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호

총력특집 | ‘비핵화’ 동상4몽 |

트럼프, 무지하거나 김정은에 세뇌당했거나

  • 입력2018-07-22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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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긍정적 전망하되 함정·불안 요인 따져볼 때

    • 중국核 인정→대만과 단교→美中수교 남 일 같지 않은 까닭

    • 최악 결과는 북핵 인정한 상태의 북·미관계 정상화

    • 돈벌이 계산·리얼리티 쇼 허장성세 아닌지 살펴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6·12 북·미 정상회담 평가를 놓고 엇갈린 시선이 존재한다. 역사적 의미를 함부로 폄훼할 까닭도 없고 회담 성과를 억지로 과대포장해서도 안 된다. 지금의 한반도 현실과 비핵화 가능성, 후속 회담 진행 상황을 냉정하고 신중하게 분석하고 전망하면 될 일이다. 엄연한 현실에 발 디디고 서서 긍정적 전망을 하되 예상되는 장애물과 우려 사항에 충분히 귀 기울이면 된다. 과도한 낙관이나 지나친 비관이 아니라 현실의 함정과 불안 요인들을 차분히 따져볼 때다.

    북·미 협상을 보는 시선 : 낙관과 비관 그리고 현실

    북·미 정상회담을 가장 낙관적으로 보는 시선은 지구상 마지막 냉전의 당사자로서 김정은과 도널드 트럼프가 만났다는 사실 자체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다. 전쟁 당사자였고 지금도 전쟁 상태가 지속 중인 양국 정상이 마주 앉아 악수하고 웃는 모습 자체가 성공을 약속한다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이 이번 정상회담을 1989년 미소 정상의 몰타회담과 비교한다. 반세기 이상 지속돼온 냉전의 종식을 선언한 것만으로도 몰타회담이 의미가 있는 것처럼 70년 가까이 적대관계를 유지해온 북·미 정상이 만나 합의문을 낸 것만으로도 싱가포르 회담은 역사적 성과가 있다는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을 몰타회담과 견줘 성공이라고 하는 것은 비교의 기준을 잘못 잡은 과도한 평가다. 몰타회담은 당시 냉전의 한 축이던 소련의 개혁·개방과 동유럽의 급변 상황에서 미소 정상이 냉전 종식을 선언했다는 역사적 의미를 가졌다. 몰타회담은 소련의 비핵화를 다룬 게 아니었다. 이후 소련은 개혁·개방의 여파로 연방이 해체됨으로써 사실상 냉전이 종식됐고 러시아는 그대로 핵무기를 보유했다. 몰타회담이 냉전 종식의 계기였다는 평가는 바로 그런 의미다. 

    북한은 미국과 냉전의 한 축을 담당하는 강대국도 아니고 스스로 개혁·개방해서 체제 전환에 놓인 나라도 아니다. 미소회담과 북·미회담은 차원이 전혀 다르다. 6·12 정상회담은 북한의 비핵화를 이루기 위한 협상이 본질이자 시작이고 최우선의 과제다. 전혀 다른 성격, 전혀 다른 목표의 회담을 비교하면서 적대 국가의 정상이 만났다는 형식적 이유만으로 냉전 종식의 성과로 과대포장하는 것은 지나치다. 회담의 본래 목표였던 비핵화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만남 자체만으로 의미를 부여하려는 속셈은 아닌지 의심이 들 뿐이다.



    닉슨-마오 회담을 우리에게 적용하면…

     
1972년 2월 21일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한 리처드 닉슨(오른쪽) 대통령이 마오쩌둥 중국 초대 국가주석과 악수를 하고 있다. [뉴리퍼블릭 웹사이트 캡처]

    1972년 2월 21일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한 리처드 닉슨(오른쪽) 대통령이 마오쩌둥 중국 초대 국가주석과 악수를 하고 있다. [뉴리퍼블릭 웹사이트 캡처]

    몰타회담과 유사한 역사적 회담이 하나 더 있다. 1972년 리처드 닉슨과 마오쩌둥(毛澤東)의 정상회담이 그것이다. 냉전의 최고조기에 이른바 데탕트라는 역사적 물줄기를 이끌어낸 만남이다. 구체적 합의가 도출되진 않았지만 1979년 역사적인 미·중 수교로 이어졌다. 

    북·미 정상회담이 만남 자체만으로 지구상 마지막 냉전을 해체하는 성과라고 자평한다면 사실 북핵 문제는 끼어들 틈이 없다. 1972년 미·중 정상회담도 이후 미·중관계 정상화로 국제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꿔냈듯이 북·미 정상회담도 비핵화의 구체적 성과는 없을지라도 북·미관계 정상화를 이룬다면 동북아 질서는 완전 재편될 것이기 때문이다. 1972년 미·중 정상회담은 당시 중국이 확보한 양탄일성(兩彈一星·원자탄 및 수소탄과 인공위성)을 사실상 인정하고 국교 수립을 하는 역설적 결과였다. 더구나 1979년 미·중 수교 직전 미국은 대만에 단교를 선언했다. 중국이 양탄일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미국이 대만과 단교하고서 미·중 수교가 이뤄진 것이다. 우리에게 적용해보면 끔찍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북·미 정상회담이 비핵화 성과보다 적대 관계 해소에 방점을 찍은 후 만남 자체만으로 떠들썩하게 성과를 자평한다면 향후 북핵을 사실상 인정한 상태에서 북·미관계 정상화가 이뤄지는 최악의 역설적 결과를 예상해야 할지도 모른다. 

    김정은과 트럼프가 만나 환하게 웃고 스킨십을 하고 별 내용 없는 합의문에 서명하고 전화번호를 주고 받았다고 흥분하는 것은 이 회담의 본래 목표를 상실한 지나친 감정 몰입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는 진정성으로 평가할 일이 아니다. 소련 붕괴는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진정성이 아니라 엄연한 세계사적 흐름이 거역할 수 없는 방향을 만든 것이고, 미·중관계 개선은 미국이 대(對)소련 포위 전략으로 중국을 우군화하겠다는 국가 전략적 접근이었을 뿐이다. 북·미 정상이 진정성을 갖고 친하게 지내자고 해서 양국 관계가 정상화되는 건 결코 아니다. 현실 아닌 감정을 앞세우는 것은 반드시 경계해야 할 일이다. 북·미 정상회담의 근본 목적이 비핵화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가역적 회귀로 귀결된 25년 역사

    북·미 정상회담이 향후 비핵화와 관계 개선이라는 목표를 동시에 해결함으로써 북핵도 폐기하고 적대관계도 청산하게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몰타회담이나 미·중 정상회담을 예로 들며 요란스럽게 만남 자체에 흥분하는 것에 비하면 그 나름대로 현실적인 시선이다. 즉 북한이 반드시 비핵화할 것이고 비핵화에 맞춰 관계 개선과 안전보장이 교환되기에 협상이 마무리되고 합의가 최종 이행될 때면 북핵이 완전 폐기되고 동시에 북·미 적대관계도 해소됨으로써 평화로운 한반도와 동북아 시대가 시작될 수 있으리라는 낙관적 시나리오다. 그리 나쁘지 않은 전망이다. 

    이 시선을 좇더라도 이번 6·12 회담은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다. 비핵화와 관계 개선의 병행 추진은 그동안 북핵 협상에서 북한이 일관되게 요구한 방식이다. 김정은이 잇따른 방중에서 시진핑과 합의한 ‘단계적 동시 조치’의 핵심이 바로 그것이기도 하다. 제네바 합의, 9·19 공동성명, 2·13 합의 등 그간 북한과 체결한 합의문은 모두 동시 병행이었고 단계별 행동 대 행동의 교환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접근은 지난 25년 동안 실패로 판명 났고 중도에 결렬되고 폐기됐음을 우리 모두 목도한 바 있다. 

    비핵화와 관계 개선까지 단계를 설정하고 단계마다 동시 보상 조치가 교환되는 방식은 진행 과정에서 불신이나 갈등이 재연됐을 때 여지없이 이행은 중단되고 과거로 원상 복구됨으로써 언제나 가역적 회귀로 귀결되고 말았다. 이른바 불가역적 비핵화를 포기할 수 없는 원칙으로 입이 마르도록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기도 하다. 선(先)비핵화, 후(後)보상이라는 원칙을 양보하고 북한이 시종일관 요구해왔던 단계별 행동 대 행동의 동시 조치라는 접근법을 또다시 수용할 경우 북한 비핵화를 위한 2018년의 시도는 또 한 번의 헛수고로 끝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쓸모없는 카드 생색내며 내준 北

    당장 북·미 공동합의문은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 내용을 적시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두루뭉술한 양측의 공동 관심사만 의제로 재확인하는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내용으로 채워졌다. 그것은 향후 비핵화와 안전보장이라는 두 목표를 정교하게 꿰맞춰가는 게 얼마나 험난한 일인지 예고한다. 이번 합의문에 당장 실천 가능한 의미 있는 내용은 미군 유해 송환밖에 없다. 이마저도 트럼프는 마치 큰 선물을 김정은에게 받은 것인 양 과장되게 자랑하지만 그동안 북·미 협상 과정에서 평양이 가장 쉽게 줄 수 있는 카드가 바로 미군 유해 송환이었고 결코 공짜가 아님은 지난 역사가 다 아는 사실이다. 

    비핵화와 안전보장이라는 동시 병행 원칙이 미덥지 못한 또 하나의 이유는 당장 북·미 정상회담이 끝나고 트럼프가 만천하에 자랑한 미사일 시험장 폐쇄와 한미연합훈련 중단 조치에서 찾을 수 있다. 

    비핵화의 순서와 관계 개선의 순서가 합리적이고 정교하게 맞물려 교환되더라도 가다, 서다를 반복할 것이 우려스러운데 행동 대 행동의 교환에서 가당치도 않은 부등가(不等價)의 교환을 보란 듯이 해버린 트럼프가 향후 비핵화를 제대로 관철해낼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지경이다. 

    핵 실험장 폐쇄, 미사일 시험장 폐쇄는 사실상 북한으로서 더 이상 쓸모없는 카드를 생색내고 내주는 성격이 강한데도 트럼프는 한미연합훈련 중단이라는 카드를 선뜻 내밀었다. 한반도 정세에 무지하거나 김정은의 설득에 세뇌당한 것이 아니라면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 

    6·12 공동합의문의 빈약함을 애써 이해하고 향후 비핵화가 잘 이행될 것이라고 믿는다 하더라도 미사일 시험장 폐쇄와 한미연합훈련 중단이 교환되는 식의 동시 행동은 우리로서는 도저히 수용하기 어렵다. 사전에 문재인 정부와 조율하지 않고 트럼프가 한미연합훈련을 불쑥 중단하기로 약속하고 기자회견장에서 그 훈련을 ‘도발적(provocative)’이라고 표현했다면 정말 심각해도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6·12 정상회담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시선은 애초부터 일관되게 기대해왔던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방식의 선(先)비핵화 원칙을 포기했다는 의구심 때문이다. 

    이번 담판에서 트럼프가 김정은을 굴복시켜 CVID를 받아내고 구체적으로도 김정은의 선제적 양보조치(Front Loading)를 얻어낼 것으로 대부분이 기대했다. 우리가 기대한 게 아니라 트럼프가 그렇게 하겠다고 반복해서 장담했고 그러려고 회담 취소 카드까지 쓴 것으로 평가됐다. 그동안 북핵 협상이 수많은 합의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이유는 북한이 약속을 뒤집고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곤 했기 때문이다. 이를 막기 위해 한국과 미국 정부는 반드시 과거의 행태에서 벗어나 김정은의 분명한 굴복과 핵 폐기 약속, 구체적 실천을 얻어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약속한 것이다.

    ‘노력’한다는 문구로 정리된 ‘완전한 비핵화’

    6·12 북·미 정상회담 합의문은 4·27 판문점 선언의 ‘완전한 비핵화’를 재확인하는 데 그쳤으며, 그것도 ‘노력’한다는 문구로 정리됐다.

    6·12 북·미 정상회담 합의문은 4·27 판문점 선언의 ‘완전한 비핵화’를 재확인하는 데 그쳤으며, 그것도 ‘노력’한다는 문구로 정리됐다.

    그런데도 막상 문서로 명기된 합의문에는 김정은의 어떤 굴복이나 양보도 없었다. 겨우 4·27 판문점 선언의 ‘완전한 비핵화’를 재확인하고 그것도 ‘노력’한다는 문구로 정리됐다. 공동 합의문의 논리 구조는 우선 북·미관계가 새롭게 정립되고 한반도 평화가 정착된 후 북·미 간 신뢰가 구축되면 비핵화가 추동(promote)된다는 것이다.
     합의 사항 순서도 관계 개선 및 평화체제 이후 비핵화 노력으로 돼 있다. CVID의 선비핵화라는 애초 기대와는 완전 동떨어진 내용이다. 요란한 잔칫집 먹을 게 없다는 속담이 딱 맞는 경우다. 두 정상이 만나고 웃고 식사하고 산책하고 캐딜락 문 열어주고 서명한 것으로 결코 비핵화는 진전되지 않는다.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병행한다 해도 과거의 오류에서 벗어나려면 합의문에 비핵화의 내용과 방식과 순서와 로드맵과 시한이 분명히 명시돼야 한다. 그러나 6·12 합의문은 양측의 관심사항으로서 관계 개선과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문장 외에 새로 추가된 것은 전혀 없다. 2005년 6자회담 9·19 공동성명보다 후퇴한 내용이라는 혹평이 제기되는 이유다. 

    트럼프 말대로 합의문에는 없지만 약속한 게 있다는 장담도 사실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렵다. 외교는 문서로만 말하는 것이다. 국가의 상이한 이해와 요구를 조율하고 합의를 도출하는 데 문서가 아닌 구두약속을 철석같이 믿는다는 것은 외교에 존재할 수 없다. 말로는 무엇을 약속 못 하겠는가? 말로만 하는 약속을 못 믿기 때문에 외교협상의 결과물은 반드시 문서로 남기고 그것도 두 나라의 언어 말고도 국제법적으로 해석이 가장 분명한 불어와 영어로 남기는 관례가 생긴 것이다. 구두약속의 위험성에 더해 김정은의 미사일 시험장 폐쇄와 트럼프의 한미연합훈련 중단이라는 부등가 약속 교환의 위험성은 더더욱 이번 북·미 정상회담의 전망을 어둡게 할 뿐이다. 부등가 교환을, 그것도 구두로 덜컥 약속해놓고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갖고 있다고 장담하는 트럼프의 행동은 분명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허장성세에 불과할지 모른다.

    합의문엔 없지만 ‘약속’한 게 있다?

    6·12 정상회담을 보고 많은 사람이 감동하고 감격하고 흥분했으나 외교·안보는 엄연한 현실의 영역이다. 화면에 비치는 김정은의 웃음을 보고 그의 진정성을 확신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트럼프의 환한 미소가 과연 비핵화를 확신하기에 웃는 것인지 그 특유의 돈벌이 계산과 리얼리티 쇼의 허장성세로 웃음을 파는 건지 우리는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김정은이 드디어 핵을 포기하기로 전략적 결단을 내렸다고 왜 그가 직접 말하지 않고, 왜 그가 직접 문서에 서명하지 않고 우리 정부가 나서고 우리 전문가들이 앞장서서 그의 진정성을 의심 말라고 대변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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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문점 정상회담과 6·12 정상회담은 뉴스거리와 TV 화면으론 최고의 흥행이었고 때로는 감동이었다. 그러나 안보는 감동의 장면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북·미 정상회담이 세기의 담판인 이유는 그것이 바로 ‘비핵화’를 위한 담판이기 때문이다. 어렵고 힘든 비핵화라는 목표를 최고 정상 간 만남으로 풀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에 세기의 담판이고 세계의 관심이었던 것이다. 비핵화에 기여하지 못하는 세기의 만남은 희대의 사기극으로 끝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외교·안보 현실에서 진정성과 선의는 설 땅이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6·12 정상회담은 과연 비핵화에 얼마나 기여했을까? 두고두고 곱씹어봐야 한다.

     김근식
    ● 1965년 전북 전주 출생 
    ● 전주사대부고·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 서울대 대학원 박사(정치학) 
    ● 아태평화재단 연구위원 
    ● 민주평통 상임위원 
    ●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2007) 
    ● 現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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