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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과학상식

암으로 죽는 동물, 인간을 원망하다

  • 이정호 / 동아사이언스 기자 sunrise@donga.com

암으로 죽는 동물, 인간을 원망하다

암으로 죽는 동물, 인간을 원망하다
오스트레일리아 남동쪽에 있는 태즈메이니아 섬. 남한의 3분의 2 정도 넓이인 이 섬은 때 묻지 않은 자연환경으로 유명하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될 만큼 청정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낙원 같은 이곳에서 최근 한 동물이 수난사를 쓰고 있다. 피해자는 태즈메이니아 주머니곰(Tasmanian Devil·사진), 가해자는 암(癌)이다.

주머니곰은 몸길이 50~80cm의 포유류로 쥐와 생김새가 비슷하다. 최근 이 녀석들을 괴롭히는 병은 안면종양증(DFTD). 이 병에 걸리면 종양이 얼굴과 목에서 튀어나오고 눈알이 빠진다. 암 덩어리가 얼굴을 뒤덮어 먹이를 씹기도 어렵다.

1996년 14만마리에 달하던 주머니곰은 이 병이 퍼지면서 2006년 8만마리로 급감했다. 현재는 개체 수가 2만~5만마리로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외신에 따르면 의료진이 감염 경로를 추적하고자 일부 주머니곰의 목에 추적기를 달았는데 이 섬의 동물윤리위원회는 “주머니곰 스스로 추적기를 제거할 수 없으므로 동물의 권리를 침해한다”며 추적기 부착 중단을 요구했다. 이에 의료진은 “더 많은 동물을 구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처”라며 반발하고 있다. 주머니곰은 죽어가고 있는데 사람들은 다툼만 벌이는 것이다.

주머니곰의 수난은 전적으로 인간의 책임이다. 원래 주머니곰은 오스트레일리아 본토에도 서식했지만 원주민들의 남획으로 태즈메이니아 섬에만 남게 됐다. 게다가 19세기부터 이 섬에 터전을 잡은 유럽인들은 주머니곰이 가축을 잡아먹는다며 녀석들을 죽였다.

좁은 서식처에 적은 수만 남은 주머니곰은 결국 유전적 다양성을 잃었다. 보통의 동물이라면 다양한 환경에서 자라는 많은 수의 개체가 서로 어울리며 생존에 유리한 유전자를 대물림하지만 주머니곰은 그럴 기회를 빼앗긴 것이다. 유전적 다양성이 줄어든 생물은 특정 질병에 취약해지게 마련이다. 주머니곰에게는 안면종양증이 그랬다. 인간의 활동이 녀석들을 암 환자로 만든 것이다.

미국 야생동물보존협회(WCS)는 7월 국제학술지 ‘네이처 리뷰 캔서’에 발표한 논문에서 암으로 고통 받는 수중 생물을 조명했다. 이 논문은 미국과 캐나다 사이를 흐르는 세인트로렌스 강에 서식하는 벨루가고래, 북미 서부 해안에 사는 캘리포니아 바다사자, 태평양 등에서 서식하는 녹색 바다거북 등이 각종 암으로 고통 받는다고 밝혔다. 발병 원인은 폐수에 섞인 ‘다핵방향족 탄화수소’와 같은 발암물질이다.

1978년 영국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은 지구를 생명체로 바라본 ‘가이아 이론’을 발표했다. 이 이론의 핵심은 생물, 대기권, 바다, 토양이 서로 어울려 지구라는 유기체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자연을 개발하거나 보호할 존재가 아니라 자연과 공존하면서 살아가야 할 존재에 불과하다. 인간이 자연에 대한 오만을 거둬들일 때 암으로 신음하는 동물도 줄어들 것이다.

신동아 2009년 8월 호

이정호 / 동아사이언스 기자 sunri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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