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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현의 심心중中일一언言

“제가 싫어하는 건 하얀 머리칼이 아니라 머릿 속 하얌이에요”

책 속에서 걸어나와 책 속으로 들어간 가수 요조

  • 글 권재현 기자|confetti@donga.com , 사진 지호영 기자|f3young@donga.com

“제가 싫어하는 건 하얀 머리칼이 아니라 머릿 속 하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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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싫어하는 건 하얀 머리칼이  아니라 머릿 속 하얌이에요”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남자 주인공 토마시는 바람둥이다. 그에게 인생이 일회성의 우연이듯 사랑 또한 그러하다. 작가 밀란 쿤데라는 바람둥이엔 두 종류가 있다고 주장한다. 오로지 첫사랑의 이미지만 좇는 ‘서정적 바람둥이’와 다다익선을 추구하는 ‘서사적 바람둥이’다. 토마시는 후자에 속한다. 그렇다고 치마만 두르면 다 좋아하는 스타일이냐 하면 또 아니다. 토마시가 매력을 느끼는 여성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표면의 이미지와 내면의 영혼이 균열을 일으키는 존재라는.

가수 요조(본명 신수진·36)야말로 그런 이율배반적 매력의 화신 아닐까. 이는 그녀의 예명에서부터 유감없이 드러난다. 지금도 많은 사람은 요조라는 이름에서 ‘요조숙녀’의 요조(窈窕)를 떠올린다. 여성의 행동거지가 얌전하고 정숙해 보인다는 의미다. 이는 ‘홍대여신’이란 별명이 뒷받침하는 가냘프고 단아한 외모 그리고 특유의 맑고 고운 음성과도 맞아떨어진다. 쉽게 말해 서정적 바람둥이들이 딱 좋아할 매력을 지녔다는 소리다.

하지만 그 이름이 지칭하는 대상은 전혀 다르다. 일본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太宰治·1909~1948)의 소설 ‘인간실격’(1948)의 주인공 오바 요조(大庭葉藏)의 요조다. 작가가 자살하기 전 자신을 모델로 삼아 쓴 ‘인간실격’의 주인공은 요조숙녀의 대칭점에 위치한 인물, 심지어 남성이다. 내면의 열등감을 견디지 못하고 지극히 퇴폐적 삶을 살다가 결국 자신이 인간으로서 자격 미달이라 고백하고 삶을 마감하는 외롭고 쓸쓸한 영혼이다. 스스로 생각했을 때 피해의식이 많고 자존감이 낮은 ‘민폐 캐릭터’라는 생각에 그 이름을 예명으로 삼았다는 게 요조의 설명이었다.

“지금도 잘 모르세요. ‘인간실격’의 주인공 이름을 따서 요조로 활동하게 됐다고 데뷔 때부터 한 만 번은 얘기한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도 사람들은 요조숙녀의 요조로 이해하죠. 그만큼 제가 인기 가수가 아니다보니까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요즘도 열심히 얘기하고 다닙니다.”

‘요조숙녀’라는 표면의 이미지와 ‘인간실격’이라는 내면의 초상이 빚어내는 표리부동한 균열과 긴장이야말로 요조 음악의 시작과 끝이다. 요리 보고 조리 봐도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요조를 서울 홍대 앞 북카페 북티크에서 만났다. 그는 원래는 파란색으로 물들였다는데 초록색에 가까워져서 더욱 펑키한 느낌 물씬한 헤어스타일에 예의 요조숙녀 같은 옷차림으로 나타났다. 역시 요조다웠다.

제주도 푸른 밤으로 떠나간 여신

“제가 싫어하는 건 하얀 머리칼이  아니라 머릿 속 하얌이에요”

요조의 3집 앨범 ‘나는 아직도 당신이 궁금하여 자다가도 일어납니다’ 표지와 이 앨범 속 노래를 엮어 만든 동명의 단편영화의 한 컷. 요조가 새 거처를 마련한 제주도를 배경으로 촬영됐다.

올해로 데뷔 10주년을 맞은 그는 ‘홍대 여신’의 타이틀을 내려놓고 일대 변신을 시도 중이다. 5월 중순 발표한 3집 앨범 ‘나는 아직도 당신이 궁금하여 자다가도 일어납니다’(이하 ‘나아당궁’)와 함께 이 앨범 속 5곡 노래를 29분짜리 단편영화로 엮은 동명의 영화로 영화감독으로도 데뷔했다. 또 데뷔 이후 주요 활동 무대이던 홍대 앞을 떠나서 제주도에 삶의 둥지를 틀었다. 영화 ‘나아당궁’의 배경 역시 제주도다. 그와 함께 2015년부터 서울 북촌에 운영하던 서점 ‘책방 무사’(망하지 말고 무사히 살아남자는 뜻의 ‘무사’)도 제주도로 옮겨서 올가을 새로 문을 열 계획이다.

엄청나게 많은 변화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 핵심은 제주도 이주다. 서울이 고향인 요조는 왜 삶의 터전을 제주로 옮겼을까.

“너무 예뻐서요. 제주를 처음 접한 것은 20대 중반 사진작가 김영갑 선생님의 사진집을 통해서였어요. 사진 속 제주가 너무 아름다워서 제주를 처음 찾게 됐는데 이후 제주를 갈 때마다 빠지지 않고 서귀포에 있는 김영갑갤러리부터 들를 정도로 그분이 촬영한 제주 풍광에 푹 빠졌죠. 김영갑 작가님은 평생 제주 풍광만 찍으시다가 2005년 루게릭 병으로 돌아가시기 직전 김영갑갤러리를 여셨는데 지금도 제가 제일 존경하는 사진작가예요. 그분을 통해 제주의 아름다움에 눈뜬 뒤부터 쭉 제주에서 살고 싶었는데 그 꿈을 이룬 거죠.”

요조에게 제주 이전은 인생 경험의 접점을 확장시키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하다. 예전의 요조는 집도, 회사도, 술을 마시거나 영화를 봐도 홍대 거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집은 제주고, 서울에 있는 동안은 부모님 집에 머물고, 일터는 홍대이다 보니 이들 지점을 오가면서 행동반경이 넓어지고 외부와 접점이 훨씬 많아졌다는 설명이다. 올해 3월까지 서울서 운영하던 ‘책방무사’를 제주도로 이전해서 계속 운영하는 이유 역시 책을 매개로 그들의 살아가는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제가 책방에 있으면 책을 추천해달라는 손님이 정말 많아요. 책에 대한 것도 있을 것이고, 그걸 빌미로 저랑 얘기 좀 나누고 싶다는 사심도  있겠죠. 어쨌거나 제가 무턱대고 아무 책이나 추천해드릴 수 없으니까 그분에게 맞는 책을 추천해드리기 위해 질문을 많이 던지는 편이에요. 뭐하시는 분인지, 어떻게 왔는지, 요즘 고민이 있는지. 그렇게 그분들 얘기 죽 듣다가 ‘아 그러면 이런 책이 좋겠네요’하고 추천해드리는 거죠. 그렇게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눈 게 제 음악 작업에 다시 영감을 불어넣어주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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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권재현 기자|confetti@donga.com , 사진 지호영 기자|f3yo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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