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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물 재발견

“우리 대신 피난민을 배에 태워라 우린 중공군과 싸우며 육로로 철수하겠다”

‘흥남철수작전’의 숨은 영웅 김백일 장군

  • 최호열 기자|honeypapa@donga.com

“우리 대신 피난민을 배에 태워라 우린 중공군과 싸우며 육로로 철수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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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기계-안강전투 승리…낙동강전선 사수
  • ● 최초로 38선 넘어 북진…10월 1일 국군의 날 始原
  • ● 알몬드 장군에게 피난민 수송 강력 요구
  • ● 흥남철수작전 최후까지 피난민 승선과 수송 지휘
  • ● 1951년 3월 비행기 사고로 殉國
“우리 대신 피난민을 배에 태워라  우린 중공군과 싸우며 육로로 철수하겠다”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6월 28일부터 30일까지 미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미국 버지니아 주 콴티코 시 해병대박물관에 있는 장진호전투 기념비였다. 기념비에 헌화한 문 대통령은 연설에서 “장진호의 용사들이 없었다면, 흥남철수작전의 성공이 없었다면, 제 삶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고, 오늘의 저도 없었을 것”이라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문 대통령은 기념비 방문에 앞서 흥남철수작전에 참여했던 에드워드 알몬드 장군의 손자, 포니 대령의 손자 등을 만난 자리에서도 “흥남부두에서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올랐던 젊은 부부가 남쪽으로 내려가 새 삶을 찾고, 그 아이가 대한민국 대통령이 돼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또한 자신의 페이스북에 ‘흥남철수의 주역이신 현봉학 선생의 딸, 헬렌 현 여사와도 만났으며, 메러디스 빅토리 호의 일등항해사였던 루니 제독은 서신을 주셨다’는 글을 올렸다.

문 대통령의 장진호전투 언급은 미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과 한미동맹의 미래에 우려의 시각을 갖고 있던 미국 조야에 신뢰감을 주는 데 크게 기여했다.

흥남철수작전의 진실

“우리 대신 피난민을 배에 태워라  우린 중공군과 싸우며 육로로 철수하겠다”

흥남철수작전은 미국 메러디스 빅토리호 한 척에만 피난민을 태운 게 아니다. 당시 인근 모든 배가 총동원돼 피난민 10만 명을 구출했다.

장진호전투는 미 해병 1사단이 12만 중공군의 공격에 맞서 격전을 벌인 6·25전쟁 3대 전투의 하나로 불린다. 미군은 비록 큰 전력 손실을 입은 채 후퇴했지만 2주간 중공군의 남하를 지연시킴으로써 흥남철수작전이 이뤄질 수 있었을 뿐 아니라, 한국군과 유엔군이 전열을 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었다.

흥남철수작전은 흥남항에 모여 있던 미군 3개 사단과 국군 1군단, 북한 피난민 10만 명 등 총 20만 명을 해상을 통해 철수시킨, 세계 전쟁사에 유례가 없는 대규모 철수작전이었다. 국민가요 ‘굳세어라 금순아’와 영화 ‘국제시장’의 모티프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만 보면 흥남철수작전은 미군의 인도주의적 정신과 한 통역장교의 인간애가 만들어낸 ‘크리스마스의 기적’이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과연 그런가.

남정욱 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당초 미군이 진행하려 했던 철수작전은 미군과 한국군 10만 명과 피난민 일부를 수송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피난민 10만 명을 포함해 20만 명으로 늘어난 것은 당시 육군 1군단장이던 김백일 장군의 노력 때문”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실제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서 펴낸 ‘6·25전쟁사’를 비롯해 군 원로들의 회고록, 당시 생존자들의 증언 등을 보면 김백일 장군이 피난민을 수송하기 위해 얼마나 헌신적으로 노력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놓친 흥남철수작전의 진실과 김백일 장군이 6·25전쟁 중에 이룬 업적을 재조명했다.

김백일 장군은 1917년 북간도 연길현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김찬규다. 그의 아버지는 젊은 나이에 타계해, 할아버지 김영학 선생이 어린 김백일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백하 김영학 선생은 구한말 선각자로, 당시 관북지방 제일의 교육기관으로 불리던 함일(咸一)학교 교장을 지냈다. 1900년 함북 경성읍에 설립된 함일학교는 많은 항일투사와 인재를 배출했다. 1910년 한일병탄이 있은 후 백하 선생은 1911년 북간도로 망명한다. 1919년 3월 13일 용정에서 독립선언식을 주도하는 등 독립운동을 벌이던 선생은 1927년 일제에 체포됐다. 출옥 후에도 독립운동에 헌신하다 1944년 별세했다. 정부는 1990년 그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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