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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판사’의 한끼 | 돼지갈비

이혼소송 이기고 눈물 펑펑

돼지갈빗집 사장의 사연

  • | 정재민 전 판사·소설가

이혼소송 이기고 눈물 펑펑

  • 재판은 상처로 시작해서 상처로 끝난다. 당사자들 상처에 비할 순 없지만 판사도 상처를 입는다. 그럴 때면 나는 혼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곤 한다. 정갈한 밥 한끼, 뜨끈한 탕 한 그릇, 달달한 빵 한 조각을 천천히 먹고 있으면 울적함의 조각이 커피 속 각설탕처럼 스르륵 녹아버리고 위로를 받는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재판을 끝내고 혼자 먹으러 간다.

    <신동아>는 11월호부터 판사 출신 작가 정재민 씨의 ‘혼밥판사의 한끼’ 연재를 시작한다. 실제 사건을 일부 각색한 법정 미식 에세이다. <편집자 주>
이번 저녁 식사를 어디서 할까 고민하며 법원 뒷골목을 걷다가 내 콧구멍이 벌렁거렸다. 돼지갈비 냄새였다. 은근한 열기 속에 각종 양념 냄새와 고기 타는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좁은 골목으로 접어들수록 그 냄새가 강하게 진동했다. 돼지갈비를 일단 먹고 나면 후회하지 않는데 일부러 찾아가서 먹게 되지는 않는 이유도 강한 냄새에 있다. 

내가 어릴 때 아버지는 누런 월급봉투를 들고 식구들을 돼지갈빗집에 데려 가곤 했다. 낙서가 가득한 벽 옆에, 검게 탄 찌꺼기가 눌어붙은 불판 앞에, 앉아서 나는 허겁지겁 돼지갈비를 뜯었다. 손으로 쥐고 먹다가 양념이 묻은 손가락까지 쪽쪽 빨았다. 밥 두 공기는 거뜬히 비워내고 더 먹을지 고민했다. 어머니는 고기를 발라서 내 밥숟가락 위에 올려주시면서 “이건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고 하셨다. 

어릴 적 추억마저 떠오르자 오늘은 돼지갈비를 먹지 않을 수 없었다. 유리문에 세로로 ‘돼지갈비’라는 글자가 붉은색 고딕체로 적힌 가게에 들어섰다. 50대로 보이는 남자가 다가왔다. 헝클어진 머리칼은 돼지갈비를 남기고 죽은 돼지의 기름방울이 들러붙은 것처럼 번들거렸고 가게에 어울리지 않게 등산복을 입고 있었다. 혹시 음식 만들기에 집중하지 못하는 맛없는 집 아닐까 싶어서 그냥 나오고 싶었지만 예전에 다룬 어느 돼지갈빗집 부부 사건이 생각나서 일단 한번 먹어보기로 했다.


“소가 웃을 일입니다”

그는 나에게 혼자냐고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하자 떨떠름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손님 한 명으로 테이블 하나가 채워지기 때문이다. 혼자 밥을 먹으러 다니면 종종 겪는 일이다. 나는 삼국지 장비의 배처럼 불룩하게 솟은 무쇠 불판 앞에 앉았다. 곧이어 밑반찬으로 얇게 자른 무와 함께 된장에 무친 고추가 나왔다. 아! 아! 이런 멋진 음식이라니! 된장에 무친 고추는 너무나 유혹적이다. 초록색 계통의 고추와 노란색 계통의 된장은 색감 차원에서도 화려하게 어울린다. 아저씨가 불판에 참숯을 집어넣는 동안을 참지 못하고 젓가락으로 고추 조각을 집어 먹었다. 고추의 매운맛과 된장의 구수한 맛이 정신을 빠짝 죄였다 놓았다. 덕분에 법원에서부터 돼지갈빗집까지 내 꽁무니를 졸졸 따라온 재판 사건 생각들이 훌쩍 달아나버렸다. 아저씨 차림새로 인해 떨어졌던 그 식당에 대한 신뢰도가 된장 고추 반찬 하나에 다시 상승했다. 

돼지갈빗집 부부 사건이란 돼지갈빗집 주인인 아내가 남편을 상대로 이혼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다. 첫 조정기일 50대 부인은 보물선의 보물상자같이 큼직한 명품 가방을 테이블 위에 보란 듯이 올려놓았다. 목에는 알이 굵은 진주목걸이가, 귀에는 금줄이 길게 늘어진 귀고리가 치렁치렁 매달려 있었다. 화장이 짙고, 머리도 미장원에서 막 드라이를 하고 온 것 같았다. 그런데 그녀에게서 구수한 냄새가 풍겼다. 조정실이 두세 평 정도로 좁아서 당사자가 풍기는 냄새를 맡을 때가 있다. 긴가민가하다가 그 냄새가 돼지갈비 양념과 고기 냄새라는 것을 그녀의 직업이 적힌 기록을 보고서야 확신할 수 있었다. 남편은 정반대였다. 평범한 면바지에 셔츠를 입었을 뿐인데 키가 크고 몸이 날씬해 세련돼 보였다. 돼지갈비 냄새는커녕 아쿠아 계열의 스킨 냄새가 났다. 두툼하고 거친 아내 손과 대조적으로 손가락이 길고 손목에는 세련된 시계가 채워져 있었다. 

원고가 제출한 서면에 따르면 남편은 25년 결혼생활 중에 직업이 있었던 기간이 도합 5년이 채 되지 않았다. 남편의 실직이 길어지자 부인이 할 수 없이 나서서 돼지갈빗집을 차렸는데 금세 맛집으로 소문이 났다. 남편은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면서 현금을 슬쩍슬쩍 훔쳤다. 그렇게 모은 비자금으로 여자를 만났다. 그것도 동시에 두 명이나. 

그러나 남편의 변호사가 제출한 답변서는 피고(남편)의 외도 사실을 전면 부인하면서 외도 주장에 대해 “소가 웃을 일입니다”라고 논평했다. “소가 웃을 일입니다”라는 표현은 말도 안 된다는 뜻으로 변호사가 작성하는 서면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변호사의 서면에 정치한 법 논리만 가득 담겨 있을 줄 알았던 나는 초임 판사 때 이런 표현을 처음 보고 당황스러웠다. 동시에 의문스러웠다. 왜 말도, 돼지도 아니고, 소가 웃는다고 했을까. 하긴 ‘히이이이이잉’ 하고 자주 웃는 말이나 쉼 없이 ‘꿀꿀꿀꿀’ ‘킁킁킁킁’ 대는 돼지가 아니라 느릿느릿 점잖은 소가 씩 이를 드러내고 귀밑까지 입을 찢어서 웃으면 더 웃기긴 할 것 같았다. 

남편은 돼지갈빗집에서 나름대로 ‘뼈 빠지게’ 일을 했기 때문에 수입에 절반의 지분이 있으므로 현찰을 가져가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남편이 끝까지 외도를 부인하자 부인의 변호사가 남편의 통화 내역 조회를 신청했고 나는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재판을 연기했다.


“내 아내도 바람을 피웠소!”

이혼소송 이기고 눈물 펑펑
등산복 아저씨가 양념에 재운 돼지갈비를 스테인리스 대접에 담아 들고 왔다. 그 안의 돼지갈비는 살아 있는 사람의 심장을 막 꺼내놓은 것처럼 붉고 물컹물컹했고 곳곳에 양념이 잘 스며들도록 하려고 내놓은 칼자국이 나 있었다. 아저씨가 집게로 돼지갈비 조각들을 불판 위에 올리자 양념이 뚝뚝 떨어지며 ‘치이이익’ 소리를 냈다. 시뻘건 고기 덩어리는 이내 커피색으로 변해갔다. 돼지갈비 양념은 다종다양하다. 간장이나 고추장을 기본으로 생강, 마늘, 파, 소주 등을 넣는 경우가 다수지만 특이하게 한방 재료나 춘장을 넣는 집도 있다. 그 이혼 사건에서 돼지갈빗집 사장인 부인은 양념에 커피를 넣었다. 커피를 넣으면 고기의 누린내가 없어지고 맛도 고급스러워진다고 했다. 그것이 원고 식당에 손님이 많은 비결이었다. 

남편에 대한 통화 내역 조회 결과가 도착했다. 살펴보니 과연 피고는 재판 직전까지 수시로 두 명의 내연녀와 장시간 통화를 했다. 통화는 밤과 새벽에 집중됐다. 그럼에도 피고는 외도를 부인했다. 그녀들이 말이 잘 통해 그냥 통화를 했을 뿐이지 실제 만난 적은 거의 없다고 했다. 심지어 전화를 자주 한 것이 만나지 않았다는 증거라는 논리도 폈다. 

남편이 이혼을 당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이유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이혼을 하면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음으로, 양으로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는 돼지갈빗집이라는 직장을 잃게 된다. 이제 와서 다른 직장을 구하기도 어렵다. 그러면 여자를 사귈 수 없다. 수임료가 꽤 비싸 보이는 전관 변호사를 구해 방어에 나선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 수임료도 결국 돼지갈빗집에서 슬쩍한 돈으로 지불되겠지만. 

통화 내역으로 남편의 외도 사실이 드러나자 남편과 그의 변호사는 이혼을 면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으로 원고의 외도 사실을 찾기 시작했다. 원고도 외도를 했다면 그 역시 혼인 관계 파탄에 책임이 있는 이른바 ‘유책배우자’가 될 것이고,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게 판례이기 때문이다. 

이에 남편 변호사는 법정에서 부인에 대한 통화 내역 조회와 출입국기록 조회를 신청했다. 그리고 한 달 뒤 법정에 나타난 남편은 마치 산삼이라도 발견한 심마니처럼 문서들을 한 손에 들어 올리며 득의양양하게 직접 말했다. 

“재판장님. 원고가 바람을 피웠다는 증거를 제출하는 바입니다. 원고는 J라는 작자하고 몇 년 전부터 밤낮없이 수시로 전화 통화를 해왔습니다. 출입국 기록을 보면 원고가 몇 달 전에 홍콩에 다녀왔는데 그때도 J라는 놈과 같이 다녀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가 이렇게 추잡스러운 짓을 하고도 그걸 덮으려고 선수를 쳐서 내가 바람을 피웠다고 우긴 것입니다. 재판장님, 원고를 엄히 처벌해주시고 다시는 이혼소송을 못 하게 해주십시오.”
자기 아내가 바람을 피웠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그토록 반가워하는 남편은 처음 보았다. 그의 표정은 마치 내가 어릴 적 아버지 월급날에 돼지갈빗집으로 향할 때처럼 환했다. 그때 내가 대꾸할 겨를도 없이 부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남편에게 삿대질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이 인간아. J가 니 사위다. 얼마나 집구석에 관심이 없으면 니는 니 사위 이름도 모르나? 딸 이름은 기억하나? 니가 설 연휴 동안에도 바람을 피우느라 집구석에 안 들어올 때 내하고 니 딸하고 니 사위하고 이렇게 홍콩 다녀왔다, 이 썩을 인간아.” 

위풍당당하던 피고는 그 말에 해머로 머리를 맞기라도 한 것처럼 멍한 표정으로 자리에 털썩 앉더니 입을 다물어버렸다. 이어서 그토록 이혼하지 않겠다고 버티던 입장을 뒤집고 이혼에도 응하겠다고 말했다. 뜻밖이었다. 자기 사위의 이름조차 모른다는 것이 창피하고 한심한 일이기는 하지만 외도에 비하면 덜 나쁜 일 아닌가. 외도의 증거 앞에서도 끄떡없던 그가 왜 사위의 이름조차 몰랐다는 사실에 무너진 것일까.


돼지갈빗집 사장의 눈물

나는 이제 당사자들 사이에 이혼은 합의됐으니 다음 기일까지 재산 분할에 대해 입장을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부인이 울기 시작했다. 이혼이 합의됐다는 판사의 말에 이혼을 거부하던 남편은 덤덤하게 받아들이는데 아내는 오열하기 시작했다. 묻고 싶은 말도, 하고 싶은 말도 적지 않았지만 모두 삼켰다. 판결로만 말하는 판사는 법정에서 말을 줄여야 한다. 

하얀 마늘을 불판 위에 뿌렸다. 마늘을 오래 구우면 드센 맛이 사라지고 부드러워진다. 그러나 나는 어느 정도 드센 맛을 좋아하기 때문에 부러 마늘을 늦게 넣는다. 달걀 반숙처럼 절반만 익히는 것이다. 내 어릴 적 돼지갈빗집에서 아버지가 그랬다. 그때의 나는 마늘도, 달걀도 완숙이 아니면 먹지 못했다. 반숙을 먹는 아버지를 도통 이해하지 못했다. 마늘도, 달걀도, 삶의 방식도. 문득 내 월급으로 아버지에게 돼지갈비를 몇 번 사드리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음에 아버지와 돼지갈비를 먹을 때에는 물론 마늘은 반숙으로 구울 것이다. 

고기가 어느 정도 익은 것 같아서 왼손에 잡은 집게로 고기를 집어 들고, 오른손의 가위로는 고기를 최대한 두껍게 잘랐다. 고기는 두꺼울수록 씹는 맛이 살아난다. 생고기를 두껍게 자르면 속이 제대로 익지 않지만 양념갈비는 칼질이 돼 있어서 속이 잘 익기 때문에 두껍게 잘라도 무방하다. 

고기 한 점을 집어 먹어보았다. 양념과 육즙이 해안가의 파도처럼 어금니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었다. 고소하고도 달짝지근했다. 단맛을 배로 낸 것인지, 설탕으로 낸 것인지, 물엿으로 낸 것인지 궁금했다. 고기를 한 번씩 더 씹을 때마다 양념과 육즙과 내 침의 아밀라아제가 뒤섞이는 농도가 달라져 맛이 다르게 느껴졌다. 나는 만족감에 취해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혼자서 씩 웃었다. 마치 소가 웃듯이. 

나는 소주 한 병을 시켜 혼자 잔을 따르고 한입에 털어 넣었다. 한두 잔 더 마시자 예전 그 이혼소송의 부인이 내 맞은편 자리에 소환됐다. 재판 때 본 것보다 훨씬 편해진 얼굴이었다. 나는 잔을 들고 그녀의 잔과 부딪치고는 그때 법정에서 삼켰던 말들을 끄집어냈다. 

“이혼이 합의되고 펑펑 우시던데 어떤 마음으로 우신 겁니까? 저는 그 울음소리가 원고께서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는 소리로 들렸습니다. 마치 커다란 오토바이가 질주하기 전에 ‘붕붕붕붕붕’ 하는 소리처럼. 그동안 열심히 사셨고 돈도 많이 벌었으니 이제는 원고께서도 인생을 즐기셔도 되지 않겠습니까? 돼지갈비 말고 다른 맛있는 것들도 사 먹고, 돼지갈비 냄새가 얼씬도 못 하도록 좋은 향수도 뿌리고.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근사한 새 남자도 만나고.” 

그녀는 말없이 허허 웃다가 또 울기 시작했다. 나는 소주 한 잔을 더 들이켰다.


이혼소송 이기고 눈물 펑펑


정재민 | 혼밥을 즐기던 전직 판사이자 현 행정부 공무원. ‘사는 듯 사는 삶’에 관심 많은 작가. 쓴 책으로는 에세이 ‘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소설 ‘보헤미안랩소디’(제10회 세계문학상 대상작) 등이 있다.


신동아 2018년 11월 호

| 정재민 전 판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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