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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정보기관 김한솔 망명에 개입한 듯”

‘천리마 민방위’ 미스터리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美 정보기관 김한솔 망명에 개입한 듯”

  • ● 김정남 피살 23일 만에 나타나
  • ● “피신한 게 아니라 자유세계로 망명”
  • ● “천리마 민방위는 급조한 위장 명칭”
“美 정보기관 김한솔 망명에 개입한 듯”

김한솔 [뉴시스]

검은색 점퍼를 입은 청년이 영어로 “내 이름은 김한솔이다. 북한 출신이며, 김씨 가족의 일원(part of the Kim family)”이라고 소개했다. 그러고는 여권을 카메라 렌즈 가까이 가져가며 신원을 확인했으나 영상 제작자는 여권의 세부 내용을 검은색으로 처리해 보이지 않게 했다.

2월 13일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된 김일성의 장손(長孫)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이 3월 8일 유튜브 영상에 등장했다. 국가정보원은 “유튜브상의 김한솔은 본인이 맞다”고 확인했다. 김한솔은 “내 아버지는 며칠 전 살해당했고, 나는 지금 어머니·여동생과 함께 있다”고 영상에서 말했다. 그러곤 피신을 도와준 대상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cheollima는 한국式 표기법

제작자는 40초 분량의 영상에서 김한솔이 감사 대상을 말하는 장면을 묵음으로 처리하면서 입 모양에도 검은 칠을 했다. 김한솔 피신을 도운 이들은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들을 천리마 민방위(Cheollima Civil Defense)라고 소개했다.

이 단체는 “긴급한 시기에 한 가족의 인도적 대피를 후원한 네덜란드 정부와 중국 정부, 미국 정부와 한 무명의 정부에 감사를 표합니다. 또한 북조선 체계 안에서 지원하는 동료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라고도 적었다.

전직 정보 고위 관계자는 “아버지가 살해된 것을 담담하게 말하다가 마지막에 멋쩍게 웃은 것을 보면 김한솔의 뜻이 아니라 천리마 민방위의 요구로 이 영상이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조직 혹은 기관이 북한 관료 망명 유인 등 공작 목적으로 영상을 제작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천리마를 한국의 표기법인 cheollima라고 적은 점도 주목된다. 북한식 표기법은 chollima”라고 덧붙였다.

천리마 민방위는 홈페이지를 통해 “탈출을 원하시거나 정보를 나누고 싶은 분은 우리가 지켜 드리겠습니다. 어느 나라에 계시던지 가능합니다. 가시고 싶은 곳으로 안전히 보내드리겠습니다. 여러 북조선 사람을 벌써 도와온 우리는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습니다”라고 밝히고는 북한 고위 간부가 썼다는 편지를 공개했다.



북조선 사람들에게.

북조선 사람들이 외국에 나오면 가장 먼저 생각하는 단어가 탈출입니다. 누구보다 당성이 높다는 대사들이나 가끔 외국 파견 대표단들을 점검하기 위해 나오는 검열단 간부들도 탈출심리는 똑같습니다. 그만큼 북조선의 당 조직생활 감옥에 갇혀본 삶이라면 그 어떤 고위급이라도 자신이 노예나 다름없다는 공통된 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가족과 함께 나오는 출장자들의 경우 본국으로의 소환명령은 죽음으로의 소환강요처럼 끔직해합니다. 그렇듯 외국이란 탈출의 끝이 무한정 열려있지만 길이 없는 풍랑 사나운 망망대해와 마찬가지입니다.

저에게 당신들의 손길은 그 망망대해의 등대와 같았습니다. 처음 저에게 연락이 왔을 때 저는 솔직히 많은 의심을 했었습니다. 단체 이름도, 업적도 전혀 알려지지 않았고, 또 굳이 알 필요도 없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형체가 없는 신비한 그림자 같은 존재였습니다. 저의 개인 손전화 번호를 안 것부터 탈출 과정에 신속하게 동원시켰던 고급 승용차, 비행기까지 당신들의 열정과 빈틈없는 준비는 매우 놀라웠습니다. 죽음의 끝까지 예감했던 아득한 탈출 악몽이 단 몇 시간 만에 이루어진 것은 실로 나의 기적이기 전에 당신들의 기적이고 은혜였습니다.

지금 이 순간, 저는 무슨 말로 당신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해야 할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평생 수령과 노동당에 충성하며 남들이 쉽게 오를 수 없는 고위직의 출세와 부를 누려왔지만 이러한 감사의 느낌은 난생처음이었습니다. 저는 당신들을 위해 무엇이든 도울 것입니다. 당신들은 북조선 출장자들의 희망입니다. 당신들만이 그들에게 그림자처럼 다가갈 수 있고, 당신들만이 그들의 소원을 성취시켜줄 수 있습니다. 저의 경험이 그 믿음이고, 저의 성공이 그 약속입니다. 다시 한 번 감사의 큰 절을 드립니다.

-북조선 고위 간부로부터



그러곤 “도움이 필요하신 분은 아래 연락처를 이용해 주시면 됩니다”라면서 e메일 주소(CCDprotection@protonmail.com)를 공개했다. 한국어, 영어를 병기한 성명도 발표했다.

앞서의 전직 고위 정보 관계자는 “천리마 민방위의 성명은 영어로 먼저 적은 것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 확실하다”면서 “북한식이 아니라 한국식으로 그것도 완벽하게 번역한 것을 볼 때 천리마 민방위가 해외 거주 탈북자 조직이라는 일각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 정보기관이 피신 형태로 이뤄진 김한솔 망명에 개입한 것으로 보는 게 가장 설득력이 있다”면서 “국정원이 피신 및 망명 과정을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참여했다면 제 일을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암호화 e메일 계정 사용

또 다른 정보 관계자는 “생전에 김정남이 변고가 생기면 가족을 도와달라고 부탁한 데가 천리마 민방위라고 밝힌 ‘그곳’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대북 소식통은 “천리마 민방위란 이름은 영상 게시를 위해 급조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미국, 영국, 네덜란드 등 여러 나라 국적자로 이뤄진 커넥션인 것 같다”고 말했다.

영상이 업로드된 천리마 민방위의 유튜브 계정은 2월 4일 생성된 것으로 확인된다. 공개한 e메일 계정(@protonmail.com)은 스위스의 암호화 e메일 서비스다. 웹사이트 등록자, 관리자 국적은 파나마로 돼 있다. 웹사이트는 히스토리가 없으며 한국 시각 2월 8일 오전 5시 27분께 첫 변경사항이 있었다. 영상을 올리고자 유튜브 계정과 웹사이트를 급조한 것으로 판단된다.

‘신동아’가 한국 미국 유럽 등의 10여 개 탈북자 단체에 문의한 결과 천리마 민방위라는 이름을 들어봤다는 단체는 한 곳도 없었다. 통일부도 “우리가 알고 있는 단체는 아닌 것 같다”고 밝혔다. 앞서의 전직 고위 정보 관계자는 “영상 제작자가 묵음으로 처리한 ○○○은 특정 국가의 알려진 기관 이름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천리마 민방위는 “갑작스레 도움을 요청했을 때 우리에게 급속히 응답을 준 주조선-주한 네덜란드 엠브레흐츠 대사에게 특별한 감사를 표한다”고 밝혔으나 로디 엠브레흐츠 주한 네덜란드대사는 2월 9일 일본 NHK 등의 질문을 받고 “아무것도 얘기할 수 없다”며 도움을 준 사실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김한솔이 대만을 거쳐 네덜란드로 갔다거나 네덜란드를 거쳐 미국에 망명했다는 분석도 나오는데, 대만 출입국 당국은 김한솔이 대만에 입국하지 않았다고 밝히면서도 대만 경유 가능성에 대해선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김한솔과 어머니 이혜경, 여동생 김솔희가 현재 어느 나라에 체류하는지는 오리무중이다.

“자유세계로 무사히 망명”

김정남 아들의 피신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기 전 “김한솔이 자유세계로 무사히 망명했다”면서 천리마 민방위가 제작한 영상을 지인들에게 전한 탈북 인사가 있다. 이 인사는 네덜란드 레이덴대에서 초빙교수로 일했다. 해외에 체류 중인 그는 “영상의 존재를 어떻게 알았느냐, 누구에게 전달받았느냐”는 ‘신동아’의 질문에 “말할 수 없다”고 답했다. 현재 어느 나라에 있는지도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천리마 민방위에 유럽 내 탈북민이 참여했다는 얘기가 있다”고 묻자 “탈북자가 여러 나라 정부를 무슨 수로 움직이게 합니까”라고 답했다. 그는 “아는 게 없다”면서 전화를 끊었다.

입력 2017-03-24 16: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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