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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이식 개척자’ 이종수의 독일 편지

그리스인 호마타스 교수와의 50년 우정

아테네여, 델포이여, 친구여~ 영원하라!

  • | 이종수 독일 본대 의대 종신직 교수

그리스인 호마타스 교수와의 50년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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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다보면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서 확인할 수 있듯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배반당하는 비극도 겪지만, 호마타스 교수와의 관계처럼 수십 년 지기들과 교유하며 사는 생의 기쁨도 누리게 된다.
그리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뉴시스]

그리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뉴시스]

2017년 성탄절 밤 12시경 전화벨이 울렸다. 가족으로부터 온 성탄절 축하전화겠지 하고 수화기를 들었는데, 전화번호 앞자리에 0030이라는 숫자가 눈에 띄었다. 국제전화였다. 

“여보세요 여기 존이야. 크리스마스 축하해. 하느님의 축복 많이 받아.” 

그리스 아테네대학에서 정년퇴직한 호마타스 교수의 목소리였다. 반가움에 나도 말이 많아졌다. “가족 모두 잘 있지? 애들 가족은? 그리스는 파산 상태는 면했나?” 

그가 말했다. “나는 잘 있어. 우리가 언제 만났지? 며칠 전 연구소로 전화 걸었는데, 비서로부터 대학 연구소를 그만두신다고 들었어. 건강에 문제가 있나?” 

나는 6·25전쟁을 겪다 보니 늦은 나이인 30세에 독일 유학을 떠났다. 일반적인 학생보다 10년 늦게 의학 공부를 시작했으니 10년 더 길게 의학을 위해 활동해야겠다고 다짐했고, 80대에도 연구를 계속했다. 그런데 어느덧 우리 나이로 90세 문턱을 넘게 됐다. 늙으면 몸을 중고차처럼 수리해가며 활동해야 한다. 한 달 전 아주 건강하게 살아오던 15년 손아래 매제가 크리스마스 준비로 무리하다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내가 일 욕심이 많아. 파란만장한 내 인생에서 정력을 쏟아온 간 연구도 계속하고 내가 체험한 인생 이야기도 책으로 쓰고 싶고, 어려운 나라의 의학 발전에 보탬이 되도록 20여 년 도와온 일도 속도를 내고 싶고…. 그러나 늙은 몸에 무리가 되지 않게 짐을 덜었어. 잊지 않고 크리스마스에 기억해줘 고마워.” 

살다보면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서 확인할 수 있듯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배반당하는 비극도 겪지만, 호마타스 교수와의 관계처럼 수십 년 지기들과 교유하며 사는 생의 기쁨도 누리게 된다. ‘친구가 스스로 찾아오면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논어 구절을 잔인한 반세기의 외국 생활을 뒤로한 오늘 더욱 절감한다.


호마타스 교수와 첫 만남

1968년 9월 초 나는 오후 늦게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 공항에 내렸다. 독일 본대학병원 외과과장이 내게 LA의 주립 캘리포니아대학병원과 덴버의 주립 콜로라도대학병원, 그리고 뉴욕의 컬럼비아대학병원을 둘러보고 오라고 했다. 당시 본대학병원은 장기이식과 관련한 새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나에게 중요한 연구·조사 역할을 맡긴 것이다. 

덴버에 도착한 3일 후 오전에 병동 회진을 따라다니고 있는데 180cm가 넘는 키에 아주 날씬한 외국인 의사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악수를 청했다. 

“난 그리스 아테네대학에서 왔어요. 오늘 내 숙소에서 점심 같이할까요?” 

호마타스 교수는 덴버에 온 지 6개월이 됐다며 간단히 자기소개를 했다. 점심시간에 나는 그의 숙소로 갔다. 그는 동양 사람은 쌀밥을 먹어야 한다며 쌀로 밥을 지어 오징어젓갈과 같이 차려내 나를 대접했다. 그리고 작은 잔에 까맣게 끓인 터키식 커피에 그리스에서 가져왔다는 단맛이 강한 젤리를 내놓았다. 쓴 커피에 그리스 과자가 참으로 잘 어울렸다. 그러잖아도 며칠 동안 식사가 입에 맞지 않아 속이 불편했는데 쌀밥에 젓갈을 곁들여 먹고 나니 소화불량 증세가 없어졌다. 그 고마움은 지금도 내 기억에 생생하다. 그는 그리스인 특유의 명랑하고 태평스러운 성격을 갖고 있었다. 

“이 박사, 여기 병원에는 세계 각국에서 시찰 나온 사람이 많아 외국서 온 펠로에게 그렇게 친절하지 않아요.” 

호마타스 교수는 이 병원의 제니라는 아일랜드계 간호사와 친한 사이였다. 어느 일요일 그는 아침부터 그 여자의 차에 나를 태워 덴버 부근의 로키산맥 쪽까지 드라이브도 해주었다. 또 내가 어느 곳을 좀 가봤으면 하고 원하면 그 차로 데려다주곤 했다. 

나는 그리스인이라면 그때까지 4명밖에 알지 못했다. 첫째는 중학교에서 기하를 배울 때 알게 되는 피타고라스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모르고 기하학을 알 수 없고 기하학을 모르면 중학교를 졸업할 수 없다. 더욱이 독일 유학 전 젊은 나이에 고등학교 수학교사 생활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해결한 나에게 피타고라스는 개인적 인연은 없지만 특별한 그리스인인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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