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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자로 본 중국 | 닝샤후이족자치구(寧夏回族自治區)

가난과 사막화에 신음하는 마화룡의 기개

寧 | 大夏의 영광 꿈꾸는 변방

  • 글 · 사진 김용한 | 중국연구가 yonghankim789@gmail.com

가난과 사막화에 신음하는 마화룡의 기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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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닝샤는 면적 6만6400㎢, 인구 660만 명의 작은 지방이다. 중국 내에서 티베트, 칭하이 다음으로 가난한 지역이지만 1000년 전에는 간쑤, 내몽골 초원을 기반으로 300만 백성을 거느린 대하(大夏) 제국의 심장이었다. 청나라의 공격에도 인육을 먹으며 결사항전한 이슬람의 후예(回族)들은 오늘날 ‘사막과의 전쟁’을 치르며 중국판 할리우드를 만들고 있다.
가난과 사막화에 신음하는 마화룡의 기개

닝샤의 성도 인촨(銀川)시 풍경

며칠 전 친구들과 저녁식사 중 한 친구가 “신동아 3월호에는 어느 지방에 대해 쓸 거니?” 하고 물었다. 닝샤(寧夏) 지방에 대해 쓰고 있다고 하자 모두들 내게 되물었다.

“닝샤가 어디야?”

중국은 한국인에게 매우 친숙한 나라다. 그러나 닝샤는 생소하다. 서북 변방의 조그만 땅이라 존재감도 약하다. 그런데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 한국인 상당수가 대중문화를 통해 닝샤를 본 적이 있다. 서북 변방을 배경으로 찍은 중국 영화 상당수가 닝샤에서 촬영됐기 때문이다.

저우싱치 주연 ‘서유기: 선리기연’에서 손오공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후회한다.

“저는 과거에 사랑을 앞에 두고 아끼지 못하고 잃은 후에 큰 후회를 했습니다…(중략)…하늘이 다시 기회를 준다면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겠소. 만약 기한을 정해야 한다면 만년으로 하겠소.”

그리고 구법 여행을 떠난 손오공은 모래투성이 성벽 위에서 다투는 석양무사와 그의 연인을 본다. 자신의 옛모습을 떠올린 손오공은 두 사람을 맺어주고 다시 길을 떠난다.

天下 黃河 富寧夏

가난과 사막화에 신음하는 마화룡의 기개
이 밖에도 맹렬한 모래 폭풍 속에서 린칭샤, 장만위, 전쯔단 등이 불꽃 튀는 접전을 벌이는 쉬커 감독의 ‘신용문객잔’, 노을 아래 사람의 살결도, 모래도 붉게 타오르던 장이머우 감독의  ‘붉은 수수밭’ 등 많은 영화가 닝샤에서 촬영됐다. 김용의 무협지 ‘천룡팔부’에 등장하는 서하국(西夏國) 근거지도 바로 닝샤다. 서하국은 잔인한 4대 악인 등 무림 고수들을 고용해 중원을 위협하다가, 절정고수 허죽이 서하의 부마(사위)가 되면서 송나라와 좋은 사이가 된다. 이처럼 닝샤는 알게 모르게 친숙한 곳이다.

닝샤후이족자치구(寧夏回族自治區)의 약칭은 ‘편안할 녕(寧)’ 자다. ‘寧’ 자는 중국의 지명에 곧잘 쓰인다. 동북지방을 대표하는 랴오닝(遼寧), 광시좡족자치구의 성도 난닝(南寧), 칭하이성의 성도 시닝(西寧) 등 ‘寧’ 자가 들어간 지역의 공통점은 중원에서 멀고도 먼 변방이라는 것이다. 변방이 시끄러우면 중원이 불안해졌고, 중원이 흔들리면 변방이 무너졌다. 중국의 안정은 변방에 달려 있었기에, 중국인들은 변방의 안녕을 간절히 기원했다. 닝샤라는 이름에도 이 지역에 난리가 일어나지 않고 평온하기를 바라는 중국인의 염원이 녹아 있다.

칭하이성에서 발원한 황하는 굽이굽이 북쪽으로 흐른다. 간쑤성 성도 란저우에서 몽골의 오르도스 초원까지 흐른 황하는 내몽골의 낭산(狼山)에서 비로소 남쪽으로 꺾여 중원으로 흘러든다. 즉, 황하는 중원 농경민의 강이기 이전에 초원 유목민의 강이다. 황하가 란저우에서 오르도스로 흐르는 중간에 닝샤의 성도 인촨(銀川)이 있다.

닝샤는 허란산(賀蘭山), 오르도스 고원, 황토고원, 리우판산(六盤山) 등 산과 고원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안에는 황하가 흐르는 닝샤 평원이 있다. 연평균 강수량이 100~400mm로 매우 건조하지만(한국 중부는 1100~1400mm), 황하 덕분에 땅이 비옥하고 녹지가 많아 ‘천하의 황하, 닝샤를 부유케 했다(天下黃河富寧夏)’는 말이 생겼다.

특히 인촨은 황하를 끼고 있으며 하란산이 고비사막의 모래바람을 막아주는 배산임수 지형이라 닝샤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인촨은 ‘은빛 하천’이라는 뜻이다. 황하와 72개의 크고 작은 호수가 햇살에 은빛으로 빛난다는 의미다. 인촨 근교의 사호(沙湖)는 300여ha의 사막섬을 감싸고 있는 660여ha의 큰 호수다. 사호를 보면 인촨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이해가 간다.

초원과 황하를 낀 닝샤는 농경과 목축이 모두 가능한 땅으로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살아왔다. 닝샤의 고대인들은 3000~1만 년 전에 하란산의 바위에 많은 그림을 남겨 옛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짐작게 한다.

진(秦)나라는 일찍부터 닝샤 지역에 장성을 쌓으며 세력을 뻗쳤다. 닝샤는 진나라의 근거지인 산시(陝西) 성 서북방을 감싸고 있는 ‘관중의 장벽(關中屛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경 지역의 특성상 닝샤는 중원이 혼란스러울 때 독자성을 드러낸다. 5호16국 시대로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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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사진 김용한 | 중국연구가 yonghankim78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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