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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제언

제도의 힘으로 과학 살려라

과학기술인은 소모품인가

  • 최재천 <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 jcchoe@snu.ac.kr

제도의 힘으로 과학 살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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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공계 위기는 기초학문의 위기에서 시작되었으며 이는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위기를 의미한다. 한국의 과학기술이 발전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한국과학의 현장에서 온몸으로 체험한 이공계 위기론.
”아빠, 나 기분 나쁘면 이과 간다”는 자식의 말이 대덕단지의 박사 아빠들에게 더할 수 없는 협박이라는 소문이 단지 우스갯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그랜저 타는 나이가 한의대는 30세, 의대는 35세지만, 공대는 45세, 자연대는 영원히 못 탄다”는 이야기가 대학가에 나돌며 서울대 이공계 대학원 입학 전형에서 미달 사태를 보이더니 급기야 대학입시에서 수험생들이 이공계를 기피하는 현상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이공계 위기’는 더 이상 뉴스거리도 아니지만 심각한 사회문제임에는 틀림없다.

드디어 대통령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책 마련을 지시하여 교육인적자원부, 과학기술부, 노동부, 산업자원부 등이 나름대로 정책을 연구하고 있다. 과학기술부가 마련하고 있는 정책들만 보더라도 상당히 다양하고 의욕적이어서 정부에서 내놓는 대책들과 여러 민간 연구소들의 처방까지 합하면 현재 엄청나게 많은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아마 이들 중에 우리가 원하는 해답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아이디어들을 포괄할 수 있는 일관된 개념 또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 좀더 근원적인 차원에서 이공계 위기의 본질을 분석해보고 그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확립해야 할 몇 가지 기본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가리켜 ‘사회적 동물’이라 했지만 나는 그에 못지않게 인간은 ‘과학적 동물(Homo Scientificus)’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다른 어느 동물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두뇌를 갖도록 진화했고 그 필연적인 결과로 과학이 탄생했다. 우리는 바야흐로 과학 기술시대에 살고 있다. 나는 감히 인간이라는 동물의 자연서식지는 과학기술이 창조한 세계라고 단언한다. 우리 모두 과학기술 속에서 태어나 성장하다 늙고 병들어 죽는다.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는 환경

속세를 피해 산속에서 은둔생활을 하는 사람도 어쩔 수 없이 산성비로 오염된 개울물을 마셔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세상에서 잠시 쉬겠다며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휴대전화를 챙기고, 공항이나 호텔마다 인터넷이 그물망을 치고 있다. 우리들 중 일부가 항생제를 남용하는 바람에 인류 전체가 점점 더 지독한 병균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

이제 그 누구도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과학기술의 영향권 밖에서 살 길은 없다. 그리고 길은 한 방향으로만 나 있다. 과학기술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 수 없는 길이다. 막무가내로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루소의 외침은 더 이상 현실성도 없고 설득력도 지니지 못한다.

동굴시대에도 과학자와 기술자들은 있었다. 누구는 야생동물들의 행동과 이동경로를 관찰하여 분석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고, 또 다른 이는 늘 새로운 도구를 고안하기에 바빴을 것이다. 새로운 지식을 빠르게 습득하여 자신의 생활을 윤택하게 만든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지식수용에 무관심하거나 느리거나 아니면 정보를 제대로 얻지 못한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같은 석기시대인이었다 해도 이 두 부류는 삶의 질에 있어 적지 않은 차이를 보였을 것이 당연하다. 또 이런 과학기술인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던 부족이 그렇지 못한 부족보다 번성했을 것이다. 과학기술력이 바로 국력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처럼 긴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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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 jccho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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