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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민의 리걸 에세이

판사는 판결로만 말한다?

태도, 눈빛, 표정이 보여주는 무언가

  • | 정재민 전 판사·소설가

판사는 판결로만 말한다?

  • 피고인이 마지막 변론을 하고 나면 재판장이 “변론을 종결하겠습니다. 선고는 ○월 ○일 ○요일 ○시에 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검사, 변호사, 피고인은 재판 과정에서 든 소회를 말하기도 하지만 재판장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 셈이다.
2017년 12월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강당에서 열린 신임 법관 임용식에서 신임 법관들이 김명수 대법원장(왼쪽) 
앞에서 선서하고 있다. [박영대 동아일보 기자]

2017년 12월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강당에서 열린 신임 법관 임용식에서 신임 법관들이 김명수 대법원장(왼쪽) 앞에서 선서하고 있다. [박영대 동아일보 기자]

결코 할 말이 없어서는 아니다. 판사라고 왜 소회가 없겠는가. 그러나 소회나 감정이나 이런저런 생각을 밝히게 되면 판결 전에 판사의 예단이 드러날 수 있다. 게다가 다음 선고기일에 피고인에게 엄한 형을 선고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판사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편안하게 늘어놓을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판사는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침묵한다. 판사의 입장은 판결문으로 제시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고 분명하고 적절하다. 그 유명한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는 말도 실무상으로는 바로 이 대목에 적용되는 말이다. 이 말은 판사가 해당 사건에서 예단이나 감정을 판결 전에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일 뿐, 판사가 일반적으로 어떠한 말도 하면 안 된다는 뜻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 말은 족보도, 근거도 없다. 서양에도 없는 말이다. 일본 판사도 일단 판결을 하고 나면 학술적으로나 대중적으로나 필요하면 충분히 설명한다고 한다. 

변론을 종결할 때 판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은 “지금까지 주장한 말씀과 제출한 증거를 다시 한번 꼼꼼하게 살펴보고 옳고 균형 있는 판결을 내리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정도다. 나는 이런 말조차 하지 못했다. 너무 당연한 말을 굳이 할 필요가 있겠나 싶기도 하고, 좋은 판사인 척하는 것 같아 낯간지럽기도 하고, 그 말을 말 그대로 오롯이 실천하는 것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재판 중 나의 태도나 눈빛과 표정을 보면서 당사자들이 이미 온몸으로 느끼고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판사일 때는 판사 외에 다른 사람은 거의 만나지 못하다가 법복을 벗고 나서 재판을 받거나 받은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오래전에는 “판사가 형편없더라” “판사가 잘 모르더라” “판사가 고압적이더라”라는 말을 더러 들은 것 같은데 최근에는 “판사가 괜찮더라” “판사가 사람이 좋더라” “판사가 점잖더라”라는 말도 왕왕 듣는다. 그러면 괜히 기분이 좋다. 나는 그런 느낌을 못 주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


나의 의사선생님 K

내가 정기적으로 다니는 작은 병원이 있다. 그 병원 원장 K 선생님은 내가 생각하기에 훌륭한 의사다. 그렇다고 그가 슈바이처처럼 어려운 사람을 치료하러 오지를 다니는 의사는 아니다. 미국 의학 드라마 ‘하우스’ 속의 닥터 하우스처럼 괴팍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면서 누구도 고치지 못하는 병을 척척 고쳐내는 천재 의사도 아니다. 패밀리 레스토랑 종업원처럼 싹싹하고 친절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내가 그를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보다 그 앞에서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지방 소도시에 살 때는 의사를 만나는 것이 불편하고 심지어 두려웠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와 장아무개라는 자기 이름을 간판에 내건 어느 안과에 간 기억이 아직 남아있다. 아침 10시 진료시간에 맞춰 스무 명이 넘는 환자가 복도 양쪽에 빼곡히 앉아서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는데도 그 의사는 매번 20~30분은 늦게 병원에 나왔다. 그러고도 미안하다는 말도, 안녕하시냐는 상투적인 인사말도 없이, 양쪽 의자에 빽빽하게 늘어앉은 환자들 사이에 난 비좁은 길을 권위적인 표정과 팔자걸음으로 휘적휘적 걸어 들어왔다. 그러면 환자들이 양반 행차 앞의 하인이라도 되는 듯 굽실거리며 다리를 오므려 길을 터줬다. 

나와 어머니가 한참을 기다려서 마침내 진료실 안에 들어갔더니 벽에 붙은 장과 책장 안에 야구공과 야구배트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의사가 야구광인 모양이었다. 우리가 그 의사 맞은편에 앉았는데도 의사는 텔레비전의 야구 중계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1분도 안 되는 진료 동안 그는 내 어머니에게도 다짜고짜 반말을 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짜증을 내고 호통을 쳤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조심조심 그의 눈치를 보며 말해야 했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했다. 나는 어린 나이에도 자라서 절대로 저런 사람은 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반면 나의 의사선생님 K는 연세가 예순 후반인데도 표정이 아이처럼 맑다. 풍채도 좋고 목소리도 중후하다. 말에 유머나 위트를 섞어서 은은하게 웃으면서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학병원 교수를 지내고 학계에서 권위도 높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는다. 그런데도 병이나 치료 방식에 대해 어린이도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설명해준다. 처음 가면 몸 상태를 이야기하기 전에 그간 어찌 지냈는지부터 묻는다. 내가 뭐라고 대꾸하면 그것을 받는 말도 재밌으면서 경박하지 않다. 내가 바빠서 제때 못 오면 전화로 검사 결과를 설명해주고 약도 보내주신다. 나는 직업병 때문인지 남의 말을 쉽게 믿거나 따르지 않는 편인데 K 선생님의 말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따르고 싶어진다. 

나는 K 선생님이 의사 가운 대신 법복을 입었어도 틀림없이 훌륭한 판사가 됐을 것이라 확신한다. 나도 K 선생님 같은 판사가 되고 싶었다. 물론 K 선생님이 판사라면 피고인을 상대로 어떻게 지냈는지 묻거나, 농담을 하면서 허허 웃거나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K 선생님이라면 “피고인을 징역 5년에 처한다”라고 선고하면서도 피고인에게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줄 것 같았다. 그게 말이 되는지, 가능한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그분의 표정을 떠올리면 가능하겠다 싶다. K 선생님이 근래에 기운이 없어 보이고 갑자기 연세가 든 것 같아서 걱정이다. 건강히 오래 사셔야 하는데. 그래야 나도 오래 살고.


편안한 판사

2017년 12월 열린 신임 법관 임용식에서 참석 법관들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다. [박영대 동아일보 기자]

2017년 12월 열린 신임 법관 임용식에서 참석 법관들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다. [박영대 동아일보 기자]

그렇게 마음이 편안한 판사는 굳이 친절하려 애쓰지 않아도 당사자들이 판사의 언행 때문에 상처를 받지 않는다. 중립을 지키려고 애쓰지 않아도 편파적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물이 흐르듯, 바람이 지나가듯 자연스럽게 재판을 진행한다. 당사자들도 그에게 판결을 받으면 결과가 어떻든 수긍이 된다. 결과가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더라도 저런 판사가 저렇게 판단했다면 어쩔 수 없겠다고 단념하고 새 출발을 도모할 마음이 생긴다. 

사법연수원을 몇 등으로 수료했다는 총명한 판사, 흐트러짐 없이 매일 야근을 하는 성실한 판사, 대쪽같이 정의감이 투철한 판사, 인권감수성이 예민한 판사, 항공기 승무원은 저리가라고 할 정도로 친절한 판사도 다 훌륭하겠지만 나는 편안한 판사를 으뜸으로 친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고 경력이 쌓이면서 그렇게 되었다. 나도 판사로서든 사람으로서든 편안해지고 싶었다. 

편안함의 가치를 청년 때는 잘 몰랐다. 편안해지는 것이 별 대수롭지 않은, 쉬운 일인 줄 알았다. 심지어 편안한 사람이 지루하고 유약한 사람인 줄 알았다. 피가 뜨겁던 시절이다 보니 치열하고, 특별하고, 강한 매력과 개성을 가진 사람에게 끌렸다. 그러나 나이를 먹을수록 주변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능력자인지 절감한다. 

다른 사람에게 편안한 인상을 주기 위해서는 자기 마음이 편안해야 한다. 친절한 척, 정의로운 척, 착한 척할 수는 있어도 편안한 척하기는 어렵다. ‘척’을 하는 순간 편안함이 깨지고 만다. 여기서 마음이 편안하다는 것은 강박증도, 일중독도, 열등감도, 인정중독도, 결벽증도, 불안으로 인한 조급증도, 피해의식도, 날카로운 공격성도 없다는 것을 말한다. 

법원도 판사가 3000명이나 되기 때문에 이런저런 다양한 사람이 공존한다. 남들 사정이나 치부를 재판하듯 샅샅이 파악하고 비교하면서 전파하는 것을 좋아하는 판사, 고함을 버럭버럭 지르는 분노조절장애인, 표정이 근엄함의 콘크리트로 딱딱하게 굳어버린 이, 인정욕구와 승부욕이 지나치게 강하거나 판사가 세상에서 제일 우수한 사람이고 판사가 제일 좋은 직업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는 이, 할 일이 없는 상태를 편안하게 견디지 못하는 일중독자 등 다양하다. 같은 사무실을 쓰면 판사 개인의 인품이 더 드러난다. 

부장 앞에서는 용비어천가를 늘어놓다가 부장이 돌아서고 나면 그때부터 장시간 부장을 습관적으로 험담하고, 판사실에서 전화로나 면전에서 실무관, 당사자, 자신의 남자 친구, 심지어 동료 판사에게조차 신경질적으로 짜증을 내던 판사, 마치 상급자라도 되는 양 동료 판사에게 요청하지도 않은 평가나 지적을 툭툭 하던 오지랖 넓은 판사와 함께 지내던 일도 피곤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나 역시 마음이 그리 편안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은 열망이 강한 사람이 많은 만큼 인품을 다듬으려고 노력하는 판사가 주변에 더 많았던 것 같다. 감히 내가 다른 사람을 판단할 수준은 안 되지만 인품도 좋고 마음도 편한 존경스러운 판사도 적잖이 보았다. 법원이라는 곳이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혼자 처리하는 것이 대부분이라서 여느 조직이나 직장과 달리 사내 정치나 권모술수나 책임 전가 문화가 별로 없고 그만큼 구성원의 나쁜 성정이 드러날 기회가 적기도 하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판사가 되기까지 거쳐야 하는 치열한 경쟁 과정을 생각해보면 마음이 편안한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판사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처음에는 마음이 편안하더라도 그런 과정에서 마음이 다치거나 뾰족해지거나 불편해지기 마련이다. 판사가 되고 난 뒤에도 마음이 편해지기는 어렵다. 아침에 일어나서 경쾌한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샤워를 하고 상쾌한 새벽 공기를 얼굴로 맞으며 즐겁게 집을 나섰다고 하더라도 일단 사무실에 도착하면 커다란 캐비닛을 가득 채운 수천 페이지의 기록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 속에 있는 피투성이 된 사람의 얼굴 사진, 살해당한 시체 사진, 피 묻은 칼, 교통사고로 처참하게 부서진 자동차, 불온한 음모가 녹음된 녹취 파일, 일생일대의 사건을 놓고 필사적으로 다투는 사람들이 벌이는 상대의 가슴을 후벼 파는 가시 돋친 설전, 십수 년치 곗돈 입출금 내역이 담긴 장부, 희미한 화질의 범죄 동영상을 은은한 음악을 틀어놓고, 감미로운 향기가 나는 커피 잔을 들고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보거나 들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것도 매일 야근을 해가면서.


판사는 판결로만 말한다?

정재민
● 서울대 법대 졸업, 동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사법연수원 수료(32기)
● 前 판사, 舊 유고유엔국제 형사재판소(ICTY) 재판연구관, 

   외교부 영토법률자문관
● 세계문학상, 매일신문 포항국제동해문학상 수상
● 저서 : ‘보헤미안랩소디’ ‘국제법과 함께 읽는 독도현대사’ ‘소설 이사부’ 

   ‘독도 인 더 헤이그’


신동아 2018년 6월 호

| 정재민 전 판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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