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호

20대 리포트

‘우울증’ 20대들의 진솔한 고백

“자소서, 면접 쌓여 있는 것 보다가…”

  • 입력2018-08-05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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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강 민감정보 공개’ 우려에 혼자서 끙끙

    • “약 끊어야 더 건강” 가족이 더 상처 줘

    • 취업 후엔 상사 폭언과 압박으로 고통

    20대부터 우울증을 앓는 이가 갈수록 늘고 있다. 정신질환 병력이 취업에 불리할까 싶어 알리지도 못하는 상태. 과연 그들을 병들게 한 것은 무엇일까. 온라인에서 서로 연결돼 있는 20대 우울증 환자 8명에 대한 심층 인터뷰 결과, 취업난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부모와의 갈등이 병을 악화시킨다는 점을 발견했다.


    20대에서만 유독 가파르게 증가

    우울증(우울장애)의 사전상 정의는 ‘의욕 저하와 우울감을 수반하며 감정, 생각, 신체 상태, 행동에 부정적 변화를 일으키는 정신질환’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6년까지 4년 동안 20대 우울증 환자는 22.2% 늘었다. 같은 기간 30대에선 1.6%만 늘었고 다른 연령대에선 감소했다. 20대에서만 우울증 환자가 유독 증가했다. 

    우리는 최근 서울 신촌의 한 카페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은 20대 8명을 만났다. 대부분이 대학생이고 일부는 회사원이다. 서울·경기 지역에 거주하는 은주(여·26), 마루(22), 포스(24), 수현(24), 조이(23), 우연(여·22), 정희(여·24), 세속(여·22)이 바로 그들로,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이들은 대체로 “가족과 지인에게 우울증을 털어놓았을 때 부정적인 반응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자살사고”

    우울증을 언제, 어떻게 처음 인식했나요? 

    은주 작년에 한창 취업 준비할 때부터 생긴 것 같아요. 써야 할 자기소개서가 쌓여 있고 봐야 할 면접일정이 이어져서 그냥 부담감 때문인가보다 했는데 우울증이었던 거죠. 



    포스 어릴 때, 그러니까 9세 때부터 지속적으로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죠. 그게 우울증이라는 것은 최근에 알았고요. 

    조이 저도 비슷하게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자살사고(일회적·지속적 자살 욕구, 자살 계획 등을 포괄적으로 이르는 용어)’와 함께 우울감을 계속 느껴왔어요. 

    마루 오랜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인지해왔죠. 저는 직장에 다녀요. 근무 중 상사로부터 심한 폭언과 압박을 받았고 그럼에도 내가 무엇을 어쩌지 못한다는 것을 체감했을 때 우울증을 강하게 느꼈어요. 치료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내 정서를 컨트롤 못 하는 느낌”

    구체적으로 어떤 증상을 겪었나요? 

    정희
    엄청 많죠. (웃음) 무기력증, 집중력 장애, 독해 장애, 대인기피, 자살사고. 심할 때는 타인이 웃는 것을 보면서도 화가 갑자기 치밀죠. 우울증을 앓는 많은 사람이 울증과 조증의 단계를 여러 번 거치는데요, 기분이 좋은 상태가 지속되다가 그렇게 지속된 만큼 더 우울해지기도 하죠. 

    세속
    저도 비슷하고요, 우울감과 함께 식이장애가 찾아와요. 

    우연 저는 우울증 때문에 계속 소극적인 사람으로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내 정서를 컨트롤 못 하는 느낌을 받죠. 주변의 일에 아무 흥미도 못 느끼기도 했어요. 무기력증의 연장선이죠. 불면증도 생겼고 식이장애도 있었고. 대인기피도 당연히 있어요. 우울증이 심해지면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유지하지 못하죠. 

    은주 무기력증도 그렇지만 저는 불안장애가 심했어요. 병적인 불안을 견디는 게 제일 힘들어요.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는데, 그래도 일상을 지속해야 한다는 게 힘들어요.

    “파국적 강박사고”

    생각했던 것보다 증상이 다양하네요. 이런 어려움에도 치료를 꺼리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요. 

    정희 저도 그렇게 생각했죠. 외적인 이유는 아니고, 타인에게 말하는 것으로는 치료되지 않는다고 여겼죠. 실제로 상담사 선생님이 기계적인 질문을 하거나 우울의 원인을 찾으려고 하실 때 이런 시도가 전부 무의미하다고 느꼈거든요. 상담하면서 한 번은 꼭 울게 돼요. (웃음) 이 때 내가 너무 나약하게 느껴져요. 그래서 치료를 중간에 그만두기도 했죠. 

    포스
    ‘치료를 계속 받아봤자 언젠가 이 병으로 죽게 될 것 같다’는 파국적인 강박사고가 계속 내 머릿속에 침투해요. 그래도 이 병으로부터 내 주변인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치료를 계속 받겠다고 결심했고요. 

    우연 타인으로부터 낙인찍히는 게 제일 무서웠고, 내 나약함을 인정하는 것도 힘들었어요. 또한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은 취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치료 기록을 남기는 것을 꺼리는 것 같아요. 

    은주
    취업 준비를 하다가 생겼는데요, 취업 때문에 바쁜데 이런 병까지 걸리니 내가 이상한 사람같이 느껴졌어요. 빨리 정신 차리고 취업 준비에 집중해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 오히려 제대로 된 치료를 못 받았어요.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해고될 뻔”

    20대의 특성상 취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다른 분들도 ‘우울증 치료 기록이 취업에 불이익을 준다’고 생각해봤나요? 

    세속 안 했을 리 없죠. 그래도 치료는 해야 한다고 여겼지만. 

    포스 같은 생각이에요. 

    마루
    저는 우울증 이력이 취업에 불이익을 주기 어렵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런 생각은 안 해봤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인사부 관계자는 “공공기관은 채용 과정에서 응시생 본인의 동의 없이는 정신과 기록을 함부로 열람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기업이나 사기업은 채용 시 ‘민감 정보, 건강관련정보 수집에 동의하는지’ 묻는 경우가 많다. 응시생은 ‘동의’에 체크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말하는 건강정보가 어떤 것인지도 명시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다수의 우울증 환자는 자신의 우울증 치료 경력이 이 건강관련정보에 포함될까 두려워한다.

    “대뜸 ‘정신병자’라고 해”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이유로 억울한 일을 겪기도 했나요? 

    포스 부당한 일을 많이 당했죠. 예전에 아르바이트할 때 매니저님이 제가 우울증 치료 중인 걸 알자마자 저를 해고하려고 했어요. 겨우 모면했지만요. 

    마루 저는 가족에게서 상처를 받았어요. 정신과에 갔다 오겠다고 하니까 엄마가 정말 크게 화를 내는 거예요. 제 상황에 공감하기보다는 우울증을 제 책임으로 돌리는 말도 했죠. 다른 가족도 잘 지내다 대뜸 저한테 ‘정신병자’라는 말을 했고요. 가족이 그러는 게 제일 힘들어요.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들이잖아요. 주변 사람들에게 정신과를 다니고 있다는 걸 말하면 저를 측은하고 불쌍하게 봐요. 그것도 싫습니다. 

    수현
    다들 그러네요. 저의 부모도 제가 우울증 치료를 받는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했어요. 자꾸 치료를 그만두게 하려고 했죠. 

    우연 저는 오히려 부모가 계속 격려해줬어요. 제가 저에게 가하는 부정적 시선이 더 컸어요. 이것도 사회적 시선 때문에 제가 부정적인 생각을 내재화한 것 같네요.

    “약을 끊어라”

    공기업과 민간기업이 채용시 요구하는 민감정보 동의서.

    공기업과 민간기업이 채용시 요구하는 민감정보 동의서.

    부모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 것 같습니다. 

    정희 여기 모인 분이 거의 20대 초중반이니까요. 이 나이에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사람은 별로 없죠. 치료를 받으려면 어쩔 수 없이 부모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아야 하죠. 우울증에 대한 부모의 생각이 목숨을 좌우하는 문제로 번지기도 하죠. 제 부모는 우울증과 정신질환을 혐오했어요. 그래서 부모에게 우울증 사실을 이야기하기 힘들었죠. 실제로 이야기한 후에도 ‘관심 받고 싶어서 그런다’는 식의 말을 들었어요. 

    조이 부모님이 치료에 크게 부정적이진 않지만 자꾸 ‘약을 끊어라’는 요지의 말씀을 하세요. 마치 약을 끊어야 건강해지고 정상으로 돌아온다는 것처럼. 우울증 환자에게 ‘약에 의존하지 마라’고 말하는 건 해로운 일이죠. 몸이 아플 땐 약을 먹어야 하죠.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도 당연히 약이 필요하죠.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울증에도 영향을 주나요? 

    세속 제 부모는 여유가 있어서 제 치료비에 별 부담을 느끼지 않았어요. 그래도 죄송했고 자괴감이 들었어요. 그것이 저의 우울증을 심화시키기도 했고요. 

    조이 지금은 제가 어떻게든 돈을 아껴 정신과에 가죠. 그러나 초기엔 치료비를 마련하느라 힘들었어요. 집안 사정이 어려워 치료비를 달라고 요청하기가 미안했고 부모가 저의 치료에 적극적이지도 않아서요. 

    정희 저는 치료비를 부모로부터 받는 것이 불가능해서 학교의 무료 상담에 의존해야 했어요. 

    수현
    저도 부모의 도움을 받기 힘들었죠. 부모는 제가 우울증 치료를 받는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했거든요. 외출을 금지하고 아르바이트도 못하게 했죠. 정신과에 다니면 용돈도 끊겠다는 식의 위협도 했고요.

    ‘마음의 감기’라 하기엔

    정신과 치료엔 회당 5000~2만 원이 든다. 검사 비용은 수십만 원이 넘기도 한다. 진료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 ‘비보험’을 선택하면 두 배 비싸지고 연말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 하지만 그러기엔 치러야 할 정신적·경제적 비용이 너무 크다. 감기와 달리 정기적으로, 장기적으로 상담과 검사를 받아야 한다. 적잖은 진료비가 드는데, 이런 비용은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20대에게 큰 부담이 된다. 정희는 “많은 사람이 20대 우울증 환자에게 환자 자신의 탓으로 돌리거나 스스로 벗어나라고 강요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일까. 우리 국민의 정신건강서비스 이용률은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낮다. 캐나다는 46.5%(2014년), 미국은 43.1%(2015년)지만 한국은 22.2%(2016년)에 불과하다.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정신과 치료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라도 없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 이 기사는 고려대 미디어학부 ‘Writing in Journalism (영어강의·담당 허만섭 신동아 기자)’ 수강생들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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