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호

애플-삼성 맞고소로 본 기업 특허 전쟁

소프트 지식재산의 부상 시장 선점 놓고 전략적 ‘기 싸움’

  • 이남희│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입력2011-05-18 16: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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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플-삼성 맞고소로 본 기업 특허 전쟁

    애플은 삼성전자 갤럭시S(왼쪽)의 외관이 아이폰과 유사하다며 ‘트레이드 드레스’ 침해를 주장했다.

    “디지털 제왕(帝王)’들의 특허 전쟁이 시작됐다. 선제공격을 한 건 애플이었다. 4월15일 애플은 자사의 스마트폰 ‘아이폰’과 태블릿PC ‘아이패드’를 삼성이 모방했다며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에 제소했다.

    애플이 주로 문제 삼은 것은 디자인과 상품 외장(外裝)을 뜻하는 트레이드 드레스(Trade Dress) 특허. 둥근 모서리, 통화·메시지·사진 등의 아이콘, 사용자환경(UI), 겉포장 등의 유사성을 주장하며 모두 16건의 소송을 제기했다.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는 지난 3월 아이패드2 발표행사에서 삼성전자 갤럭시탭에 대해 ‘모방꾼(copycat)’이라고 독설을 날리며 각을 세웠다. 그 신경전이 이제 법정으로 이어졌다.

    삼성의 역공(逆攻)은 신속했다. 애플의 제소 6일 만에 삼성전자는 한국, 일본, 독일 3개국 법원에 애플을 맞제소했다. 삼성의 공격 무기는 통신특허. 침해 사례는 10건에 달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애플이 침해한 특허에 대해 “데이터를 전송할 때 전송효율을 높이는 HSPA(고속패킷전송방식) 통신표준 특허, 데이터를 보낼 때 수신오류를 감소시키는 WCDMA 특허, 휴대전화를 데이터 케이블로 연결해 PC로 무선 데이터 통신을 할 수 있게 한 특허가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나머지는 전략상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이 삼성의 입장이다.

    이어 삼성전자는 4월27일(현지시각) 미국 법원에 애플을 상대로 특허침해 금지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법이 요구하는 절차와 조건이 많아 제소가 상대적으로 늦어졌다.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문제 삼은 특허는 모두 10건. 터치패널 문자입력 방법에 관한 특허, 부드러운 화면 전환 방법에 관한 특허 등이 여기에 속한다. 삼성은 미국 법원에서 “애플의 특허권을 침해하지 않았다”는 ‘수비’와 “애플이 자사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공격’을 동시에 진행할 계획이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시장을 양분하는 두 ‘IT(정보기술)분야 거인’의 충돌은 특허 분쟁이 경영전략으로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보여준다. 소송의 승패를 떠나, 전방위적인 특허 공격은 시장의 주도권을 잡고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수단이 된다.



    ‘짝퉁’ 취급으로 이미지 타격 입혀

    소송 자체는 애플의 명분이 약하다는 의견이 많다. 사스카 세건(Sascha Segan) PC 매거진 애널리스트는 “애플의 소장이 조잡하고 두려움에 차 있다”며 “애플의 일부 주장은 완전히 거짓”이라고 평가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소송이야말로 최상의 칭찬’이라고 비꼬았다. 애플의 소송에 대해 ‘안드로이드폰 성장을 견인한 삼성전자에 대한 견제’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일종의 ‘위협 효과(chilling effect)’를 노린 것이다.

    2007년 아이폰을 선보인 애플은 휴대전화 제조 후발주자다. 아이폰은 기존 휴대전화 기술을 따왔다. 애플 역시 다른 기업의 특허 공세에서 자유롭지 않은 셈이다. 삼성의 맞소송을 예상하고도 애플이 강수를 둔 이유는 무엇일까. 애플이 핵심자산으로 여기는 독창적 디자인을 삼성이 모방했다고 판단해서다. 소비자가 애플 제품에 열광하는 이유는 바로 ‘사용자의 편의를 배려한 간결한 디자인’이다. “아이폰이 영혼이 담긴 ‘샤넬백’이라면, 갤럭시S는 A급 짝퉁 ‘채널백’ 같다”는 한 소비자의 고백이 이를 대변한다. 조용식 법무법인 다래 대표변호사는 애플의 계산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지금까지 세계적 IT기업들은 주로 제품의 기능을 놓고 특허소송을 벌여왔다. 반면, 상품의 외관을 뜻하는 트레이드 드레스나 디자인은 카피(copy) 제품에 소송을 걸 때 문제 삼는 내용이었다. 애플은 소송을 통해 삼성전자 제품을 ‘짝퉁’으로 격하시킴으로써 삼성의 이미지에 타격을 주고자 한 것 같다.”

    삼성전자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2000년대 들어 삼성전자는 기술 특허를 싼값에 사들인 뒤 기업에 소송을 제기해 합의금을 받아내는 ‘특허괴물(Patent Troll)’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높은 매출과 특허 보유량에 비해 상대적으로 글로벌 특허 소송 전담 인력이 부족한 점을 노린 것이다. 이에 삼성전자는 특허 조직을 대폭 강화했다. 최지성 부회장 직속으로 특허 소송을 전담하는 IP(Intellectual Property)센터를 설치했다. IP센터 구성원을 포함해 특허 관리 인력은 450여 명에 달한다. 이는 2005년 250명에서 두 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엔지니어 출신 미국 특허 변호사 안승호 부사장이 IP센터를 이끌고 있다.

    삼성전자는 애플의 소송 가능성을 간파하고 오랫동안 준비해왔다. 삼성전자로부터 반도체와 LCD 등 전자부품을 대량구매하는 애플 관계자가 협상 테이블에서 ‘삼성이 애플의 특허기술을 침해하는 것 같다’는 뉘앙스의 말을 던졌기 때문이다. 이에 삼성은 애플의 소송을 무력화할 수 있는 증거를 수집했다. ‘발목잡기’식 특허소송에 선제적으로 대처하는 전략이다.

    애플-삼성 맞고소로 본 기업 특허 전쟁

    성공적인 특허경영 모델을 구축했다고 평가받는 벤처기업 인스프리트의 전시 부스.

    양사 간 소송은 어떻게 끝날까. 서로의 이해관계가 균형을 이루는 지점에서 합의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소송이 끝까지 갈 경우 그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일부 기술은 크로스 라이선싱을 하거나 로열티를 주는 방법도 있다. 조용식 변호사는 “소송 시작과 종료 모두 전략적 차원에서 한다. 두 기업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만큼 어떻게 해야 가장 이득이 될 것이냐를 따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사실 애플과 삼성전자의 대결은 최근 세계 시장에서 벌어지는 ‘스마트폰 특허 전쟁’의 일부에 불과하다. 미국 IT전문지 ‘컴퓨터월드’는 이 전쟁을 두고 “제3차 세계대전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특허 전쟁을 펼치는 진영은 크게 4파로 나뉜다. 애플, 노키아·MS, 안드로이드 진영(구글·삼성전자·HTC·모토로라 등), 기술특허 전문기업 진영이다.

    특히 노키아는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 회사 MS와 손잡고 애플과 안드로이드 진영을 모두 압박하고 있다. 노키아는 현재 애플을 상대로 모두 46건의 특허 소송을 진행 중이다.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석권했던 노키아는 2007년 애플 아이폰의 등장으로 시장 점유율을 20% 이상 뺏겼다. 따라서 소송을 통해 애플의 이미지를 흠집 내며 신제품 개발 시간을 버는 것이다.

    특허 출원 세계 4위, 하지만…

    전 산업 분야에 걸쳐 국내외 기업 간 ‘특허소송’은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특허청에 따르면 2004년부터 올해 3월까지 국내외 기업 간에 제기된 특허소송은 611건. 2004년 41건이던 것이 2005년 51건, 2006년 54건, 2007년 96건, 2008년 115건, 2009년 125건, 2010년 114건으로 급격하게 늘어났다.

    외국 기업이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특허소송을 진행한 것은 460건(75.3%). 국내 기업이 외국 기업에 소송을 제기한 151건(24.7%)을 크게 웃돈다. 이는 특허로 수익 창출을 극대화해온 서구 글로벌 기업과 ‘수동적 방어’에 치중해온 한국 기업의 전략적 차이를 잘 보여주는 결과다.

    특허 출원 규모 세계 4위라는 명성과 달리, 한국 기업의 특허관리 시스템은 미약한 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009년 30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지식재산 전담 부서가 있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전체의 26.7%가 ‘없다’고 답했다. ‘있다’고 대답한 회사의 73.3%는 부서장의 직급이 부장(45.5%)이나 차장 이하(18.2%)였다.

    삼성경제연구소 임영모 수석연구원은 “한국 기업이 많은 특허를 보유한 데 비해, 수익 창출과 방어 역량은 취약하다”고 분석했다. 예를 들어 지난해 미국 특허 등록 건수 1, 2위를 차지한 IBM(5860건)과 삼성전자(4551건)가 특허로 벌어들인 수익을 비교해보자. 18년 연속 미국 최다 특허 취득을 기록한 IBM은 특허수입으로 연간 1조원이 넘는 수익을 올리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는 아직 미미한 수준의 수익을 거둘 뿐이다. 이는 특허를 보는 두 회사의 시각차에서 기인한다. IBM이 특허를 ‘수익 창출 수단’으로 생각했다면, 삼성전자는 ‘연구개발의 부산물이자 제품 생산에 필요한 도구’ 정도로 여겼던 것이다.

    한국 기업의 특허 경영 수준은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2006년 실시한 ‘기술경영 수준평가’ 자료를 통해서도 가늠해볼 수 있다. 이 평가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기술경영 수준은 1세대에서 4세대까지 발전단계 중 2.6세대로 나타났다. 이는 국내 기업의 전반적인 기술경영 수준이 ‘연구개발 관리를 통한 목표 달성을 추구’하는 2세대를 넘어, ‘전사적인 차원의 전략적 연구개발을 추진’하는 3세대로 진입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기업규모별 기술경영 수준을 보면 연구개발투자 상위 20대 기업은 3.3세대, 대기업은 2.8세대, 중소기업은 2.6세대로 나타났다. 연구개발에 많이 투자하는 기업일수록 기술 경영 수준이 높았다.

    5년 전 평가인 만큼 현재 기업의 특허 경영 수준은 보다 개선됐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복수의 전문가는 “상당수 국내 대기업이 아직도 ‘혁신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차세대 주력제품을 만들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4세대 기술경영 단계에 진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4세대 기술경영 단계에 진입한 기업으로는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이 꼽힌다.

    숱한 글로벌 특허 분쟁에서 얻은 교훈 때문일까. 국내 주요 대기업의 특허전략은 ‘방어’에서 ‘적극적 주도’로 급선회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월 IBM과 특허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 수십 년간 반도체, 통신, 소프트웨어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협력관계를 유지해온 두 회사가 ‘특허 공동 활용’으로 협력을 더욱 확대한다는 취지다. 최대 글로벌 IT기업인 두 회사의 결합은 새로운 IT 트렌드의 등장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특허 포트폴리오를 보강함으로써 시장변화에 보다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된 것이 삼성전자가 얻은 소득이다.

    IP스쿨 개설한 LG그룹

    애플-삼성 맞고소로 본 기업 특허 전쟁

    LG그룹 ‘IP스쿨’에서 특허센터장인 이정환 부사장이 수강생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LG그룹은 ‘핵심 사업과 신성장동력 사업에 대한 표준 기술 확보로 특허 로열티 수익을 창출한다’는 전략이다. 주력 계열사인 LG전자는 통신 분야의 3세대, 4세대 표준기술, 방송 분야의 미국 TV방송 표준기술인 VSB, DVD, BD(블루레이 디스크) 등 다양한 표준 특허권을 선점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LG전자는 세계 가전제품 시장을 놓고 미국과 유럽에서 소니와 전면적인 특허 전쟁을 벌이는 중이다. 글로벌 특허괴물들은 LG의 주력 사업 분야인 TV, 발광다이오드(LED), 배터리 분야로 특허 공격을 확대하고 있다. 이 무차별 공습에 대해 LG는 “공격받은 특허를 철저하게 분석해 다양한 반박 논리를 개발한다”고 설명했다.

    LG가 특허경영을 위해 공을 들이는 부분은 전문 인력 양성이다. 2009년부터 글로벌 특허학교 ‘IP(지적재산권)스쿨’을 열어 소송, 협상, 라이선싱, 출원, 특허 분석 등 5개 분야에 걸쳐 강의를 진행한다. IP스쿨에는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화학 등 9개 계열사가 참가한다. 올해 IP스쿨 과정을 이수한 직원 수가 1000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IP스쿨 강사는 특허 담당 임원, 국내 및 국외 변호사 등 업계 최고 전문가다. 강의는 대부분 영어로 진행된다. 한 개 강좌에 1학점으로 총 14학점 이상을 취득해야 과정 수료를 인정받는다.

    LG는 본격적인 ‘특허경영’의 일환으로 지난해 ‘LG특허협의회’를 구성했다. 국내외 특허분쟁에 대응하고 핵심 지식재산권 확보로 수익을 내기 위해서다. ‘LG특허협의회’는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화학, LG생명과학 등 8개 계열사의 특허담당 임원과 연구소장으로 구성된다. 의장은 이정환 LG전자 특허센터장(부사장)이 맡고 있다. ‘LG특허협의회’는 발광다이오드(LED),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분야처럼 계열사가 연구·생산 단계부터 협력하고 공통의 특허를 확보하도록 만드는 데 중점을 둔다.

    특허괴물에 맞서는 비즈니스 모델도 눈여겨볼 만하다. LG전자와 삼성전자는 특허괴물의 공격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특허방어펀드(RPX)에 가입했다. RPX는 분쟁 소지가 있는 특허를 매입해 특허괴물에 대항하는 회사다. 소니, 노키아, HP, IBM 등 유수의 글로벌 기업도 이 펀드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

    대기업의 기술 탈취

    세계 시장에서 국내 대기업이 희생양이었다면, 국내 시장에서는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 탈취’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2009년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결과 대기업으로부터 기술 자료를 요청받은 중소기업 가운데 22.1%가 기술탈취나 유용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대기업을 상대로 중소기업이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는 드물다. 기술을 뺏기는 것보다 ‘거래 중단’이 더 두렵기 때문이다. 대기업과의 기술특허 분쟁에서 패소한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해당 대기업과 다시 협력하고 있기 때문에 소송에 대한 언급은 곤란하다”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나 홀로 분투하는 기업인도 있다. 김성수 서오텔레콤 대표는 ‘골리앗에 맞선 다윗’으로 통한다. LG텔레콤(현 LG유플러스)과 특허 분쟁을 8년째 하고 있다. 그는 “휴대전화로 구조요청 전화를 쉽게 걸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는데 LG 측이 강탈해 알라딘폰에 사용했다”고 말했다. “대기업과의 소송은 200%의 확신을 갖고 있어도 이기기 어렵다”는 게 그의 소회다.

    “8년 가까이 소송을 진행하며 11군데의 변호사 사무실과 일했다. 소송하는 데 거의 수십억원이 들었다. 대법원은 우리의 특허가 유효하다고 인정했지만, LG는 각자의 기술이 다르므로 특허 침해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LG가 끝까지 손해배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민사소송을 진행 중이다. ‘누군가는 나서야 한다’는 생각에 싸우고 있다.”

    이에 대해 LG유플러스 관계자는 “대법원은 우리가 서오텔레콤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했다”며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많은 중소기업이 어려움을 호소하지만, 성공적인 특허 경영 모델을 구축한 ‘스타 벤처기업’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미디어 컨버전스기업 인스프리트(대표 이창석)다.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선 이 회사는 이동통신과 컨버전스기술 부분 핵심 특허 130여 개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국내 최초로 개발하고 상용화한 N스크린 서비스 플랫폼 ‘컨버전스원’은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스마트폰과 인터넷, TV를 통해 자유롭게 교환하고 융·복합시키는 핵심 기술이다. 컨버전스원은 2010년 모바일 기술대상, 2011년 신SW상품 대상 등을 수상하며 그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인스프리트는 핵심기술을 통한 글로벌 라이선스 사업에 승부를 건다. 이미 핵심기술인 DCD(멀티미디어 콘텐츠 전송)와 MMS(멀티미디어 메시징 서비스)를 통해 삼성과 교세라, T모바일 등 글로벌 기업을 대상으로 지난 5년간 154억원의 라이선스 매출을 올렸다. 다른 기업의 핵심 특허 침해에 대해서는 공격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2월 글로벌 스마트폰 제조사인 HTC를 대상으로 핵심기술 2건의 침해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다. 이어 글로벌 메이저 기업에 대한 특허소송도 준비하고 있다. 심재철 인스프리트 전략기획실장은 특허의 가치에 대해 “매출 증대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의 인지도를 높이고, 기술 장벽을 쌓아 경쟁업체의 진입을 막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주요 대기업의 협력사인 인스프리트에 ‘기술탈취’의 위협은 없었을까. 심재철 실장은 “최고경영자를 비롯한 전 임직원이 기술 자산화에 대한 마인드를 갖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인스프리트는 창업 초기부터 특허경영을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을 마련했다. 제품 구상, 기획 및 개발 전 단계에서 특허 대상 아이템과 아이디어 확보를 기본 프로세스로 규정한 것이다. 특허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출원, 등록한 사원에게는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기술연구소에는 특허전담조직을 만들고 고문변리사와 변호사, 외부 컨설팅 파트너를 두었다. 삼성전자 출신인 이창석 대표가 비즈니스 파트너인 대기업의 생리를 잘 아는 것도 특허경영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지식재산 컨설팅 전문가인 최승욱 ㈜WIPS 상무는 “특허경영의 성패는 CEO의 의지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체계적인 특허경영을 위해서는 적지 않은 관리 비용이 드는 만큼 중소기업 CEO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에 희소식은, 3월 하도급업체의 기술을 가로챈 대기업이 피해액의 최고 3배를 배상하는 내용의 하도급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이다. 조용식 변호사는 “하도급법 개정안으로 중소기업이 대기업과의 소송에서 유리해졌다”고 설명했다.

    “고의성을 입증하는 책임도 피고인인 대기업에 넘어갔다. 피해를 당한 중소기업의 입증책임이 완화돼 대기업도 기술 탈취를 더욱 경계하게 될 것이다.”

    IP가치 인정하고 보상해야

    세계 시장에서 특허는 비즈니스 수단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대표적인 특허 비즈니스 모델이 2000년대 탄생한 특허전문관리회사(NPE·Non-Practicing Entity)다. NPE는 개인이나 기업으로부터 특허를 사서 로열티 이익을 창출하는 라이선싱 회사다. 이들이 특허권을 침해한 기업에 소송을 제기해 거액을 거둬들이며 ‘특허괴물’이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특허괴물 중 가장 잘 알려진 업체는 바로 미국의 인텔렉추얼 벤처스(IV)다. 2000년 MS 출신인 에드워드 정과 네이선 미어볼드 등 4명이 설립한 IV는 50억달러 펀드를 운영하며 약 3만 건 이상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MS, 인텔, 노키아, 소니, 애플 등 글로벌 기업이 주요 투자자로 참여했다.

    삼성전자는 이 IV와 지난해 11월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지금까지 최다 피소를 당한 삼성전자가 ‘어제의 적’이었던 IV와 손잡고 특허 포트폴리오를 강화한 것이다. ‘IV가 삼성전자로부터 얼마나 높은 계약금을 받았는가’는 업계의 큰 관심거리였다.

    ‘지적재산권 관리’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국내에서도 IV와 유사한 특허관리회사가 지난해 설립됐다. 국내 1호 특허전문기업인 아이피큐브파트너스 민승욱 대표는 “유망한 특허를 미리 사놓는 것은 유사하지만, 사들인 특허를 이용해 기업을 공격하지 않는 것이 우리 회사와 ‘특허괴물’의 차이점”이라고 설명했다.

    작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한국의 지식재산권서비스 산업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이는 새로운 특허 비즈니스 모델이 빠르게 탄생하는 미국의 분위기와 대조를 이룬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진화하는 특허 비즈니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오션토모(OceanTomo)는 2006년 세계 최초로 오프라인 특허 경매를 시작했다. 2010년 시카고 탄소배출권 사장을 영입해 특허권을 사고팔게 중개하는 시장을 연 것이다. 특허침해 전문조사 사업이나 특허 금융 사업도 특허를 활용한 사업모델로 미국 시장에서 각광받는 중이다.

    한국이 지식재산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민승욱 아이피큐브파트너스 대표의 조언은 귀 기울일 만하다.

    “한국은 지식재산권을 침해당해도, 제대로 보상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려면, 지식재산 가치를 충분히 인정하고 보상해주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특허권을 주식처럼 거래하도록 중개하는 IPXI(IP Exchange International·특허거래시장)의 도입을 검토해볼 만하다.”

    조용식 법무법인 다래 대표변호사

    “전세계 동시 소송이 트렌드, ‘길목특허’ 많이 보유해야 유리”


    애플-삼성 맞고소로 본 기업 특허 전쟁
    특허 분쟁이 늘어나면서 지식재산권 전문 법조인이 각광받고 있다. 1999년 지재권 전문 로펌 법무법인 다래를 설립한 조용식(51·사법연수원 15기) 대표변호사는 ‘특허법률 시장의 권위자’로 통한다. 특허법원 1기 판사를 지낸 그는 10여 년 넘게 크고 작은 지식재산권 관련 소송을 전담했다. 일본 제약회사가 보유하고 있던 백혈병 치료제의 특허등록을 무효화한 소송이 대표적이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 법학부 객원연구원을 거친 그는 해외 판례에도 정통한 전문가다. 4월 국무회의를 통과한 준법지원인제도의 입법을 주도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한국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떤 특허 전략을 펼쳐야 할까. 조용식 변호사의 조언은 한국 기업과 정부에 깊이 성찰할 과제를 던져준다.

    -최근 글로벌 특허 분쟁 트렌드는 어떻게 달라지고 있나.

    “글로벌 기업들은 소송 효과를 배가하기 위해 여러 나라에서 소송을 동시에 진행하는 추세다. 기업이 각 나라의 법률 대리인을 선임하면, 대리인들끼리 소송 주제를 정한다. 국가별로 법률이 다른 부분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으며 소송 내용을 일치시킨다. 소송을 제기하는 회사는 ‘세계 동시 소송’을 진행하면서 원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얻고, 소송을 당하는 쪽은 더 큰 데미지(damage)를 입는다. 특허 소송도 경영 전략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스마트폰 시장에서 특허 분쟁이 뜨겁다.

    “가장 큰 특징은 ‘애플의 공세’다. 2009년만 해도 노키아로부터 특허침해 공세를 겪던 애플이 적극적인 공세에 나섰다. 주목할 것은 ‘소프트(soft)한 특허의 부상’이다. 애플과 삼성전자의 소송에서 애플이 문제 삼은 것은 디자인과 ‘트레이드 드레스’ 침해다. 과거에는 통신 기술이나 기능 특허를 기반으로 한 소송이 주류를 이뤘다. 이는 애플이 자사 제품의 핵심 경쟁력을 디자인이라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경쟁사보다 해외 특허관리회사(NPE·Non Practicing Entity)와의 소송이 더 골칫거리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특허괴물’이라고 불리는 특허관리회사와의 소송이 가장 어렵다. 경쟁업체와의 소송은 상대방의 약점을 잡아 맞대응하거나 타협할 여지가 있는데, 특허관리회사가 문제를 제기할 경우 일방적인 게임이 돼버린다. 특허괴물이 특허분쟁을 제기하면 신속하게 전문 변호사와 변리사를 선임해 소송의 승패를 저울질해야 한다. 이길 상황이 아니면 전쟁을 하지 않는 게 낫다.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고, 여러 변수를 고려한 수익 대차대조표를 만들어 손해를 덜 보는 방향으로 대응해야 한다. 사업 시작 전, 어떤 회사가 우리 분야와 관련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지 조사하는 것도 중요하다. 내 사업 분야와 관련된 특허를 특허관리회사가 보유하고 있을 경우, 미리 로열티 계약을 맺으면 더 싸게 구입할 수 있다. 특허관리회사는 특허침해를 금지하기보다 더 높은 손해배상금을 받는 게 목적이므로, 자사 특허를 침해한 기업의 비즈니스 파이가 커지기를 기다린다. 사전에 계약하는 것이 비용도 훨씬 적게 든다.”

    -국내 대표기업들이 글로벌 특허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양적 성장에서 탈피해 질적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 특허를 수천 건 갖고 있어도 권리 행사를 할 수 없다면 소용이 없다. 특허도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다. 어떤 업체도 침해할 수밖에 없는 ‘길목특허’를 많이 갖고 있어야 한다. 해당 분야를 독점해 나와 협력하지 않으면 누구도 사업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좋다. 애플은 아이폰 제품 외관뿐 아니라 화면의 아이콘 하나하나, 심지어 포장박스까지 수십 건이 넘게 디자인 등록을 했다. 국내 기업이 제품 모델의 전체 외관 1건만 디자인 등록을 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애플의 전략을 참고할 만하다.”

    -과거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탈취’도 문제가 됐다. 중소기업은 어떻게 자사 특허를 지켜야 하나?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가 미국 S&P 500 기업의 자산가치를 평가해보니, 특허와 같은 무형자산이 해당 기업 자산가치의 80% 이상을 차지했다. 중소기업도 성공하려면 경영 전략 차원에서 지적재산을 중시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전문인력을 내부에 두기 어렵다면, 외부 특허 전문 변호사, 변리사로부터 컨설팅을 받아 분쟁의 소지를 미리 차단하는 것이 낫다. 특허를 낼 때는 해외 시장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한국 기업의 지적재산권을 보호하려면, 어떤 정책이 뒷받침돼야 하나.

    “지식경제부나 특허청, 중소기업청 등에서 각종 지원책을 펼쳐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러한 노력과 더불어 필요한 것이 ‘지식재산 서비스 생태계 구축’이다. 지적재산을 통해 부가 창출될 수 있도록, 기술을 권리화하는 전반의 과정을 제도화해야 한다. 지식재산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에서 기업이 특허 관련 소송에서 이길 확률은 20%이며, 손해배상액은 원고가 청구한 금액의 10%도 되지 않는다. 반면, 미국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시행해 피고의 행위가 악의적일 경우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많은 손해배상금액을 내게 한다. 한국도 국가경쟁력 발전을 위해 지식재산권 분야만이라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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