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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점쟁이’가 몰려온다

성행하는 역술 비즈니스

  • 이정훈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oon@donga.com

‘디지털 점쟁이’가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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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시적인 악습(惡習)· 미신(迷信)· 금기(禁忌)로까지 여겨지던 점술이 어엿하게 고부가가치 콘텐츠로 자리잡고 있으며 ‘쪽방 수준’에서 이뤄지던 점술업이 기업화 대형화 바람을 타고 있다.


‘옥황선녀’ ‘사주.com’ ‘사주테라스’ ‘사주카페 필링’….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 맞은편 로데오거리가 ‘점술밸리’로 변모하고 있다. 화려한 수입명품 매장과 세련된 고급 카페들이 들어선 골목길을 따라 20~30대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점카페’가 속속 들어서 현재는 50여 곳에 이른다.

점(占) 카페 ‘사주공간’. 커피 한잔을 시키고 5분 남짓 기다렸을까. 한 역술인이 맞은편 자리에 앉는다. 테이블에 앉자마자 생년월일시를 물었다. 사주를 불러주자 곧 점괘가 나왔다.

“전체적으로 좋지 않은 운이야. 편재가 있기는 한데, 여러 사람이 덤벼서 돈을 모으기는 힘들어 보여. 그리고 작년에 이별수가 있었는데…”

상대가 미혼이란 단정이 맞는지 그른지 확인도 하지 않고 점괘가 이어진다. 운이 안 좋다는 말에 실망한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내용이 조금 달라졌다.

“32세 이후로 대운(大運)이 와. 이렇게 빨리 운이 오는 경우는 드문데… 주식은 근처에도 가지말고 부동산 쪽에 운이 있어.”

사주풀이에 걸린 시간은 10분 남짓. 커피 값은 4000원, 역술료는 1만원이다. 옆 테이블에서 상담하고 있는 20대 초반 여성의 점괘를 엿들어봤다. 사귀는 남자가 3명인데 누구의 운세가 자신과 맞냐는 내용.

상담을 맡은 역술인은 사주를 풀어 세 남자의 장단점을 설명해준다. 점카페에서 점을 치는 역술인들의 대부분은 ‘언통(言通)’한 베테랑이다. 언뜻 듣기에도 3명의 남자를 두루 꿰는 설명이 그럴 듯하다.

사주공간은 ‘카페 철학원’의 원조로 통한다. 탤런트 채시라 가수 김태욱 부부가 궁합을 보기 위해 다녀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유명해진 곳이다. 찻집을 찾아 우연히 카페에 들어온 사람이라면, 이곳이 사주를 봐주는 곳이라고는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내부장식이 세련되고 고급스럽다.

벽의 3면이 통유리로 돼 있어 탁 트인 느낌을 주는데다 은은하게 퍼지는 오렌지색 조명과 코코아색, 카키색의 소파가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언뜻 보면 평범한 카페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정통 명리학 외에도 기문둔갑, 육효점, 타로카드, 관상 등을 선택해서 볼 수 있다.



성행하는 ‘점술 비즈니스’


서울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점술을 상품으로 내건 ‘점카페’가 우후죽순처럼 늘고 있다. 점카페는 아직까지 역술인 2∼3명에 테이블 5개 가량을 갖춘 소규모 업소가 대부분. 그러나 20여 개의 테이블을 갖춘 대형업소도 여러 곳 생겨나고 있다. 돈이 된다는 얘기다.

점카페 뿐만 아니다. ARS 전화를 이용한 통신상담, PC통신을 활용한 ‘사이버 철학원’이 ‘걱정 많은’ 한국인들의 지갑을 얄팍하게 하고 있다. 인터넷상에서도 역술은 게임과 더불어 가장 잘 팔리는 문화 콘텐츠의 하나로 대접받고 있다. 점술업이 문화산업·여가산업·첨단산업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700, 600, 800번이나 0600, 060번으로 시작하는 ARS전화 운세서비스는 회사당 20~30명의 전문 역술인을 모집, 일대일 상담 형식으로 운세를 봐준다. 보통 30초 단위로 1000~2000원 정도의 요금을 받고 있어 30분 정도 상담하면 요금이 10만원에 이르는데도 찾는 이들이 계속 늘고 있다. 역술인마다 전문 분야가 세분돼 있고 직접 점집을 찾아가는 번거로움도 덜 수 있어 인기를 끌고 있는 것. ARS 전화로 운세를 상담해주고 있는 역술인 김현성(33)씨는 “사설 학원 등에서 명리학을 1년간 배웠다”면서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데다 월 수입도 300만원 수준으로 꽤 짭짤하다”고 말했다.

‘ARS 점집’은 IP업자들이 통신망 사업체로부터 회선을 임대해 역술을 새로운 사업 콘텐츠의 하나로 상품화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현재 KT 데이콤 하나로통신 온세통신 등이 역술 콘텐츠를 상품화한 IP업체에 전화 회선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사업연합회 관계자는 “전화 운세 상담서비스는 성(性)과 관련된 정보 서비스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유망 콘텐츠로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동통신업체들도 온라인 오프라인 역술업체와 제휴해 인터넷을 통해 부적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유료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유무선 통합서비스를 통해 건당 500∼1000원대의 캐릭터 부적을 판매하고 있으며 KTF, LG텔레콤도 무선인터넷을 통해 운세서비스와 부적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모바일 부적은 휴대폰 액정화면 크기에 맞춰 실제 부적을 디지털 콘텐츠로 제작한 것. 오프라인에서 역술가로 이름 높은 이낙준 화백이 직접 그린 ‘세암부적’과 김용대 화백의 ‘달마도’ 등도 만들어졌고, 고대 솔로몬 부적, 복 돼지 부적, 캐릭터 부적 등이 모바일 상품으로 팔리고 있다.

또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운세’로 검색되는 사이트가 200~300여 개에 이를 정도로 ‘사이버 철학원’도 황금알을 낳는 사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네이버 다음 등 국내 10대 포털사이트의 메인 화면에서 운세코너는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자리잡고 있을 정도로 찾는 이들이 많다. ‘인터넷 철학관’이 인기를 끌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것. 주위의 따가운 시선도 없고 점쟁이와의 맞대면 접촉을 꺼리는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이다. 데이트베이스로 만들어진 운세는 500~3000원이면 볼 수 있고, 역술인과의 인터넷 게시판 상담도 오프라인 철학관보다 저렴한 1만~2만원 내외에 점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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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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