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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 호텔 투자자 애타게 찾는 北기업인들

北 “南, 제재로 경협 불가…中과 하라”

  • 김승재 언론인 phantom386@daum.net

원산 호텔 투자자 애타게 찾는 北기업인들

  • ● 건물 지었으나 속은 텅 빈 ‘껍데기’ 호텔
    ● 제재 국면서 비집고 들어갈 구멍 중국밖에 없어
    ● 휘발유 밀수 횡행하는 압록강의 밤
[뉴스1]

[뉴스1]

2018년 11월 하순 북한 국영기업이 남측과의 사업추진 계획을 보고하자 북한 지도부가 이에 제동을 걸고 중국과 추진할 것을 권유한 것으로 파악됐다. 북한 고위층 정보에 밝은 한 중국 소식통은 “북한 고위 관료가 ‘유엔과 미국의 대북제재가 있는 한 남조선은 우리와 경협을 할 수 없다. 사업을 하려면 제재를 개의치 않는 중국 기업과 하라’고 권유했다”고 전했다.


北 “원산 호텔 투자자 찾기” 혈안

중국 랴오닝(遼寧)성의 대북 사업가 A는 11월 말 단둥(丹東)에서 북한의 사업 파트너 C와 만났다. C는 북한 인민무력성 산하 국영기업체의 중국 지사장으로 A와는 오래전부터 사업을 하며 친해진 사이다. C는 자신이 관여하는 기업체가 원산 호텔 여러 개의 사업권을 가지고 있다며 애타게 투자자를 찾고 있었다.

이 기업체는 원산 명사십리 해변에 호텔 여러 채를 소유했다. 그런데 호텔 건물들은 겉보기와 달리 속이 텅 비어 있다. 원산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좋은 위치에 호텔 건물을 짓기는 했지만 기술과 자본이 부족해 내부 시설 공사는 못 하고 있다. 즉 건물 껍데기만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호텔 건물 내부와 주변 시설 공사를 할 수 있는 투자처를 찾고 있다. C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북한 기업인이 상당히 많다며 투자 유치를 위해 경쟁적으로 뛰고 있다고 전했다.

원산은 북한이 ‘1호 경제 개방 지역’으로 삼고 적극적으로 투자 유치에 나선 지역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018년 신년사에서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 계획을 선포한 데 이어 5월에는 건설 현장을 직접 찾아 2019년 4월까지 완공할 것을 지시했다. 북한은 원산항을 중심으로 대규모 수출단지 조성 계획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원산항은 수심이 깊어 대형 선박이 접안할 수 있으며 내륙 쪽으로 쑥 들어가 있어 태풍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데다 평양에서도 가깝고 북한 내 이동이 쉬워 물류비가 절감되는 등 다양한 장점이 있다. 원산 출신 조교(朝僑·북한에서 태어난 중국 화교)들이 투자 유치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조교들은 단둥에서도 ‘원산팀’을 별도로 꾸려 중국 기업의 투자를 독려했다.




“제재 국면서 南이 北과 사업하겠다는 것은 정치적 쇼”

북한은 해외 전문가로부터 자문까지 받아가며 원산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호텔 건물을 여러 채 지은 뒤 구역별로 대형 국영기업에 사업권을 배분했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대북제재 때문에 관망하는 자세를 취했다. 구체적 실적이 미미하자 김정은 위원장 앞에서 호언장담했던 고위 간부들이 초조해졌다. 원산과 단둥의 조교들이 백방으로 뛰었지만, 북한의 답답한 현실을 간파한 중국 기업인들은 배짱을 튕겼다.

북측 사업가들은 한국 쪽으로도 손길을 뻗치며 투자해줄 것을 요청했다. C는 평소 친분이 있던 남측 사업가를 만나 투자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남측 사업가는 “한국에서 관심을 가질 만한 기관이나 기업이 많이 있다”며 “구체적인 자료를 제공해주면 이를 바탕으로 내가 직접 뛰겠다”고 답했다. 이에 C는 원산 개발과 관련한 자료는 사진과 조감도, 개발 계획도 등이 충분히 있긴 하지만, 한국과의 사업은 상부의 허락을 받아야만 진행할 수 있다며 평양의 기업 대표에게 연락했다. 평양의 대표는 C가 받은 제안을 북한 내각의 고위 간부에게 알리면서 사업을 추진해도 되겠냐고 의견을 물었다. 답변은 곧바로 나왔다.

한국을 끌어들이지 말고 중국 기업과만 진행하라는 지시였다. 북한 고위 관료는 “중국 외엔 어떤 나라도 제재 탈피가 불가능하다. 더 이상 중국 외 다른 나라는 끌어들이지 말라”고 말했다. 또 “현 단계에서 남조선은 미국과 유엔 제재 때문에 우리와 사업을 할 수 없다. 그런데도 남조선 쪽에서 하겠다고 하면 그건 정치적 쇼”라고 덧붙였다. 즉 제재 상황 아래서는 경협을 할 의지가 없으면서 괜히 외부에 보여주기 위해 쇼를 한다는 것이다.

11월 말 북한 내각 고위 간부의 이러한 발언은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에 대해 북한이 냉철하게 파악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북한은 대북제재 완화를 간절히 원했고, 김정은 위원장의 적극적 외교 행보를 통해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김 위원장 역시 2019년이면 제재가 풀릴 것을 기대하고 미리 준비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이 ‘선(先)비핵화 후(後)제재 완화’ 원칙을 고수하면서 북한의 기대는 실망으로 변했다. 한국과도 많은 접촉을 하고 있지만, 제재 상황 아래서는 한국이 사업할 의지가 없다는 사실도 분명하게 확인하게 됐다. 반면 중국은 달랐다. 중국 역시 제재 국면에서 어쩔 수 없이 제재를 시행해야 하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여지를 남겼다. 비집고 들어갈 구멍을 열어뒀다. 교묘하게 제재를 피하며 대북 사업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북한 처지에서 보자면 제재가 유지되는 현 상황에서 자신들과 경협을 할 수 있는 대상은 중국밖에 없는 것이다.


北·中 밀수 이렇게 한다

신의주-단둥을 잇는 중조우의교. [뉴시스]

신의주-단둥을 잇는 중조우의교. [뉴시스]

한편 최근 북한과 중국 간 밀수 과정과 관련해 자세한 정보가 파악됐다. 북한산 의류 제품을 밀수하는 과정에 직접 가담한 중국인의 입을 통해서다. 북한에서의 작업은 오더(주문) 발주 단계에서 보자면 크게 3가지 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바이어가 북한에서의 작업을 전제 조건으로 제조업체에 오더를 발주한다. 이때 제조업체는 북한과 접촉이 가능한 중국인 또는 한국인 사업 파트너다. 최근 바이어 대부분은 이처럼 오더 단계에서 아예 북한 내 작업을 요구하고 있다. 둘째, 오더 주문을 받은 제조업체가 바이어에게 북한 작업을 요구하는 경우다. 통상 바이어는 오더를 발주하면서 최저가를 요구하는데 중국에서 작업하면 맞추기 힘든 경우가 많다.

이때 제조업체가 “당신이 제시한 가격은 북한 내 공장에서는 가능하다”고 통보하면 대부분 바이어는 북한 공장에서의 제조를 승낙한다. 마지막으로는 바이어에게 알리지 않고 북한에서 몰래 작업하는 경우가 있다. 제재 위반에 해당하는 북한 작업을 바이어가 허락하지 않을 것을 우려해 비밀리에 북한에서 물품을 만들고는 중국 공장에서 작업했다고 속이는 것이다. 그런데 속이고 했다가 나중에 들통이 나면 바이어와의 관계가 파탄 날 수도 있기에 이런 식으로 작업하는 경우는 드물다.

어떤 식으로든 북한 공장에서 작업이 확정되면 다음의 과정을 거친다. 우선 바이어가 원부자재를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구입해 단둥을 거쳐 신의주로 들여보낸다. 트럭에 실은 원부자재가 신의주에서 평양 주변 공장까지 가는 데는 이틀이나 걸린다. 도로가 비포장이거나, 포장이 돼 있더라도 상태가 좋지 않아 가는 길이 험하기 때문이다. 원부자재가 공장에 도착하면 선별 작업을 거쳐 노동자 전원이 곧바로 작업에 투입된다. 과거에는 북한 공장에서는 순전히 봉제 공정만 했고, 라벨 작업 등 마무리 공정은 중국 공장에서 처리했다. 중국 세관을 통과할 때 라벨이 붙으면 북한산(Made in DPRK) 제품이 돼버려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엔 모든 작업을 북한 공장에서 마무리한다. 어차피 정식 세관을 통하지 않고 밀수를 하는 터라 라벨에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북한 공장서 세계 각국 브랜드 라벨까지 붙여

평양 공장에서 완제품 제조 작업이 마무리되면 패킹 리스트(Packing List)가 작성된다. 패킹 리스트는 배에 실을 상품의 포장 내용을 표시하는 명세서다. 포장 단위별 수량과 중량, 수하인 등 자세한 내용이 기재된다. 북한에서는 패킹 리스트를 ‘짝벌’이라고 표현한다. ‘짝’은 포대를 뜻하고 ‘벌’은 옷을 세는 단위다. 즉 ‘한 포대당 실리는 옷의 양’이란 의미다. 패킹리스트는 당연히 세관을 거치지 않고 중국의 파트너에게 전달된다. 한 포대에는 보통 80㎏에서 100㎏의 완제품 옷이 들어간다.

평양 공장에서 포대에 제품을 담은 후 이를 트럭에 싣고 신의주 압록강변으로 출발한다. 출발과 동시에 밀수업자에게 물건이 출발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압록강변에 도착해 미리 기다리고 있는 밀수선으로 물건이 옮겨진다. 밀수선 소유주는 주로 중국인이지만 북한인일 경우도 있다. 배의 크기에 따라 20t에서 100t까지 실을 수 있다. 이보다 큰 배는 강변에 접안할 수 없다. 북한에는 평양 공장과 신의주 밀수선을 함께 운영하는 큰손도 있다. 이들은 자신의 물건뿐 아니라 다른 공장 제품까지 밀수해주며 수수료를 받는다.

밀수선은 평소 끈끈한 ‘관시(關係)’가 구축돼 있는 단둥의 국경수비대원 근무시간에 맞춰 압록강변 목적지에 도착한다. 단속하는 쪽과 밀수하는 쪽이 사전에 서로 약속한 시간에 밀수선이 들어오는 것이다.

압록강에서 밀수선이 움직이는 시간대는 보통 새벽 3시에서 5시 사이다. 급한 물건일 경우 낮에도 가능하다. 이때는 국경수비대에 건네야 하는 금액이 더 올라간다. 위험 부담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모두가 자고 있는 어두운 압록강변에서 밀수선들이 얼마나 은밀하고도 활발하게 움직이는지 직접 보면 놀랄 것이라고 소식통은 전했다.

이렇게 밀수선을 이용해 밀수하는 데 드는 비용은 얼마나 될까. 의류의 경우 밀수업자는 무게와 부피 가운데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비용을 매긴다. 무게로 하면 평균 1㎏당 1달러다. 그런데 무게가 가벼워도 부피가 크면 옷 한 벌에 1달러를 줘야 한다.

밀수 대가는 북한과 중국 쪽 밀수업자가 나눠 갖는다. 중국 밀수선을 이용하는 경우엔 중국 쪽에서 비용의 70%를 가져간다. 배를 보유한 북한 밀수업자가 단둥의 압록강변까지 실어주는 경우에는 반대로 북한 측이 70%를 가져간다. 양쪽 선박을 모두 활용해 압록강 중간에서 환적할 경우엔 반반씩 나눠 갖는다. 밀수 선박은 중국 제품을 북한으로 들여보내는 데도 활용된다. 휘발유 등 유류가 중국에서 북한으로 많이 들어가고 있다.


中 “제재 해제” vs 美 의회 “제재 해제하면 보고서 내야”

이런 가운데 중국은 대북제재 해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12월 1일 쿵쉬안유(孔鉉佑) 중국 외교부 부부장 겸 한반도사무특별대표는 상하이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한반도 정세가 변화함에 따라 적절한 시기에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를 되돌리는 조항 마련에 시동을 걸어야 한다”고 밝혔다. 쿵 부부장은 “북측이 내놓은 조치에 대해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응답해야 할 시점”이라며 “최소한 관련 문제에 관한 토론이 시작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미국은 의회까지 나서 제재 해제에 반대하는 모습이다. 미국 상원은 12월 5일 전체회의를 열고 대북제재를 해제할 경우 이를 의회에 보고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된 ‘아시아 안심 법안(Asia Reassurance Initiative Act)’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북한이 불법 활동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을 때까지 대북제재를 계속 부과해야 한다”고 적시하면서 만일 제재를 해제한다면 해제 30일 안에 국무장관이 의회에 제재 해제와 북한의 불법 활동 중단의 상관관계를 설명하는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미국 하원에서도 12월 3일 유사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렇듯 미국은 의회까지 나서 북한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기 전까지 대북 제재를 유지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이다. 결국 북한은 경제를 살리고자 중국과 은밀한 교류를 확대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신동아 2019년 1월호

김승재 언론인 phantom386@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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