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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진보경제학자 정승일 “삼성전자·현대차 덕에 협력업체 컸다”

  •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인터뷰] 진보경제학자 정승일 “삼성전자·현대차 덕에 협력업체 컸다”

  • ● “잠재 요소 활용하면 3% 이상 성장 가능”
    ● “소득주도성장론엔 ‘투자’ 얘기 없다”
    ● “소득주도성장, 수출·투자 충분해야 효과”
    ● “스튜어드십 코드, 주주자본주의로 갈까 걱정”
    ● “삼성전자 없어야 벤처 성장? 산업 모르는 주장”
    ● “삼성·현대차 협력사가 임금 높고 기술도 뛰어나”
    ● “광주형 일자리, 보수도 지지할 만큼 설득력 커”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경제가 진영논리에 오염됐다. 소득주도성장, 경제민주화, 스튜어드십 코드, 광주형 일자리 등 온갖 사안에서 피아(彼我)가 나뉜다. 소득주도성장의 명암을 분석하자고 들면 ‘기득권 세력의 실패 프레임’이라는 자동응답이 되돌아오는 식이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달랐다. 2005년 9월 27일. 노 당시 대통령은 언론사 경제부장단을 청와대로 초청해 “귀담아들을 만한 부분이 있다”며 책 한 권을 소개했다(‘동아일보’ 2007년 2월 24일자 참조). 장하준(56)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와 정승일(58)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이사의 대담집 ‘쾌도난마 한국경제’다. 한때 이 책은 ‘노무현 청와대’의 필독서로 꼽혔다. 

정작 두 저자는 노무현 정부의 경제개혁 노선이 “신자유주의 성향이 짙다”고 공박했다. “선의와 달리 양극화를 심화시킬” 거라고도 경고했다. ‘진보정부’에 대한 ‘진보적 비판’인 셈. 진영논리에 때 묻지 않은 비판에 ‘대통령 노무현’의 귀는 열려 있었다. 

2019년 4월 3일. 정승일 이사를 서울 종로구 카페에서 만났다. 정 이사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투신했고, 1990년대 독일에 유학해 베를린자유대에서 정치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쾌도난마 한국경제’ 외에 장하준 교수와의 또 다른 대담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2012)를 출간했다. 2017년에는 ‘누가 가짜 경제민주화를 말하는가’를 냈다. 진보경제학자로 꼽히는 그를 만나 분배가 아닌 성장 이슈부터 물었다.


유휴자금 1000조 원

- 2.5~2.7% 안팎 성장률을 두고 ‘저성장 시대이니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 있더군요. 



“많은 사람이 ‘우리 성장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괜찮지 않으냐’고 하는데요. 해외에서는 그런 국제 비교가 의미 있지만, 국내에서 그런 발언이 무슨 설득력이 있을까 싶습니다. 우리나라는 많은 자본과 노동이 ‘유휴’ 상태에 있어요. 금융시장에 유휴자금이 1000조 원을 넘고 대부분 부동산에 쏠려 강남에 버블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 그렇다 보니 금융권이 가계대출로 쏠리고 있죠. 


“노동시장도 마찬가지예요. 청년실업이 심각하고 구직을 포기한 여성도 많습니다. 우리나라 고용률이 국제적으로 여전히 낮아요. 자본, 노동 같은 생산요소를 충분히 사용치 못하고 있는 겁니다. 잠재적 요소를 잘 활용하면 3% 이상 성장할 수 있죠.” 

- 소득주도성장은 진보적 정책으로도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다 나온 구호 같은데요. 그러니 사람들의 실망이 커진 것 같습니다. 

“소득주도성장은 결국 소비주도성장인데, 월급 올려주고 복지혜택 제공하면 소비가 늘어 내수 기업의 부가가치가 커질 거라는 이야기죠. 일부 일리는 있어요. 다만 수출과 투자가 충분하다는 전제가 있을 때 가능한 이론입니다. 

소득주도성장을 주창하는 분들은 우리나라 투자가 충분한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지난 10년간 실물투자가 충분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만, 상당 부분이 버블이에요.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부동산 버블 정책을 폈습니다. 당시 실물투자로 집계된 수치의 상당수가 아파트 건설이었어요.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금융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했는데,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문제는 그 부작용으로 건설투자가 많이 줄었다는 겁니다. 부동산 버블을 빼면 그간 실물투자가 충분치 않았다는 증거죠. 게다가 산업투자 역시 충분치 않고 양극화가 심합니다. 반도체업종이나 4대 그룹만 투자를 많이 했습니다. 나머지 수백 개 대기업이 10년째 투자를 안 하거나, 못 하고 있어요. 미래성장동력을 찾지 못해서거든요.” 

정 이사는 확고한 산업정책론자다. 국가 주도로 전략산업을 육성해 새로운 먹거리를 육성해야 한다는 것. 이와 관련 윤종원 청와대 경제수석은 ‘신동아’ 2월호 단독 인터뷰에서 “정부가 인위적으로 특정 부문을 택해서 지원하면 문제가 뒤따른다”고 밝힌 바 있다. 정 이사는 “산업정책의 유형이 여러 가지”라며 설명을 이었다. 

“삼성전자는 이미 세계 1등 기업이니 정부가 자원을 몰아줄 필요가 없고 그건 현대차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성그룹이 키우는 산업이 바이오헬스인데, 정부가 굳이 돕는다면 바이오 분야 원료, 재료, 장비를 납품하는 중소·중견기업을 육성하는 식이겠죠. 

예를 들어보죠. 열처리, 금형, 단조, 주조 등을 뿌리산업이라 합니다. 휴대전화에 쓰이는 플라스틱 부품들이 금형을 통해 제작됩니다. 자동차 차체의 프레스 강판도 금형 틀에서 찍어내고요. 이들 업체에 20대 청년이 20년째 들어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금처럼 놔두면 숙련기술자가 부족해 10~20년 후 몰락하게 돼 있어요. 산업정책은 이런 데 필요합니다.”


뿌리산업 몰락한다

- 뿌리산업 종사자들은 대기업의 단가 후려치기를 막아달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진보의 주된 대응책이고, 거기(뿌리산업) 사장님들도 원하는 바죠.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 직원들이 일일이 그 많은 하도급계약을 심사해 불공정 여부를 판단할 수가 없어요.”
 
- 현실적으로 어렵다?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으로 그런 방식을 (진보 일부에서) 이야기해왔는데, 한계가 뚜렷해요. 다단계 하도급은 결국 저임금 따먹기입니다. 최저임금 올리고 (주52시간 근무제 정착으로) 노동시간 단축하는 게 차라리 낫죠. 물론 5~10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해야 부작용이 적을 겁니다. 그럼 저에게 ‘사업 접으라는 것이냐’는 항의가 들어오겠죠. 네. 장기적으로는 접으시라는 겁니다.” 

- 한계기업들이 사업을 접는다는 말인가요? 

“그렇죠. 살아남은 나머지 업체는 주문량이 늘겠죠. 사업 접으신 분들 중 일부는 여기에 취업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에게는 국가복지를 대폭 확충해 생계를 안정시켜 드리고 또 국가비용으로 전직 훈련을 시켜드려야 하고요. 이 과정을 10~20년 밟게 되면 2~3개 업체만 남을 겁니다. 규모가 커지고 매출과 수익이 안정화돼야 독자적인 기술 개발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원청 대기업과 맞서는 교섭력도 확보할 수 있고요.” 

잠시 정 이사가 시곗바늘을 2000년대 이전으로 돌렸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시의성을 점검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가 1990년대 초·중반처럼 경제가 계속 성장해 주문 물량이 넘친다면 최저임금 오르고 노동시간 단축돼도 뿌리산업 업체가 감당할 수 있을 겁니다. 소득주도성장론자들은 노동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까지만 얘기하고 투자는 빼놓는데, 그게 한계예요. 

1987년부터 1990년대 초·중반 사이 우리나라 임금 수준이 빠르게 올랐지만 별문제가 없었어요. 실물투자가 왕성했거든요. 삼성이 자동차 공장 세우고 대우, 현대가 비행기 만든다고 할 정도였어요. 낙수효과가 있어 말단 금형, 열처리 업체에 일감이 넘쳤습니다.”


엄청난 실물투자

2012년 3월 19일 책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장하준 교수(가운데)와 정승일 이사(오른쪽). [부키]

2012년 3월 19일 책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장하준 교수(가운데)와 정승일 이사(오른쪽). [부키]

정 이사가 이번에는 시야를 중국으로 옮겼다. 마찬가지로 화제는 소득주도성장이다. 

“중국이 2008~2009년 세계금융위기 터지고 나서 경제가 안 좋았어요. 그때 중국 당국이 매년 최저임금을 20%씩 인상했습니다. 큰 항의가 없었어요. 엄청난 실물투자가 이뤄지니 사람들이 부작용을 못 느낀 겁니다. 소득주도성장이 부딪힌 여러 한계를 돌파하는 방법 중 하나는 실물투자를 과감하게 일으키는 겁니다. 민간 기업들이 하지 않는다면 정부가 나서야 하고요.” 

정승일, 장하준 두 학자는 ‘쾌도난마 한국경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통해 참여연대 등이 이끈 소액주주운동 중심의 경제민주화론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자칫 한국경제를 영·미식 주주자본주의 체제로 밀어버릴 거라는 우려에서다. 주주자본주의는 주주의 이익을 최우선에 두는 자본주의의 한 형태다. 소액주주운동을 주도했던 시민운동가들은 문재인 정부 경제라인 곳곳에 포진했다.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이 대표적이다. 

- 김상조 위원장은 “엘리엇, KGCI(강성부펀드), 국민연금 등이 다양한 방식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면서 긍정적 뉘앙스로 말하더군요. 

“2008년 금융위기로 미국 GM이 파산했고 포드는 파산 직전까지 갔어요. 크라이슬러는 이탈리아 피아트에 매각됐습니다. 그 위기를 겪으면서 오바마 정부가 제조업을 살리는 산업정책을 펴요. 그 정책을 뒷받침한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학자들이 미국 제조업의 가장 큰 몰락 원인으로 월가의 주주자본주의를 꼽았습니다. 

월가가 상장 대기업에 단기수익성 압력을 가해왔어요. 상장 대기업들이 2000년대 들어 자사주 매입과 배당에 쓴 돈이 순이익 누적액보다 많습니다. 이익을 내면 이를 유보해 재투자하는 게 기업인데 그 메커니즘이 사라졌습니다.” 

이 주장대로라면 ‘나쁜 의미에서’ 미국은 한국의 미래다. 정 이사는 “단기수익성 압박에 미국 제조업체들이 공장을 아시아로 이전해왔다”며 말을 이었다. 

“‘발명은 미국에서, 생산은 해외에서’가 경영 슬로건이었어요. 지금은 미국의 많은 경영·경제학자가 ‘이러다 제조업이 중국에 다 넘어갈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연구개발(R&D)도 넘어가고 있어요. 미국 테슬라가 신차 공장을 상하이에 짓기로 했어요. 언젠가 테슬라의 일부 R&D 센터가 상하이로 넘어갈 거라는 거죠. 앞으로 전기차 기술의 메카는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 될 테니까요.” 

- 문재인 정부는 이사회 독립성 강화, 오너 일가와 이사회 의장 분리를 진보적 개혁으로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주주자본주의 성격이 짙은데요. 

“회사 권력도 입법(이사회), 행정(경영진), 사법(감사) 3자로 적절히 분리돼야죠. 일리가 있어요. 다만 이는 절차적 민주주의입니다. 이사회 독립성 강화, 옳죠. 문제는 그 이사회를 누가 잡느냐는 겁니다. 주주 대표만 들어가는 게 맞느냐 따져봐야죠. 사외이사 얘기하는데, 아무도 제도가 제대로 굴러가고 있다고 생각 안 합니다.” 

- 명망가들이 은퇴 후 가는 자리처럼 돼 있죠. 


“오너의 거수기이고 잘해봐야 투자자 편이에요.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주주민주주의가 아닌 직장민주주의입니다. 직장에서 종업원은 ‘을’이고 회사 주주와 경영진은 ‘갑’이잖아요. 회의 때 직장상사 혼자 발언하고 아래 직원들은 말 한마디 못 하다가 실제 중요한 얘기는 술자리 가서 하고. 국민소득 3만 달러인 나라의 직장 문화가 여전히 이렇다니.(헛웃음)


경제민주화는 직장민주주의

부장급 이하 전 직원이 투표에 참가해 선출한 직원 대표가 이사회에 들어가야 합니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습니다. 현장 노동자 대표를 뽑자는 게 아닙니다. 많은 경우, 과장이나 부장이 뽑힐 겁니다. 회사 사정을 잘 아는 분들이 이사회에 들어가 오너의 잘못된 경영을 비판할 수 있죠.” 

경제민주화를 둘러싼 논쟁거리 중 하나가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 의결권 행사 지침)다. 1월 23일 문재인 대통령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행사해 국민이 맡긴 주주의 소임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한국형 ‘주주행동주의’가 본격화했다. 

-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는 “연금은 가입자 돈이지, 세금이 아니다. 노후자금 관리라는 공익에서 벗어나면 옳지 않다”며 문제를 제기했더군요. 

“자진해서 냈으면 보험인데, 강제로 냈으니 세금과 비슷한 공공성이 있다고 봐야죠. 연금사회주의는 아니고, 도리어 수탁자 자본주의라고 해야겠죠. (다만) 저는 신 교수님과는 다른 지점에서 걱정이 들어요. 스튜어드십 코드가 주주자본주의로 가는 것 아니냐는 거죠. 지금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임직원들은 여의도 투자금융회사처럼 국민연금을 운용해요. 한두 달은 아니어도 2년 내에 샀다 팔았다 합니다. 만약 국민연금이 일반 펀드처럼 ‘배당 많이 내놔라, 자사주 매입하라, 주가 올려라’고 행동하면 어떻게 될까요? 미국처럼 상장 기업들이 장기투자 못 하겠죠. 일자리가 줄 수 있고요. 

국민연금 같은 거대 공적 펀드는 국민경제 성장을 고려하고 기업의 실물투자, 특히 일자리투자를 도모하면서 운영돼야 합니다. 이런 식의 스튜어드십 코드라면 얼마든지 찬성할 용의가 있어요. 지금은 스튜어드십 코드라는 이름을 걸면서 주주자본주의의 모습으로 비칩니다. 고칠 여지가 있어요. 단기수익성 추구를 넘어 사회책임투자를 완수해야 합니다.” 

- 일부 경제민주화론자는 전속거래만 횡행하니 부품산업에 혁신이 없다고 합니다. 

“산업연구를 제대로 해본 적 없는 분들의 생각입니다. 어떤 분들은 아예 재벌 해체를 주장하고, 한발 더 나아가 삼성전자도 쪼개버리자고 하더라고요. 삼성전자라는 회사가 없어져야 벤처기업이 쭉쭉 성장한다는 말씀을 하시더군요.(헛웃음) 

그분들이 뭘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 얼마 전 ‘시사인’에 부경대 연구팀이 5만 개 기업 재무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가 실렸어요. 연구를 주도한 남종석 박사님의 박사논문 지도교수가 홍장표 교수(전 청와대 경제수석·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장)세요.”


1차 벤더의 동반성장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 원래 홍 전 수석께서 학자 시절 하도급거래를 연구하셨죠. 

“이번에 부경대 연구팀이 내린 결론은 홍 교수님이 그간 해온 얘기와 사뭇 다릅니다. 삼성전자, 현대차의 1차 협력사(벤더)들이 1970~80년대만 해도 종업원이 100~200명밖에 안 되는 자그마한 규모였어요. 지금은 중국, 미국, 유럽공장 다 합쳐 전 세계에 5000~1만 명을 고용하는 규모가 됐습니다.” 

- 1차 벤더만 5000명이 넘는다? 

“네. 현대차는 미국 앨라배마와 중국 베이징에 공장 지을 때 1차 벤더를 데리고 나갔어요. 현지 공장당 종업원만 2000~3000명인데 그런 공장이 인도, 체코에도 있거든요. 즉 삼성전자, 현대차 매출이 늘면 1차 벤더의 매출도 함께 동반성장을 했다는 겁니다. 

요즘 삼성전자나 현대차가 가장 중시하는 가치는 품질이고, 1차 벤더도 꾸준히 기술개선, 품질개선 해야 합니다. 1차 벤더가 혼자 못 할 경우 삼성전자 관리팀이 내려가서 직접 지도해줍니다. 이런 식의 과정이 지난 40년간 이어져왔습니다. 그 반대급부로 ‘우리가 당신네 기업에 기술 지도해줬으니 우리한테만 납품해라’가 된 겁니다.” 

- 그래서 전속거래가 생겨난 거군요. 

“그렇죠. 1970~80년대에 현대차, 삼성전자가 독자기술 개발에 나서는 데 1차 벤더의 기술력이 매우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현대차, 삼성전자는 1차 벤더들이 일본 도요타, 소니 등에 납품하는 일본 업체들과 교류하며 기술을 습득하도록 알선하는 등 큰 도움을 줬어요. 전속거래는 이렇듯 역사적으로 긍정적 측면이 있었던 겁니다. 

삼성전자, 현대차, LG전자처럼 글로벌 수준의 대기업과 거래하며 성장한 1차 벤더들이 어느덧 기술력과 품질이 국제적으로 봐도 괜찮게 성장했고, 그 덕택에 지금은 해외 업체들에도 납품하고 있어요. 예컨대 삼성전자 1차 벤더에 속해 수십 년간 납품한 실적이 있다면 일본 소니도 그 국내업체의 기술과 품질을 신뢰하면서 거래를 트는 식이죠.” 

- 전속거래로 성장을 하고 난 후죠. 

“재벌개혁론자들은 ‘독립기업이 바람직하다’고 이야기하면서 전속거래하지 말라고 하는데 도리어 삼성전자, 현대차와 거래하며 성장한 기업들이 임금도 높고 기술력도 뛰어납니다. 지표가 다 좋아요. 오히려 독립적으로 운영해온 회사들이 임금이 낮습니다.” 

- 경제민주화론자와 여권 일각은 ‘수출 대기업’ 중심의 경제를 청산하고, 중소벤처 중심으로 경제를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벤처캐피털, 창업투자사 분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투자할 때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게 ‘당신 회사가 삼성전자나 SK텔레콤 등에 납품합니까?’입니다.” 

- 경제민주화론자들은 정보기술(IT)과 화장품, 게임 등에서 신생 벤처기업이 나온 이유가 재벌이 블록화하지 못한 영역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제조업이 아니니 수출이 쉽지 않죠. 네이버나 카카오 등이 해외에서 일부 돈을 벌고 있긴 합니다만, 국가경제를 지탱할 만큼의 수준은 아니죠.” 

- 지금은 우버 같은 모빌리티 플랫폼이 신산업의 총아인 것처럼 돼 있는데요. 

“우버는 서비스업이죠. 2012년에 삼성가(家) 이부진 씨가 빵집을 연다고 해서 골목상권 논란이 있었잖아요. 승차공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준(準)재벌인 카카오가 일종의 자영업인 개인택시 업계에 들어오려 하는 것 아니에요? 뭐가 다른가요?” 

- 그런데 이를 두고 4차 산업혁명이라고 포장하죠. 

“서비스업의 경우 자영업자와 저임금 일자리 비중이 높기 때문에 굉장히 신중해야 합니다. 고객 서비스가 일부 좋아지겠지만 피해 보는 분들에 대해 사회가 충분히 고려해야죠.”


복지국가의 교두보

한국 제조업의 돌파구로 이목을 모은 사업이 광주형 일자리다. 광주시와 현대차는 올 하반기 7000억 원을 투입해 1000cc 미만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를 연간 10만 대 생산하는 자동차 공장을 빛그린산단에 짓는다. 민주노총은 이 사업이 ‘나쁜 일자리’를 양산할 것이라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 민주노총은 광주형 일자리에 대해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표현까지 씁니다. 

“저는 긍정적으로 봅니다. 재벌 대기업이 일자리를 만드는 데 나섰다는 의미도 크고요. 독일의 20~30년 경력 마이스터(숙련기술자) 연봉이 7000만 원 되더군요. 독일에서도 중상위 소득인데 현대차, 기아차보다는 연봉이 적어요. 우리나라는 대기업 노동자 연봉이 높은 반면 중소기업은 너무 낮습니다. 그 격차를 해결하는 데 광주형 일자리의 장점이 있어요.” 

정 이사는 광주형 일자리가 “복지국가로 가는 중요한 교두보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근거는 이렇다. 

“임금을 연 4000만 원 선에 맞추고 중앙정부와 광주시, 전라남도가 복지 인프라를 깔아 실질소득을 높여준다는 게 핵심이라고 봐요. 이 모델을 전국으로 확산시키려면 복지 인프라를 까는 데 수십조 원의 예산이 쓰일 겁니다. 일부는 재벌, 소득상위 1%를 대상으로 증세해야겠죠. 대기업 노동자들에게도 증세를 해야 하고요. 지금 광주형 일자리에 대해 민주노총 빼고 반대하는 데 없잖습니까. 국가가 나서 복지를 해준다고 하는데도 보수정당, 보수언론조차 지지하고 있어요. 그만큼 설득력이 있다는 겁니다.”




신동아 2019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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