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호

난임전문의 조정현의 ‘생식이야기’

난임·성욕감퇴·당뇨·건망증

비만이 불러오는 불청객들

  • 난임전문의 조정현

    입력2019-05-1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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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비만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국내 성인의 비만율은 33.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53.9%) 수치보다는 낮지만, 2030년에는 우리나라 고도비만 인구가 현재의 2배 수준에 이를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현재 비만에 따른 사회경제적 손실 또한 1년 기준 11조5000억 원에 달한다. 이는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0.7%에 해당한다. 

    보건복지부는 성인 3명 중 1명을 비만으로 분류하고 있다. 30대 남성의 경우 46.7%가 비만에 속한다. 비만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일 수 없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비만에 따른 의료비는 차치하고, (가임기일 경우) 예비 난임환자군에 편입될 수 있다는 점이 더욱 안타깝다. 비만의 척도인 BMI(체질량지수)가 23~24.9kg/㎡이면 과체중, 25~29.9kg/㎡이면 비만, 30kg/㎡ 이상이면 고도비만으로 분류된다. 

    최근 미국 듀크대 니콜라스 환경대학에서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먼지 안에는 지방세포 발달을 촉진하고 전구 지방세포(precursor fat cell)를 폭발적으로 늘게 하는 비만 유발 환경호르몬이 다량 들어 있다고 한다. 그 밖에 각종 화합물에 노출될 경우 지방 성분인 트리글리세라이드의 혈중농도가 높아져 비만이 심해질 수 있다. 날로 심각해지는 미세먼지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 주변에는 환경호르몬의 주범인 주방·세탁용 세제, 화장품, 페인트 등 각종 화합물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먼지가 비만 유발”

    비만은 외형적으로 몸을 뚱뚱하게 만들 뿐 아니라, 속까지 망가뜨린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뚜렷하다. 대사증후군은 비만의 함축적 질환이라 할 수 있다. 살이 찌면 혈압이 올라가고 지방의 혈중치가 올라가 혈당 또한 높아진다. 종국에는 대사 활동 전반에 빨간불이 들어오게 만든다. 대표적 복지국가인 덴마크는 국민에게 비만의 심각성을 알리고자 ‘비만세’를 만들었지만 식품업계의 반발로 폐지한 바 있다. 

    무엇보다 비만은 난임과 연관성이 크다. 비만세포의 인해전술(人海戰術)은 생식체계를 망가뜨리고 리비도(libido·성욕)까지 앗아가는 임신의 주된 적이다. 우선 남성 비만을 살펴보자.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성 정자의 수가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 마운트사이나이 의대와 이스라엘 예루살렘히브리대학 공동연구팀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 40년간 북미, 유럽, 호주 같은 산업화된 서구 국가에 사는 남성들의 정자 농도는 52.4% 낮아졌고, 정자 수는 59.3%로 줄어들었다. 반면 남미와 아프리카 지역 남성들은 여전히 높은 정자 수와 정자 농도를 유지하고 있다. 



    실제로 살찐 남성의 정자는 운동성(motility)이 약하다. 정자는 사정(射精)과 동시에 마라톤을 해야 한다. 난자를 만나서 수정하기 위해 나팔관까지 신속하게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살이 찌거나 비만인 남성의 정자는 운동성이 약하고 정자의 머리도 가늘어 질(quality)도 떨어진다. 다시 말해 비만 남성은 정자의 용적, 수, 밀도 등 모든 면에서 대부분 과락의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남성의 몸에 체지방이 늘어나면 지방 조직이 성호르몬의 대사 작용에 문제를 일으켜 정자 생산을 방해한다. 과다한 지방은 체온까지 높일 수 있다. 정자는 체온보다 1~2도 낮은 환경에서 잘 형성되는데, 체온이 높으면 정자가 제대로 만들어지기 힘들다. 여기에 혈당까지 높아지면 정자의 DNA가 자칫 손상될 수 있다. 

    성욕도 잃는다. 고환에서 분비되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근육과 생식기관의 발육을 촉진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고환에서 정자를 생산해내는 데 반드시 필요한 호르몬이 테스토스테론이다. 따라서 정자가 생성되지 않으면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저조해지고 이는 곧 성욕 저하로 이어진다.

    정자 DNA 손상, 우울증…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도 비만의 원인으로 꼽힌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도 비만의 원인으로 꼽힌다.

    “자고로 사내는 정력이 좋아야 사업도 잘하고 일도 잘한다”는 속설이 있다. 틀린 말이 아니다.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낮거나 성선기능저하증(Hypogonadism·고환이나 난소와 같은 성선의 기능이 감소해 성호르몬의 합성이 감소하고 생식세포의 기능에 장애가 발생하는 상태)에 걸릴 경우 우울증을 경험할 확률이 높아진다. 고도비만의 경우 성기가 치골 아래 살에 깊이 파묻혀 삽입조차 힘들어질 수 있다. 

    여성도 예외가 아니다. 살이 찌면 매달 일어나는 배란에 장애가 온다. 여성호르몬보다 남성호르몬 수치가 높아지는 호르몬 불균형으로 인해 일어나는 현상이다. 의학적으로 설명하면 체중이 늘면 간에서 만들어지는 SHBG(성호르몬결합글로불린)라는 결합단백질 생성이 줄어들고, 반대로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증가해 배란을 방해한다. 또한 지방세포가 많아지면 혈당은 인슐린이라는 호르몬을 많이 원하게 된다. 급기야 인슐린 효율성이 떨어지면서(인슐린 저항성 증가) 당뇨로 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한 비만은 배란이 잘 안 되는 전형적인 질환인 다낭성 난소증후군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최근 국민건강보험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 중 10~35%가 다낭성 난소증후군을 앓고 있다. 

    더욱 충격적인 결과도 있다. 부모가 뚱뚱하면 자녀의 비만 위험도는 최대 6.6배나 높아진다는 것이다. 임신 전 BMI가 비만이면 그런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세포의 수명을 나타내는 텔로미어(telomere)의 길이가 정상적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보다 짧다. ‘텔로미어’란 세포의 염색체 말단부가 풀어지지 않게끔 보호해주는 부분이다. 이 말단부는 세포가 한 번 분열할 때마다 점점 짧아져 노화를 진행시킨다. 벨기에 하셀트 대학 환경과학연구소측은 출산한 아기의 탯줄에서 채취한 혈액으로 텔로미어의 길이를 측정한 결과, 산모의 임신 전 BMI가 1포인트 올라갈 때마다 아기의 텔로미어는 짧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비만인 사람들 중에는 기억력 저하를 고민하는 이가 많다. 체중이 갑자기 불어나면 과거의 특별한 순간을 세세하게 기억해내는 일화기억(episodic memory) 기능이 급격히 떨어진다.

    혼자일수록 살찌기 쉬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몸에서 체지방이 줄어들면 생식력은 바로 회복된다. 최근 뉴질랜드에 사는 한 초고도비만(166cm/220kg) 여성은 평소 배란장애와 고안드로겐 혈증으로 인한 난임(다낭성 난소증후군)으로 고생하다 80kg을 감량한 후 건강한 딸을 낳았다. 살을 뺀 후에도 여전히 고도비만(131kg)에 속하긴 했으나 체중 감량이 생식력을 30~40%나 끌어올려줬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2003년 유럽 불임학회 논문에 따르면 생리가 불규칙한 27명의 여성이 자기 체중의 5% 정도를 감량하자 그중 18명은 정상적으로 월경을 시작했다. 15명은 규칙적으로 배란을 했으며 심지어 10명은 자연임신까지 했다. 

    최근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도 지방 축적의 원인 중 하나로 밝혀졌다. 독신일수록 코르티솔 분비량이 증가하고 BMI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많이 먹어서 그렇게 된 것일 수도 있다. 부모가 된다는 건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가족이 주는 안식만큼 귀한 것이 또 어디 있을까. 가족이야말로 결코 꺼지지 않는 불멸의 ‘충전소’와 같다.


    조정현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 前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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