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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미래연 연중기획 중·국·통 | 조경란 연세대 국학연구원 교수 |

중국이 재해석한 천하질서는 조공체계와 어떻게 다른가

  • | 이문기 미래전략연구원 원장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중국이 재해석한 천하질서는 조공체계와 어떻게 다른가

  • ● 조공 체계 통해 주변국에 이익 나눠줬다는 게 中 인식
    ● 동중서·캉유웨이 소환한 대륙신유가
    ● 겉으로는 마르크스주의, 안으로는 유가(儒家)
    ● 사회주의도 법가처럼 형해(形骸)만 남을 수도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중국에 유가(儒家)가 돌아왔다. 사상가들이 유교와 사회주의 결합을 시도한다. 청(淸) 건륭제 사후(1799년) 내리막길을 걷던 중국이 21세기 굴기한 후 유교가 품은 이데올로기적 가치를 재발견했다. 20세기 초 5·4 신문화 운동기에 도둑과 기생충으로 몰린 공자가 되살아난 것이다. 

조경란 연세대 국학연구원 교수는 중국 현대사상 연구자다.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했다.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중국의 사회진화론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 중국 사회과학원, 홍콩 중문대에서 연구했다. 현대 사상과 지식인 문제, 동아시아 근대 이행기를 연구해왔다. 2017년 열암철학상을 수상했다. 최근엔 한국 학자로는 처음으로 베이징대 인문사회과학연구원 초빙교수 초청장을 받았다.


신좌파, 신보수주의, 자유주의

21세기 중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중국인과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 그는 숭중(崇中) 혐중(嫌中)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다. 중국이 가진 이념적 메커니즘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토대로 사상계 논의 흐름을 분석해왔다. ‘21세기 중국’이라는 대(大)주제를 놓고 사상적 접근을 시도한다. 

주요 저서로는 ‘국가, 유학, 지식인’(2016) ‘20세기 중국 지식의 탄생’(2015), ‘현대 중국 지식인 지도―신유가, 자유주의, 신좌파’(2013) ‘중국 근현대 사상의 탐색’(2003) 등이 있다. 10월 4일 서울 서대문구에서 그를 만나 중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신(新)유가를 중심으로 대담했다. 

- 2013년 출간한 ‘현대중국 지식인 지도’ 만큼 복잡한 중국 사상계 지형을 간명하게 정리한 책이 없습니다. 한국 학자가 외부 시선으로 정리했기에 역작이 나온 것 같습니다. 중국 사상계의 담론과 논쟁에 주목한 까닭은 뭔가요. 

“대학 다닐 적에는 노장철학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해 ‘현재’에 관심을 갖게 됐고요. ‘진화론의 중국적 수용과 역사의식의 전환’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전통 시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이행기가 사상사에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전통’도 알고, ‘근대’도 알아야 했죠. 자연스럽게 ‘현대’로 진입했고요.” 

- 올해가 중국 개혁·개방 40주년입니다. 중국 지식계 주류 담론도 변천했습니다. 신좌파, 신보수주의, 자유주의가 경쟁해왔는데요.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로 기계적으로 나눠봅시다. 그중 1990년대가 중요합니다. 중국이 개혁·개방에 나선 1978년은 의미 있는 분기점이되 사상적으로 볼 때 톈안먼 사태가 일어난 1989년이 훨씬 중요한 것 같아요. 1989년을 전환점으로 지식계 주류가 바뀝니다. ‘신보수주의의 출현’ ‘문화보수주의의 출현’이라는 말로 요약되는 유학, 그러니까 국학열(國學熱)이 1990년대에 일어납니다.” 

- 1980년대는 중국 문화를 비판하면서 서양 문화를 긍정하는 흐름이 강했습니다.  

“문화대혁명으로 마무리된 중국 사회주의가 기저효과를 일으켰어요. 1980년대는 1919년 5·4 신문화운동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反)전통에 방점을 찍었죠. 5·4운동이 계몽주의라면 1980년대는 신(新)계몽주의라고 하겠습니다. 1980년대는 5·4의 자장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중국 사회주의가 문화대혁명으로 끝났기에 그 트라우마로 인해 자유주의가 꽃피웁니다. 지식인이 문화대혁명을 중국 전통에 포함해 비판한 것이지요.”


‘자기 긍정’ ‘자기 회복’의 1990년대

- 1990년대부터 중국 전통에 대한 재평가가 시작됩니다. 

“1990년대의 사상적 흐름은 장기적 시각에서 보면 1980년대의 반동이 아닌 반성입니다. 1990년대 초 철학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위잉스(余英時)가 ‘21세기(二十一世紀)’라는 잡지를 통해 근대화의 장애물은 유교, 그러니까 전통문화가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막스 베버(‘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저항합니다. 기독교뿐 아니라 유교 또한 자본주의 발전에 굉장히 유리한 지점이 있다고 얘기해요. 그러면서 급진의 시원은 캉유웨이(康有爲·1858~1927)라고 주장합니다. 캉유웨이는 서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 최초의 중국인입니다. 캉유웨이가 지금 기준으로는 보수지만 당대에는 굉장히 개혁적이었죠.” 

- 그 같은 논쟁을 거치면서 신보수주의가 나타나는군요. 

“단순히 1980년대에 대한 반동이나 반사가 아니라 소련 붕괴, 냉전 시대의 해체, 글로벌화의 강화에 맞물려 신보수주의가 등장합니다. ‘문명의 충돌’(새뮤얼 헌팅턴) ‘역사의 종언’(프랜시스 후쿠야마) 같은 책이 중국 지식인에게 큰 자극을 줬어요.”    

- 민족주의도 강화됩니다. 


“보수주의, 민족주의의 시대가 열린 겁니다. 1980년대가 5·4운동의 재생이라면 1990년대의 1980년대 비판은 20세기 중국 정치 문화 전체에 대한 반성이었습니다. 1980년대와 사회주의에 대한 반성뿐 아니라 근대로 이행하는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 신문화운동 때부터 시작된 근대화 과정 전반에 걸친 반성이 포함된 것입니다. 

‘중국에서 유학이 되살아난다, 그러니까 보수다’라고만 볼 게 아니라 이 같은 사상사적 맥락을 이해해야 합니다. 중국은 글로벌화한 자본주의 체제에 적응해야 했습니다. 그러려면 자기를 버려야 했고요. 그 기원에 신문화운동이 있습니다. 자기 회복, 자기 긍정이 시작된 것은 1990년대고요.” 

- 유학 담론을 부활시키려는 신보수주의뿐 아니라 신좌파 흐름도 1990년대 생겨났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신보수주의가 출현하고 문화적으로는 국학열이 탄생합니다. 신좌파는 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사회주의를 다시 소환합니다. 자본주의를 통해 경제성장을 하면서 드러난 문제점에 대한 이의 제기라고 하겠습니다. 서구 지향적인 자유주의자들에게 신좌파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도 신보수주의가 출현한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단일한 사상이 지배한 적이 없어요. 전통 시기에 법가와 유가가 나라를 지배했다면 현재는 유학과 사회주의가 주류 담론이라고 봅니다. 1990년대 사회주의가 다시 소환돼 개혁·개방 방향에 이의를 제기하는 동시에 다른 쪽에서는 문화적 보수주의가 힘을 얻습니다.”


“베이징 올림픽 때 공자 띄운 것은 ‘서양 따라잡기’ 끝났다는 뜻”

- 1990년대 후반 이념 지형을 자유주의 사상가 존속, 신보수주의 출현, 신좌파 부상이라고 정리하면 될까요. 그로부터 20년이 또 흘렀습니다. 자유주의, 신보수주의, 신좌파의 담론 경쟁은 그 후 어떻게 전개됐습니까. 

“3개 유파가 2000년대 초반, 대략 2004년 전후까지는 그대로 유지된 것으로 판단합니다. 2008년 미국에서 경제위기가 시작됩니다. 그해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고요. 2008년을 기점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가 끝나고 있다는 분석이 중국에서 나오기 시작합니다. 중국이 빈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논의도 이뤄지고요. 특히 베이징 올림픽 개·폐막식에서 공자를 띄운 것은 상징적 의미가 커요.” 

-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이 연출했죠.  

“공자를 띄운 까닭은 뭐냐, ‘서양 따라잡기는 끝났다, 이제부터는 부강몽(富强夢)이 아니라 중국몽(中國夢)’이라고 여긴 겁니다. 중국몽은 2012년 나온 시진핑의 사상이지만 그 이전부터 존재한, 중국식으로 가겠다는 생각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또한 국학, 그러니까 유학이 ‘대륙신유가’라는 하나의 집단으로 이미 형성됐습니다.” 
  
- 중국의 사상을 왼쪽부터 나열하면 어떻게 됩니까. 

“맨 왼쪽이 신좌파, 맨 오른쪽이 신유가, 중간이 자유주의죠. 베이징 올림픽 이후부터 신유가가 영향력을 가진 담론으로 부상합니다. 최근에는 신유가가 학술회의를 엄청나게 많이 주최합니다. 학술회의에 신좌파, 자유주의자를 모두 불러요. 신유가가 플랫폼을 만들어 양쪽을 불러 토론하는 형식이죠. 현재는 삼각구도가 무너지는 상황이라고 할까요. 중국이 소프트파워를 구상한다면 사회주의와 더불어 유학이 근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문화적 차원에서 유학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죠. 국가 이데올로기가 되리라는 점은 장담할 수 없으나 유학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 자오후지(趙虎吉) 전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교수는 ‘중국통’(2017년 9월호) 대담에서 “중국의 정치철학은 동중서(董仲舒)에서 비롯한다”면서 “중국 전통의 정치철학이 공산당에서 구현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굉장히 정확한 지적입니다. 대륙신유가라는 명칭은 2005년 만들어졌습니다. 대륙신유가를 줄여 캉당(康黨)이라고도 일컫습니다. 캉유웨이의 ‘캉’을 따온 겁니다. 공자 외에 신유가가 주목하는 인물은 주자가 아닙니다. 동중서와 캉유웨이예요. 캉유웨이와 동중서는 서로 밀접하게 통합니다.”


신유가가 주목한 동중서, 캉유웨이

동중서는 유교 국교화의 길을 연 사람으로 기원전 2세기 한(漢)나라 때 학자면서 관료다. 캉유웨이는 청나라 말 체제를 개혁해 서구에 대처하자는 변법자강을 주창했다.  

- 2008년 이후 새롭게 부상한 일군의 지식인 집단이 지배적 흐름으로 자리매김했고 그들이 사상적 자원을 뽑아내려는 대상이 동중서와 캉유웨이다? 흥미롭습니다.    

“이들이 강력하게 소환되고 재해석되는 가장 큰 이유는 제국 규모의 국가 안정과 유지입니다. 동중서가 한무제 때 한 일을 캉유웨이가 근대 이행기에 했다고 보는 겁니다. 두 사람은 자신이 산 시대를 최대의 위기로 인식합니다. 동중서는 법가로는 실패한다고 봤습니다. 법가로 통치한 진(秦)나라가 14년 만에 단명합니다. 동중서가 가진 위기의식은 법가, 도가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공자를 소환합니다. 유가를 통해 분열이 없는 화목한 사회, 대일통(大一統)의 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본 거죠. 황제는 민심에 근거해 존재한다는 내러티브를 활용해 거대한 유교 통치 이데올로기를 만든 사람이 동중서예요.” 

- 캉유웨이는? 

“캉유웨이는 서양의 제도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얘기한 최초의 중국인이면서 중국에서 민주(民主)를 얘기한 최초의 사상가입니다. 당대에는 굉장히 진보적인 사람이었죠. 만주족을 몰아내자고 주장한 쑨원(孫文) 세력이 나타나면서 캉유웨이를 비판합니다. 역할의 전도라고 하겠습니다. 캉유웨이는 청나라를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든요. 순수한 한족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모두 섞였다는 논리였습니다. 민족이 분리되면 혼란이 온다고 본 거죠. 

동중서가 통치 체계를 만든 이후 중국의 왕조는 송(宋), 명(明)을 제외하면 중화제국을 형성했습니다. 캉유웨이는 청나라의 판도를 온전히 보전해 국민국가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대만과의 통일과 소수민족 문제는 지금도 중국에서 뜨거운 이슈입니다. 중국 지도자, 지식인에게 캉유웨이가 호소력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캉유웨이는 또 국민국가에서 백성을 균질화해 국민을 만드는 데 공자의 사상이 필요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면서 공교(孔敎)를 주장합니다. 공자교라고도 하는데요. 기독교처럼 문화적 베이스로서의 가치 체계를 얘기한 것이죠.”


‘천하질서’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 캉유웨이에 주목하는 게 특이하게 느껴집니다. 

“‘대륙신유가가 생각하는 입법자가 누구냐, 마오쩌둥(毛澤東), 쑨원도 아니고 캉유웨이다. 그게 이 시대에 맞는 얘기냐’는 비판을 거자오광(葛兆光) 같은 지식인이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비판에 대한 재(再)비판이 진행되고요. 중국이 경제적 부상에 성공하면서 자국 문화를 긍정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그렇다면 누구를 선택할까요? 캉유웨이는 쑨원이나 마오쩌둥과 비교하면 반동인 것 같지만 한 세기 전으로 되돌아가 캉유웨이의 고민을 곱씹어보면 다른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 캉유웨이가 소환되면서 중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유학 담론이 논의의 지평을 확대하는 것 같습니다. 유학의 부흥 외에 중국 지식계에서 최근 주목할 지점으로 ‘천하질서’ 개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를 꼽을 수 있습니다. 

“시진핑 집권 이후 신유가가 힘을 얻었으나 마르크스-레닌의 깃발을 내리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중국 사회에서 사회주의 이념이 얼마나 지켜질지는 모르겠습니다. 법가처럼 제도로만 혹은 형해(形骸)로만 남을 수도 있습니다. 마오쩌둥 또한 중국이 부정할 수 없는 대상입니다. 사회주의, 마오쩌둥, 천하질서가 함께 가리라고 봅니다.  

‘문화종횡(文化縱橫)’이라고 지식인과 파워엘리트의 글을 싣는 잡지가 있습니다. 이 잡지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중국몽과 일대일로를 시진핑 집권기를 상징하는 2대 프로젝트로 꼽으면서 천하질서의 새로운 형태로 규정하더군요. 중국몽이 국내를 다룬다면 일대일로는 바깥 질서를 포함한 것이죠.” 

- 천하질서 담론은 시진핑이 강조하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국가적 목표와도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천하질서 담론의 과잉을 자유주의적 세계질서를 대체하고 중국 주도의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는 과정으로 이해해도 될까요. 

“천하질서 논의가 앞으로 중국에서 힘을 받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신천하주의, 천하체계 등 천하 담론은 중국몽이나 일대일로(一帶一路·One belt, One road)를 발표하기 이전부터 지식인들 사이에서 논의가 상당히 많이 진행됐습니다.” 

- ‘천하질서’라는 개념은 한국인에게 불편합니다. ‘조공’ ‘사대’ 같은 낱말이 떠오르거든요. 


“‘천하질서는 이런 것이다’라고 정립된 설명을 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닙니다. 자오팅양(趙汀陽)이 쓴 ‘천하체계’에 따르면 서구의 근대적 체계는 국가 간 영토성, 경계성을 기본으로 하는 반면 중국의 전통적 천하질서는 경계가 없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공자가 이상으로 여긴 주나라

- ‘조공질서로 되돌아가겠다는 것 아니냐’는 거부감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과거의 조공질서에서 위계성을 떼어내고 평화의 문제를 고민하면 서구가 주도한 세계질서보다 진보적인 질서를 구성할 수 있다고 자오팅양은 주장합니다. 자오팅양의 천하체계 모델은 공자가 이상으로 여긴 주나라입니다. 그게 가능할까요? 중국은 주나라 모델로 역사가 만들어진 게 아니라 진나라 이후는 중앙집권제입니다. 천하질서는 굉장히 이상적인 어떤 것을 말하는 것으로 봐야 해요. 동아시아 패권이 일본으로 넘어가면서 중국 지식인들이 가장 두려워했고, 공포를 느꼈으며, 안타까워한 것이 조공국들이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폭망’했죠. 일본의 침략을 받으면서 과거의 판도를 지켜내지 않으면 중국이 정말로 망한다는 의식이 팽배합니다. 잃어버린 바깥을 어떻게 다시 찾아올 것인가 하는 의식이 20세기 내내 중국을 지배합니다. 중화제국은 무너졌으되 중화주의는 반성될 수가 없었던 거죠. 중화주의가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논쟁해선 안 됩니다. 그것은 당연히 존재합니다.”   

- 천하질서는 시진핑이 내놓은 ‘인류운명공동체’와 맥이 통합니다.   

“역사를 잘 아는 중국 지식인 및 정치인들이 조공 체계를 재현하려고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저는 그 재현 체계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고 봅니다. 왜냐, 인류는 20세기를 경험했으니까요.” 

- 일대일로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렇다고 봅니다. 게다가 일대일로에는 일종의 ‘반성’이 들어가 있어요. 예전에는 해상은 포기했죠. 북방민족이 계속 쳐들어와 그것을 막아야 했으니까요. 어느 중국 지식인이든 조공 체계를 기억합니다. 조공 체계가 리(利)보다는 의(義)에 근거해 운영됐다고 보는 중국 지식인이 굉장히 많습니다. 중국이 이득을 취한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죠. 신좌파인 왕후이(汪暉) 는 조공 체계 대신 ‘과체계사회(跨體系社會·trans systemic society)’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왕후이는 일대일로와 과체계사회를 연결하는데, 글로벌한 자본주의 시스템을 극복해 과체계사회를 구축하는 차원에서 일대일로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겁니다.”


왕도와 패도

이문기 미래전략연구원 원장과 대담하는 조경란(오른쪽) 교수. [박해윤 기자]

이문기 미래전략연구원 원장과 대담하는 조경란(오른쪽) 교수. [박해윤 기자]

- 천하질서를 ‘큰 나라와 작은 나라의 역할 차이를 인정하면서 호혜적이고 윈-윈하는 구도로 가자’는 담론으로 이해할 수 있겠으나 우리에게 익숙한 국제질서에 대한 근본적 도전일 수 있기에 불편한 인식이랄까, 비판적 사고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잘 본 것 같아요. 그러나 유교의 핵심은 위계성(正名論과 各得其所)과 조화에 있습니다. 평등주의가 아니에요. 역사학자 리중톈(易中天) 같은 사람은 유교를 계승할 때 등급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처리할지 난감하다고 말합니다.” 

- 위계성을 빼버리면 질서가 안 잡히죠. 

“근대사회라는 게 국가 간 평등하다고 하지만 형식적 평등이거든요. 서구의 근대가 만들어낸 형식적 평등은 그럼에도 굉장히 중요하죠. 중국은 이웃을 강압하는 패도(覇道)가 아닌 도덕과 인의의 왕도(王道)로 구축되는 세계 질서를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천하사상과 왕도주의를 연결합니다. 왕도를 실현하면 그것이 본보기가 돼 밖으로 감화된다는 겁니다. 태양이 있고 위성들이 존재하는 형태를 얘기하는 건데요. 중국에서 천하질서를 말하는 사람들과 서구가 만든 근대질서에 익숙한 사람들의 생각은 평행선일 수밖에 없습니다. 패러다임의 충돌이라고도 하겠습니다.”   

- 신형국제관계를 구축해 인류운명공동체를 건설하자는 시진핑 외교사상의 하위 개념 중 하나가 ‘정확한 의리관(正确的義利觀)’을 확립하자는 것입니다. 의로울 의(義)와 이로울 리(利)를 썼는데요. 국가 간에 의와 리를 정확하게 처리해야 국제질서의 모범을 만들 수 있다는 뜻입니다. 동중서도 한무제 때 천하질서 체계를 만들면서 중국과 주변국의 관계를 처리할 때 의와 리에 입각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맹자에도 나오는 얘기입니다.” 

- 전통 시대 황제국가가 도덕적 정당성과 우월성을 유지하는 게 의로움(義)이죠. 이익(利)을 베풀고 공유하는 게 중국이 ‘주장’하는 전통적 조공 체계고요.  

“조공 체계는 외교 관계면서 문화, 경제가 다 포함된 개념입니다. 조공 체계를 통해 경제적 이득을 취한 게 아니라 주변 국가에 이익을 나눠줬다는 게 중국 사람들의 인식입니다. 주변국에 이익을 나눠주는 대신 중국은 조공을 받는다는 명분을 얻었고요. 일대일로도 그렇게 만들려는 것 같은데 현실적으로는 굉장히 다르게 구현됩니다. 투자하는 쪽과 투자받는 쪽의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기득권을 가진 나라들이 방해할 가능성도 크고요.” 

- 서구 모델에 친화적인 중국의 자유주의는 급격히 퇴조하는 느낌입니다. 

“자유주의는 주류가 된 적이 없습니다. 중국에서 주류가 되는 날이 올까요?” 

- 1980년대에는 자유주의에 대한 동경 같은 게 있었습니다. 

“1990년대에도 자유주의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낸 시기는 있습니다. 현재는 자유주의자들이 설 자리가 거의 없어졌습니다. 한국 학자들은 중국의 자유주의자에 호의적일 수밖에 없으나 중국에서는 서양 것만 가져와서 얘기한다는 비판을 듣습니다. 중국에 착근해 있지 않다는 거죠.”


“신유가 영향력 지속적으로 강화”

- 신유가의 중국 내 영향력은 커지는 형국입니다. 

“신좌파인 왕후이는 그렇게 보지 않더군요. 중국 정부는 신유가, 신좌파, 자유주의자의 견해를 모두 취합니다. 신유가의 영향력이 지속적으로 강화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시진핑이 2013년 공자묘를 방문해 제사를 지낸 것도 다분히 정치적인 행보예요. 유가의 이상이 현실에서 실현된 적은 없습니다. 중국에서 국가를 통치한 방식은 법가의 사상이었습니다. 중국에서 사회주의가 ‘법가화’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사회주의가 이념으로서의 역할은 못 하고 인민을 통제하는 수단으로만 남는 거죠. ‘외마내유’라는 말이 유행합니다. 겉으로는 마르크스주의인데 안으로는 유가라는 건데요. 전통 시대에는 ‘외유내법’이었어요. 유가가 통치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법가라는 뜻입니다.” 

그가 덧붙여 말했다. 

“지금은 한반도를 포함한 세계가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 저변에 G2라는 중국의 위상 변화가 있어요. 사드 사태 때 중국은 분명 옹졸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비난받아 마땅하죠. 그러나 한국이 중국과의 비대칭성을 인정하면서 중국을 있는 그대로 봐야 합니다. 한국은 조선왕조 500년을 유교국가로 보냈지만 또한 동시에 그것을 벗어나 민주주의를 이룩했고 경제성장을 한 나라입니다. 아시아 4마리 용 중 유일하게 중화권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런 특성을 가진 한국이라는 장소는 중국의 천하질서든 소프트파워든 객관적 평가를 내릴 가장 좋은 조건을 갖췄습니다. 평소에 중국 지식인들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중국이 만들려는 패러다임은 한국에서 통하면 세계에도 통할 수 있다. 한국을 설득할 수 있으면 세계를 설득할 수 있다’.”


신동아 2018년 11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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