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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 논란과 키

미국 남성은 성장 멈췄고 한국 남성은 더 자란다

  • 이한음|과학칼럼니스트 lmgx@naver.com|

루저 논란과 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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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 논란과  키

2009년 1월19일 미국 워싱턴의 만찬회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오른쪽)와 존 매케인 전 공화당 대선후보가 함께 서 있다.

미국도 다르지 않다. 역대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후보자들의 키를 알 수 있는 46건의 대선 중 키 큰 후보자가 승리한 선거는 27건이라고 한다. 최근 대선에서도 키 큰 버락 오바마가 존 매케인을 이겼다. 185㎝인 오바마는 170㎝인 매케인보다 약 15㎝가 더 컸다. 최근에 치러진 13번의 미국 대선만 따져도 키 큰 후보가 10번 이겼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루저’에게 긍지를 불어넣는 상징적인 인물로 인터넷에선 묘사됐지만 그는 당시로 치면 평균키였다는 설이 우세하다.

그럼에도 키를 사회경제적 지위를 결정하는 주된 변수로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통계를 이용한 잡담거리에 더 가깝다. 키 대신에 체중, 발 크기, 허리둘레, 시력, 손가락 길이, 이마 넓이 등을 집어넣어 통계 수치를 내봐도 자극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한정된 자원의 배분 문제는 인류의 오랜 숙제였다. 자원의 배분과 키는 관련성이 있을까. 옛날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에서 숲을 벗어나 사바나로 진출했을 때 키가 큰 쪽이 유리했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웃자란 풀 너머로 더 멀리 내다볼 수 있어 먹이를 찾아내거나 다가오는 포식자를 일찍 알아차리는 데 유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물학적으로 보면 큰 키가 반드시 유리한 것은 아니다. 생물은 자신에게 제공되는 자원을 적절히 배분해야 한다. 자신의 생존과 번식에 말이다. 자신의 생존에 너무 많은 자원을 투자하면, 번식에 쓰일 자원은 그만큼 줄어든다. 그러면 번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할 수 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생물의 존속에 해가 된다. 번식하지 못하는 생물은 사라진다. 잘 번식하여 많은 자손을 남기는 쪽이 궁극적으로 승리자가 된다. 이때 큰 키는 생물의 존속에 오히려 불리한 조건이 된다.

인류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작은 고추가 더 맵다. 키 큰 벼에는 쭉정이만 달리기 십상이다. 햇빛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식물은 남보다 더 높이 자라야 유리하다. 그래야 햇빛을 더 많이 받아 광합성을 더 많이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원은 햇빛만이 아니다. 흙에서 얻는 자원도 있고 공기에서 얻는 자원도 있다. 그런 자원 역시 한정되어 있다. 성장하는 데에만 너무 많은 자원을 쓰다가는 가장 중요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수 있다. 즉 번식에 실패한다.



큰 키는 생존과 번식에 불리?

16세기의 밀은 키가 거의 2m에 달했다. 밀을 베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수확량은 형편없었다. 반면 오늘날의 밀은 사람의 허리에도 닿지 않을 정도다. 키를 줄이고 대신 낟알이 많이 달리도록 끊임없이 품종 개량을 한 덕분이다. 즉 성장에 필요한 자원의 비율을 줄임으로써 번식에 더 많은 자원이 할당되도록 한 것이다. 밀 같은 곡류뿐 아니라 사과, 배, 귤 같은 과일도 비슷한 품종 개량 과정을 거쳤다. 예전에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과일을 따야 했지만, 지금의 과일나무는 키가 작다. 대신 과일은 더 많이 열린다.

그렇다면 키와 생존-번식의 반비례 함수관계는 인류에게도 적용될까? 인류의 기원을 다루는 책에서 자주 보이는 그림이 있다. 구부정한 모습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등을 꼿꼿이 편 현대 인류에 이르는 단계적인 진화 모습이 그것이다. 이에 따르면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키가 점점 더 커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예외적인 종족이 있다. 바로 피그미족이다.

피그미족은 남성이 150㎝, 여성이 135㎝에 불과하다. 다른 종족들은 산업혁명 이후 계속 키가 커왔는데 이들은 그대로다. 왜일까? 영양 부족과 열악한 생활환경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그러나 비슷한 환경에 사는 마사이족은 정반대로 키가 아주 크다. 피그미족은 세계 각지에서 산다. 동남아시아, 호주, 남아메리카에도 피그미족이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의 한 연구진은 피그미족의 기대수명이 아주 짧다는 것을 알아냈다. 겨우 16~24세였다. 다른 수렵채집인 부족들은 그보다 10~20년은 더 오래 살았다. 피그미족은 영양부족, 질병 등 갖가지 이유로 일찍 사망했다. 평균 15~16세에 자식을 낳았다. 이들은 성장 속도도 느릴뿐더러 13세 무렵에 성장이 끝난다. 이런 사실은 피그미족이 번식을 위해 성장을 희생했음을 시사한다. 연구진은 2003년 인도네시아에서 화석으로 발견된 멸종한 키 작은 인류인 호빗족도 같은 방식으로 진화한 것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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