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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박사 이태형의 별별 낭만기행 ②

바람둥이 제우스가 희롱한 미녀들

비운의 사랑 황소자리

  • 이태형 | 우주천문기획 대표 byeldul@nate.com

바람둥이 제우스가 희롱한 미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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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감한 사냥꾼 오리온자리 옆에 애꾸눈이 된 황소가 씩씩거리고 있다. 오리온과 투우라도 한 걸까.
  • 2월의 별자리인 황소자리에는 바람둥이 제우스와 얽혀 비운의 삶을 살다 간 아름다운 여인들의 얘기가 전해진다.
바람둥이 제우스가 희롱한 미녀들
소한, 대한 추위가 다 지나고 어느덧 2월이다. 절기는 입춘이지만 우리 몸이 봄을 느끼려면 시간이 더 흘러야 할 것 같다. 학창 시절, 2월은 한 학년을 정리하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전통적으로 여러 문명권에서 춘분이 있는 3월을 한 해의 시작으로 보았고 2월을 한 해의 마지막으로 보았다. 2월을 뜻하는 ‘February’는 로마시대에 12번째 달의 이름이다.

겨울의 마지막 달에 만날 별자리는 황소자리다. 이 별자리는 승리를 뜻하는 V자 모양이어서 입시나 취업 준비생들에겐 무척 친근한 별자리다. 내겐 황소자리에 얽힌 두 가지 사연이 있다. 하나는 나 자신의 일이고, 다른 하나는 좋은 벗을 얻게 된 사연이다.

합격 기원하는 별자리

30여 년 전 내가 대입을 준비하던 무렵엔 학생들 대부분이 독서실을 다녔다. ‘4당(當) 5락(落).’ 즉 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이상 자면 떨어진다는 선생님 말씀에 매일 자정이 넘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추운 겨울밤, 주위가 모두 잠든 고요한 골목길 머리 위로 유난히 반짝이는 별무리가 눈에 들어오곤 했다. ‘좀생이별’로 알려진 별무리, 그리고 그 옆으로 보이는 V자 모양의 별들을 보면서 그 별들이 행운을 가져다줄 것이라 믿곤 했다. 그것이 황소자리라는 걸 안 것은 대학에 들어온 뒤다.

20여 년 전, 일요일 새벽마다 손석희 씨가 진행하는 아침 방송에 게스트로 출연해 별과 별자리 이야기를 하던 때다. 그 프로그램에서 황소자리 이야기를 들려주고 입시생들의 합격을 기원한 적이 있다. 당시 이 방송을 들었다는 고3 학생이 10여 년이 지나 내 앞에 나타났다. 우주인 후보로 잘 알려진 고산 씨다. 고 씨는 이소연 씨와 함께 우주인 후보로 선정돼 대전시민천문대에서 내게 이틀간 별자리 교육을 받았다. 그 인연으로 나는 그와 좋은 벗이 됐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이 별자리를 황소로 보든, 합격이나 승리의 상징으로 보든 그건 별 보는 사람의 마음이다. 별은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황소자리를 찾아주는 길잡이는 지난 호에서 얘기한 사냥꾼, 오리온자리다. 그런데 오리온이 정말 하늘에서 사냥을 하고 있을까. 무엇이든 너무 잘하면 재미가 없는 법. 오리온은 거의 모든 동물을 다 잡아봤기에 사냥에 특별히 재미를 느끼지 못했을 수 있다. 그럼 뭘 하고 있을까. 그도 나름의 취미가 있지 않을까. 당대 최고의 사냥꾼이자 용맹한 사나이 오리온의 취미로 어울리는 것은? 투우 정도라면 오리온에게 제격인 취미 아닐까. 물론 고대 그리스인들이 투우를 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오리온이 하늘에서 투우를 한다고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황소자리를 찾을 수 있다.

오리온의 오른쪽에 투우의 상대가 될 만한 황소자리가 자리한다. 이 황소는 이미 오리온의 칼에 여러 곳을 찔려 상처투성이가 됐다. 황소는 한쪽 눈을 잃고 애꾸가 됐고 등에도 큰 상처가 나서 파리들이 달라붙어 있다. 한쪽 눈이 빨갛게 충혈된 황소가 화를 못 이기고 오리온을 향해 긴 뿔을 들이밀며 돌진하지만, 오리온은 여유롭기만 하다.

밤하늘의 투우 경기

바람둥이 제우스가 희롱한 미녀들
황소자리의 V자 모양이 바로 황소의 얼굴인데, 그중 별 하나가 유난히 붉고 밝게 보인다. 이 별은 ‘알데바란’이라는 이름의 1등성으로 충혈된 황소 눈으로 볼 만하다. 황소의 등에 위치한 좀생이별은 칼에 찔린 상처로 생각할 수 있다. 아름다운 별들을 상처에 달라붙은 파리떼로 간주하는 것에 불만을 갖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늘에는 ‘파리 별자리’도 있다는 걸 알면 그리 거북하진 않으리라.

자, 이제 오리온과 황소 주변에 있는 다른 별자리도 찾아보자. 무슨 경기든 둘만 하면 재미가 없다. 관중이 있어야 투우사도 흥이 난다. 밤하늘에서 관중은 바로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쌍둥이자리다. 쌍둥이는 겁이 나는지 서로의 어깨를 꼭 잡고 오리온과 황소에서 눈을 못 떼고 있다.

투우사와 황소, 그리고 관중 말고 또 있어야 할 것은? 이 위험한 경기에서 꼭 필요한 건 구급차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에 구급차가 있을 리 만무하다. 구급차를 대신할 것은? 마차다. 오리온과 황소의 다른 쪽 옆에는 만일의 사태를 위해 마차부가 대기 중이다. 하지만 성이 난 황소는 벌써 마차부에게 한쪽 뿔을 들이밀고 있다. 치료를 해달라는 걸까, 아니면 화풀이를 하는 걸까. 그건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사냥꾼 오리온이 투우에 열중하는 동안 그의 사냥개는 뭘 하고 있을까. 주인이 논다고 사냥개도 놀 순 없는 일. 최소한의 밥벌이는 해야 할 터다. 사냥꾼 없이 사냥개 혼자 겨울 숲에서 가장 쉽게 잡을 수 있는 동물은 토끼다. 큰개자리 바로 앞에 사냥감 토끼자리가 있는 것은 참 재미있는 우연이다. 큰 개가 사냥하는 동안 작은 개도 허공을 향해 짖어보지만, 아직 훈련이 덜 된 작은 개에게 잡힐 동물은 없다. 작은 개가 짖고 있는 쪽엔 전설 속에 등장하는 유니콘을 닮은 외뿔소자리가 있다. 하지만 전설 속 동물이라 그런지 워낙 희미해서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다. 작은 개가 헛것을 본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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