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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고유정 사건’ 예방 국가가 나설 이유

이혼 후 면접교섭권 갈등… 사건사고 빈발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제2 고유정 사건’ 예방 국가가 나설 이유

  • ● “보여주기 싫다”는 양육자 VS “내 아이 내놓으라”는 비양육자
    ● 한 해 5만 명씩 쏟아지는 이혼 가정 아이들
    ● 이혼가정 미성년 자녀, 부모 손에만 맡겨두면 안 된다
    ● ‘비양육자와의 안전한 만남’ 보장하는 ‘이음누리’ 인기 급증
[뉴시스]

[뉴시스]

전남편을 살해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피고인 고유정의 공판준비기일이 7월 23일로 정해졌다. 이에 따라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이번 사건의 실체가 좀 더 분명히 드러날 전망이다. 

현재 경찰은 고유정이 자녀 양육을 둘러싸고 벌어진 전남편과의 갈등 때문에 범행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들이 한 명 있다. 피해자는 고유정과 이혼한 뒤에도 양육비를 꼬박꼬박 지급했다. 또 아들을 만나고자 계속 노력했다. 그러나 고유정은 이것이 재혼을 통해 새로 꾸린 가정에 위협이 될 것으로 우려했다. 

이혼 당시 법원은 전남편과 아들이 2주에 한 번씩 만날 수 있다고 판결했다. 고유정이 이를 지키지 않자 전남편은 다시 법원에 ‘면접교섭’을 요구하는 소를 냈다. 법원이 강제이행명령과 과태료 부과 처분을 내리자 결국 고유정은 전남편에게 아들을 만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두 사람은 제주도의 한 펜션을 만남 장소로 잡았다. 그러나 2년 만에 아들을 만날 생각에 들떠 있던 피해자는, 약속 당일 바로 그곳에서 살해당했다. 경찰에 따르면 고유정은 범행 보름 전부터 칼, 표백제, 고무장갑 등을 준비하며 치밀하게 살인을 계획했다. 대학원생이던 피해자의 연구실에서는 이혼 후 자녀와의 면접교섭 방법 등을 안내한 책자가 유품으로 발견됐다.


미성년 자녀를 둔 부부의 이혼

이혼가정의 미성년 자녀 면접교섭권을 둘러싼 갈등이 빈발하고 있다. 사진은 KBS 드라마 ‘사랑과 전쟁’의 한 장면. [동아DB]

이혼가정의 미성년 자녀 면접교섭권을 둘러싼 갈등이 빈발하고 있다. 사진은 KBS 드라마 ‘사랑과 전쟁’의 한 장면. [동아DB]

부부가 미성년 자녀를 둔 상태로 이혼하면 필연적으로 양육권 문제가 생긴다. 양육권은 자녀를 자신의 보호하에 두고 키우며 가르치는 과정에서 필요한 사항을 정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혼인 중에는 부부가 양육권을 공유한다. 하지만 이혼으로 생활이 분리되면 협의 또는 법원 결정을 통해 한쪽이 이를 행사하게 된다. 

단 비양육자라고 해서 부모가 아닌 건 아니다. 비양육자는 자녀와 서로 만나거나 편지 또는 전화 등을 할 수 있는 면접교섭권을 갖는다. 법원은 보통 판결문 등을 통해 면접교섭 횟수와 방법을 구체적으로 정해준다. 



지난해 7월 이혼한 A씨는 만 4세 딸을 직접 키우고자 했으나 법원이 아내 손을 들어줬다. 대신 그에게는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격주로 토요일과 일요일 각 10시부터 19시까지, 여름 및 겨울방학 중에는 각 2박 3일간 아이를 만나는 것이 보장됐다.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면접교섭 시간이 더욱 길어진다. 격주로 토요일 10시부터 일요일 19시까지 1박 2일, 방학 중에는 각 최장 6박 7일까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설날 및 추석 연휴에는 이와 별도로 1박 2일간 만나게 된다. 이 내용이 모두 판결문에 적혀 있다. 이미숙 법무법인 숭인 변호사는 “이혼은 부부 관계를 해소하는 것일 뿐 부모자식 관계에는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요즘 법원은 이혼 후에도 아이가 친부 친모와 지속적으로 교류할 수 있게 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혼가정 특성상 이 내용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고유정 사건에서 보듯 양육자가 법원 명령에 불복하고 자녀와 이혼 배우자 사이의 만남을 방해하는 사례가 적잖다. 반대로 비양육자가 자녀를 강제로 빼앗아가려 하는 등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많다. 

B씨는 2012년 남편 C씨의 폭행 때문에 협의이혼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2008년 태어난 딸이 있었다. 이혼 당시 부부는 양육권은 B씨가 갖고 C씨는 한 달에 한 번씩 정해진 장소에서 딸을 만나는 것에 합의했다. 이혼 후 광주에 직장을 잡은 C씨는 약속대로 매달 서울에 올라와 딸을 만났다. 그런데 2013년 2월 면접교섭 중 딸이 C씨에게 “엄마가 이제부터 큰아빠(현재 동거 중인 남자)를 아빠라고 부르라고 하는데 어떻게 하지?”라는 이야기를 했다. 화가 치민 C씨는 딸을 데리고 광주로 내려가 2주간 생활했다. B씨는 그 사이 경찰에 C씨를 유괴범으로 신고하고, 법원에 유아인도요청서도 제출했다. 결국 딸은 엄마에게 돌아갔다. 

다음 달에도 C씨는 딸과 만나기로 정해진 날 늘 만나던 장소에 나갔으나 B씨와 딸은 나오지 않았다. B씨는 C씨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한 달 뒤, C씨는 B씨가 법원에 ‘면접교섭권 박탈, 100m 이내 접근금지’를 청구하는 소를 낸 걸 알게 됐다. C씨는 B씨를 찾아가 복부, 옆구리 등을 10여 차례 칼로 찔러 사망케 했다.


끝없는 사건 사고

대법원은  2015년 6월 26일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 사건에 대한 공개 변론을 열었다. 이후 유책주의를 채택한 기존 판례를 유지했다. [뉴스1]

대법원은 2015년 6월 26일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 사건에 대한 공개 변론을 열었다. 이후 유책주의를 채택한 기존 판례를 유지했다. [뉴스1]

신혜성 서울가정법원 공보판사는 “가정법원 판사들 사이에서는 고유정 사건이 발생하기 전부터 면접교섭권 관련 문제에 대한 우려가 컸다. 이혼부부 사이 감정 싸움이 살인, 상해 등의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잖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최근 이혼이 늘면서 이 문제에 대한 위기감은 더욱 커지는 분위기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8년 혼인건수는 25만7600건으로 전년에 비해 2.6% 감소했다. 반면 이혼은 10만8700건으로 전년보다 2.5% 증가했다. 이 중 약 절반(45.4%)은 미성년 자녀를 둔 부부의 이혼이다. 한 해 5만 명 이상의 아이가 부모 이혼을 겪고 있는 셈이다. 이들의 양육권과 면접교섭 문제 등을 놓고 곳곳에서 줄다리기가 벌어진다. 

D씨는 이혼 후 전남편 집에 아들을 만나러 갔다가 전 시어머니 E씨에게 제지를 당하자 E씨의 가슴 등을 발로 걷어찼다. 손가락도 잡아 비틀어 약 6주의 치료가 필요한 상해를 입혔다. D씨는 이혼 당시 자유로운 면접교섭권을 보장받은 상태였다. 그러나 E씨는 사사건건 D씨가 아들을 만나는 걸 방해했다. 이에 대해 누적된 불만이 터진 것이다. 

F씨는 남편 G씨와 이혼 절차를 진행하던 중 양육권을 가진 남편이 만 3세 딸을 데리고 미국으로 나가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F씨가 이 소식을 접한 건 출국 이틀 전이었고, 남편은 그때까지 F씨에게 관련 내용을 알리지 않은 상태였다. F씨는 동생들과 함께 딸이 다니는 유치원에 가서 아이를 몰래 안고 나왔다가 미성년자 약취죄로 처벌받았다. 

이혼 사건을 주로 담당하는 한 변호사는 이에 대해 “면접교섭권 관련 범죄의 특징은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잘못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이혼소송은 양 당사자 모두에게 큰 상처를 남긴다. 그렇다 보니 아주 작은 일에도 비상식적이다 싶을 만큼 과잉 대응하는 경우가 많다. 미성년 자녀를 둘러싼 문제의 경우 더 그렇다. 양육자는 비양육자가 아이를 빼앗을까봐, 또는 자신에 대해 나쁜 이야기를 해 자녀와의 관계를 틀어지게 할까봐 걱정한다. 비양육자는 아이를 마음대로 볼 수 없는 상황에 분노한다. 양쪽 다 자기 잘못은 돌아보지 않는다. 그러다 범죄가 발생하면 누구도 처벌에 승복하지 못하고 오히려 분노를 더 키운다. 이것이 또 다른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한 판사는 우리나라가 ‘유책주의’를 취하는 것이 이 문제가 심화하는 배경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우리 법원은 혼인관계 파탄에 책임이 있는 배우자, 즉 유책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한다. 50년 넘게 이어져온 판례의 태도다. 이 때문에 이혼을 하려면 판사 앞에서 배우자의 잘못을 고발해 혼인 파탄 책임이 그쪽에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이혼법정은 누구 잘못이 더 큰지 따지는 치열한 싸움터가 되고, 양 당사자는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는다. 

반면 미국, 영국, 독일 등 상당수 나라는 부부가 상당 기간 별거하는 등 혼인생활이 파탄에 이르렀음이 확인되면 이혼을 허용한다. 누가 잘못했는지는 따지지 않는다. 이른바 파탄주의다. 전문가들은 “우리 법원이 유책주의 입장을 고수하는 한 면접교섭권을 둘러싼 갈등은 잦아들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혼이 끝나면 상대를 “우리 아이가 계속 만나봤자 좋은 영향을 받을 게 없는 사람”으로 여기게 되기 때문이다. 

엄경천 법무법인 가족 변호사는 “문제는 이러한 부모의 감정 다툼이 미성년 자녀 성장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상당수 아이는 양육자 영향을 받아 비양육자를 증오하게 된다. 반대로 비양육자에 대한 그리움을 양육자 앞에서 표현할 수 없어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도 있다. 어느 쪽이든 아이에게 좋을 리 없다. 이혼가정의 자녀는 이미 이혼 자체로 큰 아픔을 겪은 상태다. 그런데 사랑만 줘도 부족할 부모들이 계속 그 상처를 헤집으며 더 아프게 만든다.” 

일부 부모는 이혼소송 중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고 자녀에게 상대 배우자에 대한 험담을 퍼붓는다고 한다. 아이가 상대 배우자를 싫어해야 자신이 양육권을 가질 확률이 높아져서다. 이미숙 변호사는 “소송 단계부터 아이가 상대 배우자를 만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부모가 적잖다”고 전했다. 이혼 소송을 시작하며 아이를 데리고 아예 외국으로 나가버린 사례도 있다. 그러자 비양육자가 바로 해당국 법원에 ‘아동반환 소송’을 내 아이가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과거에는 양육자가 면접교섭을 방해하면 비양육자가 도리 없이 포기하곤 했다. 최근 분위기는 다르다. 자녀 수가 적고 부모 양쪽 다 양육에 대한 의지가 강해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해 싸운다. 법원 또한 비양육자의 면접교섭권을 최대한 보장해주는 추세라 최근 법적 분쟁과 갈등이 잦아지고 있다.” 

이명숙 변호사 얘기다. 엄경천 변호사도 그런 사례를 많이 봤다. 

“양육자 상당수는 아이가 비양육자와 관계를 이어가는 걸 원치 않는다. ‘아이가 오늘 아프다’ ‘학원에 가야 한다’ ‘갑자기 친구 생일파티가 잡혔다’ 등 여러 핑계를 댄다. 면접교섭 기일마다 이 문제로 갈등이 생기면 비양육자는 시간과 돈을 들여 법원에 이행명령을 신청한다. 이후에도 양육자가 계속 자녀를 만나는 걸 방해하면 ‘양육자 변경심판’을 청구하기도 한다. 법원을 드나들며 오랜 기간 싸워야 결론이 나는 재판이다. 결국 부모 양쪽 다 인생이 피폐해진다.” 

엄경천 변호사는 이것을 “수십 년간 계속되는 이혼소송”이라고 칭했다.


중립 공간에서의 면접교섭

이혼가정의 자녀가 비양육 부모와 만날 수 있는 서울가정법원 
이음누리 입구(오른쪽)와 면접교섭실 내부. [서울가정법원 제공]

이혼가정의 자녀가 비양육 부모와 만날 수 있는 서울가정법원 이음누리 입구(오른쪽)와 면접교섭실 내부. [서울가정법원 제공]

전문가들은 이런 문제를 피하려면 이혼을 해도 친부모자식 관계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또 그 관계를 이어가는 게 자녀한테도 결과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교육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민법 제837조의2 제1항은 “자(子)를 직접 양육하지 아니하는 부모의 일방과 자(子)는 상호 면접교섭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면접교섭권이 비양육자인 부모뿐 아니라 자녀의 권리이기도 하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 신혜성 판사는 “아이는 부모 이혼과 무관하게 두 사람 공동의 자녀다. 본인이 양육자라 해도 자녀가 비양육자를 만나는 걸 막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부모 양쪽이 이혼 소송 과정에서 면접교섭을 허용하지 않기로 합의했어도 마찬가지다. 법원은 친부 또는 친모가 알코올중독, 도박, 폭력 등으로 자녀의 안전을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등 매우 제한적인 상황을 제외하면 친부모와 자녀가 만나는 게 아이의 복리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다. 

2014년 11월 서울가정법원이 청사 1층에 면접교섭센터 ‘이음누리’를 만든 건 이런 이유에서다. 서울지하철 3호선 양재역에서 서울가정법원을 향해 걷다 보면 오른쪽으로 잘 정돈된 정원과 계단, 철문이 보인다. 이음누리 입구다. 현재 이혼소송 중이거나 이혼 후 면접교섭권 등과 관련된 분쟁으로 재판이 진행 중인 가정 자녀는 이곳에서 비양육부모를 만날 수 있다. 

아이가 약속 시각에 맞춰 도착해 이음누리 입구의 초인종을 누르면 담당자가 “OO(아이 이름) 왔니?” 하면서 반갑게 맞는다. 아이가 아버지 또는 어머니를 만나고자 딱딱한 법원 문을 들어서지 않도록 일부러 가정집과 같은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반면 비양육 부모는 법원 정문을 통과해 로비 쪽에 설치된 또 다른 문을 통해 이음누리로 들어간다. 아이를 데리고 온 양육자와 마주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이음누리 관계자는 “이음누리는 양육자와 비양육자 사이에 감정 정리가 되지 않아 면접교섭이 잘 이뤄지지 않는 가정을 대상으로 운영된다. 두 당사자가 마주쳐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면 아이가 상처를 받을 수 있어 설계 단계부터 동선에 신경 썼다”고 설명했다. 

이음누리는 영유아와 부모가 만나는 ‘이음방’, 초등학생 이상 어린이와 부모가 사용하는 ‘누리방’ 등 면접교섭실 2개와 이들을 지켜볼 수 있는 관찰실 1개, 당사자 대기실, 상담실 및 사무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약 110㎡ 규모다. 야외에는 놀이터 형식의 면접 공간 ‘햇빛누리’도 있다. 

7월 초 이음누리를 방문했을 때, 먼저 비양육자인 어머니가 도착해 당사자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 손을 잡은 어린이가 도로를 향해 있는 문을 열고 들어와 “엄마 만나러 왔어요” 하면서 활짝 웃었다. 아이가 아버지와 헤어져 이음방으로 들어가면 어머니가 대기실에서 나와 아이를 만나게 된다. 최장 1시간의 면접교섭 시간 동안 아버지는 별도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다. 

어머니와 아이가 만나는 방 안에는 캐릭터 인형을 비롯해 다양한 장난감이 놓여 있었다. 한쪽 벽면에 거울이 설치돼 있고, 그 너머에서 면접교섭전문위원 2명이 모든 과정을 참관하는 구조였다. 신혜성 판사는 “면접교섭전문위원은 심리학, 아동학, 상담학 등 각 분야 전문 지식을 가진 이들로 모두 32명이 있다. 이들이 2인 1조로 모든 면접교섭 과정에 참여한다”고 설명했다. 

면접교섭전문위원들은 만남 도중 비양육자가 부적절한 행동을 하지 않는지 관찰하고, 문제가 생기면 즉시 제지한다. 이음누리 관계자는 “가끔 아이의 양말에 구멍이 나 있다는 등의 사소한 이유로 비양육자가 양육자를 비난하며 화를 내는 경우가 있다. 또 양육자의 남녀관계에 대해 자녀한테 집요하게 질문하기도 한다.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즉시 면접교섭전문위원이 개입해 상황을 바로잡는다”고 밝혔다. 비양육자가 아이를 강제로 데려가려 하는 것 같은 불의의 상황에 대비하고자 보안요원도 상주한다. 양육자들은 이런 안전장치를 믿고 기꺼이 자녀를 이음누리에 데리고 온다.


“정부가 나서라”

일부 비양육자는 처음엔 “내 아이를 이런 환경에서 만나야 하다니” 하면서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에 적응하고 오히려 아이와 단둘이 지속적으로 만남을 가질 수 있는 점에 만족한다고 한다. 자녀와 만나는 과정에서 상대 배우자를 이해하게 되고, 이혼 부부 관계가 개선돼 재결합을 논의하기 시작한 사례도 있다. 이미숙 변호사는 “이음누리는 양육자 비양육자 자녀 모두에게 안전한 만남을 보장한다. 그래서 면접교섭권 문제로 갈등을 겪는 이혼 부부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 문제는 이용 기회를 잡기 어렵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서울가정법원 이음누리를 이용하려면 △법원에서 사건이 진행 중일 것 △자녀가 서울에 거주할 것 △자녀 나이가 만 13세 미만일 것 등의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이용 기간은 격주에 한 번씩 6개월이며, 필요에 따라 6개월 범위 내에서 연장할 수 있다. 관련 비용은 모두 무료다. 신혜성 판사는 “이음누리를 이용하기 원하는 사람이 매우 많은데 예산 문제로 공간과 인력을 늘리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반 신청을 못 받고 우리 법원에서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서만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런데도 주말에 이용하려면 6개월씩 기다려야 할 정도”라고 밝혔다. 

서울가정법원에서 이음누리가 큰 화제를 모으면서 인천, 광주 등의 가정법원도 관련 공간을 마련했으나 규모가 더욱 작다. 다른 지역에는 그마저도 없는 형편이다. 전문가들은 “만약 제주에 이음누리 같은 공간이 있었다면 고유정 사건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 때문에 “더 늦기 전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이혼가정 면접교섭권 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지방법원 판사는 “이혼이 날로 늘어나는 상황이다. 복지행정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풀어야지, 계속 사법부에 맡겨두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엄경천 변호사는 “국무총리실 산하에 후견청(後見廳) 같은 국가기관을 설립해 면접교섭과 양육비 문제 등 이혼가정의 후속 문제를 종합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마침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건강가정진흥원 양육비이행관리원이 최근 광주, 부산, 경기 여주 등 전국 여러 지역에서 면접교섭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노지선 한국건강가정진흥원 가족상담본부장은 “양육비이행관리원은 2014년부터 양육비 지급과 연계해 이혼가정의 면접교섭을 지원해왔다. 최근 관련법을 개정해 법적 근거를 만들었다. 앞으로 해당 업무를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면접교섭 문제로 고민하는 이혼가정 부모는 양육비이행관리원에 신청해 절차를 안내받을 수 있다. 

2017년 초등학생 딸을 둔 상태에서 이혼한 H씨는 현재 이 문제로 법적 대응을 검토중이다. 그는 “내 부정행위로 이혼한 탓에 아내가 딸과의 만남을 철저히 막았다. 나 또한 연락할 엄두를 못 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거리에서 딸 또래 여학생만 마주치면 눈물이 쏟아져 용기를 내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고 했다. 
 
“아내에게 씻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 하지만 딸은 만나고 싶다. 10년 넘게 모든 사랑을 기울여 키운 아이다. 이 시기를 놓치고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 영영 못 보게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법적 도움을 받아서라도 아버지 노릇을 하고 싶다.” 

H씨 얘기다. 그는 “이혼 당사자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자녀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신동아 2019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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