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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YOND SCIENCE

‘죽은 자의 영혼’과 ‘우주 의식 저수지’ 사이

다윈과 퀴리 부인은 왜 영매술에 빠졌을까

  • 맹성렬 | 우석대 전기전자공학과 교수 sunglyulm@gmail.com

‘죽은 자의 영혼’과 ‘우주 의식 저수지’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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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년의 다윈은 아들, 조카를 데리고 강령회에 참석했다. 다윈보다 먼저 진화론에 대한 논문을 쓴 월러스는 영매술을 옹호하다 따돌림을 당했다. 두 번이나 노벨상을 받은 퀴리 부인은 영매술을 통해 죽은 남편과 만남을 시도했다.
  • 퀴리 부부의 친구였던 화가 뭉크, 작가 코넌 도일, 전화를 발명한 그레이엄 벨도 여러 차례 강령회에 참석했다. 이들은 왜 영매술에 집착했을까.
‘죽은 자의 영혼’과 ‘우주 의식 저수지’ 사이

영매의 도움으로 영혼의 만남을 시도한다는 내용이 담긴 연극 ‘달은 오늘도 날 내려다본다’.

진화론으로 유명한 찰스 다윈은 한때 영매술(靈媒術)에 관심을 가졌다. 영매술은 영매의 매개로 신령이나 망령을 불러내고 죽은 자와 산 자가 의사 소통을 하는 것. 다윈은 65세이던 1874년 아들, 두 조카와 함께 강령회(降靈會)에 참석했다.

다윈은 최면술이나 투시와 같은 것을 믿지 않았으며, 오랫동안 심령현상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1870년대에 접어들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평소 알고 지내던 런던대학의 물리학자 윌리엄 크룩스가 영매술을 과학적으로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 계기였다. 다윈의 조카 프란시스 갈턴은 1872년부터 크룩스와 함께 강령회에 참석했고, 자신의 체험담을 다윈에게 들려줬다.

연로했던 다윈은 강령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자리를 떴으나 두 조카는 끝까지 참석했고, 갈턴은 다윈에게 강령회의 내용을 상세하게 기술한 편지를 보냈다. 갈턴은 “강령회는 생생한 진짜 체험이었다”고 적었다. 다윈은 동료 토머스 헉슬리에게 영매에 대해 조사해달라고 부탁했다. 노령의 자신이 직접 새로운 분야에 대한 연구를 벌일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헉슬리는 다윈의 아들과 함께 그 영매의 강령회에 참석했고 ‘눈속임을 하는 것 같다’는 부정적인 보고서를 다윈에게 보냈다. 그후 다윈은 영매술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됐다.

다윈, 헉슬리, 월러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 소설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의 작가 올더스 헉슬리가 바로 토머스 헉슬리의 손자라는 점이다. ‘멋진 신세계’는 심령소설이자 미래소설로 유명한 작품이다.

토머스 헉슬리는 다윈의 부탁을 받기 훨씬 전부터 영매술을 의심하고 있었다. 당시 이미 여러 차례 강령회에 참석했으며, 영매가 사람들의 심리를 읽고 눈속임을 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는 박물학자 알프레드 월러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솔직히 나는 영매술에 관심이 없다. 현재 엄청나게 중요한 5~6가지 연구에 매달리고 있어서 좋아하는 체스게임도 포기한 상태다. 영매술 조사를 하기 힘들다”고 썼다. 영매술은 연구할 만한 가치가 전혀 없다고 봤던 그가 정말 영매술에 대해 객관적인 조사를 했는지는 의심스럽다. 그의 선입관은 너무나 완고했다.

월러스는 다윈보다 먼저 진화론에 대한 논문을 써서 발표하려고 했던 사람이다. 월러스는 논문을 학회에 제출하기에 앞서 다윈에게 초고를 보냈는데, 다윈은 이 논문을 읽고 경악했다고 한다. 자신이 오랜 기간 연구해서 틀을 잡아놓은 ‘진화론’과 너무나 유사했기 때문이다. 그 무렵 다윈은 진화론에 대한 많은 증거를 수집해서 상당히 완성도 높은 이론을 정립하고 있었지만, 그 내용이 너무나도 혁신적이라 보수적 학자들과 종교계로부터 받을 공격을 염려해 발표를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이 신진 학자가 자신의 이론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논문을 발표하려 하니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다윈은 학회의 영향력 있는 동료들에게 부탁해 월러스의 논문에 자신을 공저자로 올리도록 종용했다. 마음씨 좋고 평소 다윈을 존경하고 있던 월러스는 오히려 영광이라며 제의를 선뜻 받아들였다.

이렇듯 진화론의 선구자였던 월러스가 이후 사람들의 기억에서 까맣게 잊힌 것은 그가 심령주의를 옹호하며 영매들을 적극 변호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는 말년에 학계에서 철저히 배척당했고 연금 수혜 자격까지 박탈당할 위기에 처했다. 그런 그를 도와 연금을 받게 해준 사람이 다윈이었다. 다윈은 이로써 자신의 학문적 부채를 조금이라도 갚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1906년 프랑스 파리 심리학연구소의 세미나실에 한 명의 피실험자를 앞에 두고 몇몇 사람이 은밀한 실험을 하고 있었다. 피실험자는 당대의 유명한 영매였기에 그 모임은 강령회나 다름없었다. 실험을 주도한 인물은 1913년 과민증에 관한 연구로 노벨상을 받는 생리학자 샤를 르세. 그는 영매 옆에 바싹 붙어 앉아 그녀의 오른손을 꼭 잡은 채 테이블에 올려놓았고, 다른 한편에는 한 여성이 영매의 왼손을 잡고 테이블에 올려놓게 했다.

靈媒 손 잡은 퀴리 부인

19~20세기 초에 영매술은 유럽 귀족들의 파티에 빠지지 않는 여흥거리로 비싼 참관료를 받고 여러 사람 앞에서 시연됐다. 하지만 이날의 시연은 몇 달 전 남편을 여읜 어느 부인을 위해 마련된 특별한 자리였다. 그 부인은 방사능 연구로 1903년 남편과 함께 노벨물리학상을 받았고 1911년에는 노벨화학상까지 받은 마리 퀴리였다.

시연이 시작되기 전 보조자로 참석한 파리 일반심리학연구소의 비서가 이중 커튼을 영매 뒤쪽에 설치했다. 강령회가 시작되자 커튼 뒤쪽에서 어떤 물체가 밀치는 듯 커튼이 부풀었고, 트랜스 상태(일종의 최면 상태)에 빠진 영매가 그것을 만져보라고 해 샤를 르세가 만져보니 누군가의 손이었다. 그는 퀴리 부인이 영매의 손을 잡고 있는지 확인했고, 자신도 그녀의 손을 잡고 있음을 확인했다. 약 30초 동안 커튼 뒤의 손을 잡고 있던 르세는 손가락에 반지가 끼워져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고, 그 순간 손가락에 끼워진 둥근 반지가 느껴져 깜짝 놀랐다. 너무나 객관적이고 생생한 체험이어서 그는 “이보다 더 확실한 실험을 생각해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기록에는 퀴리 부인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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