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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자로 본 중국 장시성

贛 도연명의 詩, 도자기, 마오쩌둥 신중국

중국 히트 상품 제조기

  • 글 · 사진 김용한|중국연구가 yonghankim789@gmail.com

贛 도연명의 詩, 도자기, 마오쩌둥 신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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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속 장시는 줄곧 변두리다. 오늘날에도 큰 주목을 받지 못한다. 장시에 관한 뉴스는 홍수, 가뭄 등 천재지변과 조류인플루엔자, 돼지 폐사, 밀감 흉작 등 농업 기사가 많다. 그러나 장시는 세계적 히트 상품을 낳았다. 유럽을 휩쓴 ‘중국 도자기’를 낳았고, 아름다운 장시의 자연은 명시가 되고, 마오쩌둥의 신중국을 품었다.
贛 도연명의 詩, 도자기, 마오쩌둥 신중국

여산에서 바라본 장시성.

장시(江西)성 여산에 갈 때 중국인 친구와 동행했다. 그는 주장(九江)의 대학인 구강학원(九江學院) 뒷산이 여산이니까 구강학원에 가자고 했다. 그런데 구강학원에서 그가 세 명의 여학생에게 “여기 뒷산에 어떻게 가느냐”고 묻자, 그들은 당혹스러워하며 “우리 학교에는 뒷산이 없다”고 답했다. 그가 “여기 뒷산이 여산 아니었느냐”고 묻자 한 여학생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다행히 구강학원과 여산은 실제로 가까운 거리였다. 나는 중국인 친구에게 “왜 그런 실수를 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장시성 남부의 중심인 간저우(贛州)에서 대학을 다녔는데, 간저우대에는 뒷산이 있으니, 다른 대학에도 뒷산이 있을 것이고, 구강학원은 여산과 매우 가까우므로 구강학원의 뒷산은 곧 여산일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참 희한한 논리 전개였다.

장시의 또 다른 명물은 우위안(婺源)의 유채화다. 산골 가득 만발한 유채화는 숱한 이를 끌어들인다. 우위안의 유채화가 언제 피냐고 묻자, 그는 6월쯤 필 거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만 믿다가 유채화 구경 시기를 놓쳤다. 우위안의 유채화는 3월 중순에 핀다. 그는 미대생이라 사생 실습으로 우위안에 가봤다고 하면서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오늘의 교훈 하나. “현지인이라고 항상 현지를 잘 아는 것은 아니다!”

장시성의 약칭은 ‘강 이름 감(贛)’이다. 장시성 젖줄 감강(贛江)에서 따온 글자다. 감강은 산시·후베이의 한수(漢水), 후난의 상강(湘江)과 함께 장강 중류의 3대 지류다. 감강은 장시의 등을 훑고 올라가 중국 최대의 담수호인 파양호(鄱陽湖)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는 장강에 합류한다. 장시를 ‘감강과 파양호의 땅(贛鄱大地)’이라고 할 만큼, 감강과 파양호는 장시의 상징이다.

강남은 ‘장강의 남쪽’이라는 뜻이기는 하지만 사실상 ‘강남’이라 할 때 떠올리는 지역은 장쑤성과 저장성의 강동(江東)이다. 강동은 오(吳)와 월(越)의 처절한 사투가 일어났고, 항우는 강동의 8000 자제를 이끌고 중국을 제패했으며, 강동의 호랑이 손견을 필두로 손책·손권·주유 등이 활약한 곳이다.

오의 머리, 초의 꼬리(吳頭楚尾)

그에 반해 장시, 즉 강서 지방은 생소하다. 장강의 남쪽에 있으니 강남은 강남이지만 어딘지 강남스럽지 않다. 강남의 요건은 풍요로운 부(富)와 화려한 문화다. 강서는 강동의 풍요로움이 없어 강남 대접을 받지 못한다.

이처럼 장시는 쟁쟁한 이웃들 때문에 존재감이 약하다. 장시는 동쪽으로 저장·푸젠성, 남쪽으로 광둥성, 서쪽으로 후난성, 북쪽으로 후베이·안후이성을 접하고 있다. 장시는 다채로운 개성을 자랑하는 이웃들 틈에 끼어 있어서, 다양한 사람과 문화가 뒤섞인다. 그래서 장시는 ‘오의 머리이고 초의 꼬리이며, 월의 집과 민의 뜰(吳頭楚尾,粵戶閩庭)’이다.

장시성에는 감강과 파양호를 위시해 2400여 줄기의 하천이 흐르고 곳곳에 호수가 있어 생산력도 제법 있다. 그러나 평야지대가 20%에 불과해 산은 많고 밭은 적다(山多田少). 어정쩡한 위치에 애매한 생산력. 그래서 장시는 중국사에서 주인공이 아닌 조연이었다.

그래도 장시의 아름다운 산수는 큰 사랑을 받았다. 중국인들은 말한다. “장시성에 여산이 없으면 쓸쓸한 장강과 호수만 남고, 안후이성에 황산이 없으면 하늘의 신선들이 내려올 곳이 없다.”

소동파는 변화무쌍한 여산을 보고 “여산의 참모습 알기 어렵다(不識廬山眞面目)”고 찬탄했고, 이백은 여산폭포를 과장되게 묘사했다.

“폭포가 나는 듯 곧바로 떨어져 삼천 척, 은하수가 하늘에서 떨어지는가(飛流直下三千尺, 疑是銀河落九天).”
무엇보다도 장시의 대시인 도연명이 무릉도원의 전설을 담은 ‘도화원기(桃花源記)’를 남겨 장시의 신비로운 이미지를 한껏 부풀렸다. 게다가 도연명은 현령 자리를 박차고 나오며 호기롭게 말했다.

“내 어찌 닷 말의 쌀에 허리를 굽히겠는가?”
도연명의 말은 ‘쥐꼬리’만 한 월급에 매여 사는 월급쟁이들의 심금을 울린다. 닷 말의 쌀을 버리고 무릉도원을 택한 사람. 이렇게 보면 도연명은 속세에 관심 없는 전원시인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상황이 그리 간단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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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사진 김용한|중국연구가 yonghankim78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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