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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학과 정치학의 교묘한 만남

우주발사체와 발사장

  • 이정훈 /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우주학과 정치학의 교묘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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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도미사일은 고체로켓 사용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고체연료였다. 고체연료는, 간단히 설명하면 고화(固化)제를 사용해 액체연료와 산화제를 섞어 물성 변화가 적은 고체 상태로 바꿔놓은 것이다. 고체연료는 미사일 안에 항상 장전해놓을 수 있어, 점화만 하면 미사일이 바로 날아간다. 그러나 우주발사체는 워낙 크기에 대개 액체연료를 사용한다.

우주 개발 선진국들은 가장 큰 힘을 내야 하는 발사체 1단에는 액체로켓을 채택하고 2단부터는 고체로켓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백곰과 현무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이나 우주발사체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인 전술미사일이다. 현무-1의 무게는 5t에 불과하지만, 나로호는 140t이 넘는다. 현무-1은 대기권 밖으로 나가보지도 못하는 미사일이므로 현무-1에 사용한 로켓으로는 나로호를 띄울 수 없다.

전술미사일에 사용된 것과는 다른, 우주발사체에 쓸 로켓엔진을 만들어보자는 노력은 1989년 한국항공우주연구소(항우연)가 한국기계연구소 부설기관으로 떨어져 나오면서 본격화했다. 항우연은 한국기계연구소 부설 기관으로 시작된 항공우주연구소를 뿌리로 삼지만, 일부 인사들은 한국전자통신연구소 부설 천문우주과학연구소도 뿌리로 본다. 기계연의 항공우주연구소와 전자통신연의 천문우주과학연구소가 합병해 항우연이 만들어졌다 고 보는 것이다.

1990년 항우연은 현무에 사용된 것과 다른 고체로켓 개발에 들어갔다. 이 로켓은 영어로는 KSR(Korea Sounding Rocket)-1, 우리말로는 ‘과학로켓-1호’로 명명됐다. 우주발사체를 만들려면 고체로켓도 필요하기 때문에 기술이 축적돼 있는 고체로켓 분야부터 도전해보기로 한 것. 1993년 6월 4일 항우연은 KSR-1 1호기를 시험발사해 고도 39km, 지상 기준 비행거리 77km를 기록했다. 그해 9월 1일에는 2호를 발사해 고도 49km, 지상 기준 비행거리 101km를 달성했다.



전문가들은 KSR-1을 미사일로 개조하면 200kg 탄두를 달고 최고 150km까지 비행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현무(현무-1)보다 떨어지는 성능이다. 그러나 현무는 2단으로 구성돼 있고, KSR-1은 1단이어서 둘을 바로 비교할 수는 없다. KSR-1의 무게는 1.25t으로 5t에 육박하는 현무보다 훨씬 가볍다. KSR-1은 현무 개발 과정에 습득한 기술로 만든 초보적인 우주발사체용 로켓으로 보아야 한다.

KSR-1 발사 성공에 자신감을 얻은 항공우주연구소는 2단형 KSR-2 개발에 도전했다. 1997년 7월 9일 서해 안흥시험장에서 KSR-2의 최초 발사 시험이 있었다. KSR-2는 단 분리에 성공해 2단이 성공적으로 점화됐으나, 그 직후 본부와의 통신이 끊어졌다. 통신이 두절된 KSR-2는 비행정보를 알리지 못한 채 날아가 127.7km 떨어져 있는 예상 착수(着水)처에 떨어졌다.

북한에 밀렸던 로켓 실력

1998년 6월 11일 항우연은 KSR-2 제2차 발사를 시도했다. 이번에는 통신이 끊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137.2km 고도까지 올라갔다가 지상 기준 123.9km거리를 비행한 뒤 서해에 떨어졌다.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이 성공은 50여 일 후 북한이 거둔 거대한 성공에 파묻히고 만다. 1998년 8월 31일 북한은 액체연료를 사용하는 3단형 발사체인 대포동-1호(북한 이름은 ‘백두산’)를 동해로 발사해 남한 국민을 긴장시켰다.

대포동-1호는 마지막인 3단이 점화되지 않아 북한이 기대한 것보다는 짧은 1600여 km를 날아 바다에 떨어졌다. 이 때문에 대포동-1호에 탑재했다는 광명성-1호 위성은 자기 고도에 올라가지 못하고 추락했다. 제대로 점화됐으면 대포동-1호는 광명성-1호를 지구 궤도에 올려놓고 3단은 지상 기준으로 최대 2200km를 비행하는 기록을 세웠을 것이다. 대포동-1호 발사로, 과거 미국이 소련에 뒤졌던 것처럼 한국도 우주 개발과 탄도미사일 분야에서 북한에 크게 뒤져 있다는 사실이 분명히 밝혀졌다.

북한이 2000km 이상 날아가는 액체로켓을 기술을 갖고 있다는 것이 확인된 이상 한국은 액체로켓 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었다. KSR-3 개발에 나선 것이다. 항우연은 KSR-3를 1단으로 만들기로 했다. 이것을 토대로 대포동-1호와 비슷한 한국형 우주발사체 KSLV-1을 개발하기로 했다. 그러자 현무를 개발하면서 미국과 맺은 한미미사일각서가 문제가 됐다.

이 각서는 한국은 사거리 180km 이내의 탄도미사일만 개발한다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한다. 우주발사체를 개발하려면 우주 개발 선진국인 미국으로부터 부품과 기술을 도입해야 하는데, 미국은 이 각서를 근거로 발사체 개발에 필요한 부품과 기술의 수출을 거부할 수가 있다. 미국이 반대하면 서방 진영에 속한 다른 선진국들도 회피할 것이니, KSR-3와 KSLV-1의 개발은 어려워진다.

미국을 한미미사일각서를 개정해도 좋다는 쪽으로 돌려놓기 위해 한국은,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Missile Technology Control Regime) 가입을 추진했다. MTCR은 탄두중량 500kg, 사거리 300km가 넘는 탄도미사일의 기술과 부품을 MTCR 회원국이 아닌 나라에 수출하는 것을 금지한다. MTCR 회원국에 한해서만 탄두중량 500kg과 사거리 300km까지의 미사일 기술 수출을 허가한다. 그러나 우주발사체 기술은 거리 제한 없이 회원국으로부터 도입할 수 있게 해놓았다.

미국과 미묘한 신경전

한국은 MTCR 가입에 전력을 기울였다. 한국의 MTCR 가입 여부는 미국이 결정권을 쥐고 있었다. 2001년 미국은 한국의 MTCR 가입에 동의했다. 동시에 별도로 한국과 ‘한국은 탄두중량 500kg, 사거리 300km의 탄도미사일은 개발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협정을 맺었다.

이 협정 때문에 한국은 MTCR 회원국이면서도 자력으로 사거리 300km, 탄두중량 500kg이 넘는 탄도미사일을 개발하지 못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MTCR은 탄두중량이 500kg 이하의 순항미사일이라면 사거리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한국은 이 점을 활용해 사거리 300km, 탄두중량 500kg의 ‘현무-2’ 탄도미사일과 함께 탄두중량은 500kg 이하이지만 사거리는 500km(현무-3A), 1000km(현무-3B), 1500km(현무-3C)인 ‘현무-3’ 순항미사일 시리즈를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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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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