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호

[르포] 자영업자들 “알바 자르고 하루 15시간 일해”

  • 정보라 기자

    purple7@donga.com

    입력2019-05-04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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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 없으니 사채 빌려 써”

    • “60대가 고깃집 아르바이트 지원”

    • 박근혜 정부 말기 때보다 상가 공실률 ↑

    • “공장 출근해도 종일 놀다 간다”

    3월 18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머시닝밸리에 있는 부동산 중개소 출입문에 공장과 상가 건물 매매와 임대 관련 정보가 게시돼 있다. [정보라 기자]

    3월 18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머시닝밸리에 있는 부동산 중개소 출입문에 공장과 상가 건물 매매와 임대 관련 정보가 게시돼 있다. [정보라 기자]

    자영업 위기가 심상치 않다. 문재인 정부 출범 2년 만에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불경기·임대료 상승 등 반복돼온 고충에 새로운 비용부담이 곁들여져서다. 특히 2년 새 29% 오른 최저임금에 대한 불만이 켜켜이 쌓여 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날갯짓이 부정적 나비효과로 전이돼 자영업계를 뒤덮고 있는 모양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A씨는 “주변 식당 주인 대부분이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를 밀었다. 정작 현 정부 들어 연이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훨씬 힘들어졌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인건비 부담이 커져 종업원을 줄이고 주인이 더 일하는 식당이 많다”면서 “임대료까지 더 올랐다. 경기 불황, 최저임금 인상, 임대료 상승 삼중고로 결국 적자로 돌아선 업소가 많다”고 말했다. A씨가 말을 이었다. 

    “예전엔 어음을 주고 음식 재료를 구입했지만 요즘엔 현찰 결제를 요구받아요. 당장 돈이 없을 땐 사채를 빌려 쓰는 실정이에요.” 

    강원도 강릉시에서 3년째 고깃집을 운영하는 B씨도 “가게 규모가 큰 편이라 아르바이트생을 많이 채용했었는데 최근 (인건비) 감당이 안 돼 아르바이트생을 여럿 줄였다”고 말했다.

    “두드려 맞는 건 식당 사람들”

    B씨가 운영하는 가게 규모는 약 132㎡(40평)다. 15개의 테이블이 있고, 4~5회전 하루 평균 60~70 테이블이 나간다. B씨에 따르면 가게의 한 달 매출은 3500만 원 수준이다. 이 중 △인건비(파트타임 아르바이트생 6명) 700만 원 △대출금 상환 200만 원 △유지보수 비용 100만 원 △식재료 및 물품비용 1000만 원 △공과금 및 전기요금 200만 원 △임차료 90만 원 △기타 부대비용 510만 원을 지출한다. 도합 2800만 원이다. 



    그간 B씨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최저임금에 웃돈을 더 얹어 급여로 지급했다. 2017년 6470원이던 최저임금은 2018년과 2019년 각각 7530원, 8350원으로 올랐다. B씨는 “2017년 7000원, 2018년 8000원, 올해 8500원을 지급했다. 장기근속하면 보너스도 챙겨주고, 식사도 다 제공했다”면서 “이제는 제가 감당 못 할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 가게는 2017년 8시간 풀타임으로 근무하는 아르바이트생 3명을 고용하고 이와 별개로 점심, 저녁시간에 한해 파트타임 아르바이트생을 각각 2명씩 고용했다. 총 7명이다. 지금은 점심, 저녁시간에만 파트타임 아르바이트생을 각각 3명씩 고용한다. 숫자는 한 명 줄었지만 풀타임 직원을 다 내보냈다. 피고용자 입장에서는 양질의 일자리가 세 개나 사라져버린 셈이다. 식사시간을 제외하면 B씨가 홀로 가게를 지킨다. 그러니 노동량이 늘었다. B씨는 “2017년처럼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면 인건비가 200만 원은 더 나갔을 것”이라며 “200만 원을 줄이기 위해 하루 15시간씩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덧붙였다. 

    “임금 오른다고 매출이 오르지 않잖아요. 고정 지출비는 정해져 있는데 최저임금은 2년 동안 30% 가까이 올랐어요. 고기, 채소 같은 재료비를 조절할 수도 없어요. 줄일 수 있는 건 인건비 하나뿐입니다. 아르바이트생에게 높은 임금 제공하자는 정책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정부가) 자영업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거 같아요.” 

    최저임금 인상은 인건비뿐만 아니라 물가에도 영향을 끼쳤다. 휴지나 물티슈 등 식당서 필요한 공산품 가격도 올랐다. B씨는 “전반적인 물품 가격이 100~200원씩 야금야금 올랐다”며 “2017년 380만~390만 원 나가던 물품비가 지난해 400만 원을 넘었고, 올해 420만~430만 원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인건비가 오르니까 공장 납품 단가도 오른다. 결국 두드려 맞는 것은 식당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과로사회

    편의점주들의 불만 강도는 유독 거세다. 3월 25일 서울 선릉 BGF리테일 본사 인근에서 만난 최종열 씨는 대구 율하동에서 4년째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다. 최씨는 “55세에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할 일자리가 없어 퇴직금으로 편의점을 시작”했단다. 그는 “편의점 업종은 전체 비용 중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는다. 최저임금 인상이 수익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최씨는 가맹본부 인근에서 ‘상생을 촉구’하는 농성에 나서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불경기의 이중파고를 본부가 나눠야 한다는 뜻. 

    “정부와 가맹본부는 (개별) 편의점이 하루 평균 180만 원의 매출을 낸다고 합니다. 하지만 점주들이 판단하는 실제 평균매출은 120만~130만 원 정도예요. 손익분기점은 130만~140만 원 수준이라 매출이 120만 원 선이면 적자라고 봐야 해요. 하루 2000만~3000만 원 매출이 나오는 편의점까지 합산해서 통계를 내다 보니 평균 매출이 높아 보이죠.” 

    최씨 옆에 있던 박지훈(충북 충주에서 편의점 운영)씨는 “하루 매출이 60만~70만 원 나오는 점주들은 매달 200만 원씩 자기 돈을 넣는다”고 말을 보탰다.
    “매달 월세에 인건비를 내야 하니 대출 받아서 메우죠. 폐업하려면 (위약금으로) 수천만 원을 내야 해서 당장 폐업하기도 어려워요.” 

    적자를 줄여야 하니 남는 수단은 점주의 근무시간을 늘리는 것. 최씨는 “2017년 이전에는 8~10시간 근무했다면 지금은 기본으로 15~16시간씩 일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건비가 오르니) 아르바이트생 자르고 점주 근무시간만 늘고 있다”며 “소득주도성장이라고 해서 일자리 늘린다고 했는데 정반대로 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하루 종일 편의점에 얽매여 산다”는 게 그의 말. 옆에 있던 박씨도 거든다. 

    “몸이 아파도 병원은 물론 약국 갈 시간조차 없습니다. 아르바이트생 없이 혼자 19시간 편의점에서 근무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저도 하루에 13~14시간 일합니다. 계산대에서 쪽잠자다가 손님 오면 물건을 팝니다. 어떤 날은 하루 2~3시간 자면서 버텨요.” 

    박씨는 지난해 말부터 심야영업을 하지 않는 편의점이 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야간 매출은 늘지 않는데 인건비는 많이 올라 심야영업을 줄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4년 출점거리제한 폐지로 편의점이 우후죽순으로 늘기 시작했다. 박씨는 “전체 편의점 수가 늘어나면서 점포당 매출은 줄어들었다”며 “거기다 최저임금 인상 폭탄까지 맞은 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동네 가게 같은 편의점도 대기업과 동일하게 최저시급을 8350원 주라는 건 말이 안 된다. 최저임금 인상은 산업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정책”이라고 꼬집어 말했다.

    “꼭 좀 뽑아달라”

    3월 25일 서울 선릉 BGF리테일 본사 맞은편 ‘CU상생촉구’ 농성장에서 만난 편의점주 최종열(오른쪽), 박지훈(왼쪽) 씨. [정보라 기자]

    3월 25일 서울 선릉 BGF리테일 본사 맞은편 ‘CU상생촉구’ 농성장에서 만난 편의점주 최종열(오른쪽), 박지훈(왼쪽) 씨. [정보라 기자]

    자영업자들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일자리가 줄자 “제발 일하게 해달라”는 전화가 빗발친다고 말한다. 앞선 강릉의 고깃집 사장 B씨는 “며칠 전 아르바이트 공고를 올렸더니 30분 만에 전화 3통이 왔다”며 “어제 하루만 해도 전화 8~9통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2년 전에는 공고를 올리면 보름 후에 한 통 문의 전화를 받곤 했다. 이럴 때는 아르바이트생을 못 구하면 어떡하지 걱정했는데 이제는 채용 공고 올리면 전화가 바로 온다”고 설명했다. B씨는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연령대도 다양해졌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며칠 전 60대 남성으로부터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는 전화를 받았어요. 이분은 낮에 직장을 다니고 있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자식이 대학을 다니고 있어 학비가 모자라 저녁에 일하고 싶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런 분이 고깃집 아르바이트에 지원하는 걸 보고 경기가 심각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편의점주 박씨도 “2017년에는 아르바이트 공고를 올리면 하루에 1~2번 정도 전화가 왔다. 최근에 공고를 냈더니 10일 동안 50통의 전화가 왔다”고 말했다. 이어 “면접을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 꼭 좀 뽑아달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많이 달라질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나 문재인 정부나) 똑같고 대통령만 바뀌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문 대통령이 경제민주화 외쳤지만 피부에 와닿는 게 없어요. 최저임금만 오르고 경제민주화는 더디잖아요. 경제민주화가 된 다음에 최저임금을 올렸어야죠.” 

    상가, 오피스 등 상업용 부동산 공실률은 자영업 경기의 바로미터다. 경기가 좋을 때는 소비가 늘어 자영업이 호황을 이루고 공실률은 낮아진다. 경기가 나쁘면 소비가 줄어 자영업자들이 점포나 사무실을 내놓게 돼 공실률이 오른다. 한국감정원의 ‘상업용 부동산 임대동향’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소규모 상가, 중대형 상가, 오피스 공실률이 2017년 2분기부터 일제히 상승했다. 특히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2018년 3분기 5.58%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같은 해 4분기에는 이 비율이 5.32%로 낮아졌지만, 2017년 2분기(4.06%)와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다른 형태 상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2017년 2분기 9.56%였던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이듬해 4분기 10.77%로 올랐다. 같은 기간 오피스 공실률은 12.36%에서 12.42%로 상승했다.

    문래동 머시닝밸리 가보니…

    이는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의 상황과 대조적이다. 2017년 1분기 소규모 상가, 중대형 상가, 오피스,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각각 3.93%, 9.5%, 11.54%를 기록했다. 서울 금천구 Y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최근 1~2년 새 1층 상가에 공실률이 높아졌다. 진짜 어렵다는 이야기”라면서 “1층은 권리금이 형성돼 있다. 임차인이 상가를 빼고 나갈 때 권리금을 받으려고 한다. 오죽 장사가 안 되면 들어올 때 낸 권리금을 포기하고 나가겠나. 경기 침체 탓”이라고 설명했다. 

    불경기 직격탄은 소규모 제조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머시닝밸리’는 문래동 1~4가 지역에 있는 산업용 기계제작 단지다. 우리나라 최대 소공인(상시근로자 10명 미만 영세 제조업체) 집적지기도 하다. 제조업계의 자영업자들인 셈이다. 문래동에는 1300여 개 소규모 업체가 터를 잡고 밀집해 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일감이 부쩍 더 줄었다. 43년째 문래머시닝밸리에서 P부동산을 운영해온 C씨는 “공장 일거리가 많이 없다. 공장에 출근해 (종일) 놀다 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기자가 3월 18일 문래동 1~2가를 찾았을 때도 금속 가게의 25%가량이 문을 닫은 채 쉬고 있었다. 

    50년간 산업용 기계를 제조해온 H사의 D씨는 “이 골목에서는 큰집(공장) 몇 곳만 일하고 나머지는 거의 논다”고 말했다. 문래소공인특화지원센터 관계자도 “업체가 매년 수십 개씩 줄고 있다. 이 중 1인 사업자 분들이 80%를 차지하지만 그마저도 대규모 산업단지에 밀려 일감을 얻기 힘들다”고 호소했다. 설상가상 최저임금 인상의 파도도 문래동에 몰아치고 있다. 

    15년 동안 문래동에서 건물 세를 놓았다는 E씨는 “여기 사람들 위해 세를 내줄 거야? 기계를 사줄 거야? 봉급을 확 올려줄 거야? 최저임금 인상으로 봉급이 올라 결국 직원들 다 잘렸다. 그러니 사업을 축소해 주인 혼자 하는 곳이 늘었다”면서 “문래머시닝밸리 사람들 도와주려면 매출이 늘도록 실질적인 지원책이 있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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