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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고 고단한 백성들’의 대변자

국선변호인의 세계

  • 정혜진 | 수원지방법원 국선전담변호사 itsmehyejin@hanmail.net

‘외롭고 고단한 백성들’의 대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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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젠가부터 드라마나 영화에
  • 국선변호인이 종종 등장해 일반인의
  • 호기심을 자아낸다. 한편으로
  • ‘국선(國選)’이라는 수식어에선
  • 왠지 형식적 변호인일 것 같은
  • 선입관도 든다. 기자 출신
  • 국선전담변호사가
  • 말하는 그들만의 보람과 애환.
‘외롭고 고단한 백성들’의  대변자

소녀시대 멤버 유리가 국선전담변호사로 분한 SBS 드라마 ‘피고인.’ [사진제공·SBS]

국선전담변호사라는 직업이 어느샌가 일반인에게도 낯설지 않게 됐다. 2013년 SBS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배우 이보영이 장혜성 역으로 연기한 이후로 어디 가서 “국선전담변호사입니다”라고 하면 “아 알아요, ‘너목들’에 나오는 국선전담변호사” 하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은 “아, 소녀시대 유리가 하는 일 맞죠?”라고 한다. 1월 23일부터 방영 중인 SBS 드라마 ‘피고인’에서 걸그룹 소녀시대 멤버 유리가 연기하는 서은혜 변호사도 바로 국선전담변호사다.

형사재판에서 변호인이 꼭 필요한 사건(피고인이 구속돼 있거나, 미성년자 혹은 70세 이상이거나, 농아자 또는 심신장애의 의심이 있는 등의 경우) 혹은 변호인이 꼭 필요한 사건이 아니더라도 변호인이 있어야 충분한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건에서 피고인이 변호인을 선임할 경제적 능력이 되지 않을 때 국가에서 피고인에게 변호인을 붙여준다. 그런 변호인을 국선변호인이라고 한다. 국선변호인 중엔 국선전담변호사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일반 국선변호인도 있다.

국선전담변호사는 국선 사건만 전담하도록 각급 법원이 위촉하는 변호사다. 위촉 기간에는 원칙적으로 일반 사건을 수임할 수 없다. 반면 일반 국선변호인은 다른 사건도 수임하는 보통의 변호사가 국선 사건도 하는 경우인데, 소속 지방변호사회를 통해 국선변호사 예정자 명부에 등록해 당번처럼 국선 사건을 배당받아 수행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국선전담변호사는 수행하는 사건 수에 관계없이(그러나 적정 건수가 정해져 있긴 하다) 일정 금액을 법원에서 월급으로 받는 반면(그렇지만 공무원은 아니다), 일반 국선변호인은 자기 사건을 하면서 국선 사건당 소정의 금액을 받는다.

국선전담 vs 일반 국선

‘피고인’에서 딸과 아내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사형수가 된 검사 박정우(지성 분)를 돕는 서은혜 변호사(유리 분)가 일반 변호사로서의 국선변호인이 아니라 국선전담변호사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서 변호사가 재위촉에서 탈락할 위기에 처했다는 설정 때문이다. 국선전담변호사로 선발되면 각급 법원에선 그들을 2년 계약직으로 위촉하고, 계약이 끝난 후 다시 계약을 2년 연장할 수 있는데 이를 ‘재위촉’이라고 한다.

매년 법원에서 국선전담변호사에 대한 평가를 해서 변론이 불성실했다든지 국선전담변호사로서 품위를 잃은 행동을 했다든지 등의 이유로 평가가 좋지 않으면 재위촉 심사에서 탈락한다. 재위촉은 두 번 할 수 있고, 그래서 총 6년(2년+2년+2년)을 국선전담변호사로 일할 수 있다. 반면 일반 국선변호인은 개별 국선 사건을 맡는 것에 불과하기에 ‘위촉’이라는 게 없다.

한편 드라마에서 서 변호사가 재위촉 심사에서 탈락할 위기에 처한 건 변론이 불성실해서가 아니라 되레 그 반대였기 때문으로 그려진다. 열정과 정의감이 넘치다 못해 좌충우돌하는 캐릭터인 서 변호사는 억울해하는 피고인을 위해 검사실에 몰래 들어가 자료를 훔치기도 하고, 단순 절도사건을 5시간째 변론하기도 한다. 서 변호사가 맡은 사건을 진행하는 재판장들은 그가 필요 이상으로 증인을 신청하는 등 재판 진행을 방해한다고 여겨 나쁜 평가를 한다. 그러다 어떤 변호사도 맡지 않으려는 박정우의 국선변호인을 맡게 되면서 재위촉 심사를 간신히 통과한다는 게 드라마의 설정이다.  

일반인에겐 그럴듯해 보일 수 있으나 현직 국선전담변호사가 보기엔 현실과 동떨어진 면이 적지 않다. 가장 거슬리는 부분은 서 변호사가 피고인 박정우로부터 변호사 선임계를 받는다는 설정이다. 박정우는 처음엔 서 변호사가 가져온 변호사 선임계에 서명하길 거부하다 서 변호사의 끈질긴 설득에 결국 마음의 문을 열고 자기 사건을 맡긴다. 이런 설정이 현실과 맞지 않는 이유는 국선변호인은 선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변호사에게 자기 사건을 맡기는 것을 변호사 ‘선임(選任)’이라고 하는데, 선임은 개인이 원해서 선택한 사선(私選)변호인에게 해당되는 말일 뿐이다. 국선변호인은 선임할 수 없고, 선정(選定)될 뿐이다.

피고인이 자기가 원하는 변호사를 국선변호인으로 선정해달라고 요구할 순 있지만 법원은 재판부 사정에 따라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아도 되고, 현실적으로는 피고인의 국선변호인 선택권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설령 자신이 원하는 변호사를 법원이 국선변호인으로 선정해준다 해도 그것은 선정이지 선임은 아니다.

국선변호인에겐 피고인 선택권이 아예 없다. 피고인을 만나보고 그 사건을 맡을지 말지를 결정할 수 없고, 견해와 소신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임하는 등의 권한이 사실상 제약된다(피고인이 국선변호인을 모욕하거나 해서 신뢰관계가 깨진 경우 등 극히 예외적으로 선정 취소를 요청할 수 있다). 그래서 국선변호인에겐 의뢰인이란 게 없다. ‘피고인’에서 박정우가 검사 시절 서 변호사에게 “서 변호사가 왜 만날 지는지 알아요? 바로 의뢰인 말을 믿기 때문이죠”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 대사도 현실과 맞지 않는 셈이다.

‘선임’과 ‘선정’

이처럼 쌍방 의사가 전혀 개입되지 않은 채 만나는 국선변호인과 피고인의 관계에선 일반 사선변호인과 피고인의 관계(그 관계에선 피고인 측이 변호인을 선택할 수 있다)에서보다 신뢰가 덜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서로의 의사가 배제된 관계라는 틀이 오히려 법률전문가로서의 전문성과 객관성을 담보하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수임료를 받지 않기에 국선변호인은 피고인에게 전적으로 법률전문가의 지위에서 사건에 대해 자유롭게 전문가다운 의견을 표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변호사 중에 검사 전관 변호사 밑에서 고용 변호사로 10년 정도 일하다 국선전담변호사가 된 분이 있는데, 그분이 “국선전담변호사가 돼보니 이제야 정말 변호사가 된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요즘 인기가 높아진다고는 하지만(2016년 국선전담변호사 선발 경쟁률은 10대 1에 달했다), 국선전담변호사는 형사사건만 하는 단점을 지녀 변호사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지는 않기에 나는 그분의 말이 의아하게 들렸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니, 사선변호인으로 일할 때는 수임료를 받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유죄가 확실해 보이는 사건이라도 자백을 권유하기 어렵고 피고인이 원하는 대로 재판 진행을 해야 했는데, 국선전담변호사는 법률전문가로서 냉정하게 수사기록을 평가한 의견을 피고인에게 얘기해주고 그 의견을 토대로 재판 진행에 관해 논의할 수 있어서 좋다는 것이었다. 의뢰인 처지에서 변호사란 한편으로는 ‘내게 없는 전문성을 지니고 내 일을 해주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내 돈을 받고 내 일을 해주는 사람’이기도 한데, 전자보다 후자의 지위가 더 높은 경우가 많은 최근 변호사업계의 안타까운 현실을 보면 그분의 말이 전혀 과장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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