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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 요구 자충수

그래서 북한은 ‘국가’인가 ‘반국가단체’인가

  •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文정부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 요구 자충수

  • ● ‘평양공동선언’ 대통령 셀프 비준은 전형적 이중 잣대
    ● 한국당 ‘남북 군사분야합의서’ 국회 비준 요구도 난센스
    ● 靑 “헌법상 북한은 국가가 아니다”…반국가단체 규정 모순
    ● 1991년 南北 ‘통일 지향해가는 특수관계’ 합의
9월 19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 정상회담 후 서명한 평양공동선언을 펼쳐보이고 있다. [동아DB]

9월 19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 정상회담 후 서명한 평양공동선언을 펼쳐보이고 있다. [동아DB]

문재인 정부는 4·27 판문점선언이 여야 합의로 국회 비준동의를 받아야 영속적이고 구속력 있는 대북정책을 추진할 수 있으며 향후 남북 정상회담 합의를 추진하는 데 훨씬 강력한 힘을 갖게 된다고 보는 듯하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장으로서 10·4 정상선언이 이명박 정부에서 무력화되는 것을 지켜본 문재인 대통령으로서는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동의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미 자서전에서도 ‘남북 정상 간 합의는 국회 비준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동의는 단순히 정상회담 합의에 힘을 실어준다는 정치적 의미로만 해석될 수 없다.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그리고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방향에 힘을 실어주는 의미라면 굳이 비준동의가 아닌 여야 만장일치의 국회결의안을 추진해도 될 일이다. 

야당에서 판문점선언이 비준동의 대상이 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비준동의 대상이 되려면 ‘남북관계발전법’에 따라 선언의 내용이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발생시키거나 입법 사항에 해당돼야 한다. 그러나 법학자 대부분이 동의하듯 판문점선언은 남북 정상이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 및 비핵화에 합의하고 상호 노력하기로 한다는,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원칙과 방향을 합의한 신사협정 성격이 강하다.


비준동의 반대하면 평화 반대 세력?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을 요구하며 여야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11월 1일 국회에서 문 대통령이 연설하고 있다. [동아DB]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을 요구하며 여야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11월 1일 국회에서 문 대통령이 연설하고 있다. [동아DB]

판문점선언 일부 내용인 ‘10·4 선언 합의사항 적극 추진과 경의선 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대책 마련’ 등이 막대한 재정적 비용이 필요한 사업이라는 법제처 주장은 판문점선언 자체의 핵심 성격에도 부합하지 않고 통상적으로 국회 비준 동의에 필요한 구체적 재정추계에도 미흡하다. 비준동의의 대표적 사례인 한미 FTA 협정이나 방위비분담금 협정 등은 매우 구체적이고 세세한 항목과 내용이 포함돼 있고 실제로 상세한 재정 소요와 직접 연관돼 있다. 상식 수준에서 그 누구도 판문점선언이 FTA나 방위비분담금처럼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2007년 10·4 공동선언이 야당의 정치적 반대로 국회 비준이 안 된 측면이 있지만, 당시 대북정책을 둘러싼 남남갈등 와중에 정상회담 합의가 논란이 됐던 것이지 그 내용이 국회 비준동의 대상인지는 진지하게 논의되지 않았다. 결국 10·4의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문 대통령이 4·27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동의를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이라면, 여야 합의의 정치적 지지를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접근했어야 한다.

비준동의 대상이 되려면 구체성의 원칙 외에 상호성의 원칙도 충족해야 한다. 즉 합의 상대방도 상호성에 따라 합의 이행을 위한 비준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판문점선언에 포함된 ‘완전한 비핵화’ 내용에 따라 북한 김정은이 이를 이행하기 위한 구체적 실천 행위에 대해 비준동의를 했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문재인 정부가 비준동의를 거부하는 야당을 비난했다는 뉴스는 있어도 판문점선언 비준 노력을 하지 않는 북한을 비판했다는 뉴스는 없다.

결국 판문점선언은 구체성과 상호성의 원칙에서 볼 때 국회 비준동의 대상이 아니며, 굳이 남북 정상 간 합의에 정치적 힘을 실어주기 위한 목적이라면 여야 합의로 국회 결의를 추진해야 합당한 방식이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평양 정상회담 직전에 국회에 비준동의를 공식 요청했고 비준동의 대상이 아니라는 야당을 마치 정상회담 반대 세력이라는 이미지로 압박했다.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추상적 대명제를 마치 국회 비준동의와 동일한 의미로 해석하게 해놓고 비준동의를 반대하면 평화 반대 세력이 되는 정치적 구도가 짜인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비준 논란이 정치적 의도로 해석될 수 있음은 9월 평양 정상회담 이후에 보다 분명히 드러났다. 모(母)선언이라 할 수 있는 판문점선언이 국회 계류 중인 상황에서 후속이행합의 성격을 담은 평양공동선언과 군사분야합의서를 국회 동의 없이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후 대통령이 독자 서명함으로써 비준을 완료한 것이다. 이는 전형적인 이중 잣대를 들이댄 행동이다. 논리의 일관성이라도 유지하려면 판문점선언 비준동의 요청을 철회하고 대통령이 비준하거나, 아니면 판문점선언 비준동의 문제가 정리될 때까지 평양선언 비준을 미뤘어야 했다.


전형적인 이중잣대

평양선언을 비준한 정부 해명은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법제처 해석은 지금 판문점선언 비준동의를 요청해놓은 상태이므로 평양선언은 판문점선언의 후속 합의인 만큼 별도의 비준이 필요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판문점선언이 끝내 국회 비준동의를 받지 못하면 그때 다시 평양선언의 비준동의를 요구할 것인지, 아니면 국회가 언젠가는 판문점선언을 비준동의할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무책임한 논리가 아닐 수 없다.

청와대와 여당의 설명은 더 궁색하다. 판문점선언은 막대한 재정이 소요되는 합의인 데 비해 평양선언은 그 정도 예산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국회비준 동의가 필요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4·27 판문점선언 후속 합의가 바로 9·19 평양선언임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동일한 성격의 합의문을 하나는 비준동의가 꼭 필요하고 다른 하나는 비준동의가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스스로 논리적 모순을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판문점선언이 국회에 계류된 상황에서 후속 합의인 평양선언을 서둘러 대통령이 비준한 것은 논리도 부족하고 일관성도 결여돼 있다. 이렇게 앞뒤도 맞지 않는 무리한 절차를 강행하는 것은 남북 정상회담 합의를 무리해서라도 밀어붙이겠다는 정치적 의지로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대북정책 추진에 정치적 동력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불필요한 정치적 반발과 저항을 불러일으켜 대북정책 추진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


통일을 지향해가는 특수관계

실제 평양공동선언의 무리한 비준 재가는 문재인 정부에 정치적 부작용을 가져왔다. 군사분야합의서를 대통령이 비준한 것에 대해 한국당이 국가 안보에 관한 중요한 조약이라는 이유를 들어 헌법 60조에 따라 국회 비준을 요구하고 나서자, 청와대가 부적절한 대응을 하면서 스스로 자가당착의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사실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을 정면으로 거부한 한국당이 남북한 군사분야합의서에 대해 국회 비준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군사분야합의서를 안보에 관한 조약으로 규정하고 국회 동의를 받으라는 주장은 애초부터 남북 간 합의의 성격에 무지한 결과다. 일반적으로 헌법 60조의 국회 동의를 요하는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은 새로운 동맹의 체결이나 평화협정 같은 현상변경적 합의, 군대의 파견이나 주둔 같은 중차대한 안보상의 합의를 의미한다. 그래서 이라크 파병 결정이나 소파협정 등의 경우 국회 동의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남북한 군사분야합의서는 그런 성격의 안보상 조약이 아니다. 남북의 군사적 신뢰 구축과 초보 단계의 군비통제 내용을 합의한 것이고, 기존에도 1992년 불가침 부속합의서나 2004년 장성급회담 합의 등 유사한 내용의 군사분야합의서들이 국회 동의 없이 체결 이행돼왔다.

그럼에도 한국당의 부적절한 비준 요구에 대해 청와대 대변인은 뜬금없는 대응 논리로 자기 발목을 잡고 말았다. 한국당 주장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국가간 조약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 ‘헌법상 북한은 국가가 아니다’라는 일차원적인 논리로 대응한 것이다. 이로써 스스로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동의를 요구해놓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 인식을 헷갈리게 하는 정치적 후폭풍에 노출되고 말았다. 문 대통령 스스로 자서전에서 남북 정상 간 합의는 사실상 ‘국가 간 조약의 성격’이므로 국회 비준동의를 받자고 했는데, 청와대 대변인은 헌법상 영토조항을 들어 북한은 국가가 아니라고 확인함으로써 북한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규정하는 지에 대해 자기모순에 빠지고 만 셈이다.

그러면 북한은 우리에게 ‘국가’인가 아닌가. 이미 남북한은 1991년 기본합의서 체결을 통해 남북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해가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규정해놓았다. 이 정신에 따라 2005년 제정된 남북관계발전법에서 남북의 합의는 국가 간 조약이 아니므로 별도의 입법을 통해 합의사항에 법적 효력을 부여하도록 했다. 한국당이 제기한 ‘군사분야합의서’의 국회 동의에 대해서는 이른바 ‘남북한 특수관계론’으로 간단하고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음에도 청와대 대변인이 난데없는 헌법상 영토 조항을 들먹이며 북한이 국가가 아님을 강조함으로써 문재인 정부는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 혼란까지 자초한 셈이다. 헌법상 영토조항에 의해 북한을 국가가 아니라고 규정하는 것은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 국가보안법의 정당성으로 귀결된다. 야당의 주장에 귀 기울이기보다 과도한 정치적 반박에만 집중하려다 결과적으로 자가당착의 결과만 초래한 것이다.


정치적 자충수

판문점선언은 기를 쓰며 국회 비준동의를 야당에 요구해놓고, 그 후속 합의인 평양선언은 서둘러 대통령이 스스로 비준을 재가하는 모습을 보며 과연 문재인 정부가 대북정책에 대한 초당적 협력을 진정으로 원하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자기가 편한 대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이중 잣대로 야당을 평화 반대 세력으로 몰아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법적으로 무리수인 판문점선언 비준동의 요구를 지금이라도 철회하고 야당의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열린 소통의 자세가 우선 전제돼야 대북정책에 대한 초당적 협력도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대북정책과 남북관계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는 것은 이제 먹히지도 않고 성공하지도 못한다. 오히려 정치적 자충수가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신동아 2018년 12월 호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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