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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이식 개척자' 이종수의 독일 편지

소주와 삼겹살, 코리안 패러독스

‘매일 적당량 마시는 게 장수의 비결’

  • 이종수|독일 본대 의대 종신직 교수

소주와 삼겹살, 코리안 패러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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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 사람들이 육식을 즐기면서도 심장병 사망률이 낮은 것은
  • 포도주 소비량이 세계에서 제일 많은 것과 관련 있다.
  • 이것을 프렌치 패러독스라고 한다. 요즘 한국 사람들도 삼겹살 등
  • 고기를 많이 먹지만 장수하는 것은 소주를 곁들여 마시기 때문이고,
  • 이것을 코리안 패러독스라고 할 수 있다는데….
소주와 삼겹살, 코리안 패러독스
2000년 12월 말 나는 일본에 갔다. 독일 본대학과 일본 모 제약회사, 그리고 도쿄여자의과대학의 공동연구가 그 15년 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는데, 그해 연구 결과를 평가하고 이듬해 계획을 세워야 했던 것이다. 연말에 독일로 돌아와 가족과 함께 새해를 맞이할 예정이었는데, 하는 수 없이 연말을 일본에서 보내게 됐다.

육식에 대한 노스탤지어

12월 30일이 토요일이었고, 신년연휴가 여러 날 계속돼 나는 물가가 비싼 도쿄를 잠시 벗어나려고 서울로 갔다. 일정을 갑작스럽게 바꿨기에 연휴를 즐기는 친척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연락도 하지 않고 서울의 한 호텔에 머물며 연구 결과를 점검하면서 세밑을 보냈다. 생각해보면 쉬는 날 하루 편히 갖지 못한 내 인생이었다. 한탄이 절로 나왔다. 일하기 위해 살아가는 인생인 것 같았다.

저녁이 되자 공복감이 적지 않아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호텔을 나서 입김을 내뿜으며 식당을 찾았다. 유럽 생활이 40년 넘었으니 나물이 많은 한식보다는 건강식이 아닌 육류요리에 무의식중에 젓가락이 가는 식성이 되고 말았다. 옛날에는 그렇게 좋아하던 일본식 생선회도 일본에서 세 번 정도 먹고 나면 육식에 대한 노스탤지어에 휩쓸린다.

나는 이날 저녁 7시가 넘도록 호텔 주변의 여러 골목을 우왕좌왕했는데, 역시 휴업하는 식당이 많았다. 한국의 경제 사정이 좋아지니 음력 설 때만 아니라 양력 설 때도 가족과 동반휴가를 떠나고 영업을 하지 않는 곳이 많았다.

한 30분을 헤매다 나는 한 식당 앞에 섰다. ‘○○숯불갈비’란 간판이 눈에 띄었다. 신장개업을 했는지 전등불이 아주 밝은 식당에 30대 주인 부부가 초조하게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날 저녁 끼니를 돼지갈비로 때웠다.

밝은 식당에 혼자 앉아 숯불에 구운 갈비를 한국식으로 상추에 싸서 쌈장을 얹어 입에 넣고, 소주를 한 잔씩 마셨다. 역시 이 갈비구이에 알맞은 술은 한국의 소주다. 식사를 끝내고 나는 주인 부부에게 덕담을 건넸다.

“내가 세밑에 와서 먹었으니 내년에는 가게가 대성할 것입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
사실 그날은 불가피하게 갈비를 먹었지만, 나는 60세가 넘어서부터는 갈비를 먹지 않았다. 소갈비건 돼지갈비건 동물성지방이 상당량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동물성지방은 콜레스테롤이 많아 40세 이상 성인에게는 동맥경화증의 주원인이 된다는 것은 오늘날 모르는 사람이 없다. 동맥경화증이란 우리 몸의 각처에 혈액을 공급해주는 혈관인 동맥의 안벽이 손상돼 굳어지는 현상이다. 이것으로 노년에 많은 사람이 심근경색증 또는 뇌졸중이 발병해 급사하게 된다.

그러나 동물성지방은 음식의 맛을 좋게 해주는 최고의 요소이니 미식가들의 애호를 받고 있다. 맛있게 먹고 빨리 죽을 것이냐, 맛없이 먹고 장수할 것이냐는 문제는 애식가들의 햄릿형 고민이다.

콜레스테롤과 건강

나는 30세가 넘어서부터 60세까지 약 30년간 금주생활을 했다. 독일에 의사가 부족한 1960년대 전반에는 연이은 야간 당직에 음주를 할 수 없었다. 1960년대 후반에는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병동일을 보고 저녁 9시 이후부터 오전 2, 3시까지 연구해야 했다. 1970년대 초부터는 간이식 수술이 많아져 어느 때든지 수술에 임할 수 있도록 음주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회갑을 넘기고 초집중해야 하는 수술과 야간근무 등을 피하면서 술을 즐긴다. 유럽 생활에서는 주로 포도주와 맥주를 마신다. 소주나 위스키 종류는 음미할 기회가 없다. 선물로 받은 위스키는 때에 따라서는 몇 년이고 장 안에서 잠자고 있다. 독일 사람과의 사교에는 위스키가 팔리지 않는다.

간혹 서울에서 손님이 올 때만 잠자고 있던 것이 비워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청주도 일본 식당에서만 음미해본다. 6·25전쟁 후 서울 밤거리에선 청주 대포가 유일하게 우리를 위안해주었으나 이것도 쳐다볼 흥미가 없다. 반면 서울에서 갈비를 즐길 때는 편견일지 모르나 역시 우리 소주나 동동주와 같은 민속주가 어느 양주보다 적합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후 나는 서울을 찾을 때 비교적 위생적인, 그리고 음식이 맛있는 이 ‘○○숯불갈비’집을 찾아갔다. 식당 안에 네온불을 아주 밝게 켰으니 방에서 기어다니는 개미 한 마리도 다볼 수 있었다. 그러니 식당 주인이 청결에 주력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곳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원조 ○○’집이 있지만, 등이 어두워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2년 뒤인 2003년 봄 나는 그 집을 또 찾아갔다. 그런데 ‘○○삼겹살전문’으로 간판이 바뀌었고, 벽에 붙은 식단에도 여러 가지 삼겹살 이름이 보였다. 그 순간 콜레스테롤이 연상돼 거부감이 앞을 막아 주춤하고 서 있었다. 혹 집을 잘못 찾아왔나 생각했다.

간질환을 전공한 의사인 나는 40년 이상 “간 환자는 돼지비계 같은 지방질은 피해야 해요”라는 설교를 환자들에게 앵무새처럼 해왔고, 건강 강좌 때마다 콜레스테롤이 많은 삼겹살 같은 식품은 식단에서 빼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랬던 내가 삼겹살을 꼭 먹어야 하나, 잠시 고민하고 있는데, 주인이 나를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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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독일 본대 의대 종신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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