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호

유통 인사이드

‘더 싸게, 더 빨리’ 유통 치킨게임의 끝은?

마트·이커머스 모두 같이 망한다

  •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입력2019-05-0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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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90원 삼겹살·30분 배송…

    • 10년 전과 판박이 특가 경쟁에 배송 전쟁까지

    • 온·오프라인 유통업계 영업이익 급감 탓

    • 할인비용 분담에 납품업체 수익성도 훼손

    • 배송인력 노동조건 악화 불 보듯

    • 외형 성장해도 속 곪을 것

    ‘삼겹살 100g에 990원. 초저가. 가격 파괴’. 

    요즘 유통업계서는 가격경쟁이 한창이다. 초저가와 특가를 외치며 너도나도 경쟁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그런데 문구가 낯설지만은 않다. 10년 전 유통업계에서 똑같이 벌어졌던 일이기 때문이다. 

    2009년 롯데마트는 국내산 냉장 삼겹살 100g을 ‘단돈’ 990원에 판매해 인기를 끌었다. 이마트는 ‘990원 야채’를 기획해 매출을 끌어올렸다. 온라인 업체들도 이에 뒤지지 않았다. 당시 옥션은 대표 생필품 500여 개 품목을 최고 50%까지 할인해주는 ‘마트 대신 옥션’ 행사를 통해 말 그대로 대형마트와 전쟁을 선포했다. 

    2019년. 과거와 구분키 어려울 정도로 똑같은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마트는 ‘국민가격’이라는 이름으로 삼겹살 100g을 990원에 내놓으며 전선에 불을 지폈다. 이에 질세라 롯데마트와 홈플러스도 대대적인 할인행사에 돌입했다. 온라인에서는 위메프나 티몬 등이 특가경쟁을 벌이고 있다.

    수익 급감 이마트·롯데마트

    물론 이 기업들이 가격경쟁에 나서는 이유는 있다. 어쩔 수 없이 내몰린 측면도 있다. 경기 침체로 소비자가 지갑을 닫는 등 악재가 겹쳤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의 실적은 눈에 띄게 추락하고 있다. 이마트의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20.9% 줄어든 4628억 원이었다. 같은 기간 롯데마트의 영업이익은 무려 79%나 줄어 84억 원에 그쳤다. 위기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대형마트가 이 흐름을 뒤집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 많다. 우선 소비자가 점차 온라인 쇼핑을 선호하고 있다. 대형마트의 강점으로 꼽히던 신선식품 시장에서 온라인 업체에 일부 자리를 내준 점도 악재다. 1인 가구 증가로 소비 패턴이 변해 편의점에도 고객을 뺏기고 있다. 

    온라인 업체라고 마냥 마음이 편치는 않다.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영역에서 이미 자리를 잡은 업체로는 G마켓과 옥션 등을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와 쿠팡, 11번가, 티몬, 위메프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 기업은 롯데와 신세계 등 오프라인 기반 대형 유통 업체들이 온라인 공략을 위해 대대적인 투자에 나서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마켓컬리나 배달의 민족 등 경쟁력 있는 스타트업이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점도 위협 요소다. 대부분 이커머스 업체는 매출을 빠르게 늘리고 있지만 수년째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커머스 업계 1위 이베이코리아 정도만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하는 상황이다. 

    10년 전과 달라진 건 없을까. 하나 있다. 출혈 경쟁이 가격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통업체들은 요즘 배송 전쟁까지 벌이고 있다. 누가 더 빨리 고객의 집 앞까지 주문 상품을 가져다 놓느냐를 두고 자존심 싸움을 펼치는 모양새다. 

    과거엔 주문 상품이 2~3일 만에 도착하면 ‘빠른 배송’으로 불렸다. 그러다 다음 날 배송해주는 ‘익일배송’ ‘로켓배송’이 등장하며 눈길을 끌었고, 최근에는 ‘당일배송’이나 주문 다음 날 새벽에 가져다주는 ‘새벽배송’까지 나왔다. 급기야 일부 업체는 ‘3시간 배송’ ‘30분 배송’까지 내세우는 실정이다. 

    게다가 이 배송도 구매 금액 3만~4만 원 등 일정 기준만 채우면 대체로 무료다. 얼마 전 대규모 투자 유치에 성공한 쿠팡은 ‘로켓 와우’라는 유료회원제에 가입만 하면 무조건 무료 배송을 해주는 이벤트를 하면서 고객을 끌어모았다. 이 서비스는 일정 기간 이후 조건 없이 해지할 수 있어 사실상 누구나 무료 배송 체험을 할 수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더 싼 가격에 더 빠르게 배송받을 수 있으니 나쁠 게 없다. 간단한 검색으로 더 싸게 팔고 있는 업체를 찾고, 클릭 몇 번으로 마치 장을 보듯 쇼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게 마련. 이런 변화가 혹여 부작용을 초래하는 것은 아닐지, 과연 지속 가능한 일인지 한 번쯤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가격경쟁. 국내 유통시장의 특징 중 하나는 ‘지배적 사업자’가 없다는 점이다. 이는 대부분 업체가 ‘충성 고객’, 즉 단골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유통업체들이 단순 가격경쟁에만 치우쳐 있다는 점도 원인 중 하나다. 싼 가격 외에는 특정 업체를 선택할 이유가 없어 뜨내기 고객만 넘쳐나기 때문이다. 

    가격경쟁은 불필요한 출혈을 초래한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쟁사의 할인 움직임에 대해 “무작정 가격을 내린다고 해서 답이 나오지는 않는다”며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라고 평가절하했었다. 정작 얼마 지나지 않아 해당 업체도 대규모 할인 행사에 나섰다. 누군가 가격을 내리면 다른 이들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줄줄이 따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할인 행사 참여해도 수수료율 변동 없어

    2019년 3월 3일 서울 용산구 이마트 용산점에서 시민들이 삼겹살을 구매하고 있다. 업체 측은 삼겹살데이(3월 3일)를 전후해 지정된 카드로 결제 시 삼겹살을 100g에 980원에 할인 판매했다. [동아일보 김재명 기자]

    2019년 3월 3일 서울 용산구 이마트 용산점에서 시민들이 삼겹살을 구매하고 있다. 업체 측은 삼겹살데이(3월 3일)를 전후해 지정된 카드로 결제 시 삼겹살을 100g에 980원에 할인 판매했다. [동아일보 김재명 기자]

    10년 전에도 전문가들은 유통업체들의 가격경쟁이 단기 실적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려는 틀리지 않았다. 유통업계 경쟁력이 뚜렷하게 떨어졌다고 할 수 없겠지만, 특별히 더 나아진 것도 없어서다. 10년 전과 똑같은 방식의 가격경쟁을 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유통업체의 가격경쟁은 납품업체의 수익성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납품업체들은 대형 유통업체가 할인 행사를 진행하면서 비용을 분담시키는 데 대해 불만의 목소리가 여전하다. 

    지난 3월 중소기업중앙회가 내놓은 ‘대규모 유통업체 거래 중소기업 애로 실태조사’에 따르면 백화점·대형마트 납품 중소기업 중 ‘할인 행사 참여 시 수수료율 변동이 없었다’는 응답은 33.8%로 집계됐다. 중기중앙회는 “납품업체들이 할인 행사에 참여하면서 마진을 줄이고 있지만, 그에 따른 수수료 인하는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배송 경쟁에서도 부작용이 초래될 가능성이 있다. 배송을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물류 창고’와 ‘배송 인력’이다. 먼저 배송 인력. 온라인 쇼핑 시장 성장으로 배송 물량은 급증하고 있지만, 배송 인력은 물량 증가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2017년 8월 30일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과 쿠팡맨대책위, 윤종오 무소속 의원(오른쪽)이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쿠팡노동조합 설립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2017년 8월 30일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과 쿠팡맨대책위, 윤종오 무소속 의원(오른쪽)이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쿠팡노동조합 설립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로켓배송으로 경쟁을 촉발한 쿠팡을 보자. 쿠팡의 배송 직원인 ‘쿠팡맨’은 5년 전쯤 배송 시장에 등장하자마자 친절한 서비스로 주목받으며 업계에서 화제가 됐다. 단순한 물건 배송을 넘어 간단한 손 편지를 써주거나 감동적인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등 과거 배송기사와 차별화한 서비스를 보여줘서다. 지금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과거 쿠팡맨이 친절했던 건 하루 배송 물량이 50~60개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하루 250개 안팎 물량을 소화해야 한다. 과거처럼 세심한 서비스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쿠팡은 2015년까지만 해도 쿠팡맨을 1만5000명까지 확충한다고 공언했었다. 지금은 이를 지키기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 쿠팡맨을 상시 채용하고 있지만 워낙 관두는 사람이 많은 탓이다. 현재 쿠팡맨은 4000명 정도로, 평균 근속 기간은 2년 미만으로 알려졌다. 업무량이 많아지니 버티기 어려울 거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급기야 쿠팡맨들은 노조를 만들어 회사를 상대로 투쟁에 나섰다. 이들은 열악한 노동조건과 처우 개선, 정규직 전환 확대 등을 요구했다. 

    얼마 전에는 국내 1위 택배사 CJ대한통운의 한 물류 터미널에서 연달아 사고가 났다. 사고가 CJ대한통운에서 터지긴 했지만, 택배 산업의 허술한 안전관리와 밤샘 작업 문제 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지자 ‘무조건 빨라야 한다’는 목표에 제동을 거는 분위기도 엿보이고 있다. 롯데마트는 지난해 말 ‘30분 배송’을 선보이겠다고 공언했지만, 배송 인력의 안전 문제 등이 지적돼 재검토에 들어갔다. 롯데마트 측이 기존보다 더 빠른 배송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는 건 맞다. 하지만 배송 시간을 ‘30분’이라고 못 박는 데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다. 

    물류 창고는 유통업체의 수익성 이슈와 직결돼 있다. 유통업체들은 너도나도 ‘물류 시스템’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 주문 상품을 찾고 이를 포장하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다. 상품 분류 로봇이나 인공지능, 빅데이터를 활용한 수요 예측 및 재고 관리 시스템 등 최신 기술을 속속 도입하는 추세다. 

    효율적인 물류 시스템은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적정 수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경쟁이 과열돼 자존심 싸움으로 흐를 경우 자칫 ‘치킨게임’ 양상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수시장은 한정돼 있는데 무작정 엄청난 금액을 투자하는 게 효율적 경영인지 회의적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약육강식의 생존게임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위메프는 최근 직매입 비중을 줄이고 있다. 납품업체들의 상품을 직접 사들여(직매입) 팔기보다 매매를 중개하는 데 무게 중심을 둔다는 의미다. 직매입의 경우 매출이 늘긴 하지만 물류·배송 등에 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결국 물류·배송에 불필요한 투자를 하지 않겠다는 전략이다. 

    시장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박종렬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다양한 형태의 사업자들이 대거 시장에 뛰어들고 있어 경쟁 심화에 따른 치킨게임이 본격화하고 있다”며 “약육강식의 치열한 생존 게임이 전개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경쟁 심화에 따른 마케팅 관련 비용 확대로 업체들의 수익성 악화가 우려된다.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 구축에 따른 투자비용과 감가상각비, 배송 차별화에 따른 물류비 증대, 최저가 할인 정책에 따른 마케팅 관련 비용 증가 요인을 외형 성장만으로 상쇄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한 가지 짚어봐야 할 문제가 있다. 환경문제다. 최근 신선식품 배송이 늘면서 과대 포장으로 인한 환경문제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신선도를 유지하려면 비닐 포장뿐만 아니라 스티로폼, 은박 보랭팩 등 일회용품 등 포장재가 많이 필요하다. 업체들도 이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눈앞에서 펼쳐지는 경쟁 탓에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 한 이커머스 업체 관계자는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제품을 빠르고 안전하게 고객에게 드리는 것”이라며 “당장은 어렵겠지만 신선식품 배송으로 인한 포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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