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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경제위기說

“잘못 뿌린 소득성장 씨앗 경제에 큰 화(禍) 부른다”

  • 조장옥 서강대 명예교수·전 한국경제학회장 choj@sogang.ac.kr

“잘못 뿌린 소득성장 씨앗 경제에 큰 화(禍) 부른다”

  • ● “케인스의 소득주도성장론은 ‘대공황 타개용’일 뿐”
    ● 소득성장, 완전고용 선진 경제에서는 실효성 無
    ● 가파른 최저임금 상승, 저소득층에 도움 안 돼
    ● ‘하야시-프레스콧 가설’이 두려운 이유
    ● 지금 가장 시급한 건 규제혁파, 노동개혁
윌리엄 그로퍼, ‘댐 공사’, 1939.

윌리엄 그로퍼, ‘댐 공사’, 1939.

문재인 정부 출범 후부터 시작된 경제정책 논란이 2018년을 마무리하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 핵심에는 소득주도성장,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법인세 인상, 재정의 남용 등이 있다. 

소득주도성장이라고 명명된 이론의 원조는 ‘케인스(John Maynard Keynes·1883~1946)’다. 하지만 케인스는 경제성장을 위해 해당 이론을 제시하지 않았다. 1930년대 세계를 휩쓴 대공황(Great Depression)을 타개할 방법의 하나로 소득주도성장의 가능성을 말했을 뿐이다. 대공황은 유효수요의 부족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다. 따라서 수요를 증대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 방법의 하나로 케인스는 소득이 높은 소비자에게서 낮은 소비자에게로 소득을 이전해주는 것을 제안했다. 즉 소득이 낮은 소비자는 소비성향이 높고, 소득이 높은 소비자는 소비성향이 낮기 때문에 소득이 낮은 소비자에게 소득이 이전되면 소비가 증가하고 소득 또한 증가한다는 논리다. 

물론 이때 소득의 증가는 완전고용수준의 잠재소득이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잠재소득보다 30%나 아래 있던 소득이 증가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케인스가 제시한 이론은 단기적 경기변동 대책이었을 뿐 장기 성장을 위한 정책은 아니었다. 


대공황 때 일어난 뱅크런 사태.

대공황 때 일어난 뱅크런 사태.

애덤 스미스 이후 당시까지 고전학파의 핵심 원리는 시장에 맡기면 모든 문제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저절로 해결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균형에서 경제가 잠시 벗어나더라도 시장의 자동 조절 기능에 의해 완전고용 수준 곧 잠재산출량 수준으로 복귀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대공황은 달랐다. 대공황이 절정에 이른 1933년 미국의 실업률은 25%,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대공황 이전보다 30% 가까이 감소했다. 그리고 경제가 완전고용 수준으로 쉽게 복귀하지도 않았다. 자유방임과 자동 조절 기능으로 대표되는 고전학파의 시장 원리가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자 케인스는 대공황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개입해 정부지출을 통해 유효수요를 증가시켜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을 받아들인 사람이 미국의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1882~1945) 대통령이다. 1933년 루스벨트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케인스의 권고에 따라 방대한 토목사업이 시행됐고 금융, 복지, 사회안전망이 대대적으로 정비됐다. 그럼에도 1930년대 미국의 실업률은 10%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다. 1938년 다시 찾아온 불황 때는 20%까지 치솟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팽창적인 재정정책이 과연 대공황을 해결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아직도 존재한다. 

오히려 대공황이 실질적으로 해결된 건 제2차 세계대전 중 엄청난 재정지출을 통해서다. 1940년 15%이던 미국의 실업률은 1945년 2%까지 떨어졌다. 5년 사이 미국의 1인당 GDP도 두 배로 증가했다. GDP 대비 국가채무 역시 1940년 40%에서 1945년 105% 이상으로 증가했다. 

거시경제학(macroeconomics)은 대공황과 케인스의 일반이론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그러나 경제학이 미시경제학(microeconomics)과 거시경제학으로 처음 나뉜 것은 1945년, 당시 뉴욕대학의 교수이던 제이콥 마샥(Jacob Marschak·1898~1977)의 논문에서다. 지난 세기는 거시경제학의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세기 후반 거시경제학은 경제를 더 잘 이해하고 문제가 생길 때 적절한 처방을 낼 수 있는 정도까지 발전했다. 예를 들어 2007~2008년 발생한 세계금융위기를 ‘대불황(Great Recession)’이라고 일컫는데, 지금과 같은 거시경제의 이해가 없었다면 1930년대와 같은 대공황으로 치달았을지도 모른다는 게 학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소득은 화수분이 아냐”

지난해 5월 12일 인천공항공사에서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뉴시스]

지난해 5월 12일 인천공항공사에서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뉴시스]

하지만 소득의 재분배가 소비수요를 자극해 유효수요를 증가시킬 수 있는 것은, 대공황과 같이 실업률이 매우 높고 소득이 잠재소득에서 크게 낮아졌을 때의 얘기다. 지금 대한민국과 같이 완전고용 수준에 거의 근접해 있는 선진 경제에서는 실효성이 없는 정책이다. 

경제정책은 상황과 경제 발전 단계에 따라 다르게 사용돼야 한다. 대한민국의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수사는 합당하지 않다. 정확한 이론적 배경이 없을 뿐만 아니라 체질 자체가 허약하다. 소득이 주도해서 소득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무슨 성장이론이란 말인가. 소득이 마치 화수분이라도 되는 양 착각하는 것 같다.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을 위해 가장 먼저 추진한 것이 바로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였다. 비정규직 문제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해소한다는 의미에서도 해결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왜 비정규직이 지금과 같이 양산됐는지 그 배경을 살펴보면 핵심에는 정규직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정규직은 임금도 높고 불황이나 구조적으로 힘든 상황이 돼도 해고가 거의 불가능하다. 고임금, 과보호인 것이다. 그러니 편법으로 비정규직을 고용할 수밖에 없고, 이를 1997년 IMF 외환위기 상태에서 김대중 정부가 대폭 완화해준 바 있다. 정규직의 고임금, 과보호를 해결하지 않으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거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기업이 부실해지고 파산하는 사태가 불 보듯 뻔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를 볼 때 이 나라의 강성노조 정규직은 비정규직의 급여 일부를 착취하고 있다고밖에 달리 말하기 어렵다. 그리고 강성노조와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정상적으로 해결하기는 난망해 보인다. 참으로 걱정스럽다. 보수도 진보도 해결하지 못할 문제라면 이 나라는 어디를 향해 가는 걸까? 


8월 3일 당시 이성기 고용노동부 차관이 정부세종청사에서 내년 최저임금을 전년 대비 10.9% 인상된 8350원으로 확정·고시한다고 밝히고 있다. [뉴시스]

8월 3일 당시 이성기 고용노동부 차관이 정부세종청사에서 내년 최저임금을 전년 대비 10.9% 인상된 8350원으로 확정·고시한다고 밝히고 있다. [뉴시스]

다음으로 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위해 최저임금 인상을 단행했다. 올해 16.4%, 내년에 10.9%로 2년 사이에 29%가 상승한다. 최저임금의 결정 과정을 보면 어떤 정책도 이보다 더 실험적일 수가 없다. 최저임금을 인상할 때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먼저 최저임금을 올리면 최저임금 노동자의 일부는 분명히 일자리를 잃게 된다. 비용과 편익이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적어도 최저임금 노동자 전체가 받는 임금이 증가하는지 정도는 따져봐야 한다. 이는 최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수요탄력도와 관련이 있다.


최저임금 고용주 대부분이 영세업자

법인세 인하안을 발표하고 있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뉴시스]

법인세 인하안을 발표하고 있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뉴시스]

수요탄력도가 1보다 작으면 최저임금 인상이 전체 최저임금 노동자의 소득을 증가시키지만 1보다 크면 의도와는 다르게 소득이 감소함을 의미한다. 지난여름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소득 1분위, 2분위 노동자의 소득은 감소했다. 이는 최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수요탄력도가 1보다 크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오히려 저소득층에게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경우에는 누가 그 임금을 지급하는지를 분석해야 한다. 대기업에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노동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최저임금 지급 고용주 대부분은 자영업자나 영세사업자다. 그들 역시 넉넉한 살림살이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최저임금을 통해 소득재분배를 추구하는 나라가 소위 선진국 가운데 어디가 있는지 묻고 싶다. 

노동시간 단축 또한 다분히 실험적으로 추진된 측면이 있다.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된 정책은 매우 신중했어야 한다. 가령 기계를 설치해놓았는데 노동시간 단축 때문에 가동할 노동자가 부족하다면 자본의 생산성은 자연스레 하락한다. 자본의 생산성이 하락하면 투자가 감소하고 투자가 감소하면 자본이 감소한다. 자본이 감소하면 노동생산성이 감소하고 고용이 감소한다. 

고용 감소는 다시 투자 감소로 나타나고 악순환은 되풀이된다. 이와 같은 악순환의 씨앗은 이미 뿌려졌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곧 장기불황이 자본생산성 하락 때문이고 그와 같은 하락의 원인이 노동량 감소라는 가설이 존재한다. 이를 ‘하야시-프레스콧 가설(Hayashi-Prescott hypothesis)’이라고 한다. 실제로 일본의 장기불황이 시작되기 조금 전에 토요휴무제가 실시되고 공휴일이 증가했다. 그리고 인구고령화로 노동 공급이 감소했다.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다.


노동량 감소-자본생산성 하락-장기불황

[AP=뉴시스]

[AP=뉴시스]

법인세 인상은 세계적인 조류를 역행하는 것이다. 21세기 들어 세계 각국은 기업 유치에 혈안이 돼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법인세 최고세율을 35%에서 21%로 인하했다. 그런데 우리는 최고 법인세율을 22%에서 25%로 인상했다. 이해하기 힘든 정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최고법인세율이 우리나라보다 낮은 곳은 비단 미국만이 아니다. 일본(23.2%), 영국(19.0%), 독일(15.8%), 캐나다(15.0%) 역시 우리보다 낮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도 22.1%에 불과하다. 

참고로 고도성장을 하던 우리 경제가 지금과 같은 저성장 경로로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 1990년대 초다. 중국과 수교한 이후 높은 노동비용 때문에 국내에서 경쟁력이 없는 기업들은 대거 중국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우리의 고도성장 기조는 꺾였다고 볼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법인세율이 경쟁국들보다 높은 수준으로 인상됐다. 효율성이 높은 대기업의 엑소더스를 초래할 개연성이 충분하다. 

높은 세금과 과한 규제, 어려운 노동환경 등 이 나라에서 사업을 해야 하는 이유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기업가들에게 그들의 존재 이유를 만들어주지 못하고 있다. 기업은 곧 고용인 것이다.


“예산 늘리는 게 소득주도성장?”

최근 들어 세수가 풍년이다. 그렇다고 좋아할 문제는 결코 아니다. 경기가 나쁜 상황에서 세금을 많이 걷는 것이 좋을 리 없다. 문재인 정부가 재정을 너무 쉽게 보는 것 같아 걱정이다. 최저임금을 크게 올리더니 영세자영업자들에게 보조금을 통해 임금을 보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정책이다. 차라리 최저임금은 적게 올리고 일정한 금액을 노동자에게 직접 주면 된다. 최저임금을 크게 올린 다음 한 단계 돌려서 보조해주는 것은 매우 비효율인 일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작년과 올해, 일자리 증대를 위해 엄청난 예산을 지출했다는데 과연 늘어난 일자리는 어디 있는가? 

최근 정부는 내년 예산을 470조5000억 원으로 올해보다 9.7% 증액 편성했다. 물가상승률을 2%로 잡으면 실질로 7.7% 증가하는 것이다. 경제성장률은 3% 미만이기 때문에 이는 정부의 덩치를 빠르게 키우는 예산이다. 더욱이 예산이 이토록 증액됐기 때문에 내년에는 소득주도성장의 효과가 나타나리라고 말하는 위정자들이 있다. 

그러나 예산을 증가시켜 고용을 늘리는 것은 ‘재정정책’이지 소득주도성장이 결코 아니다. 이러한 얘기는 지금껏 들어본 적이 없다. 어떻든 팽창적 재정정책을 써서 고용을 증가시키겠다는 것인데, 불황에 그 정도는 해볼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정부의 경제팀이 과연 우리나라 재정정책의 승수를 얼마로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설마 경제원론 교과서에 나와 있는 바와 같이 4나 5처럼 크다고 보는 것은 아니리라고 믿는다. 재정정책, 특히 선진국의 재정정책에는 여러 가지 밀어내기 효과(crowding out effect)가 수반되기 때문에 승수가 1보다 크기가 어렵다. 더구나 최저임금보조와 같은 비효율적인 용처에 사용한다면 정책의 효과는 더욱 작을 수밖에 없다. 

지난 1년 반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은 이론과 반대로 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규제혁파, 노동과 교육개혁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혁신성장이라는 이름으로 규제개혁과 지식경제를 통해 활로를 모색하려는 노력이 있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시대에도 거의 같은 시도가 있었으나 큰 성과는 없었다. 그만큼 대한민국의 규제는 체질화돼 있다. 이대로 가면 문재인 정부도 전 정권들과 다르지 않게 실패하리라고 보는 이유다. 한 가지 시도해볼 만한 방법은 헌법을 개정해 ‘모든 규제를 네거티브로 한다’는 조항을 삽입하는 것이다. 물론 꿈속의 얘기지만 말이다. 

대한민국의 노동운동은 거듭나야 한다. 지금처럼 10%도 안 되는 집단이 자기들만의 이익을 위해 노동 권력을 행사하는 구조로는 비정규직을 포함한 어떤 개혁도 불가능하다. 나아가 우리의 교육시장은 너무나 왜곡돼 있다. 유치원부터 대학교육까지 대개혁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도 교육부가 폐지돼야만 한다. 막대한 예산을 틀어쥐고 이리저리 교육기관을 통제하는 한 어떤 개혁도, 교육과정의 개편도 이뤄지기 어렵다. 나아가 대학 등록금은 언제까지 동결할 것인가. 10년이면 되지 않았나. 이 나라의 대학교육은 이미 피폐해지기 시작했음을 알아야 한다. 

경제 원리는 그렇게 복잡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현실 또한 그런 것은 아니다. 아무리 좋은 이론도 현실에 적용하다 보면 고쳐야 할 부분이 드러난다. 하물며 이론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원리를 현실에 적용한다면 경제가 어떻게 되겠는가.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에서 예산안 시정연설을 통해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계속 추진할 것을 천명했다. 용어를 가지고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아무리 좋은 경제 원리도 현실에서 성과를 내는 데는 어려움이 크다는 것을 정책을 담당하는 인사들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당부하고 싶다.


신동아 2018년 12월 호

조장옥 서강대 명예교수·전 한국경제학회장 choj@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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