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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東亞 | 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멸종위기종 ‘우리가 지켜줄게’

충남 청양 고운식물원

광릉요강꽃, 노랑붓꽃, 진노랑상사화… 까탈스러운 녀석들, 여기 다 모였네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충남 청양 고운식물원

충남 청양 고운식물원

고운식물원 설립자인 이주호 회장(왼쪽)과 아들 이광용 대표[조영철 기자].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꽃과 나무와 풀만 보면 ‘하냥’ 좋았다. 부산에서 학교를 다닐 때에도 그의 꿈은 식물원을 만드는 것이었고, 조경회사(고운조경)를 운영하면서 그 꿈을 차근차근 현실로 만들었다. 1990년 충남 청양 오봉산 자락에 36만㎡의 땅을 매입하고 13년의 준비 끝에 2003년 4월 28일 ‘고운식물원’을 개장했다. 이주호(72) 회장은 30년이 다 된 이야기지만 터를 잡고 직접 조경설계를 하고 식물을 식재하던 시절을 떠올리면 금세 목소리가 젖어든다.  

“전국에서 식물원 할 장소를 찾아다니다 이곳이 딱 눈에 들어왔어요. 숲이 얼마나 우거졌는지 마을 사람들은 호랑이 나온다며 발걸음도 안 하던 곳이었죠. 그런데 조경을 하는 제 눈에 북향에 야트막한 경사가 있는 이 산이야말로 천혜의 식물원 장소로 보이더군요.”

이 회장의 설명에 따르면 식물이 잘 자라려면 습도, 온도, 일광 세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하는데 북사면 음지에 습도 보전이 잘되는 곳일수록 식물의 성장 속도가 빠르다고 한다. 남들은 북향이라 꺼리는 이곳에 고운식물원이 자리 잡게 된 이유다.

하지만 국내 조경설계 1호라는 자부심으로 살아온 그도 놓친 게 있었다. 막상 식물을 식재하려 하니 돌산이었다. 돌을 캐내는 데만 17개월이 걸렸다. 식물이 자랄 수 있는 땅으로 만드는 데 3년이 훌쩍 지나갔다. 그사이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조경회사에서 번 돈을 식물원에 쏟아부으면서도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었다. 1990년대 아파트 건설 붐이 일어나면서 고운조경은 전국 조경업체 실적 1위를 기록하며 큰돈도 벌어봤지만 식물을 키우는 일은 차원이 다른 즐거움이었다.



조경으로 번 돈 쏟아부어  

충남 청양 고운식물원

아름다운 자태를 선보인 새우란[사진제공·고운식물원].

그의 주머니가 가벼워질수록 식물원은 제 모습을 찾아갔다. 산악 지형을 활용한 완만한 산책길을 따라 33개 크고 작은 정원이 있고, 8600여 종의 식물이 이곳을 새 보금자리로 삼았다. 이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는 꽃등길, 달물결길, 꽃구름길, 돋을볕길, 바람비길, 하늘갓길, 늘솔길, 늑대별길, 여우별길, 비꽃길, 서리꽃길 같은 예쁜 이름이 붙었다.

한편 식물원이 사람들에게 ‘힐링’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생물 자원을 보전할 책임도 있다고 판단한 이 회장은 “남들이 못하면 우리라도 해야 한다”면서 광릉요강꽃을 비롯해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식물 35종을 돌보고 있다. 2010년 9월 고운식물원은 노랑붓꽃, 광릉요강꽃, 독미나리, 층층둥굴레, 진노랑상사화 등 5종의 서식지외보전기관으로 지정됐다.

그리고 2012년 이주호 회장은 중대 결심을 했다. 42년 6개월 동안 운영해온 조경회사를 대기업에 넘기고 고운식물원에서 오로지 꽃, 나무, 풀과 살기로 했다. 그런 그를 두고 남들은 미쳤다고 했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식물원을 만든다며 20년 새 쏟아부은 돈이 200억 원가량 된다면 말이다.

3월 8일 고운식물원 주변 자연은 여전히 무채색에 가까웠지만 땅과 식물들은 겨우내 품고 있던 봄기운을 한껏 밀어 올릴 채비를 하고 있었다. 4월 1일부터 5월 16일까지 열리는 ‘고운 새우란·광릉요강꽃 전시회’를 앞두고 온실에서는 이들의 꽃 피우기가 한창이었다.

새우란(새우난초)은 뿌리줄기에 새우 등처럼 생긴 마디가 있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꽃대가 30~50cm까지 자라며 화려하고 다양한 색상의 꽃을 피워 애란인(愛蘭人)들 사이에서 “한 번 보면 반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다. 새우란은 국내에서 환경부의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지 않고 산림청 희귀식물로만 분류돼 있다. 전 세계적으로 200여 종이 자생하고 우리나라에는 원종 4종과 자연교잡종 2종 등 모두 6종이 서해안 일부 지역과 섬, 제주도에서 발견되고 있다. 고운식물원은 현재 새우란 원종 6종을 비롯해 교배실험을 통해 얻은 100종, 300개체를 보유하고 있다.

멸종위기 식물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는 지수진(49) 고운식물원 이사는 “우리나라에서 신안새우란과 다도새우란이 발견됐다는 사실이 식물분류학회에 보고된 후 미국난협회와 영국왕립원예학회를 비롯해 일본, 중국, 대만 등지에서 축하 메시지를 보내올 만큼 큰 관심을 모았다”며 “신안새우란의 경우 2009년 흑산도에서 처음 발견됐으나 남획으로 자취를 감췄다가 최근 신안군의 한 섬에서 재발견됐다”고 설명했다. 4월 전시에서는 새우란, 금새우란, 신안새우란, 다도새우란, 한라새우란 등 5종의 새우란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까탈스러운 광릉요강꽃

충남 청양 고운식물원

고운식물원의 멸종위기 식물지킴이인 지수진 이사가 ‘고운 새우란·광릉요강꽃 전 시회’(4월 1일~5월 16일)를 앞두고 온실에서 새우란을 돌보고 있다[조영철 기자].

광릉요강꽃은 고운식물원을 대표하는 멸종위기종이자 세계적인 희귀식물이다. 1931년 경기도 광릉 지역에서 처음 발견돼 광릉요강꽃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무주 덕유산, 경기 가평, 강원 화천, 충북 영동, 전남 광양 등에서 자생하는 것이 확인돼 전국에 약 1000개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고운식물원에만 97개가 있다. 잎만 보면 흔한 쌈채소처럼 보이는 이 꽃이 왜 멸종위기종이 됐을까. 지 이사는 식용이 가능하다는 것과 ‘까다로운 성질’을 원인으로 꼽았다.

“광릉요강꽃 잎이 호박잎처럼 넓적하고 커요. 줄기는 옅은 단맛이 나고 뿌리를 건드리면 살짝 지린내가 나서 요강꽃이라고 하죠. 예전에는 잎을 따서 쌈을 싸 먹었어요. 더욱이 중부지방에 비해 남쪽지방 사람들이 쌈채소를 선호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남쪽에선 광릉요강꽃이 완전히 사라졌어요. 현재 중북부 지방에서만 간간이 자생지가 발견되고 있죠.”

광릉요강꽃은 조그만 충격에도 생육을 멈추고 살짝 순만 내민 채 ‘자랄까 말까’ 눈치를 보는 특성이 있다. 그때 짐승이 그 지역을 돌아다니거나 잎을 뜯으려고 사람이 들어와 순을 밟으면 광릉요강꽃은 바로 성장을 멈추고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버린다. 그리고 1년 뒤 다시 세상에 나올까 말까 관망하는 것이다. 쌈잎 한두 장 따려다 자칫 그 주변 수백 개의 순을 밟아버리면 광릉요강꽃은 순식간에 없어진다. 사라지는 것은 한순간인데 살리기는 너무 어려운 게 멸종위기종의 공통점이다. 이처럼 까탈스러운 녀석이 청양 고운식물원에 안착한 까닭은 무엇일까.

“광릉요강꽃은 싹이 틀 때와 성장할 때 필요한 환경이 정반대예요. 종자가 떨어져 처음 싹이 나올 때에는 햇빛이 필요해요. 그런데 잎이 크고 꽃을 피우려면 그늘이 져야 해요. 또 싹이 틀 때에는 땅 밑에 물이 흘러 흙이 축축해야 하고, 잎이 클 때에는 물이 잘 빠져서 땅은 말라 있어도 지상에 수분이 있어야 해요.”

광릉요강꽃은 싹을 틔운 뒤 다래나 어름덩굴이 번져 위로 올라가 그늘을 만들어주면 무럭무럭 자란다. 그 옆에 자그마한 개울이 있어 흐르는 물이 자갈에 부딪혀 공중으로 습기를 살포하면 광릉요강꽃의 서식 환경으로는 금상첨화.

“그런데 누군가 그 덩굴을 싹 걷어버리면 광릉요강꽃은 살지 못하죠. 대한민국에 이런 생육환경을 갖춘 곳이 몇 군데 없어요.”

실제로 6년 전쯤 고운식물원 내 개울가에 심어둔 광릉요강꽃이 수해로 쓸려가면서 90개 중 달랑 3개만 남은 적이 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쓸려간 흙더미에서 4개가 더 발견돼 현재 97개까지 증식에 성공했다. 내년에는 160개까지 개체수를 늘릴 예정이다.



누구나 사랑하는 진노랑상사화

북향인 고운식물원은 겨울철엔 오전 11시에 해가 뜨고 오후 3시 반이면 진다고 할 만큼 그늘이 넓게 드리워진다. 특별히 차광을 하지 않아도 차광 효과가 나서 난과 식물엔 안성맞춤이다. 흐르는 물의 수량은 적은데 갈수기에도 절대 마르지는 않는 것도 장점이다. 공중습도와 땅 습도를 적당히 맞출 수 있다. 그 덕분인지 화려한 꽃을 피우는 식물들보다 수수한 식물들이 잘 자라는 편이다. 하지만 이곳의 진노랑상사화만큼은 어느 꽃보다 화려한 빛깔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진노랑상사화는 아이러니하게도 사랑받기에 멸종위기종이 된 식물이다.

“빨간 꽃 다음으로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게 노란 꽃이에요. 진노랑은 더 예쁘니까 손이 가죠. 바로 캐다가 자기 마당에 옮겨 심어요. 배고프던 시절에는 꽃이 진 뒤 알뿌리를 캐서 죽을 쒀 먹기도 했어요.”



너무 잘 자라서 탈인 노랑붓꽃

서식지외보전기관으로서 고운식물원이 관리하는 꽃 중 노랑붓꽃이 있다. 자연 상태에서 비교적 잘 자라는 식물인데 왜 멸종위기에 처했을까.

노랑붓꽃은 양지 바른 모래땅, 옆에는 물이 흐르고 소나무가 적당히 그늘을 만들어주는 곳을 좋아한다. 문제는 너무 잘 자라서 개체 밀도가 높아지면 성장을 멈춰버리고 일종의 자살을 선택한다. 60~70개씩 뭉쳐 있다가 한두 개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죽는 것이다. 그래서 3년에 한 번씩 사람이 직접 포기나누기(분주)를 해줘야 한다. 지 이사는 “멸종될 이유가 없는 ‘애’인데 사람이 손을 대면서 자생력을 잃었다”고 말한다.

“노랑붓꽃은 물가에서 자라요. 물이 범람하면서 흙이 쓸려 내려갈 때 식물이 주저앉으면서 자연스럽게 포기가 나뉘죠. 잡초가 포기 사이에 끼어들면서 저절로 나눠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서식환경이 바뀌면서 사람이 개입하지 않으면 식물 스스로 성장할 수 없게 된 거죠.”  

노랑붓꽃의 약점은 또 있다. 개화기간이 3일 정도로 짧다 보니 관상용으로 인기가 없는 것. 반면 노랑붓꽃과 생김새가 거의 같은 금붓꽃은 8~10일까지 꽃이 피어 원예용으로 널리 퍼져 있다. 짧은 개화기간 때문에 푸대접을 받는 노랑붓꽃이지만 고운식물원에서는 아낌없는 사랑을 받으며 쑥쑥 개체수를 늘려 현재 292개가 됐다. 그뿐만 아니라 노랑붓꽃에서 흰꽃이 피는 변이종이 나오는 개가도 올렸다. 식물원 측은 흰노랑붓꽃의 신품종 등록을 준비 중이다.

둥굴레 종류 중 크기가 가장 작은 층층둥굴레도 한방에서 약재로 사용되고 구황식물이어서 쓸모가 많은 덕분에 멸종위기에 처했다. 사람의 발길이 닿는 곳에서 자라는 것은 다 채취해버렸다. 현재 깊은 계곡 절벽 아래 모래 둔치에서 자생하는 층층둥굴레가 보고되는 정도이나 다행히 고운식물원에만 1250개 이상 있다. 같은 멸종위기 2급 독미나리도 고운식물원에서는 보전과 증식에 큰 어려움 없이 85개를 보유하고 있다.

그 밖에도 고운식물원에는 가시오갈피, 가시연꽃, 개가시나무, 개병풍, 나도승마, 단양쑥부쟁이, 대청부채, 매화마름, 무주나무, 미선나무, 복주머니란, 삼백초, 석곡, 섬개야광나무, 섬시호, 섬현삼, 솔붓꽃, 순채, 연잎꿩의다리, 왕제비꽃, 제비붓꽃, 죽절초, 파초일엽, 풍란, 황근 등 많은 멸종위기 식물이 있다. 이름을 불러주고 지켜주지 않으면 언젠가 우리 곁에서 영영 사라질지도 모르는 생명들이다. 한 개인의 열정과 의지 하나로 버텨온 고운식물원 역시 사람들이 찾아주지 않으면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주호 회장의 아들 이광용(36) 고운식물원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사설 식물원들은 살아남는 것이 첫 번째 목표입니다. 멸종위기 식물을 지키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힐링’의 장소로서 식물원이 더 많은 사랑을 받기 바랍니다.” 

서식지외보전기관과 ‘우리가 지켜줄게’ 캠페인야생 동식물은 기본적으로 서식지에서 보전하는 것이 최우선이지만, 서식지가 파괴되고 밀렵 등의 남획으로 서식지에서 멸종했거나 멸종위기에 처한 경우 서식지를 옮겨 보호하고자 ‘서식지외보전기관’ 제도가 도입됐다. 사단법인 한국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는 2008년 협의회로 시작해 2010년 협회로 전환한 뒤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이 회장으로 협회를 이끌고 있다. 현재 서식지외보전기관은 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을 비롯해 올해 3월 새로 지정된 강원 화천군 한국수달연구센터를 포함해 25곳이 있다. ‘신동아’는 한국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와 공동으로 멸종위기종 ‘우리가 지켜줄게’ 캠페인을 전개한다.




입력 2017-03-21 15:32:14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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