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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외교관이 쓴 한중韓中 5000년

순(順), 명(明) 황제 아들을 삶아 먹다

반란군에 무너진 조선의 ‘부국(父國)’

  • | 백범흠 駐프랑크푸르트 총영사, 정치학박사

순(順), 명(明) 황제 아들을 삶아 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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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이 혼란에 처한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을 키웠다가 고생한 것처럼 명나라도 몽골의 굴기를 저지하고자 누르하치를 지원했다가 나라가 멸망하는 비극에 처한다. 누르하치가 이끄는 만주 팔기군의 말발굽소리가 시시각각 베이징으로 다가오는데도 동림당과 환관당 사이의 당쟁은 더욱 격화했다. 

    그들은 반대 당 사람들을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다고 생각할 정도로 서로 증오했다. 동아시아 정세가 급변하는데도 당파 다툼이 끊이지 않는 21세기 한국의 모습과 유사하다.
영화 ‘최종병기 활’. 만주에서 궐기한 청이 명을 무너뜨리고 패권을 차지한다.

영화 ‘최종병기 활’. 만주에서 궐기한 청이 명을 무너뜨리고 패권을 차지한다.

임진왜란 이후 부녀자를 중심으로 강강수월래 놀이가 유행한다. 강강수월래는 조선에 파병된 명나라군이 무리를 지어 “지금 막 순찰 돈다(剛剛巡邏·gang gang xun luo)”고 외치던 것이 기존(旣存)의 놀이와 결합해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막 순찰 돈다(剛剛巡邏·gang gang xun luo).” 

임진왜란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가 파견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에게 쫓겨 명나라 국경을 지척에 둔 의주까지 도주한 조선왕 이균(李鈞·선조)은 명(明)에 줄기차게 사신을 보내 구원군을 요청했다. 이균은 명나라로 망명하려는 계획까지 세웠다. 

1592년 9월 조선에 파견된 명나라 사신 설번은 조선과 요동(만주)이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임을 들어 파병 불가피를 주장했다. 병부상서 석성도 동의했다. 명나라는 북부와 서부에서 몽골과 투르판 위구르가 침공하고 농민반란이 일어나던 상황이었는데도 고려인 이천년(다정가를 지은 이조년의 형)의 후손인 이성량(1526~1615)의 장남 이여송(李如松)을 사령관, 낙상지(駱尙志)를 부사령관으로 임명해 4만3000명 대군을 이끌고 일본군의 추가 북상을 저지하게 했다. 

1593년 1월 이여송은 포르투갈 대포와 화전(火箭) 등 신무기를 보유한 절강군(浙江軍)을 동원해 조선군과 함께 고니시가 점령한 평양성을 탈환했다. 이여송은 이후 기병 위주의 직할부대 요동군만을 이끌고 한양으로 남진하다가 고양 벽제관(碧蹄館)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대패했다. 이여송은 1593년 말 명나라로 돌아가 군단장급인 요동총병으로 승진했으나 1598년 4월 타타르(몽골)군과의 요동전투에서 전사했다. 

임진왜란은 명나라 원군과 조선 해군사령관 이순신의 활약에 더해 곽재우, 정인홍, 조헌, 고경명 등 사대부 출신이 주축이 된 의병의 분투로 장기전으로 접어들었다. 일본군의 침공을 감당하지 못할 만큼 조선이 쇠약해진 이유는 중화(善)-오랑캐(惡) 흑백논리의 성리학이 지배 이데올로기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것과 함께 단종(端宗) 이홍위(李弘暐) 집권 1년차인 1453년 발생한 계유정난부터 선조 집권기인 1589년부터 1591년까지 3년간 계속된 기축옥사에 이르기까지 140년간 사대부 엘리트들이 수천 명을 서로 죽이고 죽는 자괴작용(自壞作用)을 일으킨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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