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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살(殺)처분이 능사인가?

  • 이한음|과학칼럼니스트 lmglhu@hanmail.net

구제역, 살(殺)처분이 능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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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0만 마리가 넘는 가축이 살(殺)처분됐다. 소와 돼지의 ‘홀로코스트’에
  • 동원된 공무원, 수의사는 정서적 충격을 경험하고 있다. 구제역.
  • 인간에게 재앙이 될 것인가. 살처분 외에 다른 방법은 없는가.
구제역, 살(殺)처분이 능사인가?

겁에 질린 눈망울. 충남 청양군 한 마을에서 소와 송아지가 살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11월까지 사육되던 소와 돼지의 10분의 1이 구제역에 감염되어 땅속에 묻혔다고 한다. 경북 안동에서 최초로 발생한 뒤 감염 지역이 확산되고 있다. 1월 중순까지 120여 곳으로 구제역이 퍼져 140만 마리 이상이 매몰됐다. 전문가들은 이대로 가다가는 국내 축산업 기반이 무너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최초 발생지인 안동시, 70%가 넘는 소·돼지를 묻은 김포시는 이미 축산업이 붕괴되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설상가상으로 조류인플루엔자까지 유행할 기미를 보인다.

지난 수년간 성장세를 유지하던 국내 축산업은 이 일로 크게 후퇴할 것이 뻔하다. 구제역이 진정되더라도 축산업이 다시 제자리를 찾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지역 축제 47건이 취소되고 일정이 미루어지는 등 지역 경제가 피해를 보고 있다. 구제역이 더 확산되면 물가도 오를 것이다.

축산 농민과 방역 담당자들의 고충도 심하다. 텅 빈 축사를 볼 때마다 느끼는 농민의 상실감, 살아 있는 가축을 죽여서 묻는 공무원의 정신적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이라고 한다. 정부는 처음에 수출에 지장이 생긴다는 이유로 구제역 백신 접종을 자제했다. 그러나 구제역 확산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방역 당국의 생각은 빗나갔다. 방역 능력을 과신한 셈이다. 이 일을 교훈으로 삼아 방역 능력을 제고하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구제역 걸려도 치사율 안 높아

구제역(口蹄疫)은 말 그대로 가축의 입과 발굽에 물집이 생기는 전염병이다. 영어 용어(foot-and-mouth-disease)를 앞뒤만 바꾸어 그대로 옮긴 것이다. 구제역은 우제류, 즉 발굽이 둘로 갈라진 동물에게서 나타난다. 소, 돼지, 양, 염소, 사슴 등이 이에 해당한다. 우제류가 아닌 동물이 걸리는 사례도 있지만 많지는 않다. 사람에게 감염되는 사례는 극히 드물게 보고되고 있다. 모두 감염된 동물을 직접 접촉한 사람들이었다. 일반적으로는 사람에게 전염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끼리의 접촉이나 육류를 먹어서 감염된 사례도 없다.

구제역을 일으키는 병원체는 피코르나바이러스과에 속하는 구제역바이러스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동물은 열이 나고 기운이 없어진다. 발, 주둥이, 혀, 젖꼭지에 물집이 잡힌다. 구제역바이러스는 크게 7종류로 구분된다. 더 세분될 수도 있다. 대개 감염된 지 2~3일 내에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구제역은 전염성이 아주 강한 질병이다. 동물 간 접촉, 배설물과 사료 등 감염 매개체를 통한 접촉, 공기 중에 떠도는 바이러스 입자의 흡입, 사람이나 차량을 통한 전파 등 온갖 방식으로 전염된다. 소는 주로 공기에 떠다니는 바이러스 입자를 흡입해 호흡기를 통해 감염된다. 감염된 소는 배설물, 젖, 호흡기를 통해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돼지는 호흡기를 통한 감염은 덜한 편이다. 대신 감염된 동물과 직접 접촉하거나 오염된 사료를 먹어서 걸린다.

많은 사람이 구제역에 걸린 동물은 대부분 죽는 줄 안다. 그러나 그건 사실과 다르다. 다 자란 동물은 구제역에 걸려도 치사율이 그리 높지 않다. 어린 동물은 치사율이 높다. 감염되었다 나은 뒤 체중 감소, 젖 생산량 감소, 활력 상실 등 후유증이 나타날 수 있다.

가축 전염병을 다루는 국제기관인 국제수역사무국은 구제역을 가축 및 육류의 교역을 제한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정하고 있다. 많은 나라에서 이 기준에 따라 구제역이 발생한 나라로부터 가축 및 육류의 수입을 금하고 있다. 전염성이 강하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혹시라도 수입을 통해 구제역이 전파되면 자국에 경제적 피해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제역이 발생했더라도 살처분을 통해 구제역을 없앴다는 것이 입증되면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회복해 가축과 육류의 수출을 재개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살처분만으로 구제역을 제거하면 3개월, 백신 접종을 통해 구제역을 제거하면 6개월 뒤 청정국 지위를 회복한다.

지금까지 구제역이 한 번도 발생하지 않은 나라는 뉴질랜드뿐이다. 미국은 1929년 이래로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아 청정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호주, 캐나다, 유럽 여러 나라도 현재 청정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유럽 각국은 한때 구제역이 빈발했지만, 1960년대 살처분과 백신 접종을 적극적으로 실시한 끝에 구제역을 없애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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