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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선의 이 사람

꿈꾸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손가락 부상도 꺾지 못한 일흔의 음악 열정”

  •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꿈꾸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박해윤기자]

[박해윤기자]

“음악이 얼마나 얼마나 아름다운지…. 누구도 이런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나는 정말 만족합니다.” 

만 70세가 된 봄, 33번째 음반을 낸 소감을 물은 참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씨는 기쁨에 들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우아한 손동작과 풍부한 표정, 무대에 섰을 때 객석을 매혹하는 특유의 에너지가 정씨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천재’로 출발해 ‘거장’을 지나 ‘전설’이 된 인물. 그를 만나기 전 마음에 품었던 생각이다. 정씨가 최근 발매한 음반 제목이 ‘Beau Soir(아름다운 저녁)’라는 걸 알게 됐을 때도 자연스레 그의 인생을 떠올렸다. 정씨의 커리어가 ‘눈부신 아침’과 ‘찬란한 낮’을 지나 ‘아름다운 저녁’에 이르렀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열정의 바이올리니스트

초등학생 시절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는 정경화 씨. 그는 바이올린을 배우자마자 이내 무대에 올랐을 만큼 타고난 연주자였다.

초등학생 시절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는 정경화 씨. 그는 바이올린을 배우자마자 이내 무대에 올랐을 만큼 타고난 연주자였다.

그러나 직접 마주 앉은 그에게선 해 질 녘의 느낌을 조금도 받기 어려웠다. 그는 여전히 쉼 없이 연습하고, 해외 연주 투어를 다니며, 다음에 발매할 음반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미 전설의 반열에 오르지 않으셨느냐’는 질문에는 ‘전설이라니,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며 손사래를 쳤다. 

“전설이라면 뭐 하나라도 쉽게 할 수 있어야 할 텐데 나는 지금도 도무지 쉬운 게 없는 걸요.” 

그와의 인터뷰는 이렇게 시작됐다. 여전히 바이올린이 어려운 건지 ‘우문’을 던졌다. 

“그럼요. 당연히 그렇습니다. 음악을 하는 행복, 축복은 숨 쉬는 것처럼 늘 내 안에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연습 과정에서 겪는 힘듦이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현악기는 연습을 안 하면 금세 테크닉이 떨어집니다. 늘 연습, 연습, 연습을 생각하며 살아요. 매순간 지독히 몸부림치면서 하기 때문에 가끔은 내가 가진 재능이 과연 선물이 맞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낸 음반 ‘아름다운 저녁’처럼 멋진 결과물이 나오면 기쁨을 느끼는지 묻자 정씨는 가볍게 웃으면서 “미안하지만, 그동안 낸 음반에 스스로 만족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예전엔 내 음반에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지내곤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 흐른 뒤 다시 들었을 때 비로소 그 안에 있는 음악 모두가 아름답다는 걸 알게 됐죠. 내가 얼마나 최선을 다해 연주했는지도 느껴졌습니다. 그 뒤부터 ‘음반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는 것 자체가 자만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고 나면 평가는 듣는 사람 몫으로 남겨두자’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정씨는 이번 음반에 대해서도 할 수 있는 말은 이것이 전부라고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했다”는 것. 그랬기에 음반을 들은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평가해주면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돌아보면 정씨는 무대에 선 이래로 호평을 받지 않은 적이 없다. 초등학생 시절 서울시립교향악단과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며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고, 미국 영국 독일 등 클래식 본고장에 진출해 강렬한 카리스마로 현지인을 사로잡았다.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면서 1983년 영국 선데이타임스의 ‘최근 20년간 가장 위대한 기악연주자’ 중 한 명으로 선정되는 등 평단의 찬사와 대중의 인기를 두루 누렸다. 1994년 세계 최고 권위의 클래식 음반상인 ‘그라모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부상이 가져다 준 선물

정경화 씨가 앙드레 프레빈이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녹음한 첫 음반. 1970년 발매 당시 유럽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정경화 씨가 앙드레 프레빈이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녹음한 첫 음반. 1970년 발매 당시 유럽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이상민 워너뮤직코리아 부장은 정씨의 국제적 명성을 이렇게 소개했다. 

“정씨의 커리어는 한국에도 잘 알려졌지만, 정씨가 클래식의 본고장에서 실제로 어느 정도 대우를 받고 있는지는 한국인들이 잘 모르는 면이 있어요. 그가 연주자로서 유럽 무대에 데뷔한 1970년 당시 클래식계는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동양 나라에서 온 작고 어린 여성 바이올리니스트’가 자신들의 음악을 세상 어떤 아티스트보다 잘 이해하고 연주한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같은 해 발매된 정경화의 ‘차이콥스키 협주곡과 시벨리우스 협주곡’ 음반은 검은 머리 연주자 사진이 재킷에 들어간 클래식 사상 첫 음반이었죠. 세계 유수의 언론이 정경화를 앞다퉈 보도했고, 그는 전 세계를 돌며 1년에 100회 이상씩 공연을 했습니다. 당대의 거의 모든 정상급 연주자가 그와 함께 협연했어요. 지금도 해외 클래식 전문가들을 만나면 한국을 ‘정경화의 나라’로 기억합니다. 

저는 정경화를 잘 모르는 사람들한테 이렇게 예를 듭니다. 푸른 눈의 금발 미녀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판소리 ‘심청가’ 중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는 대목을 부른 거라고요. 그것도 우리나라 그 어느 명창보다도 기가 막히게 말입니다.” 

알고 보니 정씨는 ‘심청가’뿐 아니라 ‘춘향가’도 ‘흥보가’도 모두 다 기가 막히게 해내는 명창이었다. 그는 화려한 데뷔 후에도 명성을 잃지 않고 수십 년간 클래식계 가장 빛나는 자리를 지켰다. 미국 뉴욕 카네기홀, 영국 런던 로열 페스티벌홀 등에서 전석을 가득 채운 채 공연을 했다. 

그럼에도 정씨는 자신의 음악에 만족하기보다 늘 부족함을 채우는 데 목말라했다고 말했다. 공연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발을 동동 구를 만큼 분노했고, 다 녹음해놓은 음반을 마지막에 발매하지 않은 일도 있다. 스스로 정한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세계적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왼쪽)와 포즈를 취한 정경화 씨.

젊은 시절 세계적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왼쪽)와 포즈를 취한 정경화 씨.

그러던 정씨가 “이제는 스스로 최선을 다한 데 만족하자”고 생각하게 된 건 2005년, 갑자기 찾아온 손가락 부상으로 연주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게 됐을 때부터라고 한다. 그때 정씨는 40년 가까이 연주 생활을 한 뒤였고 나이는 50대 후반이었다. ‘연주자로서의 내 삶은 여기서 끝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는 무대를 떠나 미국 줄리아드 음악학교에서 후학을 기르기로 마음먹는다. 이때 학생들 앞에서 직접 연주를 해보일 수 없어 대체 교육 자료로 마련한 것이 과거 자신의 음반들이다. 강의실에서 그 음악을 들려주면서, 정씨는 비로소 자신의 레코딩을 진지하게 들어볼 기회를 얻었다. 오랫동안 피해다니기만 했던 그 음악이 실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그리고 그것들을 녹음하던 혹독한 고통의 순간이 정씨에게 얼마나 행복한 순간이었는지도 깨닫게 됐다. 

“돌아보면 그 경험 덕분에 삶이나 음악에 대한 태도가 참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나는 여섯 살 때 바이올린을 시작한 뒤 한 번도 악기를 내게서 멀리 떨어뜨려놓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연주를 할 수 없게 되니, 음악을 보는 새로운 눈이 열린 거죠.”


바흐라는 에베레스트를 넘다

정경화 씨가 바이올린 스승 조셉 시게티(오른쪽)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경화 씨가 바이올린 스승 조셉 시게티(오른쪽)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씨는 자신이 바이올린을 통해 만들어내는 소리가 그동안 스스로에게 가장 큰 선물이었다는 것도 그제야 알았다. 이제 더는 그 소리를 낼 수 없게 됐기에, 마치 지휘자가 된 것처럼 머릿 속에서 음악을 만들어내는 훈련을 거듭했다. 그렇게 5년을 지내다 2010년 기적적으로 손가락을 회복하게 됐을 때 정씨가 얼마나 기뻤는지는 말로 다 설명할 수가 없다. 그는 수없이 상상만 하던 음들을 하나하나 실제로 짚어내면서 “앞으로는 완벽주의에 매달리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물론 완벽한 연주를 하려는 노력은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것만큼은 내가 음악을 하는 내내 결코 버릴 수 없죠. 하지만 최선을 다하고도 부족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 때문에 분노하거나 지레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도전을 시작한 것이 소나타 3곡과 파르티타 3곡으로 구성된 ‘바흐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6곡 전곡 녹음이다. 정씨는 1975년 연주자로서의 기량이 절정을 향해 가던 시절에 이미 바흐 파르티타 2번과 소나타 3번을 녹음한 적이 있다. 당시 이 음반은 많은 이의 호평을 받았지만 정씨 마음에는 차지 않았다. 그는 “아직 나는 갈 길이 멀구나”라고 생각했고, 언젠가 스스로 만족할 수 있게 됐을 때를 위해 이 명곡을 뒤로 미뤄두기로 했다. 

“그때는 어느 날 갑자기 손가락을 못쓰게 될 줄 상상도 못했으니까요. 2005년 연주를 그만두게 됐을 때 가장 마음 아팠던 것 중 하나가 일찌감치 바흐를 녹음하지 않은 거였습니다. 1960년대 줄리아드에서 공부하던 시절, 스승인 갈라미언 선생님께 처음 배웠을 때부터 제 마음을 빼앗긴 곡인데, 이제 그것을 연주하기는 영영 틀렸구나 생각하니 무척 속상했습니다.” 

바흐가 1720년대에 작곡한 이 곡들은, 피아노 등 어떤 악기와의 협연도 없이 오직 바이올린 하나의 힘으로 전체를 끌고 가는 작품이다. 바이올리니스트에게는 마치 에베레스트를 등정하는 것과 같은 도전으로 통한다. 정씨는 손가락 부상에서 회복한 후 2년 뒤 한 공연에서 바흐 파르티타 2번 ‘샤콘’을 연주하면서 자신감을 얻었고, “이제야말로 바흐를 녹음할 때”라는 결심을 했다고 했다. 이후 그가 ‘최선의 노력을 쏟아부어’ 만들어낸 앨범은 2016년 세상에 나왔다. 처음 바흐를 공부한 지 50여 년 만이다.


지난해 5월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을 연주한 뒤 관객의 기립박수에 답례하고 있는 정경화 씨. [ⓒSamuel kim]

지난해 5월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을 연주한 뒤 관객의 기립박수에 답례하고 있는 정경화 씨. [ⓒSamuel kim]

정씨가 이룬 성취는 또 있다. 음반 발매 이듬해인 2017년, 미국 뉴욕 카네기홀의 메인홀인 스턴 오디토리움에서 3000석을 가득 채운 관객을 두고 바로 이 곡을 전체 연주한 것이다. 대부분의 연주자는 소나타 3곡과 파르티타 3곡을 이틀에 나눠 공연하지만 정씨는 하루에 전곡을 소화했다. ‘바이올린 거장 정경화의 귀환’을 세계에 성공적으로 알린 자리였다. 

정씨는 “카네기홀은 1967년 내가 레벤트리트 콩쿠르에서 1위를 하면서 미국 무대에 데뷔한 현장이었다. 꼭 50년 만에 바로 그 무대에 서서 바흐를 연주한 것이 매우 감회가 깊었다”고 말했다. 

“또 그날 객석에 두 아들이 모두 와 있었어요. 당시 공연 사진을 보면 제가 연주를 마친 뒤 객석을 향해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바로 그쪽에 우리 아들들이 앉아 있었어요. 내 배에서 나온 아이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큰 박수를 받으며 바흐를 연주한 게 얼마나 꿈만 같은지, 정말 말할 수 없이 기뻤습니다.” 

정씨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말했다. 그의 기쁨이 생생히 전해졌다. 돌아보면 그는 늘 연주가 좋았다고 했다. 초등학생 시절 서울시교향악단과 함께 공연을 했을 때도 객석의 수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을 느낀 순간 떨리기는커녕 신이 났다고 한다. 

“그 부분은 정말 타고난 것 같습니다. 평소엔 말하는 것도 수줍어하고 그러는데 바이올린 들고 내 자리에 서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번에도 3월 말 통영음악제에서 보훔 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함께 브람스 협주곡을 연주하면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렇게 좋은 에너지를 받고 나면 더 열심히 연습하고 공연을 준비할 힘이 납니다.” 

정씨는 “이렇게 좋은 무대에 계속 서기 위해, 어떻게든 컨디션을 잘 관리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하고 싶은 게 열 가지 있으면 두 가지만 골라서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계속 공연과 음반 녹음을 계획 중이다.


최고의 바이올린을 찾아라

4월 6일 서울에서 열린 팬들과의 만남에서 정경화 씨가 사랑과 감사를 표현하며 활짝 웃고 있다. [박해윤기자]

4월 6일 서울에서 열린 팬들과의 만남에서 정경화 씨가 사랑과 감사를 표현하며 활짝 웃고 있다. [박해윤기자]

일단은 바흐 녹음 작업을 마친 뒤 연이어 진행한 ‘아름다운 저녁’ 음반 관련 연주를 할 계획이다. 이번 앨범에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곡가 포레, 프랑크, 드뷔시의 곡이 담겨 있는데 그중 포레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정씨가 이번에 처음으로,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두 번째로, 앨범 제목과 같은 드뷔시의 소품 ‘아름다운 저녁’은 세 번째로 각각 녹음한 곡이라고 한다. 정씨는 6월 3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와 함께 ‘아름다운 저녁’ 수록곡을 직접 들려줄 계획이다. 

9월에는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함께 전국 순회공연을 예정 중이다. 그사이 일본 등 해외 공연 스케줄도 잡혀 있다. 정씨가 연주와 녹음에 사용하는 악기는 명기(名器)로 손꼽히는 과르니에리와 스트라디바리우스. 정씨는 “미국 유학 당시 부모님이 집을 팔아 마련해주신 첫 바이올린은 스트라디바리우스였다. 그 악기를 팔고 과르니에리를 마련한 뒤부터 40년 넘게 그 악기를 써왔다.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섬세한 소리를 낸다면 과르니에리는 좀 더 터프하고 서민적이다. 과르니에리에 익숙해져 있을 때 손가락 부상을 당했고, 그 후 바흐 무반주 연주를 하느라 좀 더 작고 손놀림이 쉬운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다시 마련하게 됐다. 이번에 ‘아름다운 저녁’을 레코딩한 악기는 바로 그 1702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다. 두 악기의 매력이 각각 다르고 특징도 분명하기 때문에 앞으로 연주에서 어떤 악기를 사용할지 계속 테스트해보고 있다”고 밝혔다. 

여전히 더 나은 연주를 위해 고심하는 정씨의 또 다른 목표는 언젠가 아들과 함께 자선 공연을 여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정씨의 음악을 듣고 자란 두 아들은 모두 음악에 소질이 있었다. 특히 큰아들은 피아노 전공으로 줄리아드 음악학교에 입학했을 만큼 재능이 뛰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그 아이가 딱 한 학기를 마친 뒤 ‘다른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정씨는 두 번도 생각 않고 ‘네 뜻대로 하라’고 했다. 전업 연주자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세상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원한 현역

“저는 옛날에 영재교육을 받았잖아요. 제 은사님이던 갈라미안 선생님은 실기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연습하느라 학교에 못 간 적이 많아요. 그렇다고 철저하게 홈스쿨링을 한 것도 아니라 교육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 걸 내 아들들이 겪게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학교교육을 제대로 받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게 하고 싶었죠. 애들이 음악을 잘한다고 해도 전문 연주자의 길에 들어서기까지는 엄청난 수련이 필요합니다. 결국 큰아이는 조지타운대로 학교를 옮겨 지금 비즈니스맨이 됐고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한 둘째는 구글에 다닙니다. 둘 다 정말 그 이상 잘 자라줄 수 없게 커서 저로서는 말할 수 없을 만큼 자랑스럽습니다.” 

요즘 정씨를 또 하나 기쁘게 하는 것은 큰아들이 취미로 피아노를 다시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는 “요즘 아주 열심히 한다. 언젠가 나와 함께 자선 음악회를 하자고도 한다. 장차 그런 시간이 마련될 수 있을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두 사람의 연주는 정씨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던 어머니 고(故) 이원숙 씨가 바랐던 일이기도 하다. 딸의 재능을 가장 먼저 알아본 것처럼 손자의 남다름도 한눈에 간파한 이씨는 정씨에게 “아이와 함께 연주를 해보면 어떠냐”고 권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정씨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가족끼리 연 추모 연주회에서 큰아이가 할머니를 위해 피아노를 연주하기도 했다. 언젠가 우리 둘이 함께 무대에 서는 날이 오면 어머니가 분명 많이 기뻐하실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지금까지 발표한 음반 중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것을 물었다. 정씨는 최근작 ‘아름다운 저녁’과 함께 1987년 발매한 첫 소품집 ‘콘 아모레(사랑과 함께)’, 1992년 발매한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음반을 꼽았다. 전자는 그의 큰아들이 가장 좋아하던 음반으로, 한국인에게 큰 사랑을 받은 엘가의 ‘사랑의 인사’가 실려 있다. 후자는 클라우스 텐슈텐트가 이끄는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음반으로 어머니 고 이원숙 씨가 “수천 번을 들었다”고 할 만큼 아꼈다고 한다.


정경화
•1948년 서울 출생•1954년 바이올린 시작•1958년 이화콩쿠르 바이올린부문 1위 및 특별상•1961년 도미, 줄리아드음악원 입학(전액 장학생, 이반 갈라미안 사사)•1967년 미국 레벤트리트 국제바이올린콩쿠르 1위 •1968년~ 세계 유명 교향악단과 협연 및 독주회•1970년 런던심포니 협연으로 유럽 무대 데뷔. ‘데카’ 레이블과 첫 음반 발매•1973년 ‘스트라빈스키 왈튼협주곡’ 음반으로 에디슨상, 독일 평론가들이 선정한 ‘올해의 스타상’ 수상 •1980년 퀸 엘리자베스 국제콩쿠르 심사위원 •1982년 영국 선데이타임스 ‘최근 20년간 가장 위대한 기악연주자’ 선정•1984년~ 결혼 후 두 아들 출산•1994년 ‘바르토크 바이올린 협주곡’ 앨범 그라모폰 상 수상 •1995년 클래식 연주자로 유일하게 ‘아시아위크’가 뽑은 ‘위대한 아시아인 20인’ 선정•1997년 자랑스런 이화인상 •1999년 20세기를 빛낸 예술인 음악부문•2007년~ 미국 줄리아드음악원 교수•2010~2018년 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2011년 제21회 호암상 예술상


신동아 2018년 5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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