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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근의 古傳幻談 | 예로부터 전해진 기이한 이야기

어떤 하루

  • 윤채근|단국대 교수

어떤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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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하루

임진왜란 당시 일본 화공이 그린 ‘조선역수전도(朝鮮役水戰圖·일본 도쿄 아오키 화랑 소장)’ 중 근접전 중인 조선 팽배수(둥근 방패를 든 방패병).[윤채근 제공]

이건 역사의 회오리 한복판에서 궁극의 깨달음에 이른 한 사내의 하루에 관한 이야기다. 1623년(광해군 15년) 4월 무장한 사내가 사납게 말을 몰아 배물다리를 건너 남태령 초입 승방평(僧房坪)으로 접근할 즈음엔 새벽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가 나룻배를 구해 한강을 남하한 건 천운이었다. 한양 도성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을 터였고 어쩌면 그가 속해 있던 경기도 장단부(長湍府·현재의 파주와 개성 일대) 결사대 500여 명은 몰살당했을 것이다. 여우울음 소리를 뚫고 청계사를 향해 돌진하는 그는 착호군(捉虎軍) 전령으로 위장하고 있었다. 호랑이 사냥을 위해 설치된 착호군은 어떤 검문도 통과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위를 지니고 있었다.

말을 버린 그가 갑옷마저 풀고 청계산을 올라 마침내 사찰 경내로 들어섰을 때 날이 밝았다. 사내를 처음 발견한 승려 묘법(妙法)은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타인들 눈을 피해 승방에 마주 앉은 두 사람은 한참을 말없이 서로 바라보기만 했다. 묘법이 먼저 입을 뗐다.

“성공했나? 금상은 제거됐겠지?”

사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낙담한 묘법이 염주를 쥐고 눈을 감았다. 연거푸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이던 왕에게 절의 전답과 노비를 몰수당한 청계사는 몰락 직전이었고 유일한 희망은 원수 같은 왕이 제거되는 것뿐이었다. 사내가 쇳소리 섞인 침울한 어조로 말했다.

“스님. 실은 어떤 깨달음이 찾아왔습니다. 하필이면 어제.”

인조반정의 오백 결사대

하필이면 그 순간 찾아온 깨달음에 대해 사내는 설명하고 싶었다. 전날 아침, 그는 임진강 하류 북안에 자리 잡은 덕진산성에서 출병을 기다리고 있었다. 초병(哨兵)이던 그는 임진강 남쪽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강의 곡류 지점에 푸른 갈대숲으로 보이는 초평도가 있었고 그 너머는 파주 땅이었다. 흰꼬리수리와 따오기가 날아오르고 민들레와 질경이가 제멋대로 자라 있는 평범한 봄날이었다. 그때 깨달음이 찾아왔다.

“어떤 깨달음이었나?”

묘법의 질문에 사내가 길게 숨을 몰아쉬었다. 묘법과 그는 한 해 전 청계사에서 간행한 ‘법화경’ 덕분에 인연을 맺었더랬다. 사내의 집안은 절에 필요한 자금을 대대로 시주해온 단월가(檀越家)였다. 경전 간행 기념 법회에 초대된 사내는 묘법으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았고 차츰 친밀해진 두 사람은 왕에 대한 분노를 공유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사내가 먼지와 땀으로 얼룩진 얼굴을 훔치며 대답했다.

“깨달음은 저 자신에 대한 의심으로 시작됐습니다.”

깨달음은 초평도를 바라보며 잠시 현기증을 느끼던 순간 괴상한 전율로 엄습해왔다. 그는 처음에 그걸 죽음에 대한 공포와 혼동했다. 덕진산성에 집결해 반정을 준비하던 병사들은 지휘관이던 장단부사 이서(李曙)로부터 출전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장단부병 500여 명은 혹독한 훈련으로 죽음에 단련돼 있었지만 뒤늦게 반정군에 합류한 그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내면에서 울렁이는 전율과 불안은 마치 죽음 직전의 초조함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불안은 이상한 설렘으로 변했다가 자신과 함께 우주 전체가 녹아내리는 대적멸(大寂滅)과 흡사한 체험으로 이어졌고 그는 혼절했다.

누군가 흔들어 깨우는 기척에 정신을 차린 그를 부사 이서가 호출했다. 이서는 찰갑(札甲)으로 무장한 채 막사에 앉아 있었다. 탁자 위에 나란히 놓인 환도와 투구가 햇살을 받아 번쩍였다. 박달나무로 만든 곤방(棍棒)을 손에 움켜쥔 이서가 천천히 물었다.

“연흥부원군(延興府院君)의 서자 김유(金琟)라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김유가 상대의 살기에 압도되어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고변(告變)의 기미가 보이기만 하면, 아니 그럴 미세한 가능성만 느껴도 부하들을 참수하거나 곤방으로 머리뼈를 박살내던 이서였다. 뭔가 생각에 잠긴 이서가 곤방을 무릎에 내려놓으며 다시 물었다.

“죽는 게 두렵나?”

김유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선대왕 선조의 장인인 김제남(金悌男)이 그의 부친이었으니 금상에 의해 살해된 영창대군 그리고 영창을 낳은 소성대비(昭聖大妃·훗날의 인목대비)가 각각 그의 조카와 누이였다. 계축년에 북인들의 모함을 받아 사약을 받은 부친은 몇 년 뒤 부관참시에 처해졌고 대비는 서궁인 경운궁에 유폐되어 있었다. 복수심에 사로잡힌 그가 죽음이 두려울 리 없었다. 그가 거칠게 고개를 가로젓자 자리에서 일어난 이서가 다가서며 물었다.

“네가 비록 서출이지만 효심과 충심은 나와 매한가지라 믿는다. 그렇겠지?”

김유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잠시 침묵하던 이서가 낮은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연흥군께서 연천현감 시절 널 얻었다고 들었다. 네 어미가 비록 천비(賤婢)지만 죽기로 싸워 선친 원수를 갚거라.”

말을 마친 이서는 물러가라는 손짓을 하고 등을 보이고 돌아섰다. 김유는 조금 전의 섬광 같은 깨달음에 대해 입도 뻥긋할 수 없었다. 막사를 나오자마자 무장 명령이 떨어졌고 마지막 식량으로 북어와 인절미가 지급됐다. 반정군은 즉시 착호군으로 위장했다. 왕의 발병부(發兵符) 없는 병력 이동은 엄히 금지돼 있었지만 착호군만은 예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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