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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의 미술과 마음 이야기

프리다 칼로 - ‘상처 입은 사슴’ ‘우주, 대지(멕시코), 디에고, 나 그리고 세뇨르 솔로틀의 사랑의 포옹’

  • 박상희|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프리다 칼로 - ‘상처 입은 사슴’ ‘우주, 대지(멕시코), 디에고, 나 그리고 세뇨르 솔로틀의 사랑의 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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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 ‘상처 입은 사슴’ ‘우주, 대지(멕시코), 디에고, 나 그리고 세뇨르 솔로틀의 사랑의 포옹’

‘상처 받은 사슴’ [박상희]

나라마다 문화 차이가 있음을 제대로 깨닫게 된 것은 길지 않은 미국 생활에서였습니다. 이제까지 두 번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지낸 적이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멀지 않은 작은 도시에서였습니다.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그곳에선 미국 사람 외에 한국 사람은 물론 중국·인도·멕시코 사람 등 다양한 이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중 제 시선을 끈 이들은 멕시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외모를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들의 생활 방식이 눈에 띄었습니다. 피상적으로 관찰한 것이겠지만 제가 주목한 것은 서양 사람들과는 달리 공동체를 대하는 그들의 생활 태도였습니다. 우리 동양인들 못지않게 그들은 가족과 이웃을 중시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또 남자를 우선시하는 가부장적인 문화도 우리와 비슷한 것 같았습니다.

광복 이후 우리나라 문화는 미국과 서유럽 문화에 익숙합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문화가 그것이지요. 반면에 스페인과 포르투갈로 대표되는 라틴유럽 문화는 가깝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같은 라틴유럽에 속해 있지만 이탈리아 문화는 그래도 익숙한 편인 데 반해, 멕시코에서 아르헨티나까지 큰 영향을 미친 스페인 문화는 여전히 낯섭니다.



라틴아메리카 문화 대표하는 화가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 그리고 남아메리카는 이곳을 정복한 스페인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라틴아메리카 문화가 유럽에 있는 스페인 문화의 복사본은 아닙니다. 스페인 문화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되 스페인이 정복하기 전 그곳에 살고 있던 원주민 토착문화로부터도 작지 않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비록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아도 라틴아메리카 문화는 오늘날 지구적으로 중요한 문화의 하나입니다.

이러한 라틴아메리카 문화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사람이 멕시코의 프리다 칼로(Frida Kahlo·1907~1954)입니다. 칼로는 정말 독특한 느낌을 안겨주는 화가입니다. 그의 작품들을 보면 독특하다는 표현 이외의 다른 말을 찾기 어렵습니다. 칼로의 작품들이 제게 다가오는 느낌은 서늘함입니다. 영어로 말하면 ‘쿨(cool)’의 느낌이 아니라 ‘칠리(chilly)’의 느낌입니다. 기분 좋은 시원함이 아닌 낯설고 차갑게 느껴지는 그런 서늘함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낯설고 차가운 서늘함은 강렬한 충격을 불러일으키고, 시간이 흐르면서 묘한 매력을 갖게 합니다. 칼로의 작품들을 보면서 그 매력이 무엇인지를 저 나름대로 생각해보고 내린 결론은 상처와 사랑입니다. 칼로가 작품에 담은 상처에 대한 공감과 그 상처를 치유하려는 사랑에 대한 공감이 제가 칼로에게 느끼는 매력의 실체였습니다.

어떤 화가도 자신의 삶과 유리된 작품을 그리지 않습니다. 구상화든 추상화든 작품은 그 화가의 삶, 다시 말해 화가가 갖고 있는 느낌과 생각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칼로의 작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칼로는 참으로 극적인 인생을 산 화가입니다. 우선 그의 육체적인 고통은 감히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소아마비, 왼쪽 다리 11곳 골절, 오른발 탈골, 왼쪽 어깨 탈골, 요추·골반·쇄골·갈비뼈·치골 골절, 버스 손잡이 쇠봉이 허리에서 자궁까지 관통, 그리고 일생 동안 척추수술 일곱 번을 포함해 총 서른두 번의 수술, 오른쪽 발가락 절단에 이어 무릎 아래 절단, 세 번의 유산. 이것이 칼로의 병원 기록이었고, 이런 심각한 육체적 고통과 더불어 평생 그 후유증을 앓아야 했습니다.



남편 리베라의 바람기

안타깝게도 그의 아픔은 육체적인 것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그가 평생 유일하게 사랑한 남편 디에고 리베라와 관계는 칼로가 정신적으로도 고통을 느끼는 이유였습니다.

리베라는 20세기 멕시코를 대표하는 화가입니다. 칼로는 스물한 살이나 많은 리베라와 결혼했습니다. 칼로와 리베라는 서로 사랑했지만 문제는 리베라의 바람기였습니다. 리베라는 칼로가 아닌 다른 여성들과 끊임없이 추문을 일으켰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육체적으로 아픈 칼로의 분노와 슬픔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었겠지요. 칼로와 리베라는 결혼했고, 이혼했으며, 다시 결혼했습니다. 이런 이력이 보여주듯 두 사람의 관계는 복잡했습니다. 하지만 칼로는 평생 리베라를 진정으로 사랑했습니다. 육체적 상처와 정신적 고통, 그리고 리베라에 대한 사랑이 칼로의 작품에는 생생히 담겨 있습니다.

칼로의 작품들 가운데 제게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상처 입은 사슴(The Wounded Deer·1946)’입니다. 숲 속에 여러 개 화살을 맞아 상처 입은 숫사슴이 있습니다. 화살을 맞고 피 흘리는 사슴은 더없이 애처롭습니다. 사슴의 얼굴은 칼로의 얼굴입니다. 붉은 피를 흘리는 사슴은 숱한 상처로 고통받은 칼로의 삶을 보여줍니다. 사슴을 둘러싼 빽빽한 나무는 그의 삶이 처한 고난을 은유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제가 주목한 것은 칼로의 표정입니다. 온몸이 피를 흘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칼로의 얼굴은 슬퍼 보이거나 절망스럽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담담하고 굳은 의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작품을 보고나서 저는 칼로가 남긴 말, “나는 다친 것이 아니라 부서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한 살아 있음이 행복하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의 하단에 칼로는 ‘Frida Kahlo. 46.’이라고 적어두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카르마(Carma)’를 덧붙여놓았습니다. 카르마는 불교 용어 ‘업(業)’을 말합니다. 업이란 미래에 선악의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을 이루는 행위를 뜻합니다. 칼로는 과연 어떤 마음에서 ‘업’이란 말을 적어둔 것일까요? 현재 자신의 불행이 과거의 잘못된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해서일까요? 부서진 자신의 몸은 슬프지만, 이 작품을 그리는 자신의 정신은 행복하다고 생각한 것일까요? 고통의 업보를 그림으로 그리는 행위로 끊어내려고 한 그의 굳은 의지는 제게 큰 감동을 안겨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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