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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의 밤 지배한 사이렌이요, 음악마녀

아시아의 가희(歌姬) 덩리쥔

  • 최창근|대만 전문 저술가, 한국외국어대 박사과정 caesare21@hanmail.net

인민의 밤 지배한 사이렌이요, 음악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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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콩 영화 ‘첨밀밀’(1996)의 삽입곡 ‘첨밀밀(甛蜜蜜·꿀처럼 달콤한)’과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달빛이 나의 마음을 대신하네)’은 대만 출신 가수 덩리쥔(1953∼1995)이 부른 노래다. 덩리쥔의 노래는 범중화권과 아시아를 강타했다. ‘중국의 낮은 라오 덩(老鄧·덩샤오핑)이 지배하고, 밤은 샤오 덩(小鄧·덩리쥔)이 지배한다’는 말이 회자됐다. 한국에서 최근 ‘가희(歌姬) 덩리쥔’ ‘등려군: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하죠’가 나란히 출간됐다. ‘첨밀밀’ ‘월량대표아적심’을 리메이크한 노래도 나왔다.
인민의 밤 지배한 사이렌이요, 음악마녀
천커신(陳可辛) 감독의 1996년 영화 ‘첨밀밀(甛蜜蜜)’이 한국 개봉 20주년을 맞이해 다시 한 번 은막에 올랐다. 1984년 ‘중·영 공동성명’에 따라 1997년 7월 1일 중국으로 주권 반환이 예정된 1980년대 후반 홍콩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우리를 아련한 추억으로 안내한다.

영화 ‘첨밀밀’의 마지막 장면은 뉴욕 맨해튼의 전파상 앞이다. 텔레비전에서는 한 사람의 죽음 소식이 전해진다. 서로 다른 길을 걷던 리밍(黎明)과 장만위(張曼玉)는 흠모하던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보며 발걸음을 멈춘다. 우견(偶見)의 기쁨을 두 사람은 미소로 대신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즈음엔 동명(同名) 주제곡 ‘첨밀밀’이 배경음악으로 나온다.

리밍과 장만위의 만남과 헤어짐, 이역만리에서 재회를 다룬 영화의 ‘보이지 않는 주인공’은 한 여성가수다. 영화에서 두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결정적 순간에는 그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뉴욕 거리에서 다시금 인연을 이어준 것도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 소식이다. 생전 2000여 곡의 주옥(珠玉)을 세상에 남기고 떠난 그의 노래를 두고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의 노래를 노인들이 들으면 웃음꽃 피고, 중년이 들으면 고민을 잊으며, 젊은이가 들으면 달콤한 기분에 빠지고, 어린아이가 들으면 춤을 춘다.”

그와 동갑내기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젊은 시절 그의 노래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듣고 또 들었다”고 고백한다.

노래로 남녀노소를 사로잡고, 목소리로 국경을 넘어 아시아인을 하나 되게 한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2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사람들은 그를 그리워한다. 기일인 5월 8일 즈음이면 추모 음악회가 개최돼 동료·후배 가수들이 그가 세상에 남긴 주옥같은 명곡을 부른다. 그가 영면(永眠)한 대만 타이베이(臺北)시 외곽 신베이(新北)시 진바오산(金寶山) 묘역은 추모객들이 가득하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스물두 해가 흘렀지만 추모 열기는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그는 ‘등려군’이라는 우리식 발음으로 더 익숙한 덩리쥔(鄧麗君)이다.

아시아의 밤을 노래하다

1995년 5월 8일, 4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덩리쥔은 자타가 공인하는, 명실상부한 중화권 최고 스타다. 그의 삶과 목소리는 세상을 달리한 지 20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까지 여운을 남긴다. 덩리쥔의 이름 앞에는 ‘아시아의 가희(歌姬)’ ‘영원한 연인’ ‘10억의 박수소리(十億個掌聲)’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덩리쥔은 1953년 1월 29일, 대만 윈린(雲林)현 바오중(褒忠)향의 톈양(田洋)촌에서 태어났다. 국민혁명군 장교이던 아버지 덩수(鄧樞)는 허베이(河北)성 사람이고, 어머니 자오수구이(趙素桂)의 고향은 산둥(山東)성이다. 1949년 국·공 내전에서 패한 중화민국 정부와 함께 대만으로 터전을 옮긴 외성인(外省人) 집안에서 태어났기에 덩리쥔의 원향은 중국 본토다. 부모의 고향이자 마음의 고향인 중국은 덩리쥔의 삶을 통틀어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덩리쥔의 본명은 ‘덩리쥔(鄧麗筠)’으로 ‘아름다운 대나무’ ‘대나무처럼 곧고 바른 성정’이라는 뜻이 담겼다. 아버지 덩수는 고명딸에게 좋은 이름을 지어주고자 한학(漢學)에 조예가 깊던 자신의 상관에게 도움을 청했다. 상관은 ‘리쥔’을 추천했다. 이는 청(淸)대 저명 여성작가 진단생(陳端生)의 ‘재생연(再生緣)’의 여주인공 멍리쥔(孟麗君)과도 발음이 같았다. 다만 ‘리쥔(麗筠)’은 타이완 사투리 발음이 있는 현지 사람들에게 발음하기 힘든 이름이었고, 자연 ‘리쥔(麗君)’이라는 잘못된 발음으로 불리게 되었다. 훗날 가수로 공식 데뷔할 때 예명으로 사용한 ‘리쥔(麗君)’이 본이름을 대신했다.

 어린 시절 덩리쥔의 집은 가난했다. 군 하급 장교이던 아버지는 퇴역해 장사를 시작했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집안의 유일한 딸이던 덩리쥔은 어려서부터 노래와 춤에 재능을 드러내 가족을 웃음 짓게 했다.

덩리쥔이 여섯 살 때인 1961년 가족은 타이베이 외곽 루저우(蘆洲)로 사는 곳을 옮겼다. 이곳에서 그는 어머니 손을 잡고 대만 북부 첫 천주교회 루저우천주당(蘆洲天主堂)으로 발걸음을 했고, 테레사(Teresa)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훗날 해외 활동 시 사용한 예명 ‘테레사 덩’도 여기서 유래했다.

루저우에서 덩리쥔은 ‘새로운 인연’도 쌓았다. 그의 유일무이한 모교가 되는 루저우초등학교(蘆洲國民小學)에 입학했다. 이곳에서 ‘임청하’라는 한국식 발음으로 더 익숙한 배우 린칭샤(林靑霞)와 평생 이어지는 우정이 시작됐다.

초등학교 시절 덩리쥔은 운명의 전기를 맞이한다. 93강악대(康樂隊·밴드) 얼후(二胡) 연주자 리청칭(李成淸)을 만난 것이다. 아버지 덩수와 동향 사람이던 그는 덩리쥔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고 제자 삼아 노래와 연주를 가르친다. 리청칭의 지도하에 덩리쥔의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그러곤 93강악대를 따라 군 위문공연을 다니며 가인(歌人)의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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