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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바티칸 수교 임박?

프란치스코 교황, 주교 임명권 양보하며 中에 구애

  • | 최창근 객원기자 caesare21@hanmail.net

중국-바티칸 수교 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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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톨릭의 중국 선교 역사는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명, 청, 중화인민공화국 등을 거치며 서구에서 건너온 선교사들은 중국 땅에서 많은 피를 흘렸다. ‘유일신’ 가톨릭과 ‘무신론’ 공산주의는 대립할 수밖에 없는 숙명.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신성불가침의 권한을 일부 양보하면서까지 중국에 러브콜을 보낸다. 이 둘의 위태한 ‘화해’에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 것은 역시나 대만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뉴스1]

프란치스코 교황. [뉴스1]

그리스도의 대리인, 로마의 주교, 으뜸 사도(성 베드로)의 후계자, 보편 교회 최고 대사제, 이탈리아 교회 수석 대주교, 바티칸시국(市國) 국가원수, 하느님의 종들의 종…. 

이렇게 긴 호칭의 주인공은 로마 가톨릭교회 수장, 로마 교황이다. 교황은 콘클라베(추기경단 비밀회의)에서 참석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선출된다. 교황은 가톨릭 세계에 군림한다. 권위는 절대적이다. 

‘신(神)의 대리인’ 교황이 가진 대표적 권한은 사제·주교(主敎) 임명권이다. 하느님을 대리해 교회를 영도하는 교황이 행사하는 ‘신성불가침’ 영역이다. 로마 가톨릭교회 ‘주교’는 각 교구(敎區) 책임자다. 교회법에 의하면 그리스도 열두 제자의 사도(使徒)적 사명을 주교들이 이어받는다. 교황만이 교구의 주교를 임명할 수 있다. 이는 전 세계에 통용돼온 ‘보편 원칙’이다. 

한데 최근 교황의 절대 권위가 깨졌다. 교황은 주교 임명권을 양보했다. 상대는 중국. 교황청은 중국 정부가 임명한 주교 7명에 대한 파문을 철회했다. 동시에 교황청이 ‘합법적’으로 임명한 중국 내 주교 2명에게 주교직에 대한 양위를 요구했다.


신성불가침 對 주권 침해

지난 1월 홍콩 매체들은 좡젠젠(莊建堅·88) 광둥(廣東)성 산터우(汕頭) 교구장과 궈시진(郭希錦·60) 푸젠(福建)성 민둥(閩東) 교구장 등 두 주교가 교황청에서 퇴위 요구를 받았다고 전했다. 교황청은 이들에게 중국 정부가 임명한 황빙장(黃炳章·51), 잔스루(詹思祿·49) 주교에게 교구를 넘길 것도 요구했다고 한다. 

2006년 교황청은 좡젠젠을 비밀리에 산터우 교구장으로 임명했다. 중국 당국의 협박과 회유가 이어졌다. 그는 의연하게 버텨왔다. 문제는 2013년 3월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Jorge Mario Bergoglio) 추기경이 제266대 교황으로 착좌 후 발생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취임 후 중국에 대한 유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내보냈다. 임기 내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도 시사했다. 

교황청과 중국 관계 개선의 걸림돌은 주교 임명권이다. 교황청은 보편 원칙을 들어 ‘중국도 예외 없음’을 고수해왔다. 중국은 ‘자선자성(自選自聖·스스로 성직자를 선출)’ 원칙을 내세워 맞서왔다. 교황청이 ‘자국’ 내 ‘자국인’ 성직자 임명에 관여하는 것은 주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양보할 수 없는 두 원칙 때문에 교황청과 중국은 관계 정상화에 이르지 못했다. 

중국에 전향적인 현 교황 취임 후 교황청 입장이 바뀌었다. 이 속에서 지난해 10월 좡젠젠은 교황청으로부터 퇴위 요구를 받았다. 연말 베이징으로 압송돼 중국 당국, 교황청 대표단과 면담도 했다. 교황청 대표단은 그에게 퇴임과 양위를 요구했다. 80대 고령의 좡젠젠은 눈물로 저항했다. 궈시진 민둥 교구장 처지도 피차일반이다. 궈시진은 지난해 부활절 즈음 구금됐다. 한 달 후 풀려난 그는 중국 정부가 임명한 잔스루에게 교구장직을 넘기고 보좌주교로 물러나겠다는 성명서에 서명할 것을 강요받았다. 그리고 교황청의 결정으로 교구를 넘겨야 하는 처지로 몰렸다. 그들은 상급 성직자에게 순명(順命)해야 하는 가톨릭 성직자다. 

중국과 가톨릭의 인연은 16세기 시작된다. 1534년 예수회를 창립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Francis Xavier)는 동방 선교에 주력했다. 인도와 일본 복음화에 성공한 그는 1551년 중국 선교를 시도하지만 입국하지 못한다. 이듬해 11월 광둥성 상촨(上川)섬에서 열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하비에르가 못다 이룬 사명은 후배 선교사들이 이어받았다. 명(明) 왕조 후반, 이탈리아 출신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Matteo Ricci)는 27년간 중국에 체류하며 중국인들을 ‘하느님의 자녀’로 만들었다. 1601년 명 만력제(萬曆帝)로부터 베이징 정주(定住)도 윤허받았다. 1603년 리치는 유교적 관점에서 가톨릭 교리를 해설한 ‘천주실의(天主實義)’를 집필한다. 이로써 가톨릭은 ‘천주교(天主敎)’로 동양에 자리 잡았다. 리치 사후 아담 샬(Johann Adam Schall von Bell), 페르디난트 페르비스트(Ferdinand Verbiest) 등 예수회 사제들은 중국에서 하느님의 사명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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