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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쇼크’와 한국 핵무장

트럼프, 서울 지키려 뉴욕 포기할까

갈림길에 선 한국의 선택은?

  • 황일도 | 화정평화재단 연구위원, 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트럼프, 서울 지키려 뉴욕 포기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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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프랑스의 길, 독일의 길, 영국의 길
  • ● “한·일이 핵무장한들 뭔 상관이냐”
  • ● 미국만 안전해지는 ‘핵 동결 협상’의 이면
  • ● 이 와중에 한국은 ‘리더십 부재’ 난국
트럼프, 서울 지키려 뉴욕 포기할까
‘백악관이 파리를 지키고자 뉴욕을 포기할 수 있을까.’ 1957년 소련의 위성 발사 성공과 함께 서유럽이 맞닥뜨린 이 질문을 이렇게 바꿔보자. ‘트럼프는 과연 서울을 지키기 위해 뉴욕을 포기하려 할까.’

누구도 점치기 어려운, 어떤 예측도 허용하지 않는 트럼프 행정부의 안보·동맹 정책은 1960년대 프랑스와 서독, 영국이 마주한 선택의 기로를 지금 우리에게 강요한다. 이제껏 믿어온 모든 원칙과 기준이 흔들리는 혼돈의 시대, 서유럽이 걸어간 ‘3개의 길’을 반추해볼 때다.

아무도 모른다. 정확히 말하면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이, 안보 정책이, 핵 정책이 어떤 양상이 될지에 대해서는 주요 참모는 물론 트럼프 자신에게도 뚜렷한 청사진이 없다는 게 가장 정확한 상황 묘사다. 당연히 앞으로 4년 동안 트럼프의 백악관이 만들어갈 세계 질서가 어떤 후폭풍을 몰고 올지 역시 누구도 알지 못한다.

암흑 속을 더듬어 길을 찾아야 하는 형국. 말 그대로 시계 제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국제질서에서 차지해온 위치는 ‘세계의 경찰’이라는 말 한마디로 요약할 성질이 아니다. 미국은 지금껏 온 세상을 규정해온 국제 규범과 원칙을 만들어낸 당사자였고, 각국은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설정하는 것으로 정체성을 유지해왔다. 유엔과 세계무역기구(WTO), 촘촘하게 체결된 군사동맹과 자유무역협정(FTA),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로 상징되는 핵 통제체제가 모두 마찬가지였다. 이 틀을 벗어나려 했다가는 미국의 철퇴를 피할 수 없다는 묵계야말로 세계에 최소한의 질서를 부여한 근본 전제였다.

모든 선택이 가능한 때

트럼프의 미국이 그 틀을 벗어 던지겠다고 말하는 지금은 역설적으로 ‘모든 선택이 가능한 시기의 도래’를 뜻한다. 방위비 분담금을 증액하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도 있다고, 한국과 일본이 핵무장을 한들 무슨 상관이겠느냐고, 심지어 동아시아에서 전쟁이 벌어져도 상관하지 않을 수 있다는 그의 섣부른 말들은,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대가 왔음을 의미한다.

나쁘게 보자면 극단적인 불안정의 시대지만, 좋게 보자면 그간 불가능해 보인 많은 선택지가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는 의미다.

스푸트니크 1호. 1957년 10월 4일 옛 소련이 발사한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이다. 서유럽 나라들에 지구 궤도를 공전하는 스푸트니크의 위용은 인류가 우주 진출에 성공했다는 ‘거대한 성취’만을 뜻하진 않았다.

로켓을 우주공간으로 쏘아 올릴 수 있다는 건 1949년 핵실험에 성공한 소련이 미국 본토를 향해 장거리 미사일을 날릴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소련이 침공하면 우리가 핵으로 보복해주겠다’던 미국의 공언에 의구심이 제기된 결정적 사건이었다.

‘백악관이 파리를 지키기 위해 뉴욕을 포기할 수 있겠느냐’는 이 무렵 유럽의 질문은 2016년 한국이 마주한 고민과 일치한다. 짐짓 외면하지만, 핵을 장착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완성이 초읽기에 들어간 지금 미국이 약속한 핵우산의 신뢰성을 두고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미국이 막 베트남의 수렁에 발을 담그느라 유럽에 신경 쓰기 어려웠던 1960년대 상황과, 트럼프 행정부가 아시아 동맹국에 대한 기여를 줄여나갈 것이라 을러대는 지금의 우리 처지 역시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놓고 보면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유럽 주요 나라들이 택한 ‘3개의 길’은 지금 한국 앞에 놓인 옵션이 무엇인지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에 해당한다. 프랑스, 서독, 영국이 특히 안보와 동맹 문제에서 걸었던 전혀 다른 각각의 경로는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먼저 결정하고 판단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참고서다. △동맹 거리 두기 + 독자 핵무장 △ 적극적 동맹 참여 + 핵 결정권 공유 요구 △ 동맹 유지 + 핵무장의 모호한 줄타기로 나뉘는 3개의 경로다.

‘탄력적 대응전략’의 탄생

스푸트니크로 확인된 소련의 미 본토 타격능력 확보는 1950년대 아이젠하워 행정부가 공언한 대량보복전략(Massive Retaliation)을 뿌리부터 흔들었다. 지상 전력이든 재래식 폭격이든 핵무기든 수위에 상관없이 소련이 서유럽을 공격하는 그 순간 모스크바를 비롯한 소련 핵심부를 전략핵 공격으로 초토화하겠다는 게 대량보복전략의 골간이지만, 이젠 소련 역시 워싱턴과 뉴욕을 전략핵으로 보복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유럽 전역에서 미국의 핵우산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자 1961년 집권한 케네디 행정부와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부 장관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개념의 핵 억제전략을 고안해 제시한다. 새 교리의 이름은 ‘탄력적 대응전략(Flexible Response Strategy)’. 전쟁의 진행 상황을 크게 재래전-전술핵 사용·전략핵 사용의 3단계로 나눠 문턱(threshold)을 설정해놓고, 상대의 반응과 전황에 따라 다음 단계로 넘어갈지 여부를 결정한다는 게 골자다. 

예컨대 소련과 바르샤바조약기구 연합군이 재래식 전력으로 서유럽을 침공한다고 가정하자. 미국과 나토(NATO)군은 일단 재래식 전력으로 대응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전황을 뒤집는 데 한계가 있어 패배가 임박했다고 판단할 경우 폭발력 10kt 내외의 작은 파괴력을 지닌 전술핵을 사용한다. 이것만으로도 격퇴가 불가능하다면 그제야 비로소 소련이나 동유럽 국가의 수도와 산업지역에 대규모 전략핵 공격을 가한다는 단계별 대응전략이다.

영국과 독일, 프랑스 세 나라의 선택은 바로 이 지점에서 갈라진다. 탄력적 대응전략이 미국의 주도 아래 나토의 공식 군사전략으로 채택되자 가장 격렬하게 반발한 것은 드골 대통령이 이끈 프랑스였다. ‘전쟁이 벌어져도 미국은 아무 피해도 입지 않는 데 주안점을 둔 전략 아니냐’는 게 논리적 근거다. 워싱턴은 자신들이 초토화 당할 확률을 줄여야 서유럽에 대한 안보도 확실히 제공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결국은 유럽이 쑥대밭이 된 뒤에도 자신들만 무사히 빠져나가겠다는 소리라는 정서적 반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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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일도 | 화정평화재단 연구위원, 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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