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호

Issue

거인의 어깨 위로 날아오른 새

2017 방탄학 개론

  • 미묘|‘아이돌로지’ 편집장 tres.mimyo@gmail.com, 조영철 기자

    입력2017-09-20 10: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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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2일, 서태지의 데뷔 25주년 콘서트가 열렸다. 콘서트가 열리는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 갔던 한 지인은 “여기서는 ‘아미밤’ 꺼내면 안 된대”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아미밤’은 방탄소년단의 응원봉 이름이다.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서태지 팬과 방탄 팬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방탄소년단은 이날 특별 게스트로 출연해 서태지와 함께 ‘Come Back Home’ 등 서태지와 아이들의 대표적인 6곡을 무대에 올렸다. 팬들은 ‘전설과 대세의 만남’이라며 이 무대를 주목했다. ‘시대의 아이콘을 물려주는 자리’라고 논평한 이도 있다. 서태지라는 ‘거인’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어쩌면 방탄소년단은 조금 낯설지도 모른다. ‘거인과 나란히 설 자격이 있는 아티스트인가’ 하는 의문을 가져볼지도 모르겠다.



    국내 先주문만 100만 장 초과

    방탄소년단은 현재 케이팝(K-Pop)의 정상에 있는가?

    그렇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선 그렇지 않다. 그 이상이다. 우리가 통상 기대하는 ‘케이팝 정상’의 의미가 방탄소년단을 통해 줄곧 경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그룹은 9월 현재 유튜브 조회 수 1억 회 이상 뮤직비디오를 7편 보유한다. 그중 두 편은 2억 회를 넘어섰다. 트위터 팔로어도 방탄소년단 공식 계정(@bts_bighit)이 약 560만 명, 멤버들이 팬들과 직접 소통하는 별도 계정(@BTS_twt)은 약 820만 명이다.

    9월 18일 발매되는 새 미니앨범 ‘Love Yourself 承 Her’는 국내 선주문만 100만 장을 넘겼다. 예약 상품임에도 아마존(Amazon.com)의 베스트셀러에도 올랐다. 방탄소년단은 이 미니앨범에서 현재 주류 팝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EDM(Electronic Dance Music) 아티스트인 체인스모커스(Chainsmokers)와 협업했다고 한다.

    방탄소년단의 정점(頂點)은 빌보드와 떼어놓고 말하기 어렵다. 지난해부터 ‘빌보드 200’ 차트를 꾸준히 치고 올라가더니, 지난 5월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톱 소셜 아티스트(Top Social Artist)’ 상을 수상하며 레드카펫을 밟았다. 이 뉴스는 국내에서는 물론 미국 현지에서도 광범위하게 보도됐다.

    톱소셜 아티스트 상은 팬덤의 크기와 열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종의 지표다. 지난 6년간 저스틴 비버(Justin Bieber)가 독점해왔다. 작년부터 크게 성장하긴 했지만 방탄소년단의 국내 팬덤이 매우 강한 편은 아니었기에 이들의 수상은 자연히 세계 무대에서 크고 강한 팬덤을 구축했다는 방증으로 해석됐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싸이의 ‘강남스타일’(2012)과 결정적인 차이가 나온다.

    강남스타일이 인터넷 문화와 맞물려 세계적 화제가 되면서 히트했다면, 방탄소년단은 강력한 팬덤의 지지에 힘입어 좀 더 지속가능한 성공을 일구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그저 한국어로 노래할 뿐, 실질적으로는 케이팝의 프레임을 넘어선 기록을 만들어내고 있다. 


    ‘누구의 메시지인가’

    그런데 공교롭게도 방탄소년단이 발휘하는 이 빛은 상당 부분 서태지와 아이들의 유산에서 비롯됐다. 방탄소년단의 초기 전략은 교육 현실을 비판한 ‘교실 이데아’(1994), 방황하는 10대들에게 손을 내미는 ‘Come Back Home’(1995)의 연장선 위에 있다. 광기로 치닫는 세계에 대한 비판(‘시대유감’·1996)도 방탄소년단의 최근작과 맞닿는다.

    하지만 사회적 메시지를 담았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다. 1990년대 이후 한국 대중음악에서 사회적 메시지는 진지한 음악가의 표상(表象)처럼 여겨졌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계승한 H.O.T.나 젝스키스 등 수많은 아이돌 또한 음악에 곁들여 무언가를 어필하려고 했다. 그것은 팬들을 열광시키기는 했지만 대중을 납득시키진 못했다. 결국 피상적인 ‘남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전문 프로듀서들이 기획, 제작한 음악이기에 성인이 써준 이야기를 읽는 격이었다.

    서태지의 곡 역시 어른의 시점에서 쓰였다. ‘교실이데아’는 “왜 (너희는) 바꾸지 않고” “젊은 날을 헤맬까”라며 “이젠 생각해봐, 대학”이라고 권한다. ‘Come Back Home’ 역시 “내 삶의 끝을 본 적 있”는, 지금은 어른이 된 화자가 “이제 그 차가운 눈물은 닦고” “집으로 돌아오라”고 한다. 이미 경험해본 성인이, 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 10대를 향해 발언하는 것이다.

    H.O.T.의 ‘전사의 후예’를 쓴 유영진이나 젝스키스의  ‘Road Fighter’를 쓴 김영아 역시 10대 시절 서태지와 같은 경험을 했을 수도 있다. “너를 지켜보려 해”라며 가해자를 저주하거나 “아무것도 내겐 도움이 안 돼”라며 어른을 불신하는(‘전사의 후예’) 등 그들의 가사는 서태지보다 더 과격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개인사를 알지 못한다. 반면 교육 시스템에서 탈주해 꿈을 좇은 서태지의 삶은 매우 잘 안다. 그리고 그것은 정확하게 노래의 내용으로 맞물려 들어간다. ‘어떤 메시지냐’보다 ‘누구의 메시지냐’다. 다시 진정성이다.

    최근 케이팝 관련 논문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을 ‘아이돌’에서 제외하는 추세다. 한때 대표적인 아이돌로 거론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그가 아이돌이라는 원형(原型)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높다. ‘너에게’(1993)는 팬에게 유사연애의 감흥을 제공하고, ‘우리들만의 추억’(1993)은 팬들에게 헌정하는 송가로 오늘날 아이돌들의 통칭 ‘팬 송’과 놀라울 만큼 유사하다. 멤버 각자의 매력을 어필하거나, 음악의 흐름을 도중에 파격적으로 뒤집어놓는 등의 요소도 케이팝 아이돌의 근간을 제시했다.

    또한 무엇보다도 대중적으로 알려진 삶을 녹여 한층 깊이 몰입하게 하고, 이를 통해 아티스트의 커리어 그 자체를 ‘감상의 대상’으로 승화시키는 서태지의 전략은 아이돌 그 자체다. 심지어 서태지와 아이들은 은퇴하는 순간에도 ‘시대유감’과 ‘Good Bye’를 통해 ‘주류 사회의 핍박에 환멸을 느껴 떠나가는 외골수 천재’라는 이미지에 완벽하게 부합하며 작별을 고했다.

    다시 방탄소년단. 이들은 현재 과거 빅뱅이나 소녀시대, 엑소처럼 ‘국민 아이돌’로 공인되기에 모자람이 없다. 그런데 성인 팬들 중 유난히 방탄소년단을 ‘못 견뎌’ 하는 이들이 종종 목격된다. 1세대 아이돌이 저물고 2006년 이후 새로운 아이돌이 쏟아져 나왔다. 오늘날 아이돌은 성인 팬 또한 겨냥한다. 복잡한 현실을 잊고 예쁜 가공품을 즐기며 기분 전환을 하고 싶은 사람들을. 한참을 예쁘기만 한 아이돌을 봐왔기에 절절함이 넘치는 방탄소년단이 너무 무겁거나 또는 낡은 것으로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초기 ‘학교 3부작’이 유독 초등학생 사이에서 인기를 끌어 방탄소년단이 소위 ‘초통령’으로 불린 것도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방탄소년단과 서태지의 공통분모는 누군가에겐 향수를 자극하지만 다른 이에게는 ‘패스’하고 싶은 과거일 수도 있다.



    ‘서태지 모델’, 어떻게 현재화할 것인가

    달리 말하면 방탄소년단이 그러한 ‘낡음’의 시선을 뚫고 지금의 자리에 도달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는 ‘서태지 모델’을 어떻게 현재화할 것인가 하는 질문과도 연결된다.

    단적으로 SNS 활용이 있다. 아이돌이라면 누구나 SNS를 하지만 방탄소년단은 유독 SNS의 성공사례로 꼽힌다. 이들은 SNS에서 개인적이고 사소한 이야기를 노출하곤 하는데, 그것이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음악적 특성과 맞물린다. 음악 속 이야기가 누구에게서 어떤 정황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이들의 SNS는 음악에 대한 부가 콘텐츠라기보다는 차라리 원본에 가깝다. 완성도 높은 음악 속에 개인사를 담아 커리어를 하나의 서사로 만드는 게 서태지의 방법론이라면, 방탄소년단은 SNS를 통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보충해 제시한다.

    여기에 더해 고도로 조직화된 케이팝 제작 시스템이 있다. 시스템은 방탄소년단이라는 커다랗고 복잡한 서사를 짜임새 있게 미학적으로 제시한다. 주류 팝 시장의 트렌드를 동시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21세기 케이팝에서만 가능한 것이며, 방탄소년단이 다른 아이돌보다 유난히 잘 해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앞서 살펴본 해외 팬덤이란 새로운 요소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1990년대 서태지가 도전할 기회를 갖지 못했던 것이다.

    방탄소년단은 서태지라는 거인의 어깨에 앉은 새다. 이들은 거인은 보지 못한 기류를 영민하게 이용하며 한껏 날아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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