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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YOND SCIENCE

특수 인공위성 레이저? UFO 작품?

‘미스터리 서클’의 정체

  • 맹성렬 | 우석대 전기전자공학과 교수 sunglyulm@gmail.com

특수 인공위성 레이저? UFO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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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물이 일정한 방향으로 누워 형성된 커다란 문양, 이른바 ‘미스터리 서클’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영국에서 발견된 서클에는 유클리드도 몰랐던 기하학 정리가 구현돼 있다.
  • 자와 각도기로는 그릴 수 없는 것들이다. 음모론자들은 초강대국의 특수 인공위성이 레이저를 발사해 서클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UFO나 외계인 관련설을 주장하는 사람도 많다. 서클 근처에서 UFO를 봤다는 목격자도 속속 나오고 있다. 진실은 뭘까.
특수 인공위성 레이저? UFO 작품?

2010년 6월 영국 월트셔에서 촬영된 미스터리 서클.

2011년 6월, 강원도 홍천과 인제를 연결하는 44번 국도를 지나던 관광객들 앞에 이상한 광경이 펼쳐졌다. 소양호변 잔디밭에 크고 작은 둥근 원들이 연결된 기하학적 무늬가 그려져 있었던 것. 이른바 ‘미스터리 서클’이었다. 대체 누가 만든 걸까. 그러나 궁금증은 시시하게 풀렸다. 이듬해 열리는 초원축제 홍보를 위해 인제군에서 작가들을 동원해 만들었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홍보 목적으로 만들어진 미스터리 서클 소동은 2008년 6월 충남 보령에서도 있었다. 가수 서태지의 신곡 홍보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미스터리 서클을 이용한 홍보 행위는 전세계적으로 많았다. 세인의 주목을 받고 싶어 하는 괴짜 예술가들이 만든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모든 미스터리 서클이 그런 건 아니다.

미스터리 서클은 식물이 일정한 방향으로 누워 형성된 커다란 원형 문양을 의미한다. 1970~80년대엔 주로 옥수수밭이나 보리밭 같은 곳에 만들어져 ‘크롭 서클(crop circle)’이라고도 불렸다. 처음 등장할 때는 한 개 또는 서너 개가 무리 지어 형성됐지만, 1990년대 이후에는 수십, 수백 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서클 군집이 등장해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런 서클은 영국의 남서부 고대 유적지가 산재한 스톤헨지, 에이브버리, 글래스톤베리 근처에서 주로 발견됐는데, 2000년대 이후에 발견된 미스터리 서클도 90%가 이곳에 집중됐다.

1991년, 영국 BBC 방송이 오래전부터 밀밭에서 원을 그리는 장난을 해왔다는 두 노인을 보도했다. 이들은 로프와 판자, 막대기 등으로 10여 년에 걸쳐 200여 개의 미스터리 서클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미스터리 서클을 만드는 장면이 BBC 뉴스를 통해 전 세계에 소개되자 많은 이가 미스터리 서클은 모두 인간이 만든 것이라고 믿게 됐다. 사람들 대부분은 회오리바람이나 플라스마 보텍스 같은 아주 드문 자연현상에 의해 만들어진 단순한 형태의 미스터리 서클을 두 노인이 복잡한 형태로 만들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들도 이 장난에 합세했다고 믿었다. 언뜻 듣기엔 아주 논리적인 설명 같았다.

기하학 정리의 구현

미국 보스턴대 천문학과 석좌교수 제럴드 호킨스 박사는 ‘천문고고학’ 분야의 선구자였다. 그는 스톤헨지가 고대의 천체 운행 계산기였다는 사실을 밝혀내 유명해졌다. 그는 스톤헨지 연구를 위해 영국 남서부를 자주 방문하다가 그 인근에 발생하는 미스터리 서클에 관심을 갖고 면밀한 조사를 벌였다. 그 과정에서 서양 음악의 온음계와 관련된 비율들이 미스터리 서클에 반영돼 있다는 것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

처음에 그는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했던 두 노인이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자신들이 만든 미스터리 서클에 이를 암호화한 게 아닌지 의심했다. 그래서 그들과 접촉하기도 했다. 그러나 음계와 관련된 미스터리 서클은 그들의 소행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노인들이 장난 삼아 만들었다고 하기엔 미스터리 서클이 너무나 정교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클을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호킨스 박사는 음대생들이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이들 미스터리 서클 수준의 지적 유희를 구현하려면 음악뿐 아니라 유클리드 기하학에도 정통해야 했는데, 음대생들에게선 그런 재능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유클리드는 기원전 300년경에 활약한 그리스의 수학자이며 자신의 이름을 딴 평면기하학의 집성자다.

게다가 서클에는 유클리드가 자신의 대표작 ‘기하학 원본’에도 기록하지 않은 기하학 정리가 구현돼 있었다. 그 정리들은 동심원과 그에 접한 도형들에 관한 것이었고, 그 도형들의 길이에는 온음계에서 나타나는 특정한 비율이 적용돼 있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유클리드의 기하학 정리 중에는 온음계와 관련된 것이 없다.

호킨스 박사는 유클리드가 활동한 기원전 300년경에 온음계의 모든 것이 알려지지 않았기에 유클리드가 정리할 수 없었던 미지의 공식들이 그 서클에 구현돼 있음을 알고 경악했다. 유클리드도 몰랐고 오늘날의 수학자들도 깨닫지 못한 유클리드 기하학의 불완전한 부분을 누군지 모를 수학 천재가 미스터리 서클에 구현한 것이다.

그의 발견은 놀라운 것이었지만 동시에 서클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강력한 증거이기도 했다. 자신을 내세우기 싫어하는 뛰어난 능력의 괴짜 수학자가 미스터리 서클을 활용해 자신의 발견을 세상에 알린 것이리라, 호킨스 박사는 그렇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에 나타난 서클 현상은 이런 판단을 무색게 했다. 프랙탈(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 되는 구조)이라는 비(非)유클리드 기하학을 반영한 문양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1991년 영국 케임브리지셔에서 ‘만델브로트 세트(Mandelbrot set)’라 불리는 프랙탈형 서클이 처음 발견됐다. 그전까지 발견된 서클의 모양은 아무리 복잡해도 전형적인 유클리드 기하학을 반영하고 있었다. 자와 각도기, 그리고 컴퍼스로 그릴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런 미스터리 서클은 매스컴에 등장한 두 노인처럼 널빤지, 막대기, 로프만 있으면 밀밭에 그릴 수 있었다.

하지만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속하는 만델브로트 세트는 전혀 딴판이었다. 이런 모양은 자와 컴퍼스만으로는 그릴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밀밭에 그 모양을 아주 정확하게 그려놓은 것이다. 당장 인근 케임브리지대 수리물리학과 학생들이 용의자로 떠올랐다. 그러나 피터 란데쇼프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이런 혐의를 일축했다. 컴퓨터와 프린터 이외의 다른 어떤 도구로도 만델브로트 세트를 그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종이가 아닌 넓은 들판에 이를 구현한 것은 기막힌 일이었다. 케임브리지대에서 카오스 이론을 전공하는 이론 수학자들은 만델브로트 세트를 만드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영국 과학학술지 ‘뉴 사이언티스트’는 세상에서 가장 수학적인 장난꾼들이 수학에서 가장 복잡한 형태인 만델브로트 세트를 서클로 구현한 사실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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