 나와야 대머리가 진행된다. 예를 들어 어릴 때 거세당한 남자는 남성호르몬이 생성되지 않기 때문에 절대로 대머리가 안된다. 마찬가지 이유로 사춘기 이전에도 대머리가 되는 법은 없다.”

결국 유전적 소인이 있는 사람에게서 사춘기가 지난 후 남성호르몬 분비가 왕성해질 때 대머리가 진행된다는 설명이다.

김교수는 또 충격적인 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대머리가 없다고 알려져 있는데 잘못된 정보라는 것이다. 여성 대머리는 앞 헤어라인은 유지되고 주로 정수리 부위의 모발이 전체적으로 듬성한 것이 특징이므로 남성에 비해 외관상 표시가 덜 날 뿐이라는 것. 미국에서는 약 2000만 명의 여성이 머리숱이 아주 적어지는 형태의 대머리로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여성의 경우 남성과 비슷한 대머리 유전 형태를 갖고 있어도 남성호르몬의 절대량이 남자보다 적기 때문에 대머리 발현이 안되는 경우도 있긴 하다.

채식이 대머리 발현 억제

대머리는 유전과 남성호르몬에 의해 생기지만 스트레스, 음식, 노화 등이 탈모 진행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즉 유전적 소인이 있는 사람이 사춘기 이후 남성호르몬이 분비될 때부터는 스트레스나 식생활 습관이 탈모의 진행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김교수의 말.

“우리나라 사람에 비해 서양인들에게서 대머리가 5배 이상 많은 것은, 물론 유전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식생활 습관의 차이와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 것같다. 채식을 주로 하던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는 대머리 유전자를 가졌다 해도 대머리가 별로 없었으나, 최근에 우리나라 음식이 서구화되면서 대머리 빈도가 증가하는 추세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머리가 동맥경화증 환자들에게 많다는 사실도 식이(食餌)습관과 대머리 발현이 어느 정도 관련이 있음을 나타낸다.”

따라서 대머리의 유전적 소인을 지닌 사람은 동맥경화증을 예방하는 식이, 즉 채식을 주로 하면 대머리 발현을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다. 해산물, 채소류, 과일 등에는 대머리 발생의 원인인 DHT의 생성을 억제하는 물질인 식물성 에스트로겐(phytoestrogen), 플라보노이드(flavonoid) 등이 많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동물성 지방이 많이 함유된 식품은 피하는 것이 좋다. 서양인이 동양인보다 대머리가 많은 것은 동물성 지방을 많이 섭취하기 때문으로 유추할 수 있다.

또 탈모는 스트레스와도 어느 정도 관계가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적극적으로 해소하는 것도 중요하다. 명확한 인과관계는 증명된 게 없으나, 미국에서는 4세 된 아들이 죽은 후 수개월만에 완전히 전두부의 머리가 가늘어지면서 대머리가 되었다는 등의 사례가 종종 보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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