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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는 장난치지 말라

  • 정재민|전 판사·소설가

정의로는 장난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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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는 장난치지 말라

스테인드글라스에 새겨진 \'정의의 여신\'

형사재판에서 재판장이 피고인 신원을 확인하는 ‘인정신문’이 끝나면 검사의 ‘모두(冒頭)진술’이 시작된다. 모두진술은 검사가 공소장을 낭독하는 절차다. 가령 이렇게 말하는 식이다.

“피고인은 10여 명의 행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음주측정을 요구하는 경찰관 XXX에게, ‘어라, 이 놈 봐라, 원숭이 닮았네. 어이, 원숭이! 원숭이가 왜 사람을 단속하고 XX이야. 원숭이가 경찰이면 나는 대통령이다. 너 엉덩이 빨갛지? 집에 가서 엉덩이에 파란 매니큐어 칠하면서 엄마한테서 바나나 우유나 빨아먹어 이 원숭이 XX야’라고 말하여 공연히 경찰관 XXX를 모욕하였다는 것입니다.”

공소장은 검사가 피고인의 공소사실, 죄명, 적용 법조를 적은 문서다. 다른 공문서처럼 기관의 장이 날인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검사가 자기 이름을 서명한다. 분량은 두서너 장이 대부분이지만 수십, 수백 장에 달할 때도 적지 않다.

공소장은 검경의 수사를 마감하는 자물쇠이자 형사재판의 문을 여는 열쇠다. 민사재판이 원고의 소장으로 시작되듯 형사재판은 검사의 공소장으로 시작된다. 형사재판은 결국 공소장의 내용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는 절차라고 할 수 있다. 공소장이 옳으면 유죄이고 그르면 무죄인 것이다.

공소장의 문학성

선입관 방지를 위해서 재판 전 판사는 다른 증거는 보지 못하고 오직 공소장만 볼 수 있다. 판사들은 공소장을 시험공부하듯이 꼼꼼히 읽는다.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긋거나 별을 그리고 의문이 드는 부분이 있으면 관련 판결례나 논문을 찾아본다. 성실한 재판 준비다. 그러나 나는 되도록이면 공소장을 미리 읽지 않았다.

공소장을 읽고 나면 아무래도 선입관이 생긴다. 피고인을 처음 만날 때에도 속으로 ‘그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바로 저 사람이구나!’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그의 생김, 눈빛, 언행을 그 범죄에 국한시켜 바라보게 된다. 반대로 공소장을 읽지 않고 피고인을 만나면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다양한 상상을 하게 된다. 그다음 공소장을 읽으면 ‘저런 사람에게 이런 일도 있었구나!’ 하게 된다.

공소장의 문장은 어느 하나 허투루 실린 것이 없다. 욕설조차 의미심장하다. 피고인이 퍼부은 욕설은 범행 현장의 분위기, 피고인과 피해자의 친밀도, 피고인의 성격 등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다만 검사가 엄숙한 법정에서 마이크로 또박또박 책을 읽듯이 “어라, 이놈 봐라, 원숭이 닮았네. 원숭이가 왜 사람을 단속하고 XX이야. 너 엉덩이 빨갛지?…”라고 낭독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밀려드는 어색함을 견디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욕설에 적절히 감정을 실어서 실감 나게 낭독하는 검사도 있는데 그 역시 어색하다.)

공소장의 문장은 투박하고 직설적이다. 피천득 선생은 ‘수필’이라는 글에서 수필을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요,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 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라 했다. 그에 빗대자면 공소장은 칼이요, 호랑이요, 투박하고 비정한 검투사요, 그 검투사가 칼춤을 추는 원형경기장으로 난 거칠고 험난한 길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공소장(판결문도 마찬가지)에는 만만치 않은 문학적 가치가 있다. 공소장이 문학작품이 아님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예술이 아니라고 해서 예술성이 깃들지 말라는 법은 없다. 나는 문학성을 글이 뿜어내는 에너지의 인문학적 개성이라고 믿는다. 잘 내린 커피의 향기처럼 그윽한 에너지로 문학성을 쟁취하는 글이 있는 것처럼 거칠고 강렬한 에너지로 문학성을 품는 글도 있다.
기소권의 탄생

공소장은 후자다. 구석구석 힘이 넘친다. 문장 자체가 압축적이고 정제돼 있다. 서사도 강력하다. 무엇보다 허구가 아닌 진실이라는 후광이 압도적인 힘을 싣는다. 그렇기에 단어 하나하나가 차돌처럼 묵직하다. 각각의 단어 밑으로 연꽃 아래 연근(蓮根)처럼 증거와 법리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기망’ ‘편취’ ‘실행의 착수’ ‘추행’과 같은 단어들은 오랜 세월 국내외 학설과 판례로 다듬어진 전문용어다.

헤밍웨이는 좋은 작품을 빙산의 일각만 드러내고 그 아래 거대한 빙산을 숨겨놓은 것이라 했는데 숨겨놓은 빙산의 크기는 공소장도 만만치 않다. 문장과 문장 밑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복잡한 이해관계가 고구마줄기처럼 뒤엉켜 있다.

공소(公訴)는 공익을 위해 공적으로 제기하는 소송이라는 뜻이다. 이해관계 당사자가 개인적 이익을 위해 제기하는 사소(私訴)가 아니라는 뜻이다. 공소를 제기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권한을 기소권 또는 소추권이라 한다.

기소는 삼권분립에 따라 행정부의 형벌권과 사법부의 재판권이 분리되면서 비로소 탄생한 개념이다. 그 이전에는 왕이 누군가가 죄가 있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처벌하면 그만이었다. 조선시대 원님도 마찬가지였다. 원님은 지금으로 치면 판사, 검사, 경찰서장, 교도소장, 지역구 국회의원, 시장이 한 몸인 셈이었다.

사법부가 분리되지 않은 시스템에 부작용이 없을 리 없다. 프랑스의 법률가이자 사상가인 몽테스키외는 1748년 출간한 ‘법의 정신’이라는 책에서, 재판권이 입법권에 결합되면 자의적 권력이 탄생하고 재판권이 집행권에 결합되면 압제적 권력이 탄생한다고 지적하면서 입법, 행정, 사법을 분리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 영향으로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 사법부의 독립도 이루어졌다. 이제 행정부는 범인을 처벌하기 위해 사법부에 형사소송을 제기해야 했는데 바로 여기서 기소라는 개념이 나온 것이다.

그에 따라 기소권을 행사할 사람도 필요해졌다. 마침 14세기부터 왕의 명을 받아 영주나 재력가를 찾아가서 벌금을 징수하거나 재산을 몰수하는 일을 하던 ‘왕의 대관(代官)’이라 불리던 사람들이 있었다. 공화국이 이들에게 소추권을 주면서 검사(檢事)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프랑스의 검사제도는 독일과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로 유입됐다. 형사소송법(제246조)은 ‘국가소추주의’라는 제목 아래 “공소는 검사가 제기하여 수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기소권을 오로지 검사에게만 부여했다는 의미로 ‘기소독점주의’라는 말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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