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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論으로 본 조선왕조실록

대간은 나의 눈과 귀다

대간 손순효의 간언

  • 하승현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대간은 나의 눈과 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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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부록]

[일러스트·이부록]

나라가 망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나라를 책임진 임금이 잘못된 결정을 내리지 않도록 간언하는 사람과 그 간언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임금이 있어서였다. 하늘 아래 가장 높은 사람의 잘못을 거침없이 비판한 사람들과 그들의 간언을 기꺼이 받아들인 임금이 걱정한 것은 오직 하나다. 잘못을 잘못이라 지적하는 자가 없어서 나라가 망할까 하는 것이다.

대간(臺諫)은 나의 눈과 귀이다. 내가 즉위한 이래 이들이 누차 글을 올려, 현재의 폐단을 빠짐없이 아뢰어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었다. 이들은 남의 눈치나 보며 제 한 몸 보전하려 드는 무리가 아니기에 내가 무척 높이 평가한다. 집의(執義) 손순효(孫舜孝) 등에게 상으로 특별히 자급을 한 단계 높여주도록 하라. <성종실록 2년 6월 18일>

손순효(孫舜孝·1427~1497)는 당시의 폐단을 간언해 임금으로부터 상을 받았다. 이러한 손순효를 두고 아첨한다고 평하는 사관도 있었지만, 박동량(朴東亮)의 ‘기재잡기(寄齋雜記)’에서는 그가 임금을 사랑하는 정성이 쇠와 돌을 뚫을 정도였다고 하면서, 경기감사가 되어 여러 고을을 순행할 때 채소나 과일 하나라도 입에 맞는 것이 있으면 바로 가져다가 임금에게 바쳤다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또 손순효는 진심으로 임금을 사모하고 충성을 다했기에 왕에게 신임을 얻어 높은 벼슬에 오르게 되었다고 언급한 사론도 있다.

손순효는 기질이 소탈하였으며, 충신·효자로 자부하였고 큰소리치기를 좋아하였다. 친구와 어울려 술을 마시다가 크게 취하면 갑자기 상대별곡(霜臺別曲)의 ‘임금은 현명하고 신하는 강직하네’라는 가사를 노래하였다. 잔치 때도 기생들에게 이 가사를 노래하게 하였고 본인은 일어나서 노래에 맞춰 절하고 춤을 추기도 하였다. 강원 감사로 있을 때 잠시 고향에 돌아온 환관을 만나자 임금을 그리워하는 시를 지어서 그의 부채에 써주고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 환관이 궁궐로 돌아온 뒤 주상이 우연히 그 부채를 보고서 손순효가 지은 시라는 것을 알고는 그가 주상을 사모한다고 여겼다. 또 예전에 주상의 앞에서 경전의 의미에 대해 토론하다가 충실함과 관대함을 실천할 것을 주상에게 권하였는데, 이 때문에 매우 후한 대우를 받아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성종실록 18년 2월 7일>

성종 21년(1490) 11월, 손순효를 신뢰한 성종은 모화관(慕華館·조선시대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곳으로 현재의 서울 서대문구 연천동에 있었다)에서 무과(武科)를 치렀을 때에도 그의 직언을 받아들였다. 이날 김근명(金近明) 등 22명을 뽑았으나, 격구(擊毬·젊은 무관들이 말을 타거나 걸어다니며 채로 공을 치던 무예)에서는 한 사람도 뽑을 만한 자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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