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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평택기지 이전 임박

민주당의 사드 반대는 자가당착

  • 이정훈 기획위원 | hoon@donga,com

민주당의 사드 반대는 자가당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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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노무현 정부, 국회 비준 받아 9조 원짜리 최신 기지 건설
  • ● ‘자주’ 앞세우다 돈도, 병력도 손해본 한국
  • ● 평택기지로 ‘전략적 유연성’ 확보한 미국의 셈법
  • ● 기지 방어에 꼭 필요한 사드, 미군 절대 양보 안 해
민주당의 사드 반대는 자가당착

미국을 방문 중인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앞줄 왼쪽)이 1월 9일(현지 시각) 워싱턴에서 마이클 플린 미국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는 북한이 쏜 탄도미사일을 막는 무기다. 사드 한국 배치에 대해 위협의 주체인 북한은 가만히 있는데 상관도 없는 중국이 반대하고 있다. 사드 배치 지역으로 고시된 경북 성주 주민들의 반발도 드세다. 그래서인지 일부 야당 의원들도 반대한다. 눈에 띄는 것은 당론을 정하지 않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일부 의원들의 행동이다.

2016년 8월 민주당 초선 의원 6명이 사드 한국 배치 문제를 논의하겠다며 중국을 방문해 파문을 일으켰다. 사드 배치는 한국과 미국 간 문제인데 왜 제3자인 중국에 달려가 논의하느냐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그들이 돌아오는 날 보수 세력은 ‘병신 6적’이란 글귀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했다.

1951년 1월 4일, 중공군의 참전으로 후퇴하던 국군과 유엔군은 다시 수도 서울을 빼앗겼다. 1·4후퇴 66주년인 올해 1월 4일 민주당 의원 8명이 같은 문제를 들고 또 중국을 방문했다. 중국은 왕이(王毅) 외교부장을 내세워 이들을 환대했다. 올해는 정유년이다. 이 때문에 이들이 돌아오자 ‘정유재란을 자초하느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3無론과 국방부의 속내

사드는 한국과 미국이 배치하기로 합의한 것이니 한미관계를 토대로 살펴봐야 한다. 사드는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 먼저 배치하자고 한 무기다. 2014년 6월 스캐로퍼티 한미연합사령관은 한국국방연구원 주최 조찬에서 처음으로 사드 한국 배치를 언급했다. 한국의 안보 책임자들은 이 주장을 반겼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국방부는 ‘3무(無)론’으로 나갔다. 미국이 한국에 사드 배치를 요청한 적이 없으니, 협의한 것도 없고, 결정된 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주한미군에 배치된다면 좋다”는 속내는 내비쳤다.

사드 배치는 간접적으로는 2015년 중국의 전승절, 직접적으로는 2016년 북한이 한 4차 핵실험과 관계가 있다. 근원을 따져 좀 더 올라가면 노무현 정부가 결정한 평택 주한미군 기지 건설과 연결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석부터 복기(復碁)해보자.

2015년 8월  북한은 우리 1사단 지역의 DMZ(비무장지대)에 목함지뢰를 매설해 1사단 수색대 장병 2명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목함지뢰 사태가 심각해진 가운데 북한이 고사총을 쏜 사실도 확인되자 박 대통령은 26사단 포병연대로 하여금 K-55 자주포를 북한 측 DMZ의 한 지점으로 일제사격하게 했다. 이에 북한이 회담을 제의해 김관진+홍용표 대 황병서+김양건의 2+2회담이 열리자, 북한은 유감을 표시했다. 박 대통령은 이를 승리로 판단한 듯 국내외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국 전승절에 참석하러 공군 1호기에 올랐다.

시진핑 중국 주석,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톈안먼 망루에 선 ‘유일한 서방세계 지도자’ 박 대통령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 망루 밑에는 박 대통령을 수행한 중장을 대표로 한 한국군 사절단도 있었다. 전승절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날 공군 1호기를 탄 박 대통령은 기자단 좌석으로 찾아와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해 중국과 같이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가능한 한 조속한 시일 내에 어떻게 평화통일을 이뤄나갈 것인지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시작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다음 날(9월 5일) 국내 언론은 일제히 대통령의 이 말을 1면 톱으로 전했다. 중국이 미국을 대신해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보장해줄 것이란 인식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해 연말 국방부는 중국과 군사 핫라인을 정식으로 개통했다. 군사 핫라인은 군사동맹 다음으로 중요한 군사 협조로 이해된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몰랐다. 남북한은 관계가 좋았던 2004년 군사 핫라인을 개설했으나 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 후 북한에 의해 일방적으로 폐쇄됐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은 김정일과 2차 남북정상회담을 가졌는데 당시 김만복 국정원장은 이 회담 전 남북한 군사 핫라인으로 의제 등을 사전에 논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외교부 장관을 한 송민순 씨는 지난해 펴낸 회고록에서 2007년 유엔이 북한 인권결의안을 채택할 때 기권한 경위를 공개한 바 있는데, 기권하기 전 북한 측에 의사를 물어본 것도 바로 이 핫라인을 통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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