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호

기고

청년 거부하는 지방, 지방 거부하는 청년

‘수도권 공화국’이 절대 망할 수 없는 3가지 이유

  •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flyinghendrix@gmail.com

    입력2019-08-05 14: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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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심 집중화, 도시의 승리, 유랑 경험

    • 면적 11.8%인 수도권에 국민 49.9% 집적

    • 통근버스로 전국 각지에 ‘서울 사람’ 실어 날라야 ‘좋은 기업’

    • 고속도로, KTX, 항공망의 힘

    • ‘좋은 일자리’보다 중요한 건 ‘좋은 정주 환경’

    • ‘워라밸’ 보장돼야 지방 산다

    한국의 제조업체 사업장에서 가장 일이 안 되는 날이 언제일까? 아마 금요일 오후일 것이다. 직원들의 마음은 싱숭생숭하다. 누군가는 ‘불금(불타는 금요일)’이라서 그러리라는 생각을 할지 모르겠다. 틀렸다. 금요일 오후 6시를 좀 넘기면 울산, 거제, 여수, 광양 등 산업도시의 많은 사업장에는 수십 대의 버스가 들어찬다. 직원들은 근처에서 ‘한잔’ 할 생각이 아니라, 버스를 타고 상경할 생각에 마음이 들뜬다. 

    버스는 경부고속도로, 중부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 등 남북을 관통하는 ‘홀수 번호’ 고속도로를 누빈다. 신갈과 죽전의 정류장에 수원, 용인, 분당 등으로 향하는 직원들이 먼저 내리고, 강남 고속터미널이나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서울 강남으로 향하는 직원들이 내리고, 마지막으로 서울역 어디쯤에서 서울 강북이나 일산 등지로 갈 직원들이 버스 일정의 매듭을 짓는다. 버스에는 늘 같은 사람들이 탄다. 기러기 아빠나 비혼인 젊은 직원들이기 일쑤다.

    주말마다 고속도로 타는 사람들

    매주 주말 경북 김천혁신도시에서 수도권으로 공기업 직원들을 실어 나르는 통근버스 행렬. [김도균 객원기자]

    매주 주말 경북 김천혁신도시에서 수도권으로 공기업 직원들을 실어 나르는 통근버스 행렬. [김도균 객원기자]

    일요일 오후 5~6시가 되면 다시금 서울의 주요 탑승지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탑승지는 내렸던 장소의 역순이다. 전라도로, 경상도로 향하기 마련. 경기도나 충청권에 위치한 사업장이라고 특별히 달라지는 일은 없다. 역시나 회사들은 셔틀버스를 운행하면서 직원들을 수도권의 신도시와 서울로 나르고 데려온다. 

    좋은 회사는 지방 근무를 시키더라도 서울로 매주 운송해주는 회사이고, 보통 그런 회사는 대기업이다. 직원들을 수도권까지 통근시키는 것은 대기업의 중요한 복지 정책 중 하나다. 제조업체 직원들만 그런 게 아니다. 금요일 저녁 세종시 근처나 전국 각지의 혁신도시에서도 벌어지는 일이다. 공무원, 공기업 직원 역시 마찬가지로 셔틀버스를 타거나, 기차를 타고 또는 자가용을 몰고 수도권으로 향한다. 

    언젠가 부산의 금융 공기업 사장과 차를 마시면서 지방 근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일이 있다. 서울 지사에 가려고 젊은 직원들이 혈안이 돼 있는데, 그게 다 선배들이 설득을 잘 못해서란다. 자기는 직원을 이렇게 설득한단다. “아이 어릴 때는 바닷가를 끼고 노는 것이 평생에 좋은 경험이다. 부산에 좀 살다가 애들 클 때 서울 근무하면 된다.” 그 말이 내게는 사람이 사는 동안 언젠가는 꼭 서울에서 살아야 할 시점이 있다는 얘기처럼 들렸다. 평일에는 산업도시나 혁신도시, 세종시 등에서 일하지만 주말에는 수도권 주민으로 사는 사람이 많다. 그들에게서는 “어디서 일하든 나는 서울 사람이다” 하는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것 같다. 



    이러한 이야기는 한데 모여 수도권 집중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서울과 경기, 인천을 포함한 수도권 면적은 전 국토의 11.8%다. 그런데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를 보면 2019년 6월까지 수도권 인구는 전체 인구의 49.9%다. 조만간 수도권 인구 비중이 50%를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수도권 인구는 비수도권에 비해 산술적으로 7배 이상 과밀하다. 수도권 전철 1호선이 다니는 천안에서 급행을 타고 서울로 향하는 사람까지 셈하면 사실상 수도권 인구는 이미 절반을 넘는다고 볼 수 있다.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라는 말이나, 곧 죽어도 서울 10리 안팎에 살라고 자식들에게 권고했던 정약용의 말을 떠올려보면 서울 선호는 꽤나 오래된 것 같다. 실제로 1948년 이후 대한민국 역사의 인구 이동은 3년간의 전쟁을 제외하면 수도권 집중으로 대부분 설명할 수 있다. 1960년대 이래 산업화의 혜택을 받은 경부선(서울-부산) 구간을 제외하면 인구는 감소했고, 경부선 구간에서도 수도권 집중이 지속적으로 심화됐다. ‘인구 소멸’을 걱정하는 지금, 경기도의 인구는 지난 10년간 150만 명이 늘었다. 지역 문제를 수십 년간 지적해온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표현처럼 ‘서울 공화국’, 좀 더 외연을 넓히자면 ‘수도권 공화국’은 전혀 낯선 말이 아니다.

    제조업도 수도권으로

    정부서울청사와 외교부청사. [동아일보 김재명 기자]

    정부서울청사와 외교부청사. [동아일보 김재명 기자]

    수도권 집중 해소 목적으로 건설된 정부세종청사.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제공]

    수도권 집중 해소 목적으로 건설된 정부세종청사.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제공]

    수도권은 모든 면에서 대한민국의 중심이다. 금융, 언론, 교육, 정치의 중심이며 세종시가 탄생하기 전까지는 행정의 중심이기도 했다. 금융사와 주요 언론사는 종로 반경 3km 이내와, 마포 여의도 축에 집결해 있다. 정보기술(IT)산업은 가산디지털단지-테헤란밸리-판교·광교 테크노밸리의 축에 모여 있다. 취업시장에서 우위를 갖는 주요 명문 대학도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포스텍을 제외하면 모두 서울에 몰려 있다. 명문대는 20~30대 젊은 인재를 빨아들인다. 여성의 정규직 일자리도 수도권에 가장 많다. 청와대가 있는 광화문과 국회가 있는 여의도의 정치적 권위는 단 한 번도 위협받은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 산업’의 후방 산업이라 할 수 있는 각종 컨설팅 회사도 광화문과 여의도 중간 어딘가에 포진해 있다. 

    광화문 맞은편에 위치한 정부서울청사는 ‘세종 시대’를 맞아 형해화돼야 함이 마땅하나, 여전히 많은 정부 중앙 부처가 청와대와 국회 국정감사 등 긴밀한 업무 협조를 위해 ‘서울사무소’라는 명목으로 많은 수의 공무원을 서울에 남겨놨다. 사실상 정부종합청사의 역할을 내려놓지 않은 셈이다. 

    1990년대까지 수출을 이끄는 제조업 중심지는 영남이었으나, 그마저 수도권으로 향하고 있다. 1970년대부터 굴뚝산업이라 일컬어지는 남동임해(臨海)공업지역의 조선, 기계, 철강 산업이 더는 확장하지 못했다. 지금은 구조조정 위협에 놓여 있다. 21세기 제조업 한국을 이끄는 성장동력인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전기전자 산업은 수원을 중심으로 해 파주부터 천안까지의 동선에 넓게 펼쳐져 있다. 


    경기 용인시 처인구는 경북 구미 등 지방 경쟁 도시를 꺾고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유치에 성공했다. [김도균 객원기자]

    경기 용인시 처인구는 경북 구미 등 지방 경쟁 도시를 꺾고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유치에 성공했다. [김도균 객원기자]

    SK하이닉스는 3월 새로운 공장을 경기 용인에 짓기로 결정했다. 반도체 클러스터 유치를 위해 ‘간도 쓸개도 빼줄 준비’가 돼 있던 경북 구미를 철저히 외면했다. 그 이유는 “지식기반산업이라는 업(業)의 특성”을 고려할 때 용인이 최적지라는 것이다. 정부는 수도권 총량제를 완화해 SK하이닉스의 경기도 정착을 지원해주는 형국이다. 

    조금 더 세밀하게 살펴보자면 한국의 수도권 공화국화(化)는 3가지 요인 내지는 경향이 함께 엉키면서 ‘자가발전’하는 중이다. 첫 번째로 살펴볼 것이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중심으로의 집중’ 현상이다. 사실 인구의 수도권 집중은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경향이 아니다. 영국을 보면 최근 런던이 뚜렷이 확장되고 있다. 한때 제조업을 이끌었던 북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1970년대 이후 지속된 제조업의 쇠퇴와 몰락 속에서 인구가 반토막이 났다. 지금 한국이 부·울·경 제조업 실태에 대해 걱정하는 것과 같다. 

    1970년대 100만에 육박하던 맨체스터와 맨체스터 교외의 인구는 현재 50만 명에 그친다. 원래 영국은 4개의 나라가 연방을 이루며 균형과 분권을 이루려고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잉글랜드로 그리고 런던으로의 집중이 강화됐다. 새로이 생명기술(BT)이나 IT산업이 살아났으나 한국처럼 런던 반경 200km 안에 소재하기 일쑤였다. 

    프랑스의 수도권인 일드프랑스에도 1200만 명의 인구가 집중돼 있다. 이 지역은 지난 70년 동안 2배가 넘게 성장하며 주변 인구를 흡수하고 있다. 남한 면적의 2배인 영국이나, 5배인 프랑스나 결국 인구가 수도권에 집중되는 경향 자체는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수도권 공화국’ 건설을 부추기는 두 번째 원인은 ‘도시의 승리’와 광역 간 연결성의 강화다. 사람들은 농촌에서 도시로, 작은 도시에서 큰 도시로 향하고 있다. 한국의 도시화율은 2015년 기준 81.6%다. 226개 시·군·구 중 도시라고 분류할 수 있는 시와 구는 144개이고 3500개 읍·면·동 중 2000개가 넘는 구역이 동이다. 구역 수로는 63%에 지나지 않지만, 인구로는 절대다수가 도시에 산다.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 살더라도 호남 살면 광주로, 영남 살면 부산이나 대구 등 거점 도시로 인구가 이주한다. 일자리가 도시에 많기 때문이다. 그 도시 중에서 보편적으로 가장 경쟁력 있는 도시가 서울이다.

    광역 간 연결성 강화

    수도권을 가로지는 GTX-A 노선도. [동아DB]

    수도권을 가로지는 GTX-A 노선도. [동아DB]

    게다가 연결성이 이러한 흐름을 강화시켰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가 개통했고 현재 고속도로를 다 합치면 거리로 총연장 3000km를 넘는다. 철도의 고속화도 광역권을 신속하게 연결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KTX를 타면 2시간 30분이 걸린다. 현재 서울-진주는 KTX를 타도 3시간 30분이 걸리지만, 서부경남KTX가 개통되면 소요시간이 2시간으로 단축된다. 공항을 이용하면 전국은 1시간 이내로 연결된다. 저비용항공사(LCC)의 등장으로 항공 이동 가격은 기차와 비슷한 수준에 수렴되고 있다. 게다가 수도권의 넓은 면적은 도시철도로 촘촘하게 연결돼 있으며, 급행전철은 1시간 이내로 주요 구간을 구석구석 연결한다. 심지어 확장되는 수도권의 신도시 건설과 더불어 개통될 GTX는 더욱 더 짧은 시간에 통근하는 인구를 ‘모실’ 예정이다. 

    우리나라가 급속히 ‘수도권 공화국’이 되는 배경에는 이주와 유랑에 익숙한 한국인들의 경험도 놓여 있다. GM 공장이 떠난 미국 도시 제인즈빌 사람들의 고군분투를 다룬 책 ‘제인스빌 이야기’를 읽다 보면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하게 된다. 전환배치에 관한 것이다. GM은 제인즈빌 공장을 닫으면서 적지 않은 노동자에게 전환배치를 제안했다. 200~300km 떨어진 지역 공장으로 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차라리 해직당하고 전문대학에서 재교육을 받을지언정 마을을 떠나지 않는다. 토요일에 아이들 운동 경기 응원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 ‘아메리칸 드림’이 만들어낸 이민자의 나라는 너무 넓고 교외생활이 보편화돼 사람들로 하여금 이주를 꺼리게 한다. 

    하지만 한국 기업에서 이주를 포기하고 희망퇴직을 선택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낯선 곳에 가서 억척을 떨면서 정착해서 살아남는 것은 한국 사람들이 매우 잘하는 일이다. 기러기 아빠를 할 사람은 너무 많고 그 자체가 보편적인 현상이다. 만주국의 경험을 통해 한국 사회를 진단하는 사회학자 한석정 동아대 총장의 ‘만주 모던’은 이주와 유랑 생활이 100년도 넘은 우리 민족의 ‘전통’임을 보여준다. 

    1945년 광복 당시 일본과 만주에 살던 인구는 400만 명으로 당시 전체 인구의 20%에 달했다. 기회가 있는 곳을 찾아가는 경험은 100년 가까이 한국인의 습속 안에 각인돼 있다. 그런 견지에서 보면 한국인은 수도권이 기회가 가장 많기에 서울을 찾는 것이다. 

    수도권 집중이 왜 문제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 대도시권 간 입지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경쟁력 있는 수도권이 위상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 첨단 기술과 고급 인력에 기반을 둔 BT, IT 등 신성장동력을 육성하려면 대도시권 집적경제를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이른바 ‘브랜드 경쟁력’ 주의자의 논리다. 인구가 소멸하는 지방자치단체는 배후지 기능을 하면 되고, 국민 혈세인 중앙정부의 국비로 지방을 다 살릴 수는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것도 사실이다.

    수도권과 지방, 누가 기생하는가

    이 지점에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떠올려볼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누가 기생하는 사람들이고 어느 지역이 기생하고 있다는 말인가. 정준호 강원대 교수는 기생하는 것은 오히려 수도권임을 분명하게 밝힌다. 그의 논문 ‘지역 간 소득격차와 위험공유’(2018)와 ‘지역 간 경제적 격차의 실상과 원인’(2013)을 살펴보자. 울산의 경우 생산소득 기준으로 하면 전국에서 가장 부자 지자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SK이노베이션 등 중후장대 산업이 벌어들이는 돈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지역에 남는 돈, 즉 분배소득은 크지 않다. 서울에 주요 경영 기능과 조세 업무를 담당하는 본사가 있기 때문이다. 소득의 원천은 지방에 있는데 분배소득은 서울로 간다. 

    공장이 대거 입지하고 있는 산업도시의 생산직 밀집도는 수도권보다 훨씬 높다. 그러나 공장이 만들어내는 부는 주로 수도권으로 이전되고 생산직 노동자들이 가져간 몫은 역외유출분에 비하면 미미하다. 이렇게 지방 산업도시의 부가 수도권으로 이전되는 경제를 ‘분공장 경제’라고 한다. 수도권의 성장이 지방의 생산에 기생해온 것이다. 

    이제는 제조업 분야에서도 최종생산품 조립보다 연구개발과 설계, 엔지니어링 등 고부가가치 부문이 중시된다. 첨단산업이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생산소득마저 수도권으로 넘어가는 상황이다. 연구개발센터나 엔지니어링 센터는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수도권 근교에 자리 잡는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현장과의 물리적 연계 없이 설계도면을 제공하고 제품 개발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지방 산업도시 공장이 만들어낸 부를 수도권이 축적해 자체 팽창하게 된 상황이다. 

    지자체들은 적은 임금으로라도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광주형 일자리’를 유치하거나 현재 입지해 있는 공장들을 사수하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산업도시의 제조업 공장이 떠나고 나면 곧바로 평범한 지방 소도시가 겪는 ‘지방소멸’ 단계, 즉 20~30대가 사라지고 60대 이상이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조선업 구조조정을 겪은 거제도의 출생률은 2016년 2.3에서 2018년 1.8로 2년 만에 수직 하락했다. 

    지역 간 불균등 발전 상황은 경제적 왜곡만 발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정치적 분단도 만들어낸다. 영국에서는 북부 잉글랜드와 남부 잉글랜드의 격차와 상호간의 적대를 ‘남북 분단’이라고 한다. 남부 잉글랜드의 사무직과 전문직은 자신들이 번 돈으로 망해빠진 산업도시 연금생활자들의 복리후생을 돕는다며 불만이 많다. 쇠락한 산업도시 주민들은 남부 잉글랜드 사람들의 ‘잘난 체’를 ‘재수 없어’ 하며, 자신들의 일자리가 유럽 통합 후 ‘외국인 유입’으로 사라졌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왕년의 노동계급들은 2016년 브렉시트 버튼을 눌러버렸다. 한국의 비수도권 지방도시의 주요 제조업이 붕괴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수도권 집중화 문제를 푸는 것은 한편에서는 불균등 발전으로 인한 격차를 해소하는 것임과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정치적 통합이라는 민주주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물론 수도권 집중이 만들어내는 문제에 대한 해법은 지속적으로 모색돼 왔다. 먼저 양질의 일자리를 지역에 만들어 청년세대가 지역에 정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지역균형발전의 최소 조건이다. 그런데 한국고용정보원 이상호 박사는 ‘공간적 요인이 청년 대졸자의 하향취업에 미치는 효과’(2012)라는 논문에서 지자체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노력만으로 현재 상황을 극복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혁신도시나 대기업 사업장을 지역에 유치해 일자리를 만들었을 때, 유치 지역 청년들이 오히려 취업에서 소외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역균형선발 등을 통해 지역 인재를 일정부분 선발할 수는 있지만, 공개 경쟁을 통해 진입하는 인원 다수는 전국적으로 경쟁력 있는, 달리 말해 수도권 대학 출신 인재일 확률이 높다. 공기업 등에서 ‘블라인드 채용’을 통해 채용한 인원의 다수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출신이라는 최근 보도도 이러한 상황을 보여준다.

    혁신도시의 역설

    1970년 서울 부산 간 고속도로 개통 후 광역 간 연결성은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 [동아DB]

    1970년 서울 부산 간 고속도로 개통 후 광역 간 연결성은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 [동아DB]

    기러기 가족 생활을 감수하고 서울과의 연결을 끊지 않고 셔틀버스에 올라타는 청년들을 지역에서 안착하려는 청년보다 더 많이 채용하게 되는 딜레마. 물론 거점 국립대 출신들이 지역균형선발로 인해 차근차근 양질의 일자리에 들어가는 성과가 없는 건 아니지만, 같은 시간 지방 사립대 학생들은 아예 양질의 일자리를 포기하게 되는 악순환도 발생하고 있다. 학교 취업지원센터는 LH 등 지역 공기업 본사 채용에 대비하는 스터디반을 꾸리지만 성과는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 학생들은 스터디를 접고, 취업지원센터가 지원하는 중소기업 문을 두드리거나 학교에 있는 각종 연구원, 조교, 직원 자리에 저임금 계약직으로 채용된다. 특히 평범한 여학생의 경우 교사가 되는 게 아닌 이상 정규직 일자리가 거의 없다. 지방에서는 지금도 “여자는 졸업하고 서무 하다가 시집가면 된다”는 아버지들의 말이 잘 뒤집히지 않는다. 

    둘째,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지역에 있는 청년들에게 고르게 기회를 제공한다 해도 해결할 문제는 남는다. 행정구역 재편과는 차원이 다른 지역 기획이 나와야 풀릴 문제다. 마강래 중앙대 교수가 저서 ‘지방분권이 지방을 망친다’(2018)를 통해 제기한 지방분권의 딜레마 때문이다. 226개 기초지자체 같은 행정단위 중에는 100만 인구의 경기도 수원시와 1만8000명 인구의 경북 영양군이 있다. 두 도시가 같은 방식으로 분권을 하고 있는 게 현재 상황이다. 같은 행정단위지만 행정 서비스와 복지 수준은 다르다. 이러한 시·군·구 간 격차는 인구 유출로 인해 지방 소멸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세수 확보분의 차이로 인해 더욱 더 벌어지게 마련이다. 권역 간 소득격차는 작지만, 시·군·구 간 소득격차는 어마어마한 상황이다. 분권이라는 정치적 목표가 실질적으로 지역의 생존 가능성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준광역시급인 수원과 창원이나 성남은 대도시급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반면, 인구 소멸이 벌어지는 시·군·구에서는 아이를 낳을 산부인과를 찾기 힘든 지경이 된다. 

    마강래 교수의 해법은 작은 시·군·구 단위를 통합해 최소한의 행정 서비스와 복지 제공을 유지할 수 있는 ‘압축 도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좀 더 거시적으로는 권역을 묶어서 수도권(서울+인천+경기), 충청권(대전+세종+충남+충북), 대경권(대구+경북), 동남권(부산+울산+경남), 호남권(광주+전남+전북)의 5대 초광역 권역과 제주, 강원의 2대 권역을 병립시키는 5+2 형태의 초광역권 계획도 제안한다.

    지방 청년들의 ‘워라밸’

    이러한 초광역권 계획의 실무적인 핵심은 권역 내 연결성의 강화, 즉 교통망의 강화에 있다. 지방도시에 살면서 가장 답답한 것은 바로 차가 없으면 생활이 불편하다는 것이다. 수도권이 아닌 이상 광역시를 벗어나면 주민이 택할 수 있는 교통수단은 버스와 자가용, 택시뿐이다. 읍·면 단위로 가면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꼴로 다니는 경우도 적지 않고, 오후 10시가 넘어가면 택시와 자가용만 택할 수 있다. 전남 같은 경우 ‘어르신 100원 택시’ 같은 아이디어로 상황을 타개하기도 하지만, 젊은 세대에게 이러한 교통 상황은 정주를 거부하게 만드는 큰 요인 중 하나다. 기획재정부의 지방도시 일자리 계획에 항상 통근 차량에 대한 언급이 들어가는 것도 그런 이유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한 가장 확실한 수단은 도시 내 전철망을 확충하고 GTX 같은 광역철도망을 건설해 지역들을 촘촘하게 연결함으로써 주민들의 권역 내 이동과 도시 내 이동을 자유롭게 해주는 일이다. 나는 거제에서 근무하는 조선소 엔지니어가 퇴근한 뒤 지하철 요금 2000원을 내고 부산대 대학원까지 강의를 들으러 가는 상상을 한다. 일과 삶의 균형, 일과 학습의 병행이 수도권이 아닌 곳에서 어떻게 가능하게 할 것인가. 이것을 만들어내야 청년들이 지역에 정주하게 된다. 

    문화시설 인프라 투자보다 중요한 것이 교통을 통해 지역 연결망을 촘촘하게 엮어내는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프라 투자가 과연 정부의 예비타당성(예타) 검토 문턱을 넘을 수 있을까? 수도권 집중이 만들어내는 서울 공화국을 해소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최근 많이 나온다. 더불어 2020년에는 총선이 있고, 많은 예산이 추경을 통해 집행될 예정이다. 집행되는 돈의 효과야 물론 있을 것이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투자는 가능하면 통과시키겠다는 정부의 방향 제시 이후 다양한 정책이 예타 문턱을 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제대로 실행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들 아이디어를 한데 엮을 수 있는 큰 틀의 기획이고, 또한 그 기획을 현실화할 수 있는 계획이다. 

    얼마 전 서울에 취업했다가 비싼 생활비 때문에 다시 학교에 채용돼 내려온 마산 출신 제자가 대학원에 가겠다고 연구실을 찾아왔다. 서울의 대학원을 주말에 다니면서 ‘더 많이 버는 직장’만 찾으면 다시 서울에 가서 살겠다고 했다. 양질의 일자리에서 일할 기회가 없고, 일하면서 배울 기회가 없고, 여성들의 정규직 채용 기회가 없는 지역은 결국 청년에게 외면받고 소멸하게 된다. 악착을 떨면서 어떻게든 살려는 한국인에게 ‘살 만하다’는 생각이 들도록 정책이 작동하지 않으면 수도권 집중과 서울 공화국 현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양승훈
    ● 1982년 서울 출생
    ● 2012~2017 대우조선해양(주) 전략혁신담당 근무
    ● 現 경남대 사회학과 조교수
    ● 저서 : ‘사라진 영국의 산업도시’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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